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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22
    서로 다른 지점에서 폭력과 차별 말하기 _청올(3)
    반차별팀
  2. 2009/10/15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하는 차별 _청올(8)
    반차별팀
  3. 2009/10/09
    ‘누구의’ 폭력이냐? _청올(22)
    반차별팀

서로 다른 지점에서 폭력과 차별 말하기 _청올

adelitas님의 [청올님 제발 나 좀 살려줘 T.T] 에 관련된 글.

 

(adelitas님에게 덧글로 달다가 이번엔 정말 덧글뿐이었다가 순전히 길어서, 포스팅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관련된 글을 읽고 보아야만 하겠네요. 누군가 제 덧글이 길어 잘 못 읽겠어서 출력을 해서 읽었다는 얘길 들으니;;; 두루(?)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마지막 문장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비교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할 근거가 되기에는, 저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물론 adelitas님은 서로 다른 얘길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비교만은 정말 아니다'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렇게 얘기해오신 거겠지만 저는 '이런 이런 같은 점을 그들이 보였다'고 비교한 것을 자꾸만 '다른 점이 있는데 왜 같냐'고 하시니까 저도 답답합니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차이가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같다는 얘기는 다른 분이 말씀하시기 전에 저도 한 적이 있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 보통 일반인들은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벌금뭅니다. 옆집에서 남자가 처자식 두들겨 패면 저런 죽일 놈 하면서 욕합니다. 사람들도 뭐가 옳고 그른지 다 알아요. 집회하러 나온 사람들이 집회 좀 방해했다고 노숙인을 들고가서 내팽개치면 다 욕해요. 하지만 철거민들은 용역한테 온갖 행패 다 당해도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들은 구사대한테 온갖 폭력 다 당해도 관심도 안 가지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저는 그 점을 지적한 거에요. T.T'
-> 역시 계속 말씀드리듯이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런 얘기가 애초에 제가 한 얘기에서 비교한 부분을 무효화할 정도로 같은 논리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 하던 사람들이 노숙인을 그렇게 했을 때 '다 욕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그렇게 한 사람들 집단이 끝까지 정당화했고요, 주변 아무도 문제제기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옆집에서 처자식 두들겨 패는 남자'도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도 그 남자는 끝까지 잘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폭력 그렇게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제대로 대처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은 남의 집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말입니다.

저도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을 모를까 봐 알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폭력을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직접 들어가서 남편에게 시비 걸고 제지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 드물 겁니다. 노숙인에게 그랬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무도 실제로 신경쓰지 않아요. 문제제기한 사람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선 다 둘러싸서 제가 욕을 먹었죠. 저도 직접 뛰어들어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충격 먹고 내 눈을 의심하며 한참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가 뒤늦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했을 뿐이에요.

또 철거민, 노동자가 용역과 구사대한테 온갖 행패를 당하고 구타를 당해도 죽일 놈들 하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원수나 통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그 접근으로도 이미 '어느 쪽이 더 심한 폭력이다'라는 말은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폭력에 대하여 제대로 대처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은' 적은 없습니다. 당장 당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피해는 이미 발생했고 가해자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죽일 놈 하면서 욕은 하지만 그것을 가해 당사자로 하여금 설득시키고 '네가 분명히 잘못한 거다'고 하는 문제는 분명 다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문제고 운동이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소위 '사적인 영역'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하여 '어떤 것은 계급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계속 이 문제는 애초에 제가 비교한 것과 다른 부분의 얘긴데, adelitas님은 계급 문제를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계급만 보고 그것이 다른 어떤 계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지배가 물리력이나 자원 소유에서 엄청나고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젠더나 노숙인 문제도 그 계급 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연루돼 있기도 할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계급 논의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세세한 영역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계급'과 지배/피지배 이야기를 더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의 전제로 삼으려고 할 때, 그 지배 관계조차 뒷받침되지 않는 수많은 폭력에 대하여 '그래도 그건 국가 폭력과는 다르다'와 같은 사실상의 '덜 중요한 폭력'으로 만드는 차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가정폭력'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알고 죽일놈이라고 욕한다'고 하고 계시잖아요. 그걸 다 아는 사회에서 계속해서 그 폭력이 일어나고 은폐돼고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에도 덧글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래도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이...'라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어떻고요?

