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하는게 삶의 즐거움중 하나다. 몇일이나 했다고.
(아. 여기서 운동은 movement가 아님)
나는 체육 싫어하고 못하는 여자애였다. 내가 생각해 낼수 있는 최대한의 과거부터. 초등학교때부터 병약한 여자아이처럼 체육시간에 일부러 빠져서는 애들이 노는것을 멀찍이서 지켜봤었다.왜 선생이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얼굴이 허여니까 아프다고 하면 다들 잘 믿어주었던것 같다. 그렇다고 혼자만 땡땡이 치는게 즐거웠던것 같지는 않다. 약간의 부러움으로 나도 어서와서 하라고 한번만 더 불러준다면 같이 할텐데라는 표정으로 애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여자애들이라고 체육을 다 못하는것도 아니었고, 싫어하는것도 아니었다는것은 확실하다.
한때 피구왕 통키 붐으로 반별 피구 대항전이 비공식적으로 매일 방과후에 있었는데, 우리반 최고 슈터? 중 하나는 나랑 제일 친한 여자애였다. (이애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슬램덩크를 보고는 동네 형들 밖에 없는 농구골대를 감히 차지하고 덩크 슛을 열심히 연습했다. 우유상자 위에서;;)그런데 나는 왜 운동을 그렇게 싫어했을까?
안하니까가 답일듯.
안하고 안하니까 못하고 못하니까 싫어하고.
할기회가 없으니까 점점 더 못하고. 더 싫어하고. (영어 싫어하는 거랑 흡사한 매커니즘+ㅗ+)
고무줄도 못해서, 아이들이 깍두기도 안시켜 줄정도 였으니까. 운동회를 해도 달리기를 못해서 가족이나 사람들한테 놀림당하고=_= 공책도 못받고..
사실 중학교 고등학교가서는 운동이라는것을 해본적이없다. 운동부족를 넘어선 경지.
농담이 아니라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다. 아마 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을 그랬으리라.적어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랬다. 같은반 남자아이들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축구하고 농구하고 날아다녔는데,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팔짱기고 걸어다니거나 축구경기를 구경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마음먹고 해보니까 즐겁더라.
심지어 내평생 처음으로 운동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오오 ㅜ_ㅜ 정말이야 엄청 어설프지만. 일주일전에는 고무공가지고 좁은 도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오바하다가 발가락이 꺽이는 부상을 입었다. 아직도 붓기가 남아 아프지만. 그것 마저도 신기했달까? 공놀이를 해서 내가 어디를 다치다니! (오늘은 피구하다가 크게 넘어졌는데 이게 계속되면 운동을 또 싫어하게 될지도.ㅋㅋ)
뭐 축구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공을 발로 굴리고 다른사람한테 보내고 슛을 하는 놀이는 한번도 해본적이없었다. 농구도 마찬가지고. 체육시간에는 레이업 슛 시험만 보고, 드리블 시험만 보니까, 실제경기는 안시킨다. 체육자습때도 남자애들은 축구하라고 하고 여자애들은 구경하라고했었고...
아무튼 축구를 하면서 내가 상대방과 몸을 부ㅤㄷㅣㅊ히게 되는것을 되게 무서워 한다는것을 알았다. 정강이와 정강이가 잘못해서 부딪히기라도한다면 생각만해도 아프다. 다른 참무협 동지들이 부딪혀 봤자 별거 아니라고 독려하지만, 그것도 경험해 본 사람이나 할수 있는 이야기지..나도 어려서부터 그런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다면 지금같이 두렵지는 않았을지도 모를텐데. 발가락이 조금 다친것만으로 계속 신경을 쓰면서 안나으면 어쩌나 걱정도 안할거고..
암튼 운동의 즐거움을 모르고/잊고 살았던 20수년의 세월이 아깝다.
계속 꾸준히 해서 팔에 알통만들어야지~
아직 다 읽어 보진 않았는데,언니네 9월 특집으로 달려라,하니! -운동하는 여자들 이 실렸었다. (나 한때 별명은 하니였는데 -_- 나예리 고 나쁜 기집애)
글. 해송(bokfish@freechal.com) / 언니네트워크 국제연대팀 운동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잖아??!!
