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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밟히는 책은 베껴쓰고 보자.'에 해당하는 글들

  1. 2008/06/05  역사가 없네
  2. 2008/06/03  인생이 영화라면.... (4)
  3. 2008/06/02  내 싸움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4. 2008/05/13  배냇향 (2)
  5. 2008/04/26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3)
  6. 2008/03/24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7. 2008/03/10  오해할 권리
  8. 2008/02/14  마오 주석은 우파를 좋아해.
  9. 2008/01/29  '미안합니다. 이청준.'
  10. 2008/01/21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역사가 없네

2008/06/05 23:28 베껴쓰기

역사가 없네

정철훈

 

 

도시는 얼마나 불온한가
도시는 얼마나 우울한가
도시는 음란한 꿈이요, 음란한 교환가치여서
낡은 시민아파트가 매일 철거되고
아파트 단지 사이 초등학교 교정은
뜨거운 모래알 위로 꾸벅꾸벅 졸고
길은 온통 아스팔트에 덮여
죽음을 죽음보다 무겁게 누르네
우리는 도시에서 성장하지 않고
다만 이사 몇번을 갔을 뿐
일곱 평에서 열여덟 평으로
스물세 평에서 서른두 평으로
너덧 번의 이사가 나이처럼, 나이의 성장처럼
우리 생활의 전부였으니
몇번의 전출과 전입, 몇번의 이직과 전직
몇번의 사랑과 이별이 우리 삶의 전부였으니
하! 역사가 없네
부유하는 것은 역사가 아닌데
달리지 않는 철마는 철마가 아닌데
우리는 몇번이나 역사가 아니어야 하나
하! 유구한 흐름이 없네
눈빛이 없네, 고뇌가 없네
뼈와 살이 녹는 내통이 없네
이사와 이전과 이주와 전이의 역사에는
생활이 없네, 생명이 없네, 거주가 없네
유랑하는 삶은 가벼운 발걸음만큼
스쳐가는 일상은 가벼운 보행만큼 역사가 아닌데
거리에도, 방안에도, 농짝에도, 책상에도
도청에도, 민원실에도, 우리들의 심장에도
하! 역사가 없네, 눈물이 없네
이제 어린 두 발을 감쌌던
배내옷에서부터 역사는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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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에 미니홈피에 베껴둔 시인데...

어디서 어떻게 읽고 옮겼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철훈 시인이라면 누군지 조금 알고 있다.

K일보의 문학전문기자인 그는 얼마 전 두번째 소설을 펴낸 소설가이기도 하다.

편집자들이 인정할 만한 서평을 쓰는(책 내용을 정말 이해했다는 뜻이다)

몇 안 되는 출판 담당 기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시를 제대로 찾아서 읽어본 적은 없다.

 

다만... 서울의 주민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내게도 이사의 경험이 내 삶에서 생각지도 않을 만큼 많은 부분을 결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이삼 년 전부터 해온 터라... 다시 옮겨 적는다.

(아니, 어쩌면 이 시는 잊었지만, 시의 내용을 가지고 마치 내 생각인 양 계속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한 살 때, 일곱 살 때, 열세 살 때, 열여덟 살 때, 스물두 살 때, 스물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이사를 다녔고... 스물여덟에 독립하고 2년 후에 또 한 번 이사했다.

총 아홉 번의 이사... 게다가 끝난 것도 아니다. 결국 두자릿수가 되겠지.

 

유목민으로 태어난 적도 없는데 뿌리가 없는 인간인 나는...

정주할 공간은 둘째 치고, 정주할 관계들조차 변변치 못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는 Y군과 M군 같은 관계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또 늘 그런 관계들을 꿈꾸고, 매달리고, 상처받기도 했나 보다.

나보다 딱 1년만 먼저 죽으라던... 그런 약속은 왜 했을까.

평생 보자는 그런 말들에 왜 그리 설렜을까.

왜 그저 그 순간 함께 있는 즐거움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을까.

꼭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 관계들을 망쳐야 했을까.

