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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서울역사. 아침에 딱 마주친, 노숙인에 대한 여러분의 첫인상은?
1. 더럽다. >_<
2. 불쌍하다. ㅠ_ㅠ
3. 뭔가 도와줘야 할텐데.... ~.~
4. 우리 같이 힘모아 투쟁하자? ! .!
5. 기타 등등.
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그것을 당신에게 선택하게 했을까요?
이번의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의 주제는 '노숙인 차별' 입니다.
1번부터 5번까지의 선택지 중
여러분을 선택하게 만든 그 선택지에, 차별이 있나요? 있을까요? 없을까요? 뭐가요?
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
adelitas님의 [청올님 제발 나 좀 살려줘 T.T] 에 관련된 글.
(adelitas님에게 덧글로 달다가 이번엔 정말 덧글뿐이었다가 순전히 길어서, 포스팅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관련된 글을 읽고 보아야만 하겠네요. 누군가 제 덧글이 길어 잘 못 읽겠어서 출력을 해서 읽었다는 얘길 들으니;;; 두루(?)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마지막 문장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비교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할 근거가 되기에는, 저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물론 adelitas님은 서로 다른 얘길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비교만은 정말 아니다'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렇게 얘기해오신 거겠지만 저는 '이런 이런 같은 점을 그들이 보였다'고 비교한 것을 자꾸만 '다른 점이 있는데 왜 같냐'고 하시니까 저도 답답합니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차이가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같다는 얘기는 다른 분이 말씀하시기 전에 저도 한 적이 있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 보통 일반인들은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벌금뭅니다. 옆집에서 남자가 처자식 두들겨 패면 저런 죽일 놈 하면서 욕합니다. 사람들도 뭐가 옳고 그른지 다 알아요. 집회하러 나온 사람들이 집회 좀 방해했다고 노숙인을 들고가서 내팽개치면 다 욕해요. 하지만 철거민들은 용역한테 온갖 행패 다 당해도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들은 구사대한테 온갖 폭력 다 당해도 관심도 안 가지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저는 그 점을 지적한 거에요. T.T'
-> 역시 계속 말씀드리듯이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런 얘기가 애초에 제가 한 얘기에서 비교한 부분을 무효화할 정도로 같은 논리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 하던 사람들이 노숙인을 그렇게 했을 때 '다 욕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그렇게 한 사람들 집단이 끝까지 정당화했고요, 주변 아무도 문제제기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옆집에서 처자식 두들겨 패는 남자'도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도 그 남자는 끝까지 잘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폭력 그렇게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제대로 대처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은 남의 집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말입니다.
저도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을 모를까 봐 알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폭력을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직접 들어가서 남편에게 시비 걸고 제지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 드물 겁니다. 노숙인에게 그랬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무도 실제로 신경쓰지 않아요. 문제제기한 사람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선 다 둘러싸서 제가 욕을 먹었죠. 저도 직접 뛰어들어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충격 먹고 내 눈을 의심하며 한참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가 뒤늦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했을 뿐이에요.
또 철거민, 노동자가 용역과 구사대한테 온갖 행패를 당하고 구타를 당해도 죽일 놈들 하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원수나 통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그 접근으로도 이미 '어느 쪽이 더 심한 폭력이다'라는 말은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폭력에 대하여 제대로 대처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은' 적은 없습니다. 당장 당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피해는 이미 발생했고 가해자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죽일 놈 하면서 욕은 하지만 그것을 가해 당사자로 하여금 설득시키고 '네가 분명히 잘못한 거다'고 하는 문제는 분명 다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문제고 운동이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소위 '사적인 영역'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하여 '어떤 것은 계급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계속 이 문제는 애초에 제가 비교한 것과 다른 부분의 얘긴데, adelitas님은 계급 문제를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계급만 보고 그것이 다른 어떤 계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지배가 물리력이나 자원 소유에서 엄청나고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젠더나 노숙인 문제도 그 계급 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연루돼 있기도 할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계급 논의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세세한 영역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계급'과 지배/피지배 이야기를 더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의 전제로 삼으려고 할 때, 그 지배 관계조차 뒷받침되지 않는 수많은 폭력에 대하여 '그래도 그건 국가 폭력과는 다르다'와 같은 사실상의 '덜 중요한 폭력'으로 만드는 차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가정폭력'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알고 죽일놈이라고 욕한다'고 하고 계시잖아요. 그걸 다 아는 사회에서 계속해서 그 폭력이 일어나고 은폐돼고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에도 덧글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래도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이...'라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어떻고요?
adelitas 님은 제가 국가/자본에 의한 계급 간의 피지배/지배 문제를 삭제하고 말했다고 여겨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문제를 없다고 생각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자본에 의한 지배를 그들이 흉내냈고 그것이 얼마나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를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흉내낸 것이지 그래 봐야 그들은 절대로 국가가 될 수 없으므로 같지 않다'고 하면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차별팀님의 [‘누구의’ 폭력이냐? _청올] 에 관련된 글.