언젠가 언니네 지식놀이터에서 여성과 운동에 관한 페이퍼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나 조언을 구한다는 질문이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질문의 마지막에 여성과 다이어트 혹은 여성과 외모 등에 관한 접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글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과 운동을 교차시켜 놓았을 때, 운동은 여성에게 있어서 몸매를 가꾸는 도구로 가장 먼저 인지될 것이라는 그 질문자의 우려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운동이라는 두 개의 조합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이미지를 안고는 성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여성들이 운동을 하는가/안하는가?”, “어떤 운동을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은 마치 그것이 개인의 선택인 양 이야기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은 사과냐/귤이냐의 선택의 문제일까? 만약 그것이 개인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라면,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재 유일하게 ‘여자’ 야구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안향미 선수가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야구협회의 조항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토로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들이 운동장에 나갔다가 “여자들이?”라며 내쫓김을 당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성들은 운동은 ‘너’에게 부적합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교육받는다. 어렸을 적, 여자아이들에게는 바비 인형을 선물하고 남자아이들은 축구공을 선물 받는 식이다. 여성학자 맥키논은,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다움’과 ‘운동선수다움’ 둘 중에 선택을 하라는 강요를 암암리에 받는다고 피력한다. 사회적으로 ‘여성다움/여성다운 몸’과 ‘운동/운동선수의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또 이것이 학습화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은 공적 영역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교육받은 반면에 여성은 사적 영역을 담당케 함으로써 여성이 공적인 공간에서의 활동을 더욱 어렵게 해 왔다. 남성은 사회적으로 남성이 되기 위해 스포츠를 배우며, 이럴 경우 남성과 운동선수는 동의어이자 ‘진짜’ 남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이다.
남자들만의 경기가 ‘진짜’ 경기라는 편견을 버려!
지난 8월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남자팀 3:0 승리, 여자팀 0:2 패배. 각종 매스컴들은 남북의 형제가 1승씩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며 부산을 떨어댔다. 그런데 만약, 남자팀이 패배하고 여자팀이 승리했다면? 그래도 여전히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가졌다며 호들갑 떠는 기사들을 볼 수 있었을까? 통일 60주년을 기념한 남북통일축구대회. 화합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필승’ 전략이 요구되는, 어쩌면 아이러닉한 시추에이션에서 남1승, 여 1패라는 사이좋으면서 기분도 좋은 시나리오가 연출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감정의 이면에는 남자들의 경기가 ‘진짜’ 경기라는 속내가 이미 깔려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왜 남자들의 경기가 ‘진짜’ 경기로 간주되는 것일까?
가부장제는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삶을 조직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별 체계의 사회에서의 스포츠 활동은 남성과 여성을 이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관련되게 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사회가 갖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규범과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의 남성 전유화 현상은 또다시 스포츠를 통해 지배적 가치, 즉 남성 중심적인 규범과 사회관계를 지속시키는 매개물로 작동한다. 과 장을 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주변의 지원 등을 떠나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동생’(혹은 오빠)인 것 같다. 여자운동 선수들, 특히 여자가 하기에는 ‘거칠다’ 혹은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종목의 선수들에게 운동의 시작 동기를 물어보면 “남동생을 데려다주러 갔다가 그 운동에 홀딱 반했다”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멋진 그녀도 처음에 남동생의 교습비를 도장에 대신 내러 갔다가 권투에 반하고 말았다!
여자? 운동? 누구, 박세리?
개인적으로 나는 스포츠에 엄청 열광한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난 스포츠가 너무 너무 좋아”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첫째는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아이이지, 결코 ‘잘’ 하는 아이는 아니라는, 지레 주눅 듦이었고 둘째는, 스포츠는 체육 시간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스포츠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포기 때문이었다.
이 사회에서는 운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여성만이 스포츠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성들이나 LPGA에서 드라마 같은 우승을 한 박세리와 같은 선수들은 무기 없는 전쟁이라 칭해지는 운동경기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곳곳에 알리는 자랑스런 대한의 딸들 혹은 태극낭자들로서 의미가 부여된다.
