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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02
    날 차별해? 그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니ㅉㅉ - 돌진(6)
    반차별팀
  2. 2009/12/21
    메이크업한 자화상(1)
    반차별팀
  3. 2009/11/13
    그 때, 내가 '노숙인' 차별했어! (14)
    반차별팀
  4. 2009/10/22
    서로 다른 지점에서 폭력과 차별 말하기 _청올(3)
    반차별팀
  5. 2009/09/25
    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6)
    반차별팀
  6. 2009/04/16
    그 첫번째 주제는, "성차별"입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17)
    반차별팀

날 차별해? 그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라니ㅉㅉ - 돌진

차별당한 경험은, 언제나 쓰리고 아프다. 그리고 그게 특히나 나의 무언가를 '탁' 건드리는 거라면, 가끔은 꼭지가 돈다. 뭔가 핑~ 하는 느낌과 함께 주위의 세상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런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뭐랄까..

누군가에겐
"아줌마! 집에나 가세요!"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키도 작은게"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어린 게 뭘 안다고"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병신"이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런 학교 다니면 뭐 하냐"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여자가 어딜~/남자라는 게~"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드러운 깜둥이 놈들"이라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넌 왜 그렇게 생겼냐!"는 말이 그럴 수도 있겠고...

아아..글로 옮기면서도 이런 걸 글로 옮겨도 되는 걸까 하는 검열에 시달리게 되고,(하지만 이런 말이 오가는 것이 현실인걸) 또한 슬며시 내 안에서 분노와 수치심이 동시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모두 내 경험?;;)

듣는 순간 꼭지가 돌아버리는 말들은, 너무 많다. 그게 문제다.
억울하다. 누군가 이렇게 쉽게 다른 사람을 엿 먹일 수 있다니. 그것도 단 한 문장으로. 정말, 억울해.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멋지게 대응할 수 있는 걸까?

"니가 뭔데!"라고 화를 내거나,
"너도 마찬가지면서!"라고 빈정거리거나,
"너는! 꼴통마초주제에!!!"라고 반격하거나

하는 걸로는, 시원치 않다. 그걸로는 무언가 차별하는 것들을 바꿀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니가 방금 한 말은 이러저러해서 너무 차별적인 말이야"라거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너의 차별적인 말에 상처받았어"라거나

하는 말은 나만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다.
나의 말에 상대방이

"아, 그렇구나. 내가 차별했구나. 미안해"라고 할 리도 없을 테고.(대부분은..)

흐음, 정말 어쩌면 좋을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너의 그런 말은 차별이야! 날 차별하지마!"
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하지 말라'며 차별을 저지하는 포지션으로서의 나를 넘어서서(물론 이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좀더 능동적인 주체가 되면 어떨까.
난 이런 고민과 더불어 차별이 일어나는 (사회적/인간적, 혹은 둘다) 맥락을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신은 결국 그런 차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ㅉㅉ'하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 차별당해서 억울하다기 보다는 그의 한계가 좀 안타깝게 여겨지는..? 좀더 마음이 상한 상황에서는 "당신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냐!"라는 식으로도 말이 나오겠지만.(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게 안되면 뭐, 나도 어쩔 수 없고)
이게 정말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나는 이 방식이 좀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그나마 내가 이런 반응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차별당하는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차별에 노출된 '소수자(minority, 권력관계에서의 약자)'이지만 '비주류'이기 때문에 주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주류로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관계과 공동체 안에서 나는 더욱 주류로부터의 자유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전에 나 역시 짓누르고 있던 주류의 압박-성공해야 한다, 남자다워야 한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취직해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 등등등 끝도 없는!-에서 좀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벗어난다고 무조건 자유로워지거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지지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 그 관계망 속에서 함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짜 중요한 조건인 것 같다.

함께 비주류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 사회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무언가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것을 인정해내는 것이 출발선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옆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주류 뚫고 거침없이 하이킥~!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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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한 자화상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분명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것이 분명한 여학생 둘이 OT에 갔다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나는 mp3를 집에 놓아두고 온 날이었고, 그래서 나는 눈으로는 책을 쫓고, 귀로는 내 바로 뒤에서 그 여자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다 쫓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지난 신입생 OT에 가서 화장을 다 지우고 '쌩얼'로 잘 준비를 하려는데, 남자애들이 자기들 방에 놀러오라는 바람에 BB 크림을 숨겨서(다른 친구들과 화장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그걸 몰래 바르곤 남자아이들 방으로 갔던 것이다. 그녀들은 이제 막 화장이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스무살이 되었고, 남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며, 그 녀석들 중의 하나 정도는 마음에 두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다만 '막 스무살이 된, 예뻐보이고 싶은 여자 아이'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 그것 만은 아니다.

