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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 : 활쏘는 풍각쟁이 "사랑하지 말아라" _by 경심鏡沈

경심鏡沈님이 소개하는 현현

'나는 아마도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 일컫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나치게 노력한 모양이다.
그게 이렇게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일인줄도 모르고...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상이냐, 제기랄...'-< 정상적인, 너무나 정상적인>

 블로거 to 블로거 트랙백을 받았을 때, 사실 무지 기뻤지만 또 엄청나게 난감했다.

 블로그를 '펌글'로 도배하는 부류와, 주로 다른 블로그를 감상하는 부류와, 자기 블로그를 쓰는데 주력하는 부류가 있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세번째에 해당한다. 사실 몇 명이 오고 안 오고, 덧글이 있고 없고에도 무심해진지 꽤 오래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 좀 읽어보자, 싶어서 예전에 무척 감명받은(..) 기억이 있는 현현님의 블로그에 대해 쓰기로 했다. 사실 난 현현님을 잘 모르고, 그렇다고 블로그를 죽 보아온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어떤 포스트에 대해서 굉장히 묘한 감정의 폭풍을 겪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이 내용은 순전히 현현님께서 옛날에 썼던, '프리챌에쓴글' 분류에 있는 포스트들만을 두고 쓰는 내용이다. 솔직히 사적인 것 이외의 모든 것들에 약간 덜떨어진 나는, 현현님께서 다큐멘터리를 두고 방송사측과 각축(!)을 벌인 과정도, 이곳 저곳 이슈가 되는 곳들을 둘러보시며 몇 마디를 남기고 계신 것들도 언뜻언뜻 보이지만, 그것까지는 포함을 못 시키겠다. 그리고 지금의 현현님에 대해서 무언가 단정짓고,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는 일이 어쩐지.. 음. 또 블로그에 백업해둘 정도면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이 아닐까? (딴청)

사랑하지 말아라
그냥 서로 길들여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 맘대로 움직이거나 고쳐지지 않는다
잘 알면서 왜 늘 에너지를 소모하는가
나는, 우리는, 그냥 그 곁에서 잠시 맴돌다 사라질 뿐인데... -<사랑하지 말아라>

 제목을 약간 창피스럽게 뽑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중적인 느낌, 을 가장 절절하게 압축해놓은 듯해서 눈 딱 감고 질렀다. 어쩌면 현현님의 글들에서 내가 받은 인상이기도 하다. 사랑이 너무 많고, 기억력도 너무 좋아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잘 잊어버리지 못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호해야만 하기 때문에, 반대로 말하고, 반대로 행동한다. 사실 멀건히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이런 말은 한다는게 좀 으스스하고 실례지만, 제길, 전 이런 말 밖에 할 줄 모르거든요.

 그러나 그러한 태도보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이런 데 있다.

...라고 말해보지만
사람은 화분속에 담긴 식물과는 너무 달라서
아무런 연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제나 '토를 단다'. 이게 말꼬리를 잡고 말에 토를 단다 이런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언제나 부가적인 세번째 결론이 있다. '나는 이렇다. 너는 그렇다. 그래서 그러지 말자.'라는 글이 있다고 가정한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뭐 내가 오해한 것일지도 모르지.'같은 말이 꼭 따라붙는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글들 속의 그녀는 이야기에서 한발자국 물러난다.

4. 말보다 글이 편해서 주루룩 쓰고 나면 역시 말로 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고
    힘들게 말을 하고 나면 역시 글로 쓰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바보일수밖에없는몇가지이유>

 사실 난 이런 것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전혀 없다. 그만큼 현현님은 말을 아끼고, 말을 조심하고, 생각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그만큼 다른 말들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현현님이 꽤 '언어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감당키 어려운 것이 있을 때, 인정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녀는 언제나 그것들에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때부터 친구가 되고, 아는 척을 한다. '그래, 네가 또 왔구나.' '네게도 그것이 있구나.' 

