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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서울역사. 아침에 딱 마주친, 노숙인에 대한 여러분의 첫인상은?
1. 더럽다. >_<
2. 불쌍하다. ㅠ_ㅠ
3. 뭔가 도와줘야 할텐데.... ~.~
4. 우리 같이 힘모아 투쟁하자? ! .!
5. 기타 등등.
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그것을 당신에게 선택하게 했을까요?
이번의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의 주제는 '노숙인 차별' 입니다.
1번부터 5번까지의 선택지 중
여러분을 선택하게 만든 그 선택지에, 차별이 있나요? 있을까요? 없을까요? 뭐가요?
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
요 며칠 "루저" 발언의 후폭풍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180cm 이하는 루저에요'라는 H 대학의 '여대생'의 한마디가 파장을 몰고와, 엉뚱하게 그 학교가 다구리 당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미니홈피와 사적인 개인들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고(이미 접한 바 있다.) 인터넷 시국의 대세는 "루저의 난"이다. 궁금하시면 검색해보시라. 아까까지만 해도 상위의 랭킹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그것을 접할 수 있으실 것이다.
이는, 물론 그녀의 발언은 '180 이하'를 분노케 할 수 있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키 작은 남자란 것도 억울한데, 너같은 여자애한테 내가 루저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냣! 라는 뭇남성들의 툴툴댐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가히 거국적인 분노의 물결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인터넷이 완전 난리났다. 블로그 한다는 (대부분은 남자)사람들은 다들 포스팅을 이들의 짤샷으로 도배해놓고, 그 밑에 이 여자는 정말 무개념이고 어쩌고 한다는, 분노의 포스팅을 한다.
나는 사실 그 기사가 맨 처음 떴을 때, 어디서 "또 한 명 걸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생각없고 '무개념녀'라고 말하기 딱 좋을,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걸려서 옳타꾸나, 남성들은 덥썩! 이 떡밥을 잡아 문 것이다. 그래, 얘 봐. 봐봐, 여자들이 이런 다니까? 남자 키 180 안 넘으면 루저라잖아, 라며 자신들의 '여자들 싸잡아 까기' 딱 좋겠다 싶은 떡밥. 그러면서 많은 그들은, 잘 걸렸다 싶어서 자신들이 몸매 "착한" 여자의 특정 부위를 당당히 밝히는 걸, 또 당당히 합리화 하고 있을 것이다. 봐, 얘네들도 180 이상 남자만 좋다잖아, 내가 '꿀벅지' 좋아하고 가슴 '착한' 여자 좋아하는 거 뭐 나빠? 그건 왜 욕하는데? 초콜렛 복근도 니네는 말하면서, 이거 뭐, 쏘 왓? 그래놓고 우리 욕하지마, 우씨!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인가? 그들, 그렇게 그게 충격인가?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고 못견뎌 죽겠나? 이건 이제까지 여성들은 '착한' 몸매, 꿀벅지, '명품' 가슴이 이상형이고, '~한 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여자는 용서 못한다'며, '잘하라는 뜻이었다'는 말들로 원치도 않은 "궁디 팡팡"을 당하고, 술 한잔 따라보라는 강요를 받고,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취업도 안되고 사람도 못되는 세상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이미 '루저'였는데, 그래서 나에게 그냥 그런 건 평범하게 인터넷과 일상 속에서 매일 밥 먹듯 접하는 것들인데. "180 이하는 루저에요" 발언 하나로 그 여자가 자신들을 '루저'로 만들어버렸다고 이렇게 광분하고 있는 이들, 대체 뭐가 그렇게 원통하단 말인가?
나는 '루저 발언녀'도 뭔가 눈치 없고 안됐다 싶은 짜증이 들지만(이웃 블로거가 쓴대로 심지어, 이건 남자들이 야동 본 이야기를 여자들 앞에서 하지 않듯, 여자들끼리만 하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발설한, 감없는 한 여자의 실수담 같은 것일수도 있는데) 이런 기회를 잡아서 여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자신의 행위들을 정당화시키고 있을 그 기회주의자 남성들이 더 싫다. 이 이제까지 해온 것들을 너무도 당당하게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떡밥을 이들은 보유한 것이다.