가깝던 것들은 멀어지고, 먼 것들은 아주 천천히 내 곁에 왔다가는 급속히 사라진다. 혜성처럼.

 

최근에 내 스스로 과거에 무덤덤해진 것을 느끼면서...

(아팠더라도) 그래도 과거인데... 생각하고 보관했던 물건들, 일기장 등을...

방도 좁은데 없애 버릴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기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럼에도 다시 펼쳐 보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읽어보면 재미있겠지만... 더 이상 내 삶을 움직이지는 못하니까.

그건 지금 내 삶의 양태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삶의 형식이 그러한 시대 탓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것들이 내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부유하는 나는 눈물이 없는 겔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울 준비가 되어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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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23:28 2008/06/05 23:28

인생이 영화라면....

2008/06/03 00:50 베껴쓰기

오늘 신입사원맞이 회식이 있었다.  

한정식으로 맛있게 밥 먹고, 카페로 이동... 한참 방담한 후에...

마지막 정리 분위기로 신입들에게 질문 하나씩 던지는 시간을 가졌다.

 

순서를 보니 내가 마지막인데...

솔로들이면 소개팅이나 주선할까 해서.... 이상형이 어떠하냐고 물어보려 했더니만...

나보다 두번째로 앞인 J차장이.... 연애들 하냐고 물어봤고....

A양은 5년째, HA양은 2년 반째, S군은 현재 없음이란다.

 

비슷한 질문 안 하느라 급조한 것이... 어디서인가 본 질문 베끼기.

"만약 인생이 영화라면 당신의 인생은 어떤 장르의 영화라 생각하나요?"

 

A양은 블랙코미디, S군은 판타지, HA양은 스릴러란다.

 

내게 같은 질문은 던진다면 무엇일까?

 

지난 주 영어회화 수업 쫑파티에서

내가 일생에 걸쳐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열세 번 봤다고 하자...

영어 샘인 데이비드는... 나 보고 "You are a girl."(소녀 취향이로군)이라고 놀렸다.

20대 후반에 마지막으로 영화를 봤을 때....

판타지의 달콤함보단 '반-페미니즘 영화로군.'이라는 분석을 하기 시작해서....

'효력이 떨어졌군. 이제 그만 봐야겠다' 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두 번은 더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의 나라면 인생은 뮤지컬 영화 같은 거다.

딱 떨어지는 정교한 합이 있는 뮤지컬.

돌아서면 거기 그가 있는. 내 모든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있고.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냐고?

글쎄.... 오늘 나온 또다른 질문(K주간님)을 빌려서 답해 보자.

"내 인생에서 책에서 읽은 문구나 시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아마... "이해는 동의와 동의어가 아니다."가 아닐까?

 

정확히 말하면 이런 문장. 그리고 이런 느낌. (벌써 2005년에 쓴 메모로군.)

 

사회과학에서 가장 오래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이해와 동의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앤드류 세이어, <사회과학방법론>

 

그 속에서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공감했다. 가슴속이 뻥 뚤리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내 노력을... 전형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한 헛된 관심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때였다.

 

이해와 동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혹은 한 현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에 동의해야 할 의무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와 동의를 동의어로 생각함으로써 이해를 거부하고자 한다.

이해란 동의하기 위해, 혹은 동의하지 않기 위해 먼저 거쳐야 할 단계이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 대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공존(통합이 아니라!)을 모색하기 위한 실존적인 노력이다.

 

어디가서도 늘 타인과 다름 때문에 고통을 받던 나로서는...

동의는 아니어도 이해받고 싶었으며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요새 좋아하는 건... <카모메 식당>이나 <타인의 취향>, <녹색 광선> 같은 판타지다.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 영화 사이에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냐고?

꽉 짜인 판타지(선악은 분명하고, 불굴의 정신엔 신분 상승과 영원한 행복이라는 대가가 따르는?)와

허술한 판타지(결국 상황이 달라진 건 없지만, 계속 살아갈 능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확보?)의 차이 아닐까?

 

S군은 "내 인생이 내 생각과 달라서 판타지"라고 했다.