위 글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덧글에만 덧붙여 달다가, 그 글 논쟁이 폭력/비폭력 얘기로 많이 가기도 해서, 물론 꼭 필요하고 동시에 이루어질 만한 논쟁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에 관해 좀더 하고 싶은 말을 보강하느라고, 여기에 연결해 와 새 포스팅으로 남기기로 했다.
용산 참사에서 '살인마'라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 지지하고 연대하는 입장이지,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것, 그만큼 폭력이나 살인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하고 누가 의미 부여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회적으로 폭력, 살인, 이렇게 이름붙여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정도의 차이에 따라 폭력이냐 아니냐, 또는 효율적이고 필요한 폭력이냐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폭력이냐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연 어떤 행위를 우리는 폭력이다/살인이다, 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기득권을 포함한 사회의 동의/합의를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벽에 부딪히느냐? 할 때 후자라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다. 여기서 '폭력'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서 배제된 대상이 있는데, 그 둘 사이에는 엄청난 권력 차이라는 강이 흐른다는 거다.
우리는 용산 참사를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표현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보수 언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
'살인'이라는 의미는 그 폭력에 문제제기하는 우리 입장에서, 기득권/힘을 가진 정부/가해자가 허용하지 않은 저항 방식으로, 심지어 대부분의 일반인 중에서 기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이름 붙이고 알려 나가는 운동 단계에 있는 것이지, 정부가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며 살인이었다'라고 참회하고 이후의 그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그렇다 해도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에 이르지는 못했다(아직은). 여전히 재개발과 강제퇴거는 계속되고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순응하는 게 그나마 편해서 저항을 포기하는 일도 수없이 많고.
- 연쇄살인범이 한 살인은 모두가 당연히 '살인/범죄'라고 받아들이지만 공권력이 한 살인은 '살인'이라고 ('도발적/선정적으로') 말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치며 끊임없이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
- 우리가 전경의 차를 훼손하는 것은 '폭력 시위'라고 이름붙여지고 보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리지만 전경이 우리의 신체에 직접 위협과 폭행을 가하는 것은 정당한 진압이라고 정부가 주장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주장이라 함은 즉 구속하고 벌금을 때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것
- 노숙인이 '집회 도구'인 판넬을 발로 차는 것은 모두가 폭력이라(또는 '도발'이라고라도 어쨌든 처벌/응징 가능한 것으로) 쉽게 인식/주장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신체에 (그것도 여럿이 달려들어) 직접 폭력을 가하는 것은 '집회 방해자를 제지하기 위한 응당한 권리' 또는 '조금 과잉되고 너무하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그럴 만했다'는 얘기로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그 건널 수 없는 강에는 공권력과 시민 간의 권력 차이도 있지만, 시민 중에서도 누구나 같은 시민이 아닌 차별의 기제가 작동하는데, 그 당당/뻔뻔함이 마치 공권력이 시민을 대할 때의 그것과도 하나 차이가 없다는 무서움이었다.
그날 판넬을 발로 찬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의 그 사람이 아니라 전/의경 차림의 사람이었더라면?또는 번듯하게 양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었더라면? 또는 백인이었더라면? 또는 외제 차를 몰고 와서 차로 판넬을 박아 몇 개쯤 한꺼번에 쓰러뜨렸더라면? 과연 그날처럼 그렇게 한 사람을 양쪽에서 잡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머리부터 7m를 질질 끌고 가서 내팽개칠 수 있었을까?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누군가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것이 정부가 사람들을 쥐 잡듯이 몰아쳐서 잡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었다.
- ‘누군가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다면’ ‘조금쯤’ 함부로 해도 좋은가?
폭력이다/아니다, 라는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도,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그 행동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을 때 결국 그 이분법에 의지하게 되는 당혹스러움이란....
