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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4

아침:행복한 아침 맞이하기- "사람들이 있었다" by 현현

현현님이 소개하는 아침

블로거를 소개해야한다...대체 누구를?

내게 처음 진보넷을 일러준 알엠이 있었고, 그리하여 진보넷에 둥지를 텄을 때

슈아를 비롯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이 곳에 여럿 있다는 걸 알았다.

1년반이 지난 지금 나는 날마다 너부리, 보라돌이, 미류, 시와, 붉은사랑, 달군,

지후, 스머프, 배여자, 레이, 경심, 돕, 토리, 네오, 뻐꾸기,

그리고 마이링의 이채와 여러 친구들....

마흔 명이 넘는 블로거들의 방을 훔쳐보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그 중에서 과연 누구를?

 

그러자, '아침'마다 블로그 순례를 하는 내가 '아침'을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서로 사적인 정보를 나눈 적이 없으니 더 잘 됐다,

는 생각도 든다. 맞아, 거기로 가보자.

거기선 지난 겨울의 기억이 담긴 눈 밟는 소리를 몇 번이고 다시 들을 수 있고,

비폭력과 평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수 있으며 '기린의 말'을 배울 수도 있다.
기린? 기린!

 





[평화인권연대]에서 발간하는 평화저널 [월간 평화연대]에

2004년 12월호에 실은 글(지면 특강)에서 그는 '기린 언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린은 비폭력 대화를 하는 상징으로 쓰인다. 초식동물로 비교적 평화롭기도 하고, 키가 크기 때문에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큰 키 곳곳에 피를 보내기 위해 육상동물 중에 가장 큰 심장을 가지고 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대화하는 상징으로 워크샵 등에서 자주 사용하기도 하므로 지면특강의 이름을 ‘기린언어 배우기’로 하였다.

                                                                                  [기린언어 배우기1]

 

그리고 비폭력 대화의 목적에 대해서도 밝힌다

 

   비폭ㅤㅍㅕㄱ 대화의 목적

   비폭력 대화를 하다보면 ① 적대감 없이 상대를 바라보며 긴밀하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고, ② 나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키며 ③ 즐겁게 만든다. 늘상 이런 대화의 방식을 사용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특히 위의 3가지를 간절히 원할 때는 용기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위계적인 사회체제가 수천년간 지속이 되어오면서 우리의 말하는 습관이 폭력적으로 정형화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닌 피상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그런 말하는 습관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 [기린언어 배우기1]

 

나는 여덟 살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다.

서울에서 살게 된 뒤로는 일 년 이상 못쓰기도 했고 며칠 덮어두는 일도 있지만

해마다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릴 때는 그것이 숙제였고, 숙제를 하지 않으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으니까,

그게 싫어서, 칭찬을 듣고 싶어서,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서 썼다.

그런데 쓰다보니 점점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되어갈 수록

그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일기 검사를 해줄 선생님도,

가끔 일기장을 들춰보며 나를 관찰하던 부모님도 곁에 없을 뿐더러

그것을 열심히 쓴다고 해도 결코 '착한 아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쓴다.

돈 되는 글쓰기를 하루 이틀 미루기는 해도 일기를 미루지는 않는다.

 

그 누구보다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내 몸과 마음을 잘 알아야하는 것은 바로 '나'이며

그것은 일기쓰기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심은 내게 '언어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내가 아무리 오랫동안 쓰고 또 써도 잘 되지 않았던 것,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비폭력적인 글쓰기'였다.

 

결론을 정해놓고 판단하기, 정면을 가리키지 않고 빙 돌려 말하기,

비명 지르기, 호통치기, 공격하기, 방어하기...

솔직하지도 자연스럽지도 못한 글쓰기 습관이

어느새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당황했다.

나는 날마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경계하고 싶은 대상/조직/사회/관습/제도/이데올로기'로부터 거리를 두기는 커녕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아침'이라는 존재는 소중하다.

글과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사례도 보여준다.

그는 기린언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알리는 사람이면서도

'나는 왜 항상 내가 배운 기린언어를 적당한 시점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doing과 being의 차이란게 이런거였나?' 라며 자신을 돌아본다.

가끔 옥상에 나가 바람을 쐬다가 새들이 V자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서로 배려해주고 아껴주는 훈훈한 모습 '을 발견하기도 한다.