 

프랑스어 선생님이 프랑스에 장기간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신기하고 달랐던 건, 한국에 오니 여성들이 너무 '예뻐보이려고' 애쓴다는 것이었다. 아침의 지하철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화장을 하고 있고, 굉장히 "예쁘게"하고 다니는데, 프랑스 여성들은 거의 그렇지 않고 비가 와도 우산도 쓰지 않고, 뭔가 묻어도 쓱쓱 그냥 털어버리는 등 자신이 '어떻게 하면 예뻐보이는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또 프랑스 예찬론이냐고 발끈할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프랑스는 이런데, 한국은 이래서 안 좋다는 의도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그것의 반대였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는 고맙죠."라고 덧붙혔던 것이다. 거기에 나는 "당연히 그러시겠죠."라고 조용하고 비교적 온화하게, 미소까지 지으며 응수했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묘사하고 있는 이 상황들은, 내게 무엇을 암시하는가? 결혼식이나 웨딩드레스가 화려할수록, 그 나라에서 여성이 결혼 후에 얻게 되는 지위는 낮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쁘다는 게, 화려하다는 게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리라. 어쩌면 이곳은 단지 '예뻐야만 사는', 그러니깐 못생긴 몬스터들은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스물만 넘으면 모두들 화장을 하는 메이크업의 공화국인지도 모르므로.

 

나는 그 밤의 지하철에서 조우한 여자 아이들과, 화장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게 되어버리는 여자들과, '예뻐보이고 싶은'(혹은 예뻐보여야 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에서 이 감동적이게 '예쁘고도' 슬픈 자화상을 본다. 이들은 누구인가, 그녀들은 나였던 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예쁘지' 않다. 나는 '예뻐지고'싶은가? 그렇다. 나는 예쁘고 싶었다. 나는 예뻐져야만 하는걸까? 예뻐지면 편하겠지, 나는 굳이 실력에 쏟는 힘을 조금 줄여도 좋을거야. 내가 조금만 좋아하면 남자들은 나를 많이 좋아하겠지. 그래, 내가 조금만 얼굴을 뜯어고칠거라고 마음 먹어도 내 인생은 백 팔십 도 달라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예쁘게 '변하면' 나는 되는걸까. 아니, 당장 내가 아침마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은 외꺼풀을 가진 나의 인상이 좀 강해보이고 싶다는 그런 '단순해 보이는' 이유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게 '동 충동'과 구분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자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엄기호, 낮은 산) 중에 가장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여성 집단은 여상 졸업생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사실상 누군가에게 '간택'받아야만(물론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대부분의 그녀들이 취직을 할 직장은 그 정도나 방식이 특기할 만하다는 점에서) 취직이 가능한 직장을 지망하는 이들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적극적이게 수행할 수 있는 취직준비는 바로 성형수술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못생기기까지 한' 여자애들이라고 한다. 돈도, 기술도, 빽도 아무것도 없을 때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바로 그녀들의 몸이니까. '팔 몸'조차 이용할 수 없는 이는, 그 얼마나 불쌍한 여자가 되는 것인가.

 

나는 예쁘지 않으면 안되는, 예뻐야지 인정받고 먹고 살고 사랑도 할 수 있는 현실의 자화상을 이들의 얼굴에서 본다. 한국만큼 여성들이 예쁘고 늘씬하고, 하나같이 옷 잘 입고 다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은 칭찬일까? 오히려 그건 이 곳에 대한 흉이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겠냐는 야유로 들리는 건 나의 지나친 사회학적 결백증에 의한 망상인가. 하아, 예쁘지 않고, 통통하거나 뚱둥하고, 옷을 제멋대로 입는 여자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기분좋게 거리를 활보할 수 없는 이 공화국에 대한 기막힌 찬사라고.

 

이는 그녀들의 잘못은 아니다.

