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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만들자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겨울철쭉님의 [그래서 '결국' 비정규직을 왜 만들어야하죠?] 에 관련된 글.

겨울철쭉님의 높은 내공과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합니다. 자활참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정부기관과의 투쟁은 제가 속한 자활노조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며, 저 역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활급여와 예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비정규직 자활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분개하고 있는지라 문제삼으신 현 제도권 내에서의 '사회적일자리'와 '사회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현장에서 여러가지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변명처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쭉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사회적 기업'이 사적자본의 투자공간을 여는 맥락일 뿐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열악한 자활현장에서 사회적기업의 토대를 마련하고 빈민운동에 힘쓰고 있는 현장활동가들에게는 너무 힘빠지는 소리입니다. 현장 활동가들이 표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은 이윤창출이나 효율성이라는 영리적 활동을 추구하지만 기업주나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일반 기업과는 달리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윤을 재투자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목적'이라는 것은 빈민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나 직업훈련, 교육 기회의 제공, 자립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 등을 들 수 있겠죠. 우리는 남한사회의 현실에서 이런 사회적 기업이 빈민운동의 한 대안으로 자리잡길 희망합니다. 삼성의 방식이라뇨.. 목적과 태생부터 차원이 다르죠. 좀 아픈 비약입니다.

 

정책을 연구 생산하시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비판을 해주셨는데요..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이상은 그곳에 두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 청소 예산으로 편성한 것은 한 학교당 평균 8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며, 국회에서 이 예산마저 많다며 삭감논의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이 예산은 '목적예산'이라고 해서 학교 일선에서는 일부만 청소목적으로 사용하고 학교장 재량에 따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편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청소용역 회사를 통해 인력을 한시적으로 채용하거나 학교에서 직접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애초의 논의처럼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담당케하는 경우도 많음은 물론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학교나 교육인적자원부가 직접채용해서 정규직 일자리로 창출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당분간 어려운 상황입니다. 800만원으로 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채용할 수는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활현장에서 국가 예산 확충해서 정규직 노동자로 채용하라고 맨날 싸우느니 주어진 현실에서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빈곤 저소득 실업자들에게 학교 청소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지원하고 사업단을 구성하여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을 바탕으로 하여 자활공동체 또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청소 사업단을 편성하고 정기적인 학교 순회 방문 청소를 실시하였을 경우 학교 청소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1인당 평균 소득은 월 150만원이 넘습니다. 정규직, 직접고용에 연연하며 예산 확충을 기다리느니 훨씬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일자리 창출일 것입니다. 

저희가 표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자립과 자활을 통한 안정적인 일자리입니다. 현재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는 자활사업의 모델과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비록 참여자들이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투쟁마저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기업과 자활공동체는 참여 구성원의 민주적인 의사 참여과정을 보장하며 보유주식 즉, 투자자본에 따른 수익배당을 지양합니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이 불안정하고 저소득 임금 노동자만을 양산할 것이라는 님의 전망은 사회적 기업의 부정적 평가만을 토대로 한 기우라 생각됩니다. 실제 자활현장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립과 빈민운동에 공헌하고 있는 모범적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변명을 하자면, 자활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과거 시혜적인 복지제도권 내에서 안주하며 스스로의 노동자성을 포기하고 노동의 고귀한 가치마저 약간의 생계비 지원과 맞바꿔 먹고 살아가는 많은 빈민층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 노동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스스로 노동자임을 알게하고, 노동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권리를 알게끔 도와드리는 것만도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도저히 생존하실 수 없을 것 같은 많은 분들이 '자활' 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현장활동가들에게 떠맡겨질 때도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단지 비정규직이라도 설사 님이 치를 떨어하시는 '용역'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일자리라도 소득을 만들어 그들이 안정적으로 가져가실 수 있다면 뭐든지 잡고 싶은 것이 현장 실무자들의 욕심입니다.

 

글쎄요..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노동법개악에 분노하고 빈민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싸움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에 저는 손톱 만큼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장에서 주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램입니다.

 

*겨울철쭉님 덕분에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비판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도 현장의 실정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주절주절 글을 올립니다.  저 역시 글이 너무 무례했다면 용서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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