등산을 하면서 나무를 잡고 올라서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가 주는 기쁨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나는 운이 좋다.
   왜냐하면 산에 오를 수 있는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산을 오를 용기를 주는 친구들과 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그런 운을 나누는 그럼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그동안 얻은 것들이 아깝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에게 기여한 모든 생명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나도 큰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들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야겠다.

   아직까지는 실망스럽지만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계속 잘해낼 수 있을 꺼야.....

                                                               - [하찮은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

 

게다가 그는 금연에 성공했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정신 못차리고 줄담배를 피는 나로선

담배를 딱 끊어버린 사람들의 '강력한 자기 믿음'을 그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아직도 가끔은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예전처럼 마음둘 곳이 없어 끙끙거리진 않는다.

   본래의 욕구가 아닌 것이므로 날 지배하진 않을 것이다.
   금연이란 것 역시 나의 욕구가 아닌 수단방법이므로 연연하려 애쓰진 않을 것이다.

                                                                             - [오카리나 부는 아침]

 

그리고 오늘, 그의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내가 그날 택한 방법은 싹싹 빌기.
   그 사람들의 인간성에 호소하면서 싹싹 빌기.
   그들이 천벌받을만큼 나쁜 짓을 자신도 모른채 하지 않도록 알려주기.
   그래서 마음 불편해지게 만들기.
   그 마음 불편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감해주기.
   그래서 그들이 정말로 명령을 받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사람으로 행동할 용기를 주기.
   그런걸 꿈꾸었다.

   포크레인 기사가 못할짓이라고 돌아가고,
   레미콘 기사가 잠시라도 머뭇거리고,
   용역 알바온 사람들이 다시는 안오겠다고 약속하고,
   그런 곳에서라도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수와 힘으로 절대적으로 밀리는 그곳에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건 그들뿐이었다.


                                                                                  -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4월 7일, 평택 대추리에서 경찰과 용역일꾼들이 에워쌌을 때

그는 그런 방식으로 행동했고 그 행동이 옳았다는 걸 확인한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방패로 미는 척 하면서도 붙잡아주던 용역들이 있다는 것을,

거칠게 대응하던 남자들이 몰린 오른쪽보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설득하던 여자들이 몰린 왼쪽이 덜 밀려났다는 것을,

'그게 내가 믿었던 비폭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라고 말한다.

 

이런 글을 읽고 싶었다.

지금 내게 이런 글이 절실했다.

욕하고 덤벼들고 돌 던지고 불을 지르면서 '분노의 에너지'로 20대를 버텼던 내게

이런 글은 얼마나 소중한지...

 

오래전 많은 학생들과 주민들이 맞고 끌려가던 현장에서도

나와 여학생 둘을 방패로 슬쩍 가려준 전경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모욕적이고 거친 욕설이 쏟아지던 그곳에서

'에이, 더 이상 못해먹겠네, 애들이 무슨 죄야, 욕 좀 그만해!...'

라고 외치던 한 경찰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그들에게 때리지 말고 욕하지 말라고 설득하거나 대화할 틈이라는 건 없었지만

누구 하나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계와 명령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당신과 몸싸움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는 아무도 내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부수고 빼앗는 자들에게

우리들의 '분노'와 '무기'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대응은 그들을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요즘,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대응은

'평화'와 '비폭력'을 담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실천일 것이다.

 

그래서 부탁 한 가지!

아침의 지면특강 '기린언어 배우기'의 세번째 글을 읽고 싶어요.

그 특강이 계속 이어져서  블로그를 통해 '비폭력 대화'와 '비폭력 글쓰기'를 소개하고

함께 경험을 나누며 더 많은 블로거들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가는 거, 어때요?

 

마지막으로 이 글의 첫 대목에서 언급한

눈 밟는 소리를 링크하고 물러갑니다
한걸음 한걸음 산을 오르듯이,

힘겹지만 뚜벅뚜벅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 발소리가 여기 있어요

 


  

[눈을 많이 겪은 겨울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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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 : 활쏘는 풍각쟁이 "사랑하지 말아라" _by 경심鏡沈

경심鏡沈님이 소개하는 현현

'나는 아마도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 일컫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나치게 노력한 모양이다.
그게 이렇게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일인줄도 모르고...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상이냐, 제기랄...'-< 정상적인, 너무나 정상적인>

 블로거 to 블로거 트랙백을 받았을 때, 사실 무지 기뻤지만 또 엄청나게 난감했다.

