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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남성페미니스트'를 부담없이 읽고

난 책을 좋아한다. 읽은 것은 신통치 않지만 소장하는 것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헌책이나 누군가 메모하거나,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1학년 새내기 때(다들 밝히지 말라고 하지만..)학교에 있는 여성위원회라는 곳에서 새내기 활동을 했었다. 나란 사람의 과거가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다양한 삶과 사람들이 있구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리고 내가 가진 성 정체성에 대해 엄청난 고민들을 하게 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보여준 신기한 곳이였다.

 

결국 난 정서차로 인해 활동을 정리했지만, 당시 한 선배가 "너 같이 준남성으로 착각하며 사는 얘는 이런 것 좀 읽어봐야 한다"라고 건넨 책이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새로 쓰는 성 이야기'였다. 그 책은 내용 뿐만 아니라 내 삶에 있어서의 '성'이란 주제를 처음 던져주고, 여성이라는 내 성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준 계기였다. '여성적'이다와 '도움이 필요한 약한 생명체'를 동일시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고 동성애 공포를 가진 준남성적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왕성한 영상활동가 자리에서 예쁜 분홍색 책을 발견했다. '남성페미니스트'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주는 느낌이 거북하다. 왠지 모르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부르주아적 여성 인권 활동 내지는 이슈 파이팅이나 성적인 담론들만 내세우는 시혜적 운동인 것 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의 운동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단어가 나한테 그런 느낌을 준다는 거다. 



내가 자주 물어보는 네이버 사전에서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feminist)[명사]는 1.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여성 숭배자, 또는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연장선으로 '여권신장,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얘기'인 거다. 그리고 샌드라 바트키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책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결론이다.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서 남성과 여성이 어떤 형태의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지를 생각하고, 이 책 <남성 페미니스트>는 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싸우고자 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증거를 제시한다'라는 머리글로 책 내용의 총체적 분위기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여기서 무엇을 봤냐 하면,  소위 진보를 자청하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사회적 고민, 남성 페미니스트 이기 때문에 절대 다수 남성사회에서 왕따가 될 수 있고, 그 고결한 외로움 속에서도 연대 전선이 가능하다는 거 그리고 덧붙여 성전환자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과 논의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고민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아 이럴수 있구나'의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 본적이 없는 고민, 생각해 보지 않은 경험들이 그럴수 있구나로 와 닿았다는 거다. 결론은 다른 사람들도, 남성과 여성 가리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며, 담론을 형성하기에 좋은 기재가 될 수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차별은 사회적 가치 생산에서부터 비롯됐고, 일상의 남성과 여성과의 문제들은 이것에서 파생된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남성 중심적인 누적되고 역사적인 사회문화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배경속에 이 운동판에도 사회적, 권력관계의 그늘에 가려 언제나 곳곳에서 숨겨진 담론으로 지워지거나, 꽁꽁 묻혀 진 채 넘어가는 경우들이 생긴다. 경우의 수에 따라 8.3 사태나 금속노조 사태와 같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는 수천가지의 상황과 사건속에 드러난 몇개에 불과하다.  

 

성전환자가 있다.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다가 남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이 사람을 여성페미니스트 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저자는 '난 원래도 남성이였고, 신체를 남성의 조건으로 바꾼 것 뿐이다'라고 항변한다. 난 갑자기 벽에 부딪힌다. 동의는 하겠는데, 신체를 바꿔가면서 이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기초적으로는 성적인 만족감일까 싶기도 하지만 실제 전환자들의 성적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글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왜 여성이면 안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신체를 바꿔 얻고자 하는 자기 만족 이외는 무엇일까를 잘 모르겠는데, 그 답을 사실 여기서 찾지는 못했다. 

 

또 다른 하나 부문은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장애해방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가. 백인이 하는 인종차별 반대운동은 자체가 한계인건지, 이주노동자가 아니고서는 언제나 연대에만 머무는 것인지. 주변적인 연대자, 도움자로 당사 주체가 아닌 제 3자로 떠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남아서 언제나 부담스러웠던 부분들이 다시 정리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다. 나는 여성이니까 페미니스트 인가에 대한 답이 일치 되지 않는 것 처럼, 가능한 연대가 가능하고, 필요한 것이라고만 답하기에는 왠지 뭔가 부족한 거 같은데 그 2%의 부족분을 찾을 수 가 없다.

 

하하... 정리가 안되는게 너무 많은데..

 

그냥 적어 두고 싶었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백인, 우리는 페미니즘의 응원자이자, 동맹자이다
*20여년간 여성들이 벌여온 젠더의 논의에 어떻게 남성들을 끌어들일 것인가의 방법을 찾을 시기

*페미니스트를 친여성주의자, 반성차별주의자라고 구분한다면 남성 페미니스트들 내에는  허식가, 내부자, 인본주의자, 자기학대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일부(아마 대부분) 남자들이 남성과 성관계를 갖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성애 공포때문인데 그 공포나 비약적인 두려움은 아니다. 이것은 동성애 섹스가 남성적 욕망을 영토화한다는 것을 위협한다는, 완벽한 이성적 인식에 기반한 두려움이다... 영토활동은 남근의 활동이고, 보호의 기재는 닫혀진 항문으로 남근은 확장은 항문은 폐쇄되는 것이다... (동성애 관계가 선호의 문제인가..?)

*사려 깊고 개방적인 성애적 실천이 주어졌을 때 젠더에 대한 구속은 욕망의 탈영토화라는 자유로운 흐름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고, 여성주의적 자유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왜 모두가 같이 겪는 젠더 분쟁을 위해 내가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이제 신물이 난다.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라. 우리 성전환자들이 그려 나가는 자화상을 당신이 응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병태적 쇼에 대한 호기심인가? 사고 현장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있는지 자세히 살피는 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관음적 욕망인가? 아니면 세속적 한계를 초월한 천사의 섹스를 보고 싶어하는 환상인가? 당신에게 또 한번 물어보라. 그래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괴물, 돌연변이, 사이보그, 성도착자, 동서애적 욕망의 색다른 대상인가? 아니면 단지 다른 의미의 남성과 여성인가?

 

*굳어진 습관, 익숙한 편안함, 무관심해지려는 유혹 앞에서 남성들에게 이런 것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구체적인 상기와 도전은 성실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와 투쟁을 지속하기가 여렵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데이비드 J. 케헤인 : 남성 여성주의라는 모순 어법)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페미니즘 지식이 여성의 몸으로 경험한 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페미니즘 지식이 여성의 몸으로 경험한 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남성이 여성의 몸으로 들어가서 여성주의적 지식을 산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논리는 남성이 여성이 될 수 있고 앎이 생물학적 조건과 만나는 일종의 학문적 성전환이다.( 헨리 S. 루빈 : (성전환자)남성처럼 글읽기)

 

남성페미니스트 - 톰 디그비(Tom Digby) 엮음 - 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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