남들에게 더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거의 모든 여자애들이 나이보다 몇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고, 화장 하지도 않은 얼굴은 감히 보이지도 말라는(완벽쌩얼을 가진 연예인들 빼고) 이 시대의 처절한 금기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예쁨 충동' 그 뒤에 '죽음 충동'의 기괴한 얼굴을 하고 내달리고 있는, 그 이 거대하고도 괴기스러운 메이크업의 공화국에 정착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을.

 

 

최근에 내가 발견한, 공부하는 나로서의 치명적인 단점 하나는 종종 내가 일반화를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건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애써 지금 변명해보자면, 그러한 주제에는 반드시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경(성)향'이 있음은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하기에 그랬다. 그러나 그 성향은 결코 내게 득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깨달은 나는 그 치명적인 오류가 나의 사고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리라. 그러나 이 글에서 한해서는, 이 나의 '일반화'가 그리 성급하거나 틀린 것 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감히, 이 글에서 나는 용감하게도 이 사회의 메이크업한 자화상으로서의 '일반화'를 감행한다.  

 

 

 

 

 

by 꿈의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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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노숙인' 차별했어!

 

서울역사. 아침에 딱 마주친, 노숙인에 대한 여러분의 첫인상은?

 

1. 더럽다. >_<

2. 불쌍하다. ㅠ_ㅠ

3. 뭔가 도와줘야 할텐데....  ~.~

4. 우리 같이 힘모아 투쟁하자? ! .!    

5. 기타 등등.

 

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그것을 당신에게 선택하게 했을까요?

 

이번의 "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의 주제는 '노숙인 차별' 입니다.

1번부터 5번까지의 선택지 중

여러분을 선택하게 만든 그 선택지에, 차별이 있나요? 있을까요? 없을까요? 뭐가요?

 

그 때, 우리 노숙인 차별했던 적. 여러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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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지점에서 폭력과 차별 말하기 _청올

adelitas님의 [청올님 제발 나 좀 살려줘 T.T] 에 관련된 글.

 

(adelitas님에게 덧글로 달다가 이번엔 정말 덧글뿐이었다가 순전히 길어서, 포스팅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 관련된 글을 읽고 보아야만 하겠네요. 누군가 제 덧글이 길어 잘 못 읽겠어서 출력을 해서 읽었다는 얘길 들으니;;; 두루(?)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마지막 문장이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그렇기 때문에 그 비교가 잘못되었다'고 얘기할 근거가 되기에는, 저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예요. 물론 adelitas님은 서로 다른 얘길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비교만은 정말 아니다'라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렇게 얘기해오신 거겠지만 저는 '이런 이런 같은 점을 그들이 보였다'고 비교한 것을 자꾸만 '다른 점이 있는데 왜 같냐'고 하시니까 저도 답답합니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차이가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같다는 얘기는 다른 분이 말씀하시기 전에 저도 한 적이 있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 보통 일반인들은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벌금뭅니다. 옆집에서 남자가 처자식 두들겨 패면 저런 죽일 놈 하면서 욕합니다. 사람들도 뭐가 옳고 그른지 다 알아요. 집회하러 나온 사람들이 집회 좀 방해했다고 노숙인을 들고가서 내팽개치면 다 욕해요. 하지만 철거민들은 용역한테 온갖 행패 다 당해도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들은 구사대한테 온갖 폭력 다 당해도 관심도 안 가지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저는 그 점을 지적한 거에요. T.T'
-> 역시 계속 말씀드리듯이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이런 얘기가 애초에 제가 한 얘기에서 비교한 부분을 무효화할 정도로 같은 논리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회 하던 사람들이 노숙인을 그렇게 했을 때 '다 욕하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그렇게 한 사람들 집단이 끝까지 정당화했고요, 주변 아무도 문제제기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옆집에서 처자식 두들겨 패는 남자'도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도 그 남자는 끝까지 잘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폭력 그렇게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잘 알고 제대로 대처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은 남의 집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 말입니다.

저도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을 모를까 봐 알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폭력을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직접 들어가서 남편에게 시비 걸고 제지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 드물 겁니다. 노숙인에게 그랬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무도 실제로 신경쓰지 않아요. 문제제기한 사람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선 다 둘러싸서 제가 욕을 먹었죠. 저도 직접 뛰어들어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충격 먹고 내 눈을 의심하며 한참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다가 뒤늦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했을 뿐이에요.