adelitas 님은 제가 국가/자본에 의한 계급 간의 피지배/지배 문제를 삭제하고 말했다고 여겨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문제를 없다고 생각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자본에 의한 지배를 그들이 흉내냈고 그것이 얼마나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를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흉내낸 것이지 그래 봐야 그들은 절대로 국가가 될 수 없으므로 같지 않다'고 하면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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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하는 차별 _청올

반차별팀님의 [‘누구의’ 폭력이냐? _청올] 에 관련된 글.

 

위 글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덧글에만 덧붙여 달다가, 그 글 논쟁이 폭력/비폭력 얘기로 많이 가기도 해서, 물론 꼭 필요하고 동시에 이루어질 만한 논쟁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에 관해 좀더 하고 싶은 말을 보강하느라고, 여기에 연결해 와 새 포스팅으로 남기기로 했다.

 

용산 참사에서 '살인마'라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입장, 그것을 당한 사람에게 지지하고 연대하는 입장이지,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것, 그만큼 폭력이나 살인이라는 것을 누가 생각하고 누가 의미 부여하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회적으로 폭력, 살인, 이렇게 이름붙여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정도의 차이에 따라 폭력이냐 아니냐, 또는 효율적이고 필요한 폭력이냐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폭력이냐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연 어떤 행위를 우리는 폭력이다/살인이다, 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기득권을 포함한 사회의 동의/합의를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벽에 부딪히느냐? 할 때 후자라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다. 여기서 '폭력'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에서 배제된 대상이 있는데, 그 둘 사이에는 엄청난 권력 차이라는 강이 흐른다는 거다.

우리는 용산 참사를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표현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고 보수 언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

 

'살인'이라는 의미는 그 폭력에 문제제기하는 우리 입장에서, 기득권/힘을 가진 정부/가해자가 허용하지 않은 저항 방식으로, 심지어 대부분의 일반인 중에서 기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이름 붙이고 알려 나가는 운동 단계에 있는 것이지, 정부가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며 살인이었다'라고 참회하고 이후의 그런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단계(그렇다 해도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에 이르지는 못했다(아직은). 여전히 재개발과 강제퇴거는 계속되고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순응하는 게 그나마 편해서 저항을 포기하는 일도 수없이 많고.

- 연쇄살인범이 한 살인은 모두가 당연히 '살인/범죄'라고 받아들이지만 공권력이 한 살인은 '살인'이라고 ('도발적/선정적으로') 말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치며 끊임없이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

- 우리가 전경의 차를 훼손하는 것은 '폭력 시위'라고 이름붙여지고 보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리지만 전경이 우리의 신체에 직접 위협과 폭행을 가하는 것은 정당한 진압이라고 정부가 주장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주장이라 함은 즉 구속하고 벌금을 때릴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것

- 노숙인이 '집회 도구'인 판넬을 발로 차는 것은 모두가 폭력이라(또는 '도발'이라고라도 어쨌든 처벌/응징 가능한 것으로) 쉽게 인식/주장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신체에 (그것도 여럿이 달려들어) 직접 폭력을 가하는 것은 '집회 방해자를 제지하기 위한 응당한 권리' 또는 '조금 과잉되고 너무하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그럴 만했다'는 얘기로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그 건널 수 없는 강에는 공권력과 시민 간의 권력 차이도 있지만, 시민 중에서도 누구나 같은 시민이 아닌 차별의 기제가 작동하는데, 그 당당/뻔뻔함이 마치 공권력이 시민을 대할 때의 그것과도 하나 차이가 없다는 무서움이었다.