난 웃겨서, 묻고싶다. 그럼 너네들이 여자들에게 심심치않게, 심심풀이로 내뱉는 그런 말들이 그렇게 듣기 좋고 것인줄 알았던 것인지!! 그게 맥락적으로 뭐가 그렇게 다를까? 그 한낱 좀 눈치없는 한 여자가 꿈꾸는 남자 취향을 좀 거칠고 요령 없이 말한 것 뿐인데! 이 한마디에 이토록 거국적인 분노를 보이고 분에 못 이기다니. 난 오히려 그 여성의 "루저 발언"같은 건 별로 놀랍지도 않고 이런 수많은 남성들의 과잉 대응, 그게 황당하다. 왠일인지 '키 180 이상의 남자는 진지하게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내게는 '180 이하의 키'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반응들이 너희를 '루저'스럽게 만든다는 걸, 그들은 아시는지.
난 장학금은 못 받는다. 솔직히 받고는 싶은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집안에 큰 빚도 없고 유복해서인지 장학금을 안준다. 대신 등록금은 꼬박꼬박 은행에 학자금 대출이라도 해가면서 미납 연체 없이 열심히 돈 내고 다닌다. 그렇다고 수업을 안 가는 것도 학교 물건을 혼자 부수고 다닌 것도 아니다.
근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가장 안 좋은 강의실과 애매한 시간표와 최소한의 편의공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자취하는데 보증금 지원도 없다.
내 친구는 장학금을 받는다. 못 받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공부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이고 집안에 큰 빚이 있다고 하기에는 외양을 봤을 땐 아닌 것 같다. 당연히 은행에 가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리도 없고, 학교물건 맘껏 쓰며 학점도 잘나온다.
근데 학교에서는 그 친구에게 가장 좋은 강의실과 짜인 강의계획 언제나 주어지는 세미나실 사물함 편의공간이 제공된다. 게다가 기숙사 월세까지 지원이다.
난 문과대이고 철학과다. 그 친구는 글로벌 경영대학 글로벌 경영학과다.
난 한글로 하는 수업을 듣기도 벅차서 학점을 30%는 A 30%는 B 나머지는 자율인 한글 수강과목으로 수업을 듣고, 내 친구는 글로벌하게 영어로 하는 수업을 듣고 50%는 A 90%는 B를 주는 수강과목을 듣게 되어있다.
나는 과에서 3등 안에 들면 장학금을 주는데, 그 친구는 학점 3.5를 넘으면 장학금을 준다.
좋다 장학금 이야기는 접어두고,, 난 꼬박꼬박 등록금내서 학교 다니는 대신 학점은 덜 받겠다는 거고 내 친구는 학점 잘 받아서 등록금 덜 내겠다는 걸로 이해하면 나에겐 왜 세미나실 이용권이 없는 것일까? 왜 우리 학부 건물은 어떤 과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업을 진행하고 친구네 학부 건물은 타과생의 출입조차 껄끄럽게 GLOBAL ONLY(글로벌 학부생만)을 붙여두는가,,, 난 깔끔하게 학점을 포기하는 대신 등록금을 다 냈을 뿐인데,,,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군성노예제의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낮지만 강렬하고도 끊이지 않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아직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두렵다는, 나서는 발걸음이 부끄럽다는, 그리고 ‘우리 어머니에게도 말 못한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여성인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차별의 문제, 가부장제 하의 권력구조가 뿌리 깊게 박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마스크와 모자로 자신을 중무장한 채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성매매 여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군 성노예문제는 지나간 과거, 돌이킬 수 없는, 돌아 갈 수 없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역사적 경험은 지금의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노동권 박탈, 순결이데올로기의 강요, 그리고 아내 구타 등 다양한 형태로 재발현, 재탄생되어 오고 있는 것이기에 논의의 중요성이, 시급한 해결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을 향한 운동의 일환으로서 최근의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은 지금까지의 일본군성노예 문제 관련 전범재판을 재검토하고 명백한 인권침해와 전쟁 범죄자인 책임자 처벌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었다는 데에 그리고 다름 아닌 ‘여성의 힘’으로 열린 권력에 지원받지 않는 시민의 양심으로 이루어진‘시민법정’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피해 국가들만의 일방적 목소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2000년 법정의 논의가 국제법의 일부로서 인정되고 유엔이나 다른 다양한 기관에서 ‘법정’운동과 판결을 확인시켜나가는 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에는 민사재판으로서의 처벌도 중요하겠지만 무력분쟁하 성폭력의 방지와 처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ICC(국제형사재판소)를 중심으로, 그리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ICTY(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ICTR(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에서 2000년 법정의 판결이 전례로서 인용되어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명백히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보인다.
