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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 소감

올해는 아무래도 학원과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될 거 같다.

노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놀듯. 취미를 가져본 적 없는지라. 시간이 나도 할 일을 못찾고.

그래서 올해는 블로거가 돼 보기로 마음 먹었다. 글쓰는 건 돈도 안 들고 몸도 안 쓰고.

몸도 쓰긴 써야 하는데...쩝.



어제 케이블 TV에서 신해철이 비를 인터뷰하더라.

마지막에 신해철이 대놓고 "국제적인 스타가 돼서 한국을 빛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거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당부를 하더라. 좀 웃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해철 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느낌이랄까?
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시원스레 할 수 있는 사람이 신해철 말고 몇이나 되겠나?

예전에는 신해철 좀 짜증났는데 애가 일관되게 저러니까 괜찮다. 난 일관된 캐릭터에 후한 편이다.




연말에도 약속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이런 저런 시상식을 많이 보게 됐다.

시상식을 볼 때마다 볼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 시상식에서 제일 불편한 것은

"무엇보다 이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판에 박힌 듯한 그 인사말이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 탓도 있지만 시상식에서 경쟁하듯 꼭 저런 말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개인이 종교를 갖는거야 자유다. 하지만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데다 한국처럼 다종교 사회에

종교가 없는 사람도 많은데 왜 꼭 저런 이야기를 해야 하느냔 말이다.

난 저런 게 일종의 예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뻔히 알지 않나? 한국인들의 정서가 종교 앞세우는 거

꽤나 싫어한다는 걸. 그런데 굳이 한단 말이다. 그럼 얘들이 그렇게 지조 있는 애들인가 하면

뭐 다른 문제에선 절대 다른 사람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단 말이지. 게다가 시상식에서 수상할 정도면

소속사, 방송사에서부터 시청자 반응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어차피 인기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이해한다. 그런데 유독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다.


작년에 씨네 21에 듀나가 쓴 글에서도 봤는데 이렇게 경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경은

다른 나라 시상식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라 한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도

이런 풍경은 매우 드문 일.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개인주의 측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란다. 개인주의란 측면에서 보자면,

연예인들의 발언은 기댈 곳 없는 한국인들이 무엇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

일단 소속사, 방송사 등 돈을 대주고 있는 곳, 그 다음 국가와 가족, 그리고 하나님.

개인적인 이야기는 지극히 적고 모두 남 이야기다.

누구한테 감사하다, 누구한테 감사하다 인사만 하다 끝난다.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성공인데 왜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지... 물론 한국인 정서상 지나치게 잘난척 하는 건 못봐주지만

계속 남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시상식 짜증난다. 그냥 고맙다는 말은 좀 따로 만나서 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그래서 지극히 신변잡기적이고 말 많은 시상식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지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조롭고 짜증나는

반복의 말더미 속에서도 시상식이 재미나는 이유는, 그래서 더욱 더 그런 것이겠지만,

자기만의 언어와 생각을 갖고 있는 연예인들의 발언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을 못 해서 속상한 여자가 아니라 바보 분장을 못 해서  속상한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한

개그콘서트 박지선의 수상소감에서는 가슴이 아린 게 눈물이 날려고 하더라. 여자인 동시에

개그맨이(또는 개그우먼??) 될 수는 없는 걸까? 혹은 개그맨이 여성스러우면 안 되는

것일까? 한 편으로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하고 금새 잊혀지는 예쁜 개그맨들도 안스러웠다. 박지선보단

조금 덜 짠하지만 말이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든 힘들겠다 싶다. 갑자기 공대에 다니는 여학생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여학생 중에 하나가 공대에 붙어다고 좋아하는데 그녀의 환타지에 대고 그닥

해줄 말이 없는 이유는, 그보다는 가슴이 먼저 답답해지는 이유도....



"모 단체에서 올해 최악의 예능 프로그램 1위로 개그콘서트를 선정했던데 만약 개그맨들이 방송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고생하는지 봤다면 그런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

이 말은 개그콘서트에서 [소비자 고발]이란 꼭지에 나오는 황현희의 수상 소감이다. 내 주변에는

황현희 싫어하는 애는 별로 못봤다. 이미지가 꽤나 좋았다. 나름 말이 통하는 캐릭터라는 인상을 줬다.

그런데 저 수상소감은 좀 실망이다. 뭐 열심히 했는데 욕먹으니 조금 기분은 나빴겠지만 우선 저건

개그콘서트를 종합 평가한 것이지 황현희 개인을 평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민언련에서

개그콘서트를 최악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주된 이유는 '여성비하적 발언과 상황설정'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왠만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쉽게 혐의를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개그콘서트는

여성비하적 발언이 많다. [독한놈들]의 곽한구가 절정이고, 노래 부를 때마다 여자들 외모 가지고

장난치는 일출이 역시도. 가학성을 줄이고 남을 웃길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처음 음악할 때부터 30년 동안 늘 생각해왔던 거지만 한국 사회가 너무 근엄하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이 말은 제대로 늙은 아저씨의 모범이라고 생각하는 배철수의

발언이다.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은 전혀 가볍지 않았고, 직격탄을 날리진 않았지만 불필요한

권위가 지배하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말로 충분해 보였다. 배철수의 얼굴에서는 저런 말이 나와줘야

한다. 냉소를 빼면 그 얼굴에 뭐가 남겠나. 그 얼굴과 그 말이 인생을 대변한다.



PS. 1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확 나빠진다. 안타깝게 그 불쾌한

연예인 리스트가 한꺼번에 확 불어나서 찝찝했다.

좀체 대중가요를 듣지 않는 나 마저도 혹했던 원더걸스의 Nobody.

그런데 원더걸스 다섯 명이 모두 교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묘한 절망감, 혹은 분노. 또는

어떤 위기의식. 배후설 따위의 구린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느낌.

그 어두운 느낌은 한국 사회를 향해 있다. 정확히 분석은 안돼지만 느낌상으로는 이미 교회가

출세나 성공을 위해 권력에 줄대기 위한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혹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간다는 느낌.

신봉선 때문에 한 번 좌절했는데 김명민마저 "하느님이 내게 이 정도 탈렌트밖에 주지 않아서 이렇게

정말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는 연기자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는 짜증 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김명민 너마저. 2008년을 빛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전부 하느님의 후광으로

만들어진듯한 이 찝찝한 느낌이란. 강마에의 편집증적인 연기를 빼면 뭐가 남겠나?



PS. 2

mbc 파업에 대해 언급했던 이문세, 문소리 멋지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그렇다. 좀 그런 얘기 해주는

사람도 있으면 안 되냐?? 나경은 아나운서가 파업을 해도 심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유재석이야 국민

엠씨 꼬리표를 달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라디오에서 만나던 문지애도 느낌 좋고....

연예인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산다는 그 놈의 대의 좀 그만 듣고 막나가는 무식하고

싸가지 없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제대로 된 애가 한 둘 쯤 나오기를 기대하는 심정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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