용산 참사 추모 집회가 있던 주말 판넬을 세워두고 집회 하던 어떤 이들도 그랬다. 한순간 자신들의 집회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 노숙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술취한 목소리로 허공에 몇 번 화풀이로 소리지르다가, 갑자기 판넬들 세워둔 쪽으로 다가가더니 판넬 하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두 번째 판넬을 또 차려던 찰나- 그 깃발 아래 서 있던 두 청년이 노숙인을 거칠게 몇 번 밀쳐내는가 싶더니 결국 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그를 양쪽에서 붙잡고 땡볕에 하늘을 향해 누운 그의 자세대로 7m 정도를 질질질 바닥에 끌고 와서 내팽개친 것이다. 면티 한 장을 입고 있던 그 아저씨는 티가 들어올려져 등의 맨살도 일부 드러났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유유히 판넬 쪽으로 돌아갔다. 그 노숙인은 한동안 꿈쩍 못하고 뙤약볕에 내버려져 일어나지 못했다. 난 일행을 찾으러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그 순식간의 장면이 충격적이라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지만 짐작도 가능하듯이, 일반적으로 노숙인들(그때 그 사람도)은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지하철역사에선 첫 차가 있는 5시 이전에 무조건 역 밖으로 쫓겨나고, 막차 뒤에나 들어갈 수 있고, 행인들의 소리 등 주변 소음에 잠 못 이루어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조금만 툭 쳐도 픽 쓰러질 수 있다고 한다.
망설이다 결국 이쪽(쓰러져 꼼짝 못하는 사람,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의 얼어붙은 시선)에도 시선이 힐끗힐끗 와 꽂히기에 용기를 내어 그 한 명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저씨와 이전에 무슨 다른 사연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라기에 더 확신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그가 노숙인으로 보이고 술도 취해 있었고 몸도 잘 가누지 못하며 사람을 친 게 아니라 판넬을 찬 것인데, 그냥 제지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굳이 저렇게 했어야 하냐는 내 말에 그들은 이런 말들로 받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많이 참은 거다. 보통 같으면 그냥 저렇게 안 보냈고 맞아서 갔을 거다."
"그 사람이 우리 판넬 찬 건 폭력이 아니냐, 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 우리는 누가 와서 때리면 맞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하냐."
"당신 집에 누가 쳐들어와서 접시를 하나씩 둘씩 깨고 있으면 가서 곱게 말로만 '그러지 마세요' 하겠냐"
한명씩 한명씩 끼어들면서 결국 일 대 다의 토론(사실은, 그리고 점점, 그 ‘일’인 나에 대한 집단적 감정적 성토? 같은)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잘되는 토론일 리가 없다. 나중에 가세한 또 한 명은 “아줌마”란 표현을 여러 번 섞으며 반말을 해서 내가 “아줌마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그 말 욕으로 쓰고 있는 것 알고 있다”고 하니 잠시 그 표현만 빼고 말하는 것 같다가 이내 곧 무시하고 욕으로 활용하며 빈정거리길 계속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골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은 문득 이렇게도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서 당사자가 느낄 2차 피해는 생각해 보셨어요? 그 아저씨가 자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걸 보고 느낄 당황이나, 그런 거 생각해 보셨냐구요!” 내가 “그 문제는 저에게만 고민해보라고 말씀하실 건 아니지요”라고 했으나 그는 “거 봐요! 그런 것도 생각 안하고 무슨 말을 해요!”라 하였다;;
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고? 집회를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무조건 모든 사람이 떄리는 대로 맞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전/의경이나 경찰이 무기 없는 시민을 때리거나 밀어붙이면 맞서 싸울 수 있다. 같이 때릴 수도 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전경 차를 훼손하는 것 정도도 괜찮다(빈 차라면, 그리고 남성들끼리만 들어가 ‘오줌을 싸는’ 짓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명박산성이 사람들의 발길을 (그야말로) ‘폭력’적으로 원천봉쇄했으니 그것을 뚫어버리든 위를 넘어가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숙인 아저씨는 전/의경이 아니다. 집회 당사자들이 그를 질질질 끌고 간 것은 전의경이 시민을 발로 차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공권력에서 평소 받은 스트레스를 그날 그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낸 것처럼 보였다.)