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향한 또 하나의 길은 여성간의 연대의 강화라 할 것이다. 물론 남성들과의 협력을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에 앞서 무엇보다 ‘여성’의 문제이기에 여성이 주체로서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주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주체로서 문제를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단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여성 내 양심적 지지자의 엘리트주의이다. 엘리트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위 내가 경험하지 않는 문제이기에 단지 추상적 사고를 하는데 급급하여 타자화 이상의 논의의 한계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여성 내 상층과 하층계급이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여성 내 계급간 분열은 남성과 여성, 피식민국과 식민군의 대결구도, 권력구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일본군성노예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을 풀지 못한 채 한 사람 또 한 사람 죽어가는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깨어있는 고위 정책자들과 법률가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일 것이나, 이와 같이 소위‘깨어 있는’그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추진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으로는 무엇보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물론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한 언론의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포럼과 심포지엄은 국민 누구나 쉽게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의식을 전환시키는 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 규명에 대한 운동이 2000년 법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국민적 합의를 통한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역사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단지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깊은 뿌리가 되어 되물림되는 아물지 않는 상처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피해자가 내가 사랑하는 친구, 가족 그리고 다름 아닌 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딸들에게 피해가 안 간다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기에 목소리를 높인다는 그녀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여성들이라고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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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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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의 태도를 가지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 생각해요.전 4번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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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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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노숙인이 아니라는 전제.부가 정보
청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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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rat님 덧글...!'그때 내가 차별했어'라는 꼭지명을 가진 기획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주신 지적에 마음이 쿵 하고 울렸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와 기획을 함께하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특히 '학벌 차별했어' '성차별했어'일 때와는 달리 특정 정체성을 이야기하며 말하게 되니...
사실 그렇잖아도 '노숙인' '장애인' '성소수자'라는 식으로 차별/억압의 대상이 되는 주체를 지칭하는 말은 한계가 있기도 한 데다가, 더구나 '여성' '장애인'과는 또 다르게 '노숙'(정체성만으로 생각할 수 없고 일시적일 수도 있는 어떤 상태, 행동, 상황, 처한 조건)에 '인'이 결합된 말을 쓰는 것이 내포한 차별과 불편함에 관하여,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그 말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로 논의한 적도 있으나, 이번 주제를 정할 때는 그 문제를 같이 얘기해보질 못하고 넘어갔네요... 요즘 주로 구체적으로 골몰하는 주제다 보니(변명이 됐군요) 오히려 더 크고 중요한 문제를 놓친 것 같습니다... 이 덧글을 보니 저도 덧글로 (두서 없지만) 생각을 적게 되네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얘기해보자는 취지에 함께할 수 있다면(저는 글을 올린 것은 아니라서 직접 고치긴 어렵고), '노숙'에 관련한 차별에 관해 얘기해보자고 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그보다는 근본적인 이 문제제기에 백번 공감하면서... 예전에 누군가가 성매매 여성에 관하여 타자/대상화하는 말을 들을 때에 느낀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메아리가 되어 울립니다. 그때 저도 '그런데 제 직업은 아시는지요?' 하고 되물었었는데...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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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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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역시도 제가 노숙인이 아닌 덕분에 어려워 할 수 있는 거지만.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 라고 한 번쯤 물어 봐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만, 그 문제 역시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댓글 달았습니다.