그날 판넬을 발로 찬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의 그 사람이 아니라 전/의경 차림의 사람이었더라면?또는 번듯하게 양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었더라면? 또는 백인이었더라면? 또는 외제 차를 몰고 와서 차로 판넬을 박아 몇 개쯤 한꺼번에 쓰러뜨렸더라면? 과연 그날처럼 그렇게 한 사람을 양쪽에서 잡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머리부터 7m를 질질 끌고 가서 내팽개칠 수 있었을까?

사람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누군가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것이 정부가 사람들을 쥐 잡듯이 몰아쳐서 잡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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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폭력이냐? _청올

- ‘누군가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다면’ ‘조금쯤’ 함부로 해도 좋은가?

 

폭력이다/아니다, 라는 이분법으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도,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그 행동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을 때 결국 그 이분법에 의지하게 되는 당혹스러움이란.... 

 

용산 참사 추모 집회가 있던 주말 판넬을 세워두고 집회 하던 어떤 이들도 그랬다. 한순간 자신들의 집회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 노숙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술취한 목소리로 허공에 몇 번 화풀이로 소리지르다가, 갑자기 판넬들 세워둔 쪽으로 다가가더니 판넬 하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두 번째 판넬을 또 차려던 찰나- 그 깃발 아래 서 있던 두 청년이 노숙인을 거칠게 몇 번 밀쳐내는가 싶더니 결국 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그를 양쪽에서 붙잡고 땡볕에 하늘을 향해 누운 그의 자세대로 7m 정도를 질질질 바닥에 끌고 와서 내팽개친 것이다. 면티 한 장을 입고 있던 그 아저씨는 티가 들어올려져 등의 맨살도 일부 드러났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유유히 판넬 쪽으로 돌아갔다. 그 노숙인은 한동안 꿈쩍 못하고 뙤약볕에 내버려져 일어나지 못했다. 난 일행을 찾으러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그 순식간의 장면이 충격적이라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지만 짐작도 가능하듯이, 일반적으로 노숙인들(그때 그 사람도)은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지하철역사에선 첫 차가 있는 5시 이전에 무조건 역 밖으로 쫓겨나고, 막차 뒤에나 들어갈 수 있고, 행인들의 소리 등 주변 소음에 잠 못 이루어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조금만 툭 쳐도 픽 쓰러질 수 있다고 한다. 

 

망설이다 결국 이쪽(쓰러져 꼼짝 못하는 사람,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의 얼어붙은 시선)에도 시선이 힐끗힐끗 와 꽂히기에 용기를 내어 그 한 명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저씨와 이전에 무슨 다른 사연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라기에 더 확신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그가 노숙인으로 보이고 술도 취해 있었고 몸도 잘 가누지 못하며 사람을 친 게 아니라 판넬을 찬 것인데, 그냥 제지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굳이 저렇게 했어야 하냐는 내 말에 그들은 이런 말들로 받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많이 참은 거다. 보통 같으면 그냥 저렇게 안 보냈고 맞아서 갔을 거다."

"그 사람이 우리 판넬 찬 건 폭력이 아니냐, 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 우리는 누가 와서 때리면 맞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하냐."

"당신 집에 누가 쳐들어와서 접시를 하나씩 둘씩 깨고 있으면 가서 곱게 말로만 '그러지 마세요' 하겠냐"

 

한명씩 한명씩 끼어들면서 결국 일 대 다의 토론(사실은, 그리고 점점, 그 ‘일’인 나에 대한 집단적 감정적 성토? 같은)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잘되는 토론일 리가 없다. 나중에 가세한 또 한 명은 “아줌마”란 표현을 여러 번 섞으며 반말을 해서 내가 “아줌마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그 말 욕으로 쓰고 있는 것 알고 있다”고 하니 잠시 그 표현만 빼고 말하는 것 같다가 이내 곧 무시하고 욕으로 활용하며 빈정거리길 계속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골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사람은 문득 이렇게도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어서 당사자가 느낄 2차 피해는 생각해 보셨어요? 그 아저씨가 자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걸 보고 느낄 당황이나, 그런 거 생각해 보셨냐구요!” 내가 “그 문제는 저에게만 고민해보라고 말씀하실 건 아니지요”라고 했으나 그는 “거 봐요! 그런 것도 생각 안하고 무슨 말을 해요!”라 하였다;;

