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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지만 진실된 목소리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군성노예제의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낮지만 강렬하고도 끊이지 않는 목소리를 토해낸다. 아직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두렵다는, 나서는 발걸음이 부끄럽다는, 그리고 ‘우리 어머니에게도 말 못한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여성인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차별의 문제, 가부장제 하의 권력구조가 뿌리 깊게 박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마스크와 모자로 자신을 중무장한 채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성매매 여성들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군 성노예문제는 지나간 과거, 돌이킬 수 없는, 돌아 갈 수 없는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역사적 경험은 지금의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노동권 박탈, 순결이데올로기의 강요, 그리고 아내 구타 등 다양한 형태로 재발현, 재탄생되어 오고 있는 것이기에 논의의 중요성이, 시급한 해결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을 향한 운동의 일환으로서 최근의 “2000년 일본군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은 지금까지의 일본군성노예 문제 관련 전범재판을 재검토하고 명백한 인권침해와 전쟁 범죄자인 책임자 처벌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었다는 데에 그리고 다름 아닌 ‘여성의 힘’으로 열린 권력에 지원받지 않는 시민의 양심으로 이루어진‘시민법정’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피해 국가들만의 일방적 목소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2000년 법정의 논의가 국제법의 일부로서 인정되고 유엔이나 다른 다양한 기관에서 ‘법정’운동과 판결을 확인시켜나가는 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에는 민사재판으로서의 처벌도 중요하겠지만 무력분쟁하 성폭력의 방지와 처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ICC(국제형사재판소)를 중심으로, 그리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ICTY(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ICTR(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에서 2000년 법정의 판결이 전례로서 인용되어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명백히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보인다.

 

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향한 또 하나의 길은 여성간의 연대의 강화라 할 것이다. 물론 남성들과의 협력을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에 앞서 무엇보다 ‘여성’의 문제이기에 여성이 주체로서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주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주체로서 문제를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단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여성 내 양심적 지지자의 엘리트주의이다. 엘리트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소위 내가 경험하지 않는 문제이기에 단지 추상적 사고를 하는데 급급하여 타자화 이상의 논의의 한계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여성 내 상층과 하층계급이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여성 내 계급간 분열은 남성과 여성, 피식민국과 식민군의 대결구도, 권력구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일본군성노예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을 풀지 못한 채 한 사람 또 한 사람 죽어가는 현실은 변화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깨어있는 고위 정책자들과 법률가들이 이 문제의 해결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일 것이나, 이와 같이 소위‘깨어 있는’그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이유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추진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으로는 무엇보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물론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한 언론의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포럼과 심포지엄은 국민 누구나 쉽게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의식을 전환시키는 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 규명에 대한 운동이 2000년 법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 국민적 합의를 통한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역사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단지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깊은 뿌리가 되어 되물림되는 아물지 않는 상처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피해자가 내가 사랑하는 친구, 가족 그리고 다름 아닌 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딸들에게 피해가 안 간다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기에 목소리를 높인다는 그녀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여성들이라고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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