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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애가 말한 요지는 그거였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정말 당황스럽다.

사십구년 동안 살면서 늘 해오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야 나는 왜 사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거꾸로 왜 사는지 알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대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는게 내가 최근에 발견한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더라도 그의 목표가 개인적인 욕망의 성취보다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더라도 영향을 미치겠다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 그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사람은 삶의 허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최근에 발견한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왜 사는지 묻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근본적으로 의미있거나 가치있는 삶이란.....허위에 도전하는 삶이 아닐까?

 

미셸 푸코....우리의 인습, 제도가 완전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롱하는 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실체를 폭로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저술작업에서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우리를 둘러싼 허위와 모순들,

그런 것들에 대한 도전....그런 것들을 뒤집어엎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하지 못했던 것....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 창작이라는 것을 그런 의욕을 가지고 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내가 사는 이유를 묻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보다 더 소박하게, 직접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

험하고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한다는 의식 조차 없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은 나에게는 더더구나 도달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로 허위에 도전하는 일 같은 것은 정말이지 일찌기 내가

뜻을 두었으면 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나는 왜 뒤집어엎어버리는 일에 그토록 관심이 없었을까?

그렇게 많은 삶에 대한 불만이나 회의를 오히려 에너지로 삼을 수도 있었을텐데.

 

주변을 돌아보면 허위에 도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자의적으로 주어진 시스템에 도전하기 위해서

산다고 한번 말해보고 싶다.  물론 아직 그렇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살면 좋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네 주위에 네가 부수어야할 허위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그 허위를 부수기 위해서 살아보면 어떠냐고 말하고 싶다.

 

이제 와서야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이데올로기란 이데아란 어떤 경우에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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