6. 누군가 아프면 어서 병원에 가라고 재촉하면서 내 틀니와 사랑니는 언제나 방치한다-<내가바보일수밖에없는몇가지이유>

 그렇다! 그렇다! 사실 그녀는 그가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지인들을 묘사하는 것과 꼭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숱한 여자들이 가진 공통점인 것 같다. 난 정말 지 몸만 챙기는 이기적인 여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다. 이것은 이타적으로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자신의 건강까지도 태만한, 다른말로 자만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할 일이 너무 많은 요즘 사람들에게 자신감이고 뭐고를 떠나서 다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분명 현현님의 글 속에서 아팠던 '누군가'도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쁘지 않군, 게다가 이쁘기까지 하네
공짜로 새 식구를 얻은 것처럼 흐뭇해하면서 매일 녀석을 만난다
녀석을 낯설어하고 겁내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치 내가 주인이라도 된 듯이
맨처음에 주인집 식구들이 그렇게 해주었듯이 녀석을 계단 위로 올려보낸다
녀석을 만난 지 이렇게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녀석이 내 뒷모습을 계속 바라본다는 걸 알면서 돌아설 때
가끔 가슴 한구석이 찌릿찌릿해지는 건 뭔고?- <강아지 1>

 이제부터 희대의 역작 연재 포스트 '강아지'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 줄까봐, 정 줄까봐, 두려워하다가 결국은 삽시간에 정이 들고, 강아지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그런 감정의 크기를 가진 사람. 

이 넘들은 셋이서 뭉쳐 다니느라 그런지
내가 집에 자주 못들어가서 그런지
또 정들까봐 내가 눈을 안마주쳐서 그런지
대문만 열었다 하면 난리가 난다
마당에 풀어놓은 날에는 발목을 물어뜯을 듯이 몰려와서 짖어댄다
솔직히 좀 무섭다
그래서 오늘도 집에 못가고 녀석들이 잠들때까지 기다리는 중- <강아지 2

 이번만은 정 떼기에 성공하고 싶어하는 현현님. 아마도 가운데에 갑작스러운 이별이 있었을까? 그러나 개들이 너무 미치도록 짖어대니까, 정이고 자시고 '개가 무서워서 집에 못 간다.' 개가 무서워서 집에 일찍 못 들어가다니, 슬프다. 

알았다
녀석들이 왜 아직도 나를 보면 으르릉거리는지
나 뿐만 아니라 대문 소리만 나도 왜 그렇게 짖어대는지
녀석들은 자주 맞는다
하루종일 주인 아줌마의 욕설과 꾸중을 듣는다
녀석들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다 - <강아지 3

 드디어 현현님의 공포의 정체와 원인을 찾아낸다. 호러 영화가 반전되듯,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짖어대는 개들은, 측은한 존재가 된다. 이미 현현님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해했고 공포는 덜해졌다. 미움도 없다. 

그 집 식구들이랑 부딪히면 꼭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개집 옆에 세워놓은 빗자루가 마음에 걸려서 겁이 난다
만에 하나 내가 퍽퍽퍽 깨갱깨갱의 과정을 밟더라도 할 말은 해야할 것이다
안다, 아는데, 무섭다
어떡해야 하나

소심한 나는 아뭇소리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사가고 싶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강아지 4

 여기 또 현현님의 재미있는 점이 있다. 개들과 자신을 위해서 항변을 하려하지만, 주인집이 무서운 게 아니라 빗자루가 무섭다. 안다, 그 빗자루가 현현님을 때리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현현님은 관계가 갖는 폭력성보다 사람의 원시적인 폭력성을 의식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말한다. '이사가고 싶다.' 밉지 않아도, 무섭지 않아도, 불편하고,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은 힘드니까. 하지만 나는 무척 의외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질투심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때로는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어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가끔 초조한 잿빛 눈동자로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것이 인생 - <초조한 잿빛1>

 내게도 있나 한번 봐달라고 하고 싶다. 난 주로 그럴 때 코가 벌름거린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자주 그 말을 하는 편이고
나보다 덜 이기적이며
나보다 더 민감한 촉수를 지녔기에
내게 늘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다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느라 정신이 없고
그런 일기를 쓸 겨를조차 없는 환경에 놓여있으며
내가 꼭 그런 말들을 들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특별한 믿음>이라는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작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질 때가 있다

 이 씁쓸함은
가습기가 뿜어내는 물방울처럼
서서히 내 가슴을 휘저으며 확장되다가
마침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채워지고 만다
 
그러다가
한순간
그래, 너는 너고 나는 나지
우리는 그저 서로 머나먼 별일 뿐이지
하고 한숨을 쉰 다음 잊어버린다   -<초조한 잿빛2>


상한 내 얼굴을 측은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련하게 일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에 그 이름들을 다 새겨넣었다
어쨌건 사람공부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니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바보다
  