 블로그를 '펌글'로 도배하는 부류와, 주로 다른 블로그를 감상하는 부류와, 자기 블로그를 쓰는데 주력하는 부류가 있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절대적으로, 세번째에 해당한다. 사실 몇 명이 오고 안 오고, 덧글이 있고 없고에도 무심해진지 꽤 오래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 좀 읽어보자, 싶어서 예전에 무척 감명받은(..) 기억이 있는 현현님의 블로그에 대해 쓰기로 했다. 사실 난 현현님을 잘 모르고, 그렇다고 블로그를 죽 보아온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어떤 포스트에 대해서 굉장히 묘한 감정의 폭풍을 겪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이 내용은 순전히 현현님께서 옛날에 썼던, '프리챌에쓴글' 분류에 있는 포스트들만을 두고 쓰는 내용이다. 솔직히 사적인 것 이외의 모든 것들에 약간 덜떨어진 나는, 현현님께서 다큐멘터리를 두고 방송사측과 각축(!)을 벌인 과정도, 이곳 저곳 이슈가 되는 곳들을 둘러보시며 몇 마디를 남기고 계신 것들도 언뜻언뜻 보이지만, 그것까지는 포함을 못 시키겠다. 그리고 지금의 현현님에 대해서 무언가 단정짓고,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는 일이 어쩐지.. 음. 또 블로그에 백업해둘 정도면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이 아닐까? (딴청)

사랑하지 말아라
그냥 서로 길들여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 맘대로 움직이거나 고쳐지지 않는다
잘 알면서 왜 늘 에너지를 소모하는가
나는, 우리는, 그냥 그 곁에서 잠시 맴돌다 사라질 뿐인데... -<사랑하지 말아라>

 제목을 약간 창피스럽게 뽑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중적인 느낌, 을 가장 절절하게 압축해놓은 듯해서 눈 딱 감고 질렀다. 어쩌면 현현님의 글들에서 내가 받은 인상이기도 하다. 사랑이 너무 많고, 기억력도 너무 좋아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잘 잊어버리지 못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호해야만 하기 때문에, 반대로 말하고, 반대로 행동한다. 사실 멀건히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이런 말은 한다는게 좀 으스스하고 실례지만, 제길, 전 이런 말 밖에 할 줄 모르거든요.

 그러나 그러한 태도보다 그녀의 진짜 매력은 이런 데 있다.

...라고 말해보지만
사람은 화분속에 담긴 식물과는 너무 달라서
아무런 연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제나 '토를 단다'. 이게 말꼬리를 잡고 말에 토를 단다 이런 나쁜 의미가 아니라, 언제나 부가적인 세번째 결론이 있다. '나는 이렇다. 너는 그렇다. 그래서 그러지 말자.'라는 글이 있다고 가정한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뭐 내가 오해한 것일지도 모르지.'같은 말이 꼭 따라붙는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글들 속의 그녀는 이야기에서 한발자국 물러난다.

4. 말보다 글이 편해서 주루룩 쓰고 나면 역시 말로 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고
    힘들게 말을 하고 나면 역시 글로 쓰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바보일수밖에없는몇가지이유>

 사실 난 이런 것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전혀 없다. 그만큼 현현님은 말을 아끼고, 말을 조심하고, 생각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그만큼 다른 말들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현현님이 꽤 '언어적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감당키 어려운 것이 있을 때, 인정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을 때, 그녀는 언제나 그것들에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때부터 친구가 되고, 아는 척을 한다. '그래, 네가 또 왔구나.' '네게도 그것이 있구나.' 