포스트에 그런 내용을 넣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던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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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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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 딱 탔는데 한 쪽에 노숙인이 앉아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냄새를 참기 힘들어서 다른 칸으로 간 적 있어요.(보통 참으려고 노력함) 가면서도 이래도 될까 하는 마음과 찜찜함이 많이 들었는데, 이런 것도 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참았어야 할까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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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님처럼 찜찜함을 느끼면서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못볼것을 본 것처럼 불쾌해하며 딴데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죠. 저는 이주노동자상담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주노동자들도 우리와는 약간 다른 체취가 있어서 처음에는 불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요. 노숙인 자립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우리는 참기 힘든 체취도 아마 익숙해할거에요. 저도 전에 한 번 역에서 배식을 하길래 구경할려고 갔는데 술냄새가 나길래 머리가 아팠는데 배식하시는 분들은 표정이 평온하시더군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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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덧붙이면 차별은 심리적인거고 냄새가 싫은건 신체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노숙인은 냄새가 나서 싫어라고 하면 차별이죠. T.T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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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름 고민 좀 했어요. 예전에 제 동생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꼭 양말을 벗어서 제 강아지들한테 냄새를 맡게 했거든요. 그때 제 강아지들이 굉장히 싫어하더라구요. 제 동생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제 동생 발냄새가 싫어서 그랬는지는 저도 확신이 안가요. 동물도 싫어하는 냄새가 있을거에요. 분명히. 냄새를 싫어하는건 동물적인 반응이고, 냄새가 나는 인간은 더러워, 지저분해, 이렇게 가치평가를 해서 열등하게 취급하는건 인간적인 반응 아닐까요. 제 설명이 님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고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나름 고민했어요.부가 정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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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왜 그랬을까요???^^;;부가 정보
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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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표현이에요.부가 정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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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맞아요. 정말, 익숙해지면..나도 평온해질 수 있겠죠?;;근데, 심리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딱 구분하기 힘들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신체적으로 체취가 나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서 나는 것일텐데, 어떤 체취는 익숙하고 어떤 체취는 익숙하지 않은 것은 또 심리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향수 냄새는 낯설 때도 많은데 '좋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다른 냄새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요.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에 대해 몸이 반응하며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냄새가 인지된다'는 '신체적'인 것과 '냄새가 싫고 짜증난다'는 '심리적'인 것이 좀 구분되는 듯도 하면서, 또 어떻게 보면 잘 구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능. 흐음...
얼마 전에 보노짓 후세인 씨 성.인종차별사건이 언론에 보도됐을 때, 조선일보 인터넷에 실린 기사 댓글들 중에서 '아랍인들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냄새가 나는 것을 냄새난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차별이냐'는 댓글들을 보고 친구들과 그런 댓글의 반응이 차별일까 아닐까 고심했던 기억도 나네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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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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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들은 취향을 어릴 때 정서적 충격과 관련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다닐 때 친구가 과 교수님(외국분) 차를 타고갔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 창문으로 계속 숨을 쉬면서 갔던 얘길 했던게 기억이 나요. 백인들에게도 체취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백인에게는 냄새난다고 말 못해요. 이주노동자들은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때문에 냄새난다고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거 아닐까요. 사람들은 솔직한게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솔직한건 아녜요. 이주노동자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는건 솔직한 차원이 아니라 배려가 없었던게 아닐까요.부가 정보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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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서워요.
차별이라기보다는 편견인 것이지요.
직접 겪은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위협감을 갖게 되는 공포심.
포비아일지도 모르겠어요. 노숙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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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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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프레시안에서 기사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게 됐어요. 저는 냄새도 다른 감각이 느끼는 것처럼 학습되고 사회화된다고 생각하는데, 단적인 예를 들면 똑같은 방귀 냄새여도 다른 사람 냄새는 싫은데 제 냄새는 좋다는 거죠.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겨드랑이 냄새 같은 몸의 냄새들 있잖아요. 제 냄새는 좋아요. 다른 사람건 싫은데-_-;; (그래도 내 입냄새는 싫음ㅋㅋ) 다른 분들도 그런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이게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증거일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쨌든 냄새가 좋고 싫은 건 '익숙함'의 차이라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적인 반응이라기보단 우리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거죠. 중세시대에는 연인끼리 서로의 겨드랑이 냄새를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어떤 냄새를 선호하느냐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까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