집에 들어와 접시를 깨는 도둑이라면 나보다 물리적으로 훨씬 강할 경우가 많을 터이므로, 나는 정당방위를 (그나마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연에선가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에 내가 너무 놀라고 방어기제가 발동하느라 그 사람이 약한 것을 몰라보고 지나치게 강하게 제지, 아니 제지가 아니라 보복으로서 훨씬 더 심한 정도로 파괴했다면, 나중에라도 사태가 파악되면 미안해져야 할 것이다(물론 이것도 가택침입과 성폭력 위험에 대한 정당방위 등등을 모두 고려하여 엄정히 따질 문제고 내 문제제기에 대한 대항 비유로는 애초에 잘못된 것이지만).
또 한 사람은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도 잘못한 점은 있지만 어쩔 수 없기에 해명해야겠어서 나선다. 집회의 효율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고, 훼방 놓는 사람을 좀 그렇게 한 것이니 이해해야 한다"
이 논리는 미안하지만 용산 참사를 일으킨 정부의 논리와도 똑같이 닮았다. "경제 개발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너희 살던 사람들은 나가줘야겠다." 그리고 그들은 나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았다. 그들의 논리에 정부 정도의 공권력이 보태어진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 너무 답답했다. 명백히 존재하는 차이와 차별 상황에서 등장하는 말들. "그 사람만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도 피해자다" "왜 그쪽 편만 드느냐, 그가 잘했다는 것이냐" “그가 먼저 폭력을 썼는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냐” "우리가 좀 세게 한 건 인정하지만 (어쨌든) 그가 먼저였다." 다들 낯설지 않은 논리다.
소위 ‘폭력’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행사하냐에 따라 같은 것이 ‘폭력’이라고 이름붙여져 낙인찍히기도 하고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쉽게 합의되기도 한다. 상대의 것을 ‘폭력’이라고까지 이름붙이기가 민망할 때에는 ‘도발’이라는 알쏭달쏭한 죄목(?)으로 이름지어 불러서라도 기어이 폭력("권한에 따른 응징") 행사가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행위나 상황에 대하여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뜻을 부여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은 기존의 ‘합의’나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내가 기존의 합의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일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보기에는 물론 참으로 귀찮고 낯설고 피곤한 일이기에 슬쩍 미뤄지기 쉽다... 그리하여 ‘폭력’ 대 ‘폭력’의 대결에서 한쪽의 ‘폭력’은 정당화되고 다른 ‘폭력’(?)은 가차없이 단죄된다. (센 사람이 보기에) 괘씸하다는 이유로.
p. s.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자질하듯 글을 써서 해당 ‘그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그날은 혼자 수고했으니 쩝;; 내가 계속 ‘그들’이라 칭한 이들에게 이후에는 노숙인에 관련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얘기해볼 가까운 소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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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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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의 태도를 가지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 생각해요.전 4번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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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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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노숙인이 아니라는 전제.부가 정보
청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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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rat님 덧글...!'그때 내가 차별했어'라는 꼭지명을 가진 기획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주신 지적에 마음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와 기획을 함께하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특히 '학벌 차별했어' '성차별했어'일 때와는 달리 특정 정체성을 이야기하며 말하게 되니...
사실 그렇잖아도 '노숙인' '장애인' '성소수자'라는 식으로 차별/억압의 대상이 되는 주체를 지칭하는 말은 한계가 있기도 한 데다가, 더구나 '여성' '장애인'과는 또 다르게 '노숙'(정체성만으로 생각할 수 없고 일시적일 수도 있는 어떤 상태, 행동, 상황, 처한 조건)에 '인'이 결합된 말을 쓰는 것이 내포한 차별과 불편함에 관하여,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그 말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로 논의한 적도 있으나, 이번 주제를 정할 때는 그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질 못하고 넘어갔네요... 요즘 주로 구체적으로 골몰하는 주제다 보니(변명이 됐군요) 오히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를 놓친 것 같습니다... 이 덧글을 보니 저도 덧글로 (두서 없지만) 생각을 적게 되네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얘기해보자는 취지에 함께할 수 있다면(저는 글을 올린 것은 아니라서 직접 고치긴 어렵고), '노숙'에 관련한 차별에 관해 얘기해보자고 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그보다는 근본적인 이 문제제기에 백번 공감하면서... 예전에 누군가가 성매매 여성에 관하여 타자/대상화하는 말을 들을 때에 느낀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메아리가 되어 울립니다. 그때 저도 '그런데 제 직업은 아시는지요?' 하고 되물었었는데...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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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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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역시도 제가 노숙인이 아닌 덕분에 어려워 할 수 있는 거지만.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 라고 한 번쯤 물어 봐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그 문제 역시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댓글 달았습니다.