6. 누군가 아프면 어서 병원에 가라고 재촉하면서 내 틀니와 사랑니는 언제나 방치한다-<내가바보일수밖에없는몇가지이유>

 그렇다! 그렇다! 사실 그녀는 그가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지인들을 묘사하는 것과 꼭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숱한 여자들이 가진 공통점인 것 같다. 난 정말 지 몸만 챙기는 이기적인 여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다. 이것은 이타적으로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자신의 건강까지도 태만한, 다른말로 자만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할 일이 너무 많은 요즘 사람들에게 자신감이고 뭐고를 떠나서 다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분명 현현님의 글 속에서 아팠던 '누군가'도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쁘지 않군, 게다가 이쁘기까지 하네
공짜로 새 식구를 얻은 것처럼 흐뭇해하면서 매일 녀석을 만난다
녀석을 낯설어하고 겁내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치 내가 주인이라도 된 듯이
맨처음에 주인집 식구들이 그렇게 해주었듯이 녀석을 계단 위로 올려보낸다
녀석을 만난 지 이렇게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녀석이 내 뒷모습을 계속 바라본다는 걸 알면서 돌아설 때
가끔 가슴 한구석이 찌릿찌릿해지는 건 뭔고?- <강아지 1>

 이제부터 희대의 역작 연재 포스트 '강아지'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 줄까봐, 정 줄까봐, 두려워하다가 결국은 삽시간에 정이 들고, 강아지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그런 감정의 크기를 가진 사람. 

이 넘들은 셋이서 뭉쳐 다니느라 그런지
내가 집에 자주 못들어가서 그런지
또 정들까봐 내가 눈을 안마주쳐서 그런지
대문만 열었다 하면 난리가 난다
마당에 풀어놓은 날에는 발목을 물어뜯을 듯이 몰려와서 짖어댄다
솔직히 좀 무섭다
그래서 오늘도 집에 못가고 녀석들이 잠들때까지 기다리는 중- <강아지 2

 이번만은 정 떼기에 성공하고 싶어하는 현현님. 아마도 가운데에 갑작스러운 이별이 있었을까? 그러나 개들이 너무 미치도록 짖어대니까, 정이고 자시고 '개가 무서워서 집에 못 간다.' 개가 무서워서 집에 일찍 못 들어가다니, 슬프다. 

알았다
녀석들이 왜 아직도 나를 보면 으르릉거리는지
나 뿐만 아니라 대문 소리만 나도 왜 그렇게 짖어대는지
녀석들은 자주 맞는다
하루종일 주인 아줌마의 욕설과 꾸중을 듣는다
녀석들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다 - <강아지 3

 드디어 현현님의 공포의 정체와 원인을 찾아낸다. 호러 영화가 반전되듯,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짖어대는 개들은, 측은한 존재가 된다. 이미 현현님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해했고 공포는 덜해졌다. 미움도 없다. 

그 집 식구들이랑 부딪히면 꼭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개집 옆에 세워놓은 빗자루가 마음에 걸려서 겁이 난다
만에 하나 내가 퍽퍽퍽 깨갱깨갱의 과정을 밟더라도 할 말은 해야할 것이다
안다, 아는데, 무섭다
어떡해야 하나

소심한 나는 아뭇소리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사가고 싶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강아지 4

 여기 또 현현님의 재미있는 점이 있다. 개들과 자신을 위해서 항변을 하려하지만, 주인집이 무서운 게 아니라 빗자루가 무섭다. 안다, 그 빗자루가 현현님을 때리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현현님은 관계가 갖는 폭력성보다 사람의 원시적인 폭력성을 의식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말한다. '이사가고 싶다.' 밉지 않아도, 무섭지 않아도, 불편하고,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은 힘드니까. 하지만 나는 무척 의외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질투심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때로는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어서, 때로는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가끔 초조한 잿빛 눈동자로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것이 인생 - <초조한 잿빛1>

 내게도 있나 한번 봐달라고 하고 싶다. 난 주로 그럴 때 코가 벌름거린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자주 그 말을 하는 편이고
나보다 덜 이기적이며
나보다 더 민감한 촉수를 지녔기에
내게 늘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다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느라 정신이 없고
그런 일기를 쓸 겨를조차 없는 환경에 놓여있으며
내가 꼭 그런 말들을 들어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특별한 믿음>이라는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작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질 때가 있다

 이 씁쓸함은
가습기가 뿜어내는 물방울처럼
서서히 내 가슴을 휘저으며 확장되다가
마침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득 채워지고 만다
 
그러다가
한순간
그래, 너는 너고 나는 나지
우리는 그저 서로 머나먼 별일 뿐이지
하고 한숨을 쉰 다음 잊어버린다   -<초조한 잿빛2>


상한 내 얼굴을 측은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련하게 일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신 분들에 그 이름들을 다 새겨넣었다
어쨌건 사람공부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니까
나는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바보다
  