참 너무 슬픈 서사였다. 사실 현현님은 분명 현실 속에서 더 자주 그 말을 하고, 더 덜 이기적이며, 더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 글 속의 그녀는 언제나 개입 대신 관조를 택하고, 미움 대신 씁쓸함을 택한다. 비난 대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주위는 친구 대신 타인들이 득시글대고 있다. 그러나 뭐 이건 과장된 표현이고, 사실 언제나 그녀 곁에는 여전히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서운했다, 가까웠다 하면서. 왜 별도 돌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지지 않는가? 아마도 타원형 궤도라고 생각해두자.

 하지만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녀는 정말 미움이 없는 사람일까? 그 정도면 '미움'이 등장해도 될 것 같은데. 여기서 혜성처럼 미움이 등장한다. 

어느날 아주 힘겨운 상황에 부딪혀 며칠 잠을 못자고 괴로와하던 내게
그 공간이 갑자기 원망스러워진 것이다
그 다정다감하고 부지런하고 해박하고 친절한 운영자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나.는.이.렇.게.죽.을.것.만.같.은.데.넌.그.렇.게.행.복.하.단.말.이.지
날마다 몇 천명이 접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날마다 수십명이 게시판에 모여 조근조근 재밌는 이야기를 올리고
날마다 날마다 당신은...오로지 그 빌어먹을 음악만 사랑하면 된단 말이지
용서할 수 없어, 이건 불공평해 

이런 이상한 기류는 점점 걷잡을 수 없어져서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해결의지는  사라지고
지금 내가 힘든 이유가 마치 그 사이트, 그 운영자 때문인 것처럼 광분한 것이다
그래서 그날밤 열이 올라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게시판에 접속한 다음
-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요?
   현실이 어떻게 굴러가든 간에 사이버 세계에 숨어서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채워놓으면
   이 누추한 세상이 조금이라도 가려지나요?...
라는 식의 악담을 길게 길게 작성해서 올렸던 기억이 난다  -<초조한 잿빛3>

 왜일까, 기억 속의 현현님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마도 나였다면, 나는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르는, 아니 사실은 없지만 약간은 그 모습을 닮은, '위선'이 너무 미워서였을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위로가 되었지만 정작 가장 아픈 순간에는 개뿔 전혀 도움 안 되고, 여전히 선한 얼굴을 한 채로 저 사람이 하고 있는 노력들이 모두 자기 과시,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그러한 배신감. 그냥 나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운영자도 왜인지 그런 현현님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고 싶다. 현현님의 젊고 아름다운 부분에 대해서. 대상 없는 분노는 젊은이들이 이미 특허출원내지 않았던가. 실제 현현님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겠지만, 참 젊은 사람의 느낌을 준다. 난 정말 아래의 포스트를 보고 사랑스러워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언젠가 여기 어디에 끄적거렸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한때 한대수 광팬이었다(지금은...희미한 옛사랑이라고나 할까...)
한대수 앨범을 사기 위해서 알바를 한 적도 있다
얼마전까지도 한대수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어줍잖은 다큐를 한답시고 정신이 없어지는 바람에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길에서 딱 마주치자...어이없게도 손이 떨리는 게 아닌가, 젠장 -<한대수를 만나다>



 발목이 안 움직이고, 말을 걸고, 손이 떨리고, 사인을 두개 받고, 악수를 하고, 도저히 스스로가 소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것이 아닌 행동을 해놓고, 아직도 얼떨떨한 채 그 상황에 알딸딸해져 있다. 하지만 정말 압권은 이것이었다!!! 

2004년 9월 22일에 만나고
9월 23일에 쓰다 -<한대수를 만나다

 정말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너무나 너무나 잘 알것 같다! 눈물나게 좋다. 막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알것 같아서 가슴이 아릿아릿거린다. 진보넷에 현현님이 있어서 참 좋다. 성격상 블로그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다. 나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말들, 그러나 너무 하고 싶은 말들을, 또박또박 차분하게 쓰고 있으니까.  

 현현님이 소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분명, 현현님도 이 트랙백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럽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저의 두서 없는 성의를 받아주세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는걸까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심약하면서 겉으로만 야멸찬 듯 행동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끌고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칭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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