내게는 "내 인생이 내 눈앞에 있는 것과 꼭 같다고 꼭 믿을 필요는 없으니까" 판타지이다.

내가 그러는 한, 나 생긴 대로 사는 게 가능할 수 있다는 판타지.

저 먼 어딘가에 있는 판타지가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가 뭐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니... 다들 (꼭 요즘이 아니어도) 촛불 하나 켜고 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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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00:50 2008/06/03 00:50

내 싸움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2008/06/02 16:43 베껴쓰기

하늘이 장차 누군가에게 큰 소임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히고,

근육과 골격을 수고롭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서 그들의 하는 일을 어긋나게 만든다.

그것은 마음을 쓰고 성질을 참게 해

일찍이 해낼 수 없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언제나 과오를 저지른 뒤에야 고칠 수 있고,

마음에 떠오르고 음성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

안으로 법도 있는 세가와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다면 그런 나라는 언제나 망한다.

그런 뒤에야 근심 속에서 우리가 살아나고,

안락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죽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_맹자 제6편 고자 장구

 

 

내 싸움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것이 되고 싶다며

이왕주 교수가 인용한 맹자의 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해도

결국엔 하는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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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16:43 2008/06/02 16:43

배냇향

2008/05/13 23:20 베껴쓰기

“갓난애를 보면 누구나 생명의 신비를 느낍니다. 생명력 그 자체이니까요.

그래서 그 몸에서 나는 냄새는 정말 향기롭습니다. 배냇향이라는 건데

이게 생명력의 냄새입니다. 그런데 좋은 차에서 바로 이 향기가 난다 이겁니다.

그래서 차=알가=우주적 시원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거죠.

차를 마시는 일은 곧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이요

정신적으로는 우주적 시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__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지난 주 토요일자 J일보 인터뷰 가운데.

 

 

 

배냇향..... 아기 냄새를 생각해 본다. 순하고 달큰하고 마음 착하게 하는 향기.

아, 그런 맛을 내면 되는 거였구나.  

 

헬스장에서 자전거 운동하면서 인터뷰 보고는 당장 녹차 마시고 싶어졌다. 집에 마땅한 우리 녹차는 없어서, 작년에 오사카 여행에서 선물용으로 사왔다가 하나 남은 센차(煎茶)를 열었다. 저렴하니 기념으로 산 거라 비싼 건 아니고... 한 봉지에 350엔 주었던 듯싶다.

 

몸에 좋은 건 쓰다는 소리에 녹차는 쓰고 텁텁한 맛에 마시는 줄 아는데... 배냇향을 생각하며 녹차를 우려 보니... 새순을 우린 차라 연하고 맑은 녹색에, 맛은 달고 혀에 감기는 느낌도 텁텁하기는커녕 매끄럽기만 하다.  아, 그러고 보니... <녹차의 맛>도 무덤덤한 일상이 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는 단맛을 담아낸 영화던가. 영화의 농도가 달라지네.... ㅎㅎ

 

예전에 SJ언니가 술기운에 내 품에 안겨 잠깐 졸았다가....... 다음날 하는 소리가 "화장품 냄새는 아닌데, 순한데 뭔가 좋은 냄새, 파고들고 싶은 냄새였어" 라 해서 수줍어하던(속으로만 좋아하던) 기억이 났다. 아직도 그런 냄새가 날까. 

 

김치 냄새가 나도 푸근하던 엄마 냄새도 생각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던 엄마의 몸. 언제나 잠이 잘 오던. 중학생 때까지 종종 엄마 품에서 잤으니까 거의 막냉이가 태어나기 직전이로군. 나는 아마 오래 아기였던 탓에 세상에 늦게 눈떴나 보다. 뭐 이런 허접한 생각.

 

그래도... 덕분에 녹차 맛에 새로 눈떴다. 맛있는 차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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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23:20 2008/05/13 23:20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2008/04/26 08:10 베껴쓰기

작은짐승님의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을 보고 사들인 브레히트 시집에서....