또 철거민, 노동자가 용역과 구사대한테 온갖 행패를 당하고 구타를 당해도 죽일 놈들 하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원수나 통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그 접근으로도 이미 '어느 쪽이 더 심한 폭력이다'라는 말은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폭력에 대하여 제대로 대처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은' 적은 없습니다. 당장 당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피해는 이미 발생했고 가해자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이 죽일 놈 하면서 욕은 하지만 그것을 가해 당사자로 하여금 설득시키고 '네가 분명히 잘못한 거다'고 하는 문제는 분명 다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문제고 운동이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소위 '사적인 영역'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하여 '어떤 것은 계급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더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계속 이 문제는 애초에 제가 비교한 것과 다른 부분의 얘긴데, adelitas님은 계급 문제를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계급만 보고 그것이 다른 어떤 계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지배가 물리력이나 자원 소유에서 엄청나고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젠더나 노숙인 문제도 그 계급 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연루돼 있기도 할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계급 논의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세세한 영역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계급'과 지배/피지배 이야기를 더 중심에 놓고 모든 이야기의 전제로 삼으려고 할 때, 그 지배 관계조차 뒷받침되지 않는 수많은 폭력에 대하여 '그래도 그건 국가 폭력과는 다르다'와 같은 사실상의 '덜 중요한 폭력'으로 만드는 차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가정폭력'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 알고 죽일놈이라고 욕한다'고 하고 계시잖아요. 그걸 다 아는 사회에서 계속해서 그 폭력이 일어나고 은폐돼고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에도 덧글로 말했지만 여전히 '그래도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이...'라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어떻고요?

adelitas 님은 제가 국가/자본에 의한 계급 간의 피지배/지배 문제를 삭제하고 말했다고 여겨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문제를 없다고 생각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자본에 의한 지배를 그들이 흉내냈고 그것이 얼마나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를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흉내낸 것이지 그래 봐야 그들은 절대로 국가가 될 수 없으므로 같지 않다'고 하면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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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

 

자자.. 까먹을랑 하면 돌아오고, 지겨울랑 하면 새로운 주제로 우리의 '차별'감수성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사랑방 반차별 프로젝트의 야심찬 小프로젝트,"그 때, 내가 차별했어!"

 

이번의 새로운 주제는 바로

"그 때, 내가 학력(학벌) 차별했어!" 입니다.  감이 팍 오시죵?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중, 그 뿌리가 깊고 심각한(물론 다 중요하지만.-.-) 차별 중 하나는,

학력에 대한 차별인 것 같아요.

'학력'이라고 하면, 초졸, 중졸, 대졸 등의 어느 정도까지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을 흔히는 의미하지만

"어떤 학교"를 나왔냐 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학벌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겠지요.

학벌(學閥)이란 "특정 학파 또는 특정 학교 출신자가 어느 직업 혹은 특정 기업, 특정 집단 내에서 암묵적인 지위나 세력을 형성하여 그것을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이용하는 행위나 그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위키백과)

 

그렇다면 학벌을 차별한다 함은,  어떤 특정한 '학벌'에 속함으로 해서 사회에서 위치가 달라지며,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떤 '학벌'인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거겠지요.

 

어떠신가요, 생각을 더듬어.. 누군가를 학력(학벌)로 하여금, 차별해본 적.

언제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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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번째 주제는, &quot;성차별&quot;입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그 때, 내가 차별했어> 게시판은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며 여러분의 댓글로 진행되는 코너입니다.

언젠가의 그 때, 내가 차별했던 이야기, 차별인 줄 몰랐거나, 알고도 차별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다시 되살려 생각해봅니다.

 

<그 때, 내가 차별했어>의 첫번째 주제는 성차별입니다.

남자, 여자 혹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gender) 때문에 누군가를 다르게 보았던 적 있나요?

성(gender/sex)에 따라 그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부과하거나, 금지했던 적이 있나요?

다르게 말 했던 적이 있나요? 아니, 혹은 속으로라도?

 

그런 기억을 다시 머릿 속에서 키보드 위로, 댓글로 끄집어내보아요.

차별이 반/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를 어디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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