또 다른 의미는 여자 운동선수들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다. 여자 농구선수나 테니스 선수의 유니폼에서 드러나듯 여자들의 경기는 ‘보여지기 위한 것’으로 취급되고, 여자선수들은 실력보다 외모로 평가하고 대상화된다. 여성의 몸은 문화적으로 젠더화된 몸의 기반 안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스포츠 활동으로 인한 여성의 몸의 확장은 부정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박세리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두 가지 이미지-‘대한의 딸’ 그리고 ‘박세리 다리’-에서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에게도 자기만의 글러브가 필요하다
미국의 한 여성 스포츠 학자는 여성과 스포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고 막내딸이 있다면, 당신은 과연 그 막내딸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줄 것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언니들은? 막내딸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줄 것인가? 많은 친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대부분, ‘막내딸이 관심을 보인다면 기꺼이 운동을 하라고 하겠지만 야구 글러브는 일단 오빠들의 것을 빌려 쓰라고 하겠다’라는 답을 했다. 하지만! 오빠의 야구 글러브를 빌려서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야구 글러브는 결코 여자아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놀고 싶은 때에 오빠가 이미 자기 글러브를 가지고 놀고 있다면? 우리는 포기라는 미덕을 배운 아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글러브를 가지고 노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내 이름이 새겨진 야구 글러브가 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 방식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짧은 물음은 운동에 대한 선호도나 능력이 성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학습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게다가, 우리는 이 질문에서 두 아들들이 이미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까지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남자 아이들에게는 종류별로 다양한 공을 비롯하여 온갖 운동관련 용품을 선물하고, 리틀 야구단, 어린이 축구단에 가입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미니축구를 하도록 한 적이 있는데 몇 몇 여학생들은 “하지도 못하는데 왜 축구 같은걸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꼭 잘해야 축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잘하려면 많이 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 여학생들은 축구를 해야할 필요도 잘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고,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망설임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체육은 여자아이들이 못해도 크게 부끄럽거나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학생들이 체육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여자애들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래, 운동! 나는 스포츠 하는 GIRL
이 렇게 말하면 그럼 운동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쉬운 문제인가? 내가 좋다면 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학교 운동장이나 한강 고수부지는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남자애들이 와서 ‘진짜’ 농구를 하겠다고 운동장에서 내쫓았던 경우도 있다. 만약, 한 여성에게 운동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 여성은 운동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야 한다. 운동할 공간을 찾아야 하고, 그 공간을 함께 점유할 동지를 찾아야 한다. 심지어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의미를 끊임없이 설명해야하며 운동 하는 날에는 땀에 젖은 운동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등 짐을 배로 챙겨야 한다. 남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동네 농구장에서 잠깐 농구를 하는 것의 몇 배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아주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힘들다. 즉, 운동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어도 이렇게 운동을 하는 것 외에 에너지를 쓰다 보니 이미 소진해버리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 아무런 방해 없이 운동을 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운동장을 점령하고, 여성들끼리 재미있게 운동을 하는 게릴라성 프로젝트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언니들, 오늘 밤 한게임?
* 이 글을 퍼가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
월간 언니네(www.unninet.co.kr) 2005년 9월 특집 "달려라 하니-운동하는 여자들" 중
(아. 여기서 운동은 movement가 아님)
나는 체육 싫어하고 못하는 여자애였다. 내가 생각해 낼수 있는 최대한의 과거부터. 초등학교때부터 병약한 여자아이처럼 체육시간에 일부러 빠져서는 애들이 노는것을 멀찍이서 지켜봤었다.왜 선생이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얼굴이 허여니까 아프다고 하면 다들 잘 믿어주었던것 같다. 그렇다고 혼자만 땡땡이 치는게 즐거웠던것 같지는 않다. 약간의 부러움으로 나도 어서와서 하라고 한번만 더 불러준다면 같이 할텐데라는 표정으로 애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여자애들이라고 체육을 다 못하는것도 아니었고, 싫어하는것도 아니었다는것은 확실하다.
한때 피구왕 통키 붐으로 반별 피구 대항전이 비공식적으로 매일 방과후에 있었는데, 우리반 최고 슈터? 중 하나는 나랑 제일 친한 여자애였다. (이애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슬램덩크를 보고는 동네 형들 밖에 없는 농구골대를 감히 차지하고 덩크 슛을 열심히 연습했다. 우유상자 위에서;;)그런데 나는 왜 운동을 그렇게 싫어했을까?
안하니까가 답일듯.
안하고 안하니까 못하고 못하니까 싫어하고.
할기회가 없으니까 점점 더 못하고. 더 싫어하고. (영어 싫어하는 거랑 흡사한 매커니즘+ㅗ+)
고무줄도 못해서, 아이들이 깍두기도 안시켜 줄정도 였으니까. 운동회를 해도 달리기를 못해서 가족이나 사람들한테 놀림당하고=_= 공책도 못받고..
사실 중학교 고등학교가서는 운동이라는것을 해본적이없다. 운동부족를 넘어선 경지.