제일 먼저 소리 내어 읽어 본 시.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Ich habe gehört, ihr wollt nichts lemen

 

당신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1932년)

 

건조하게, 묵시론적으로, 저주하듯이 한 번 읽고,

비분강개해서, 속사포처럼 분노와 비아냥을 쏟아내면서 또 한 번 읽고,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아첨하듯이, 생글거리면서, 약을 올리듯이... 한 번 읽는다.

 

지금도 '당신'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스펙 시대인 요즘엔 돈 있는 사람들만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진 것도 열 받고.

MB정권이 애들을 공부하라고, 학교에서 밤새라고, 학원에다 돈 갖다 바치라고

너무 들들 볶아서 짜증스럽기도 하던 차인지라... 

내가 이해하기 쉬운 시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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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6 08:10 2008/04/26 08:10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2008/03/24 00:32 베껴쓰기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거에요.

_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뒤라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데... 한동안 프랑스어 공부에 빠졌던 8학기쯤에...

뒤라스나 투르니에의 에세이집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읽은 뒤라스의 유고집에서 몇 구절인가를 메모지에 옮겨 적고는

수첩 케이스에 끼워 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참 이기적인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 충격이랄까, 깊은 인상을 받은 듯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포기하겠다고 결심만 하고, 미련에 허우적거리는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를 포기하는 것이 그에 대한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80대에 마흔 살 아래의 연하남과 마지막 사랑을 불태운 뒤라스는

내게 평생 자기 욕망을 좇아간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 사실 실물은 모르니까. 영화 <연인>에서 보인 대로 엄청난 자의식의 소유자라는 건 확실하겠지만.

 

몇 해 시간이 지나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 것에 관한 말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를 포기해야 한다.

끝없이 희생적인 사랑을 말함이 아니다.

난 이런이런 사람을 사랑하겠어. 내가 하려는 사랑의 방식은 이러이러한 거야.

이런 규정들을 버리는 것을 말함이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사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도, 생각하지 않고도 이런 사랑을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이 사랑에 대한 이해에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또 그런 사랑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칙적으로는 옳았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내겐 서툰 부분이 있었다.

내가 그러한 방식의 사랑을 시도했기는 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다.

혹은.... 그에게 내 사랑이 제법 단단한 것이라는 걸 전해 주질 못했던 거고...

나는 여전히 나를 다 포기하지 못해서, 그래서... 또 희생적인 모드를 발동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던 듯싶다.

어느 날 내가 그를 내 삶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간, 얼마간은 "사랑 따윈 필요없어." 식의 모드가 되어버렸달까?

오, 물론... 그 동안에도 연애나 좀더 안정적인 관계들을 꿈꾸고, 시도했고,

(별 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안정적인 "사랑"의 조건들에 관한 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한참 바쁜 뒤, 모처럼 한가한 한 주일.....

가벼운 몸살 기운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도 안 한 일요일 밤.

낮잠은 길었고, 이른 저녁 마신 커피 핑계로.. 괜시리 잠들기를 미루는 밤.

(월요병은 늘 일요일 자정을 넘기는 순간 시작된다.)

 

또 이 생각 저 생각... 걱정과 몽상 가운데... 오랜만에 뒤라스에 도달하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자신감은 여전히 없지만...  

연애뿐 아니라 관계 전반에 관해 생각을 확장해 보자면....

또 누군가들이 지금 내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관계들도 변하고 있고, 그 지속의 확실성도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포기던 지속(혹은 집착)이든 내 의지대로 일어나는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무언가 또 배운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만큼 노력할 준비 정도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구절... 그저 초대할 수 있는 소박한 뻔뻔함과?

 

내게로 오세요. 내 얼굴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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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00:32 2008/03/24 00:32

오해할 권리

2008/03/10 23:09 베껴쓰기

남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나를 해명할 의무가 없다.

—정현경,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긴 하루 보내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몇 년 전 싸이 홈피에 올려 놨던 이 글귀가 떠올랐다.

 

소통에 방어적이라거나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소통의 한 단면이라는 것...

불필요한 상처 받지 말고 나를 자유롭게 했던 말들....

