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

영화가 끝났다. 한 번 북받쳐 오른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수 많은 잡념과 말들이 질서를 찾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뭔가 심오한 거 같은데 못 알아 듣겠다.", "영화 지루하고
재미없다." 졸다 일어난 여자, 그 여자를 안아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남자. 근사한 러브스토리를 기대
했다가 투덜대며 나가는 연인들.





장면 1- 한나 "내가 무엇을 느끼건 간에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과거를 대하는 첫번째 태도.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

한나의 태도는 전쟁을 대하는 다수의 정신상태를 대변. 자신은 그저 힘없는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한나는 홀로코스트 감시원에 지원했다. 먹고 살려고 그랬다. 매달 10명씩 가스실로 보내는 사람을
선별했다. 그것은 그저 공무였다. 마치 동사무소에 앉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분류하는 9급 공무원의
작업같은. 그 작업 과정 어디에도 감정은 없다.  분류기준이 있다, 규정이 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려면 오래된 사람이 나가야 한다, 자리가 비좁았다. 분류하고, 보내고, 새로 들어오고,
일상은 반복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그 때의 기억은 다른 일상과 마찬가지로 별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조금씩 희미해져간다.

여기서 잠시 논리적인 설명을 위해 부가설명.


1.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마사아키 노다 지음 |서혜영 옮김, 길 출판사)는 수감 중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보석 같은 책이다. 정신과 의사이며 비교문화정신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전후 일본인의 집단적인 망각 상태를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집요하고 파고 들어간다. 인터뷰 대상은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징집되어 만주지역에서 군생활을 했던 일본인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은 물론 731부대(흔히들 마루타 부대라 부른다)의 존재까지,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개인들의 증언 속에서 되살아난다. 난징대학살의 끔찍했던 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는 생체실험, 초년병의 총검술 연습 대상이 되어 살해당한 무고한 농민.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전쟁과 살육에 무뎌져가는 과정, 전쟁 이후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그 집단적인 망각과정이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부재로 나타나고, 결국 또 다시 일본사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가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일본사회)의 귀중한 문화이며, 진정으로 상처를 입는 데 익숙해진 사람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2.

2차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독일군인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유죄선고를 받았다. 국가가 학살과 침략행위에 참가하고 동조할 때 개인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박정희,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이에 저항하는 군인이 있다면? 광주시민을 진압하려는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있다면? 나치에 협력하기를 거부한 군인이 있다면?



훗날 역사는 전쟁을 거부한 이들을 영웅으로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이들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그 선택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침묵하고 따를 뿐이다. 당장 살아야 한다. 저항의 대가는 너무 가혹하고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그 큰 문제는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라는 말이 모든 걸 압축한다.


어찌보면 자신도 전쟁이라는 수레바퀴에 휩쓸린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다수는 이 선택을 차선이라고 말할 것이다. 자신에게도 살짝 면죄부를 쥐어주면서. 적당히 비겁하게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이 늘 다수의 선택이며 가장 강력한 침묵의 연대보증이다.

 


한나로 인해 힘겨운 감정. 솔직함. 성실함.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면 가장 생활력 강하고 듬직한 존재였을 이 사람. 

일생을 혼자 힘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았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이 사람.

한나로 인해 불편한 감정. 죄의식의 결여.

출소를 하루 앞두고 몇 십 년 만에 마이클과 재회한 장면에서조차 일관된 그 솔직함과 죄의식의 결여.

 

한나의 자살은 마이클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한 자신에게 내린 사망선고. 한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마이클. 

 

 

 

 


장면 2- 마이클 "요란하게 헤어질까 아니면 조용하게"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써먹을 명대사가 있나 검색해봤다. 명대사는 대부분 한나의 것.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마이클 대사는 전부 어릴 적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날린 대사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분명하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역사는 그 안타까운 사랑을 더욱 절절하게 만들어주는

양념같은 것.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만들어진 듯 하다. 물론 사랑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 난 후 마이클의 태도를 답답해한다.

 

끝내 재판정에서 한나가 글을 몰랐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사랑을 원하는 한나에게 끝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한나의 유언에 따라 돈을 전해주러 갔을 때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마이클은 심하게 대사가 없다.

늘 울고 있는 그 눈. 그것이 모든 대사다.

마이클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대사가 없다.

마이클이 할 말이 없는 이유는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한나에게 물었던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이었다. 

사랑에 관대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몸서리쳐지는 장면. 완고함. 결벽증.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하냐는...

사랑과 역사적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이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조차

이분법적 사고를 용인하지 않았던, 끝내 타협을 거부했던,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편'이라는

대다수 사랑 지상주의자들의 가슴을 후벼팠던 그 태도.



마이클은 진심으로 한나를 사랑했다. 

녹음테이프를 보내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했던 것은, 그 사랑이 너무 멋져서가 아니라

지난 시절과 화해하고 오래 동안 가슴 속 깊이 쌓여있는 상처를 스스로 마주하고 치료할 용기를

냈다는 사실.

동시에 마이클은 역사적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 수 많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 장면에서 한나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 그것이 사랑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둘 사이에 화해는 가능했을텐데...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가능성.

하지만...답은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그 마저도 마이클은 준비하고 있었던 듯. 계속 관계에 미련을 보였지만 체념의 태도 역시

늘 준비해두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자의식. 끝도 없는 반성. 

이제 그는 그 모든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독일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일본의 태도는 관심도 없다.

적어도 수 많은 반성을 거듭한 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불편했을까?

무엇 때문에? 이제 충분하다고 여길까?

그들에게 한나나 마이클의 태도는 어떻게 보였을까?

그  모든 의문은 딸의 몫인걸까? 그는 최대한 성실한 태도로 많이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것이다.

이제 너의 몫이 생길거란다.......


<더 리더:책읽어 주는 남자>라는 제목만 보고 연애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영화 마켓팅은 늘 본말 전도. 짜증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