농담이 아니라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다. 아마 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을 그랬으리라.적어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랬다. 같은반 남자아이들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축구하고 농구하고 날아다녔는데,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팔짱기고 걸어다니거나 축구경기를 구경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마음먹고 해보니까 즐겁더라.
심지어 내평생 처음으로 운동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오오 ㅜ_ㅜ 정말이야 엄청 어설프지만. 일주일전에는 고무공가지고 좁은 도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오바하다가 발가락이 꺽이는 부상을 입었다. 아직도 붓기가 남아 아프지만. 그것 마저도 신기했달까? 공놀이를 해서 내가 어디를 다치다니! (오늘은 피구하다가 크게 넘어졌는데 이게 계속되면 운동을 또 싫어하게 될지도.ㅋㅋ)
뭐 축구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공을 발로 굴리고 다른사람한테 보내고 슛을 하는 놀이는 한번도 해본적이없었다. 농구도 마찬가지고. 체육시간에는 레이업 슛 시험만 보고, 드리블 시험만 보니까, 실제경기는 안시킨다. 체육자습때도 남자애들은 축구하라고 하고 여자애들은 구경하라고했었고...
아무튼 축구를 하면서 내가 상대방과 몸을 부ㅤㄷㅣㅊ히게 되는것을 되게 무서워 한다는것을 알았다. 정강이와 정강이가 잘못해서 부딪히기라도한다면 생각만해도 아프다. 다른 참무협 동지들이 부딪혀 봤자 별거 아니라고 독려하지만, 그것도 경험해 본 사람이나 할수 있는 이야기지..나도 어려서부터 그런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다면 지금같이 두렵지는 않았을지도 모를텐데. 발가락이 조금 다친것만으로 계속 신경을 쓰면서 안나으면 어쩌나 걱정도 안할거고..
암튼 운동의 즐거움을 모르고/잊고 살았던 20수년의 세월이 아깝다.
계속 꾸준히 해서 팔에 알통만들어야지~
아직 다 읽어 보진 않았는데,언니네 9월 특집으로 달려라,하니! -운동하는 여자들 이 실렸었다. (나 한때 별명은 하니였는데 -_- 나예리 고 나쁜 기집애)
글. 해송(bokfish@freechal.com) / 언니네트워크 국제연대팀 운동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잖아??!!
언젠가 언니네 지식놀이터에서 여성과 운동에 관한 페이퍼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나 조언을 구한다는 질문이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질문의 마지막에 여성과 다이어트 혹은 여성과 외모 등에 관한 접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글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과 운동을 교차시켜 놓았을 때, 운동은 여성에게 있어서 몸매를 가꾸는 도구로 가장 먼저 인지될 것이라는 그 질문자의 우려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운동이라는 두 개의 조합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스포츠는 오랫동안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이미지를 안고는 성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여성들이 운동을 하는가/안하는가?”, “어떤 운동을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은 마치 그것이 개인의 선택인 양 이야기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은 사과냐/귤이냐의 선택의 문제일까? 만약 그것이 개인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라면,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재 유일하게 ‘여자’ 야구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안향미 선수가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야구협회의 조항 앞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여성들이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토로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들이 운동장에 나갔다가 “여자들이?”라며 내쫓김을 당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성들은 운동은 ‘너’에게 부적합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교육받는다. 어렸을 적, 여자아이들에게는 바비 인형을 선물하고 남자아이들은 축구공을 선물 받는 식이다. 여성학자 맥키논은,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다움’과 ‘운동선수다움’ 둘 중에 선택을 하라는 강요를 암암리에 받는다고 피력한다. 사회적으로 ‘여성다움/여성다운 몸’과 ‘운동/운동선수의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며, 또 이것이 학습화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은 공적 영역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교육받은 반면에 여성은 사적 영역을 담당케 함으로써 여성이 공적인 공간에서의 활동을 더욱 어렵게 해 왔다. 남성은 사회적으로 남성이 되기 위해 스포츠를 배우며, 이럴 경우 남성과 운동선수는 동의어이자 ‘진짜’ 남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이다.
남자들만의 경기가 ‘진짜’ 경기라는 편견을 버려!