 

언제까지 평화를 외칠 거냐고? 집회를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무조건 모든 사람이 떄리는 대로 맞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전/의경이나 경찰이 무기 없는 시민을 때리거나 밀어붙이면 맞서 싸울 수 있다. 같이 때릴 수도 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전경 차를 훼손하는 것 정도도 괜찮다(빈 차라면, 그리고 남성들끼리만 들어가 ‘오줌을 싸는’ 짓거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명박산성이 사람들의 발길을 (그야말로) ‘폭력’적으로 원천봉쇄했으니 그것을 뚫어버리든 위를 넘어가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숙인 아저씨는 전/의경이 아니다. 집회 당사자들이 그를 질질질 끌고 간 것은 전의경이 시민을 발로 차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공권력에서 평소 받은 스트레스를 그날 그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낸 것처럼 보였다.)

 

집에 들어와 접시를 깨는 도둑이라면 나보다 물리적으로 훨씬 강할 경우가 많을 터이므로, 나는 정당방위를 (그나마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연에선가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에 내가 너무 놀라고 방어기제가 발동하느라 그 사람이 약한 것을 몰라보고 지나치게 강하게 제지, 아니 제지가 아니라 보복으로서 훨씬 더 심한 정도로 파괴했다면, 나중에라도 사태가 파악되면 미안해져야 할 것이다(물론 이것도 가택침입과 성폭력 위험에 대한 정당방위 등등을 모두 고려하여 엄정히 따질 문제고 내 문제제기에 대한 대항 비유로는 애초에 잘못된 것이지만).

  

또 한 사람은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도 잘못한 점은 있지만 어쩔 수 없기에 해명해야겠어서 나선다. 집회의 효율성을 위해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고, 훼방 놓는 사람을 좀 그렇게 한 것이니 이해해야 한다"

  

이 논리는 미안하지만 용산 참사를 일으킨 정부의 논리와도 똑같이 닮았다. "경제 개발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너희 살던 사람들은 나가줘야겠다." 그리고 그들은 나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았다. 그들의 논리에 정부 정도의 공권력이 보태어진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 너무 답답했다. 명백히 존재하는 차이와 차별 상황에서 등장하는 말들. "그 사람만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도 피해자다" "왜 그쪽 편만 드느냐, 그가 잘했다는 것이냐" “그가 먼저 폭력을 썼는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하냐” "우리가 좀 세게 한 건 인정하지만 (어쨌든) 그가 먼저였다." 다들 낯설지 않은 논리다.

 

소위 ‘폭력’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행사하냐에 따라 같은 것이 ‘폭력’이라고 이름붙여져 낙인찍히기도 하고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쉽게 합의되기도 한다. 상대의 것을 ‘폭력’이라고까지 이름붙이기가 민망할 때에는 ‘도발’이라는 알쏭달쏭한 죄목(?)으로 이름지어 불러서라도 기어이 폭력("권한에 따른 응징") 행사가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행위나 상황에 대하여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뜻을 부여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은 기존의 ‘합의’나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내가 기존의 합의나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해서 돌아보는 일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보기에는 물론 참으로 귀찮고 낯설고 피곤한 일이기에 슬쩍 미뤄지기 쉽다... 그리하여 ‘폭력’ 대 ‘폭력’의 대결에서 한쪽의 ‘폭력’은 정당화되고 다른 ‘폭력’(?)은 가차없이 단죄된다. (센 사람이 보기에) 괘씸하다는 이유로.

 

p. s.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자질하듯 글을 써서 해당 ‘그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그날은 혼자 수고했으니 쩝;; 내가 계속 ‘그들’이라 칭한 이들에게 이후에는 노숙인에 관련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얘기해볼 가까운 소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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