 

그리고... 뜻밖의 위로가 있었다. 적어도 내겐 의미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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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23:09 2008/03/1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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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주석은 우파를 좋아해.

2008/02/14 17:28 베껴쓰기

 마오쩌둥: 나는 우파를 좋아합니다. 당신(닉슨)은 우파, 소속정당인 공화당도 우파라고들 합니다. (중략) 우파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편이 좋습니다.

닉슨 : 좌파가 말로밖에 할 수 없는 것(중국 방문)을, 우파는 실행에 옮길 수 있답니다.

- 윌리엄 버 편, <헨리 키신저: 최고 기밀 대화록>

 

중도파나 좌파가 뭔가를 하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둥, 코드가 잘못되었다는 둥 다들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뭐라고 하지만, 우파, 그것도 극우파가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하면.. 참신하다는 둥,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둥... 하는 현상을 닉슨의 중국 방문 때 두 국가 지도자가 스케일 있는 위트로 짚어낸 대화다.

 

오늘 아침에도 30분이나 미적미적하다가 겨우 7시 4분 전에야... 헬스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온 지 2분 후... 생각났다. 운동화를 안 가지고 나왔다. 보통 이게 귀찮아서 개인 라커를 신청하는 법이지만, 다른 헬스장은 6개월에 14만 원 하는 시대에 한 달 8만원짜리 피트니스 센터를 끊은 것만으로도 과용이라(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라 하는 수 없었다) 라커까지 끊을 수는 없었다.

집에 가서 신발 가져와 봐야 불과 5분 차이... 그러나 이미 의욕은 꺾였다. 집에 온 나는 따뜻한 방바닥에(요새 춥다고 보일러는 또 얼마나 땠던가) 드러눕고 말았다. 잠을 자기엔 찬바람 맞은 머리가 너무 제정신이었다. 뭐 읽을 책 없나 책상을 두런두런....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이 일전에 열도의 한국인에 관한 책을 같이했던 K교수(전 D일보 논설위원)가 번역했다고 증정한 한일관계사 책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아사히신문의 논설주간이 정리한 70년대 이후 일본의 대對 아시아 외교사랄까... 자민당을 각 계파별로 정리해서... 계파별 외교 노선을 다루고.... 그러면서 고이즈미랑 아베 총리를 비판하는 책이다. 

 

일본 책에, 번역서이고, 신문기자가 쓴 글이라 좀 딱딱한 맛은 있고... 도무지 머릿속에서 그림문자로만 보이는 일본 인명들이 수십 명씩 등장하지만... 게다가 이런 장르의 글은 별로 읽어 본 적은 없다만... 아침에 하는 30분짜리 독서로는 제법 흥미로웠다. 나름 역사책이라 그런가? 그 책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내용이 위의 붉은 글씨다. 첨엔 뭔 말인가 했다. 이해가 안 가서. 한참 읽고서야...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되자마자 중국을 간 것도... 자민당에서 제일 극우파라서 그렇다는... 배경 설명으로 등장하는 얘기다. 정치를 잘 몰라서 그런가,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는 해석이었다.

 

씨줄과 날줄을 오고가며... 계속해서 해석이 등장한다. 이래서 신문 기자는 매일매일의 역사가...라고 내가 예전에 K교수의 책 보도자료를 쓸 때 썼었지. 끝까지 읽을랑가는 모르겠다만.... 뭐랄까. 요새 일드에 빠져 있다 보니.... 일본에 대한 관심이 약간 생기기도 했고, 또한 일본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감정의 이분법 속에서 뭘 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읽힌다.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인간>을 예스24 카트에 잡아놓고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번역이 엉망이라는 독자 서평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겐자부로 글에 압박은 느낀다만)... 뭐랄까... 또 이 한 시기... 일본의 문화적, 정치적, 문학적 심성을 맛보게 된다고 할까.

 

미리 반칙해서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은... 한일 관계에 관한 어느 일본인 학자의 말을 저자가 옮기는 것으로 끝난다.