지난 8월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남자팀 3:0 승리, 여자팀 0:2 패배. 각종 매스컴들은 남북의 형제가 1승씩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며 부산을 떨어댔다. 그런데 만약, 남자팀이 패배하고 여자팀이 승리했다면? 그래도 여전히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가졌다며 호들갑 떠는 기사들을 볼 수 있었을까? 통일 60주년을 기념한 남북통일축구대회. 화합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필승’ 전략이 요구되는, 어쩌면 아이러닉한 시추에이션에서 남1승, 여 1패라는 사이좋으면서 기분도 좋은 시나리오가 연출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감정의 이면에는 남자들의 경기가 ‘진짜’ 경기라는 속내가 이미 깔려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왜 남자들의 경기가 ‘진짜’ 경기로 간주되는 것일까?
가부장제는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삶을 조직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별 체계의 사회에서의 스포츠 활동은 남성과 여성을 이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관련되게 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사회가 갖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규범과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의 남성 전유화 현상은 또다시 스포츠를 통해 지배적 가치, 즉 남성 중심적인 규범과 사회관계를 지속시키는 매개물로 작동한다. 과 장을 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주변의 지원 등을 떠나 가장 먼저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동생’(혹은 오빠)인 것 같다. 여자운동 선수들, 특히 여자가 하기에는 ‘거칠다’ 혹은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종목의 선수들에게 운동의 시작 동기를 물어보면 “남동생을 데려다주러 갔다가 그 운동에 홀딱 반했다”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멋진 그녀도 처음에 남동생의 교습비를 도장에 대신 내러 갔다가 권투에 반하고 말았다!
여자? 운동? 누구, 박세리?
개인적으로 나는 스포츠에 엄청 열광한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난 스포츠가 너무 너무 좋아”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첫째는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아이이지, 결코 ‘잘’ 하는 아이는 아니라는, 지레 주눅 듦이었고 둘째는, 스포츠는 체육 시간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스포츠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포기 때문이었다.
이 사회에서는 운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여성만이 스포츠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여성들이나 LPGA에서 드라마 같은 우승을 한 박세리와 같은 선수들은 무기 없는 전쟁이라 칭해지는 운동경기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곳곳에 알리는 자랑스런 대한의 딸들 혹은 태극낭자들로서 의미가 부여된다.
또 다른 의미는 여자 운동선수들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다. 여자 농구선수나 테니스 선수의 유니폼에서 드러나듯 여자들의 경기는 ‘보여지기 위한 것’으로 취급되고, 여자선수들은 실력보다 외모로 평가하고 대상화된다. 여성의 몸은 문화적으로 젠더화된 몸의 기반 안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스포츠 활동으로 인한 여성의 몸의 확장은 부정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박세리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두 가지 이미지-‘대한의 딸’ 그리고 ‘박세리 다리’-에서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에게도 자기만의 글러브가 필요하다
미국의 한 여성 스포츠 학자는 여성과 스포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고 막내딸이 있다면, 당신은 과연 그 막내딸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줄 것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언니들은? 막내딸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줄 것인가? 많은 친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대부분, ‘막내딸이 관심을 보인다면 기꺼이 운동을 하라고 하겠지만 야구 글러브는 일단 오빠들의 것을 빌려 쓰라고 하겠다’라는 답을 했다. 하지만! 오빠의 야구 글러브를 빌려서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야구 글러브는 결코 여자아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놀고 싶은 때에 오빠가 이미 자기 글러브를 가지고 놀고 있다면? 우리는 포기라는 미덕을 배운 아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글러브를 가지고 노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내 이름이 새겨진 야구 글러브가 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 방식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짧은 물음은 운동에 대한 선호도나 능력이 성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학습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게다가, 우리는 이 질문에서 두 아들들이 이미 야구 글러브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까지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남자 아이들에게는 종류별로 다양한 공을 비롯하여 온갖 운동관련 용품을 선물하고, 리틀 야구단, 어린이 축구단에 가입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에게는?
여자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미니축구를 하도록 한 적이 있는데 몇 몇 여학생들은 “하지도 못하는데 왜 축구 같은걸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꼭 잘해야 축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잘하려면 많이 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 여학생들은 축구를 해야할 필요도 잘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고,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망설임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체육은 여자아이들이 못해도 크게 부끄럽거나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학생들이 체육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여자애들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래, 운동! 나는 스포츠 하는 GIRL
이 렇게 말하면 그럼 운동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쉬운 문제인가? 내가 좋다면 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학교 운동장이나 한강 고수부지는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남자애들이 와서 ‘진짜’ 농구를 하겠다고 운동장에서 내쫓았던 경우도 있다. 만약, 한 여성에게 운동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 여성은 운동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야 한다. 운동할 공간을 찾아야 하고, 그 공간을 함께 점유할 동지를 찾아야 한다. 심지어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의미를 끊임없이 설명해야하며 운동 하는 날에는 땀에 젖은 운동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등 짐을 배로 챙겨야 한다. 남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동네 농구장에서 잠깐 농구를 하는 것의 몇 배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아주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힘들다. 즉, 운동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어도 이렇게 운동을 하는 것 외에 에너지를 쓰다 보니 이미 소진해버리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 아무런 방해 없이 운동을 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운동장을 점령하고, 여성들끼리 재미있게 운동을 하는 게릴라성 프로젝트들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은데... 언니들, 오늘 밤 한게임?
