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봉이냐?

2010/02/16 18:21

(우선 늦게나마 임수혁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2루에서 홈까지 그렇게 멀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환호하느라 당신을 잊었던 것에 대해 사죄합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걸 이야기 하면 극소수의 분들이 프로야구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 하며 비판을 한다. 그 후의 내 반응? 그냥 대답하기 싫어 대응하지 않는다. 물론 그 말을 하신 분들이 내게 강요를 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 무시하는 게 첫째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탄생한 건 부정할 수 없기에 답변을 안 하는 이유도 있다.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야구는 바로 서민의 스포츠라는 것이다. 야구가 탄생한 초기에는 미국의 부유층 계급의 오락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를 즐기는 계급이 노동자층으로 옮겨갔다. 물론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도박, 마약, 과도한 음주 등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장려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뭘 장려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리를 잡는 게 아니라는 것은 세상 이치다. 노동자들이 야구의 진정한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야구가 우리나라에서 지배층의 체제 유지를 위해 쓰이며 태어나선 안 될 아이가 되어 버렸다. 정부 측에서 프로야구 탄생을 계획했던 분들께 묻고 싶다. "당신들은 야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계십니까?" "진보정당에서 야구장과 관련한 논평을 냈다가 '야구장 지어달라는 정책은 OO당에서!' 라는 악플을 받게 되는 이런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 일입니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도 정치적 논리로 발전한 케이스이다. 대공아 공영을 주창했던 쇼리키 마쓰타로 전 요미우리 신문사 사장은 야구를 통해 '미국보다 우리가 강하다'라는 걸 입증하려 했다. 1934년 당시 최고 스타이던 베이브 루스, 루 게릭을 비롯한 미 메이저리그 선발팀을 초청해 경기를 가졌고 대일본동경구락부(현 요미우리자이언츠)를 창단하는 등 자신의 정치 철학을 야구를 통해 구현하려 했다. 한국 야구팬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에 환호하는 것에 대해 재일교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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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틱 유니폼을 입은 기성룡 선수. 셀틱을 단지 기성룡 선수가 뛰는 팀으로 기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팀의 탄생배경에는 빈민구제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수단으로 탄생한 한, 일 프로야구 탄생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셀틱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FC 바로셀로나 그리고 셀틱 등의 탄생비화와 비교해서 한, 일 프로야구는 분명 촌스러운 탄생이었다. 그런데 2010년에 돌입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야일치의 태도가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 괘씸하다.

 

4대강에 야구는 왜 들어가니?

 

1월 25일 강승규 의원은 "4대강 살리기의 최대 '수혜주'는 야구 등 스포츠계이다" 라는 글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4대강 살리기를 홍보하는 거야 늘 있어왔던 일이니 '4대강 살리기'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의원 개인의 의견이 아닌 대한야구협회장과 아시아야구연맹회장 명의로 글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야구에 관련한 내용도 아니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치적 사안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연 명분 없는 일에 야구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되는데 찬성하는 야구인과 팬이 어디 있을까? 전국의 야구인을 대표해 일하라고 시킨 야구협회장직을 4대강 홍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전국의 야구인과 야구팬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인해 안동 영호대교 둔치에 위치한 야구장이 훼손됐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할 한국야구협회의 대표가 4대강을 지지하는 글을 쓴다는 건 직무유기에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단체장으로서 탄핵감이기도 하다. 그렇게 4대강 살리기를 홍보하고 싶으면 의원 자신의 명의로 발표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야구협회장으로서의 발언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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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할아버지의 대답처럼 4대강과 야구가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진은 - ‘4대강과 민생예산’의 한 장면입니다ⓒMBC PD수첩

 

사람들은 KBO의 대표로 정치실세가 오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대표의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프로야구의 발전에 반한 결정이 나오거나 프로야구의 독립성이 훼손될 때 야구팬들은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은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16일 노컷뉴스에서 4대강 살리기 중 하나인 나주 죽산보 공사로 인해 강물이 인근 농경지로 쏟아져 주민들이 침수피해를 봤다는 기사를 접했다. 인근 주민도 피해를 보고 생태계 파괴되고 흉물이 되어가는 곳에 야구장이 생긴다고 한 들 야구동호인들 맘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승규 의원은 현실을 제대로 돌아보고 대한야구협회장으로서 발언해주기를 바란다.

 

돔 구장이란 구원 투수의 블론 세이브

 

정야일치는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5일 포스코 건설은 공문을 통해 광주시에 '돔 구장 건립'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10월 26일 MOU(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약 3개월 만에 무산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달빛 동맹의 한 축인 대구시는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은 것과 대조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박광태 시장의 해명은 가관이다. 8일 기자회견에서 박광태 시장은 "포스코 측에서 '지역의 반대여론에 부담을 느꼈다'며 무조건적인 반대여론은 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과하겠지'라는 야구팬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어긋난 기자회견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지난 몇 년간 KIA 타이거즈의 부진에 대해 검색하면 박광태 시장은 연관 검색어로 등장했다. 2002년 선거 때 부터 공약이었던 야구장 건립이 제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KIA 타이거즈의 경기력이 급감한 걸 부정하는 이는 없다. 광주의 아이콘인 타이거즈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랜드 마크를 만들 수 있을까? 숭례문을 불태운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돔 구장 건립과 관련한 과정은 어떠했는가. 전국에 생중계되는 올스타전에서 약속한 돔 구장 건립을 전화 한 통화로 졸속으로 진행시켰고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광주구장에 낯부끄러운 플래카드를 걸었다가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관변단체들 이용해서 광주시 전체에 돔 구장 찬성 플래카드를 도배하더니 결국 결과는 백지화다. 지역민의 여론이 아닌 자신의 지지도만 고려하여 야구를 이용하려다 생긴 인재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광태 시장을 당당하게 서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장진 감독의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차지욱은 일본대사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굴욕의 역사는 갖고 있지만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야구팬들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다. 80년대 정치인들로 인해 ‘독재의 수단’이라는 굴욕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야구가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해 왜곡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야구를 좋아한다고 지탄받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야구라는 원액을 마실 권리가 있다. 그 원액을 물에 타서 마실 수는 있겠지만 ‘정치’라는 불순물이 들어가는 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순물을 타는 정치인이 있다면 <불만 제로>에 제보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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