 

일본에게 한국은 잊어버리기 쉬운 과거를 항상 일깨워 주는 귀중한 이웃이다. 한편 한국에게 일본은 "더 다양한 사회가 행복하다"고 일러주는 이웃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숨 막힐 듯한 열기"에 곤란해하면서도 덕분에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무지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인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순수하게 듣는 귀를 가졌다. 그것을 한국인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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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17:28 2008/02/14 17:28

'미안합니다. 이청준.'

2008/01/29 23:51 베껴쓰기
내가 처음으로 이청준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77년 가을이었다. 그때 출판부의 태도을 총 지휘하고 있던 정병규 씨의 소개로 조선호텔 사무실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까지 이청준 선생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불어를 전공한 나는 대학 입학 이후에 한국 문학을 대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 이전에 접했던 한국 작가는 김동리, 황숭원, 이범선 등과 같은 원로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정병규 씨로부터 들었던 이청준 선생님은 한국 순수문학의 최정상급 작가라는 정보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시내에서 식사 겸 술을 한잔 한 뒤, 이 선생님 댁 부근에서 2차까지 끝마쳤을 때였다. 마침 술집 앞에는 작은 서점이 하나 있었다. 이 선생님은 나를 그 서점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자신의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한 권 구입했다. 물론 나로서는 처음 보는 책 제목이었다. 이 선생님은 그 책의 표지를 넘긴 후 하얀 속 면지에다 무엇인가를 적은 후 그 책을 나에게 주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 <별을 보여 드립니다>의 표지를 넘겼을 때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안합니다. 이청준."
나는 그동안 많은 책을 증정받아 보았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증정사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안합니다. 이청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짤막한 글은, 그러나 묘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 짧은 글이 실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이 사장, 보아하니 내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작품을 통하여 작가와 교감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는 출판사 사장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출판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출판사의 가장 큰 재산은 돈이 아니라 필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이 만남이 깊은 교제로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의 작품을 읽어보십시오. 바쁜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해서 미안합니다. 이청준.'
--이재철,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홍성사의 여기까지>에서
 

이만한 필자의 겸손함도 그것을 읽을 줄 아는 출판인의 마음도... 멋지다.

유명한 필자여서도, 한때를 풍미한 출판사 사장이어서도 아니다.

그 간결함이 내 마음에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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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23:51 2008/01/29 23:51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2008/01/21 15:50 베껴쓰기

옛날 편지를 '서간'과 '척독', 두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 한다.

 

서간은 사실을 상세히 알리거나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쓴 장황한 편지인 반면,  척독은 보낸 이의 심경과 감정의 토로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 형식상의 이유로 높은 예술성과 품격을 지녀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척독이 적지 않다. 보낸 이의 정취를 잘 드러내는 척독을 옛 문집에서 우연히 발견해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안대회,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샘의 쏠쏠한 재미를 몇 줄 빌어다가 필자에게 보내는 메일에 옮겨 적었다.

 

편지가 마침 도착하여 뜯어보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사람이 이렇게 이르렀으니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창 모서리에 뜬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답장편지 속에 넣어 바로 보내고 싶습니다.

- 18세기, 조희룡이 임자도 유배 생활 중에 서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맛깔 난 번역 덕분인지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할 때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인지, 봄볕의 따사로운 기운이 생동한다.

웬지 나도 까르르 웃고 싶어졌다. 이런 편지 한 장 적어 보낸 것이 언제이던가?

그만한 글재주는 없어 겨울 편지에 비슷한 때의 그림을 붙여 보냈다.

 

(전기, 매화초옥, 19세기,종이에 수묵담채,29×33cm)

 

여항화가 전기의 그림이다. 산에는 눈도 녹지 않았는데, 매화가 가득하다.

조희룡도 같은 주제의 그림을 명품으로 남겼지만, 나는 이 작품이 더 좋다.

벗을 찾아가는 이의 따스한 마음을 주홍색 옷을 입혀 표현한 것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런 데 눈을 뜬 후에는, 심미적 태도 없이 세상을 사는 이들의 무심함이 나를 상처 입히곤 한다. 티를 낼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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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1 15:50 2008/01/21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