월간 언니네(www.unninet.co.kr) 2005년 9월 특집 "달려라 하니-운동하는 여자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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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달리고 싶다-
Tracked from 2005/10/19 18:25 delete달군님의 [운동] 에 관련된 글. 편집 하러 사무실 나왔다가 컴퓨터에 사람들이 꽉 차서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요기조기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달군님의 운동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운동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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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운동하는 여자들
Tracked from 2005/10/20 01:47 delete언니네 9월호에 실렸다는 특집기사 중 한 컬럼이 훌륭히 분석해주듯, 아무 거리낌없이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나는 모든 것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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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아!!토나와!!
Tracked from 2005/10/20 10:55 delete달군님의 [운동] 에 관련된 글. 금방전에 막 구역질을 하고 오는 길이다... 어제 자기 전에 그에게 메세지를 보내 아침에 운동할때 깨워달라고 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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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팔에 알통. 정확히 석달 후부터는 상대방 어깨 짚고 벽차고 넘어 540도 회전하고 돌려차고 턴차고 날라찬 다음 빠른발 돌려차고 뒷고고 후려차기 연습에 들어갑시다. 그 뒤엔 수리검 던지기. 하산을 하시려면 에네르기파를 솨서 상대방이 10미터 이상 날라가면 바로 하산이요.
오늘 원기옥 만드는거 의외로 어려웠어요. 세상엔 강한사람이 너무 많아!(기쁜듯이)s(-_-)z
풋내기 슛은 연습하지 않았지만, 기공포 연습은 많이 했었죠. 집중력과 헌신이 담긴 기공포 /ㅁ/
운동에 열중하는 달군모습 멋지오.
운동하고 술 푸면 더 잘 퍼 진다오..ㅋㅋ
안하고 안하니까 못하고 못하니까 싫어하고.
할기회가 없으니까 점점 더 못하고. 더 싫어하고.
-> 정말 이게 정답~!!!
"같은반 남자아이들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축구하고 농구하고 날아다녔는데,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팔짱끼고 걸어다니거나 축구경기를 구경하기만 했었다."
그럼, 나 날아다니는 거 구경하고 있었던거야? ^^
애비/ 기공포에 헌신이 담겼어?? =_=;; 천진반이 쓰던 그거 맞지?
갈/ s(-ㅗ-)z 으쓱 (오늘은 술처먹고 운동못했어요...)
산오리/ 그런가봐요;;
개울/ 응 그렇지? 모든일이 그런거 같아.
태자/ 난 구경 안했다. 존심이있지.
진보넷 블로그 가입하려고 했는데 계속 잘못된 접근이라고 나와요. ㅠ_=
요즘 내가 스윙을 하면서 느끼는것도 그거. 하다 보니 왠지 잘해지는거 같아서 혼자서는 턴을 스물다섯번하고 오십번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 출 수도 있을꺼 같음..ㅎ
덧글들이랑 보다 보니 학교 다닐때 거하게 술 한잔 하면 꼭 기를 써서라도 운동장을 전력질주 하던 생각이 나네요. 그거 기분 정말 좋아요 특히 겨울에 : )
애비/ 에? 왜그러지?? 테스트 해볼께요.
캔디/ 오. 턴을 스물다섯번하고..ㅋㅋ 나는 아직 춤은 잘 모르겠어. 운동에서도 단순한건 할수 있는데 조금만 응용동작에 들어가면 버벅대거든. 내몸이 내몸같지 않아.
랑새/ ㅋㅋㅋ 그럼 쏠리지 않아요? 근데 특히 겨울에 뛰는게 기분좋다는건 뭔지 알거 같아요.
운동하는 달군은 어째 상상이 어렵지만 암튼 멋진걸!!!!! ㅋㅋ
훗, 그런가?? 지후도 몸좀 좋아지면 참무협에서 같이 수련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