포스트에 그런 내용을 넣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던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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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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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 딱 탔는데 한 쪽에 노숙인이 앉아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냄새를 참기 힘들어서 다른 칸으로 간 적 있어요.(보통 참으려고 노력함) 가면서도 이래도 될까 하는 마음과 찜찜함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것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참았어야 할까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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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님처럼 찜찜함을 느끼면서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볼것을 본 것처럼 불쾌해하며 딴데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죠. 저는 이주노동자상담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와는 약간 다른 체취가 있어서 처음에는 불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요. 노숙인 자립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우리는 참기 힘든 체취도 아마 익숙해할거에요. 저도 전에 한 번 역에서 배식을 하길래 구경할려고 갔는데 술냄새가 나길래 머리가 아팠는데 배식하시는 분들은 표정이 평온하시더군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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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덧붙이면 차별은 심리적인거고 냄새가 싫은건 신체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노숙인은 냄새가 나서 싫어라고 하면 차별이죠. T.T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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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름 고민 좀 했어요. 예전에 제 동생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꼭 양말을 벗어서 제 강아지들한테 냄새를 맡게 했거든요. 그때 제 강아지들이 굉장히 싫어하더라구요. 제 동생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제 동생 발냄새가 싫어서 그랬는지는 저도 확신이 안가요. 동물도 싫어하는 냄새가 있을거에요. 분명히. 냄새를 싫어하는건 동물적인 반응이고, 냄새가 나는 인간은 더러워, 지저분해, 이렇게 가치평가를 해서 열등하게 취급하는건 인간적인 반응 아닐까요. 제 설명이 님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고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나름 고민했어요.부가 정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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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왜 그랬을까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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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표현이에요.부가 정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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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맞아요. 정말, 익숙해지면..나도 평온해질 수 있겠죠?;;근데, 심리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딱 구분하기 힘들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 체취가 나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서 나는 것일텐데, 어떤 체취는 익숙하고 어떤 체취는 익숙하지 않은 것은 또 심리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향수 냄새는 낯설 때도 많은데 '좋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다른 냄새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요.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에 대해 몸이 반응하며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냄새가 인지된다'는 '신체적'인 것과 '냄새가 싫고 짜증난다'는 '심리적'인 것이 좀 구분되는 듯도 하면서, 또 어떻게 보면 잘 구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능. 흐음...
얼마 전에 보노짓 후세인 씨 성.인종차별사건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조선일보 인터넷에 실린 기사 댓글들 중에서 '아랍인들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냄새가 나는 것을 냄새난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차별이냐'는 댓글들을 보고 친구들과 그런 댓글의 반응이 차별일까 아닐까 고심했던 기억도 나네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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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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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들은 취향을 어릴 때 정서적 충격과 관련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다닐 때 친구가 과 교수님(외국분) 차를 타고갔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 창문으로 계속 숨을 쉬면서 갔던 얘길 했던게 기억이 나요. 백인들에게도 체취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백인에게는 냄새난다고 말 못해요. 이주노동자들은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때문에 냄새난다고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거 아닐까요. 사람들은 솔직한게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솔직한건 아녜요. 이주노동자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는건 솔직한 차원이 아니라 배려가 없었던게 아닐까요.부가 정보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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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워요.
차별이라기보다는 편견인 것이지요.
직접 겪은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위협감을 갖게 되는 공포심.
포비아일지도 모르겠어요. 노숙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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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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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프레시안에서 기사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게 됐어요. 저는 냄새도 다른 감각이 느끼는 것처럼 학습되고 사회화된다고 생각하는데, 단적인 예를 들면 똑같은 방귀 냄새여도 다른 사람 냄새는 싫은데 제 냄새는 좋다는 거죠.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겨드랑이 냄새 같은 몸의 냄새들 있잖아요. 제 냄새는 좋아요. 다른 사람건 싫은데-_-;; (그래도 내 입냄새는 싫음ㅋㅋ) 다른 분들도 그런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이게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증거일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쨌든 냄새가 좋고 싫은 건 '익숙함'의 차이라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적인 반응이라기보단 우리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거죠. 중세시대에는 연인끼리 서로의 겨드랑이 냄새를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어떤 냄새를 선호하느냐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까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