참 너무 슬픈 서사였다. 사실 현현님은 분명 현실 속에서 더 자주 그 말을 하고, 더 덜 이기적이며, 더 민감한 촉수를 갖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 글 속의 그녀는 언제나 개입 대신 관조를 택하고, 미움 대신 씁쓸함을 택한다. 비난 대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주위는 친구 대신 타인들이 득시글대고 있다. 그러나 뭐 이건 과장된 표현이고, 사실 언제나 그녀 곁에는 여전히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서운했다, 가까웠다 하면서. 왜 별도 돌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지지 않는가? 아마도 타원형 궤도라고 생각해두자.

 하지만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녀는 정말 미움이 없는 사람일까? 그 정도면 '미움'이 등장해도 될 것 같은데. 여기서 혜성처럼 미움이 등장한다. 

어느날 아주 힘겨운 상황에 부딪혀 며칠 잠을 못자고 괴로와하던 내게
그 공간이 갑자기 원망스러워진 것이다
그 다정다감하고 부지런하고 해박하고 친절한 운영자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나.는.이.렇.게.죽.을.것.만.같.은.데.넌.그.렇.게.행.복.하.단.말.이.지
날마다 몇 천명이 접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날마다 수십명이 게시판에 모여 조근조근 재밌는 이야기를 올리고
날마다 날마다 당신은...오로지 그 빌어먹을 음악만 사랑하면 된단 말이지
용서할 수 없어, 이건 불공평해 

이런 이상한 기류는 점점 걷잡을 수 없어져서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해결의지는  사라지고
지금 내가 힘든 이유가 마치 그 사이트, 그 운영자 때문인 것처럼 광분한 것이다
그래서 그날밤 열이 올라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게시판에 접속한 다음
-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요?
   현실이 어떻게 굴러가든 간에 사이버 세계에 숨어서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채워놓으면
   이 누추한 세상이 조금이라도 가려지나요?...
라는 식의 악담을 길게 길게 작성해서 올렸던 기억이 난다  -<초조한 잿빛3>

 왜일까, 기억 속의 현현님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마도 나였다면, 나는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르는, 아니 사실은 없지만 약간은 그 모습을 닮은, '위선'이 너무 미워서였을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위로가 되었지만 정작 가장 아픈 순간에는 개뿔 전혀 도움 안 되고, 여전히 선한 얼굴을 한 채로 저 사람이 하고 있는 노력들이 모두 자기 과시,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그러한 배신감. 그냥 나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운영자도 왜인지 그런 현현님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고 싶다. 현현님의 젊고 아름다운 부분에 대해서. 대상 없는 분노는 젊은이들이 이미 특허출원내지 않았던가. 실제 현현님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겠지만, 참 젊은 사람의 느낌을 준다. 난 정말 아래의 포스트를 보고 사랑스러워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언젠가 여기 어디에 끄적거렸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한때 한대수 광팬이었다(지금은...희미한 옛사랑이라고나 할까...)
한대수 앨범을 사기 위해서 알바를 한 적도 있다
얼마전까지도 한대수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어줍잖은 다큐를 한답시고 정신이 없어지는 바람에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길에서 딱 마주치자...어이없게도 손이 떨리는 게 아닌가, 젠장 -<한대수를 만나다>



 발목이 안 움직이고, 말을 걸고, 손이 떨리고, 사인을 두개 받고, 악수를 하고, 도저히 스스로가 소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것이 아닌 행동을 해놓고, 아직도 얼떨떨한 채 그 상황에 알딸딸해져 있다. 하지만 정말 압권은 이것이었다!!! 

2004년 9월 22일에 만나고
9월 23일에 쓰다 -<한대수를 만나다

 정말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너무나 너무나 잘 알것 같다! 눈물나게 좋다. 막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알것 같아서 가슴이 아릿아릿거린다. 진보넷에 현현님이 있어서 참 좋다. 성격상 블로그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다. 나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말들, 그러나 너무 하고 싶은 말들을, 또박또박 차분하게 쓰고 있으니까.  

 현현님이 소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분명, 현현님도 이 트랙백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럽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저의 두서 없는 성의를 받아주세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는걸까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만나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다큐멘터리도 일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심약하면서 겉으로만 야멸찬 듯 행동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이끌고가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칭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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