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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74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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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배하는 감귤은 4월말에 수확하는 품종이라서
이맘 때면 감귤이 익어가는 모습을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익어가는 감귤을 따서 버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방제를 잘못해서 병에 걸린 감귤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다음 달에 수확을 하기 전에 상태가 나쁜 것들을 미리 속아줘야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1년 동안 노력해서 키워왔던 걸 버리는 기분이 꿀꿀하기는 하지만
열매를 따내면서 나무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이렇게 열매를 때어내면 조금 편하지? 내년에는 우리 좀더 노력해보자.”


봄이 되면서 잡초들도 왕성하게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에 괜히 제 마음도 조급해지는데
미세먼지가 온통 뒤덮고 있어서 일하는 게 편치 않습니다.
그러면 일을 뒤로 미루고 제게 위로를 전합니다.
“너무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하라네. 숨 쉬기 힘들수록 호흡을 조절해보자.”


농사를 지으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결과의 목매달지 말고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설혹 결과가 나쁘더라도 투툴 털어버리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는 겁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긍정의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


2차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은 이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악착같이 붙들어서 동료들을 짖밟는 이
온정을 배푸는 척 하면서 밀고하는 이
비참한 가운데도 더 비참한 이를 조용히 도와주는 이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편한 곳으로 빠지려는 이
그 속에서도 저항을 조직하려는 이
눈치만 살피면서 어떻게든 중간에 끼어있으려는 이
모든 걸 눈감고 살아가면서도 고마운 이에게는 슬며시 손을 내미는 이
오직 자신만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이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가 유태인인지 아닌지, 좌익인지 우익인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극한 상황에서의 삶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거울을 봤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하고 가만히 바라봤지요.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무덤덤하게 저를 바라보던 거울 속의 인물이 입을 열었습니다.


“성민아, 이제는 좀 살만해졌나보네. 니가 서 있는 그곳은 아우슈비츠가 아닌가보지. 하지만 잊지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야. 얼마전까지 니 입으로 수없이 내뱉었던 말이거든.”


그 말을 듣고 거울을 깨끗이 딲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랑 같이 산책을 나갔죠.

 

3


저는 좀 긴 글이 좋습니다.^^ 짧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쓰고 싶으신 만큼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글 남겨 봅니다. 성민 님의 글을 재미나고 즐겁게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곰탱이님이 지난 방송을 보시고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글의 길이야 할 얘기가 많으면 길어지는 거고, 별로 없으면 짧아지는 거니까 들쑥날쑥 하겠지요.
문제는 글의 길이가 아니라 서로 소통을 할수 있느냐 하는 건데...
소통할 사람 자체가 많지 않은 이 방송에 이렇게 사연을 보내주시는 것으로도 즐거움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재미나고 즐겁고 보고 있다’며 애정까지 표해주시니...


“아~ 이런 허접한 방송도 누군가에게 재미나고 즐거운 시간을 주는구나...”



(전영의 ‘모두가 천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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