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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30
    사랑니를 뽑아야만 하는 이들에게(8)
    말걸기
  2. 2006/08/30
    진경을 만나다(9)
    말걸기
  3. 2006/08/25
    정답은... 야스쿠니 신사...(2)
    말걸기
  4. 2006/08/19
    [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12)
    말걸기
  5. 2006/08/19
    이게 어떤 장면?(3)
    말걸기
  6. 2006/08/19
    낙하산(2)
    말걸기
  7. 2006/08/19
    여행 퍼레이드 끝(4)
    말걸기
  8. 2006/08/16
    위기라 하네(5)
    말걸기
  9. 2006/08/14
    이 여름의 더위(4)
    말걸기
  10. 2006/08/04
    또 나간다. 룰루루.(5)
    말걸기

사랑니를 뽑아야만 하는 이들에게

 

말걸기님의 [아듀! 사랑니 둘] 에 관련된 글.

 

 

'사랑하다'의 옛뜻은 '생각하다'였다. 그렇다면 '사랑니'는 아마도 '생각나게 하는 이'라는 뜻이겠지. 현대어라면 '사랑받고 싶은 이'라고 억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입안 구석에서 자꾸만 관심을 갖아달라고 칭얼대는 이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모두 4개의 이들이 바로 사랑니.

 

의학적 지식은 없으니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사랑니는 쉽게 썩는다. 혹은 사랑니 주변의 잇몸이 자주 아프다. 아무래도 다른 이들처럼 곧게 뻗어나지 않고 기울거나 아예 누워버리기 일쑤라서 그런가 보다. 말걸기의 사랑니 중 위에 난 2개는 아래로 곧게 뻗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아래의 2개는 90도로 발라당 누운 채 있었다. 이것들도 나름대로 자라는지 양쪽에서 아랫니들을 가운데로 서서히 밀어붙여, 아랫니들은 약간 울퉁불퉁 솟아 있다. 이 모양이 미워지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가 멀게 음식 찌꺼기가 끼고 냄새가 나고 피고름이 찔찔 나는 일이 반복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이런 괴로움을 몇 년 씩 견녀내도록 한 건 딱 두 가지. 게으름과 두려움. 사랑니가 자꾸 사랑하도록 만드는 이들이 있다면 말걸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게으름과 두려움 때문에 여전히 치과에 가기를 미루고 있는 것 같다. 게으름이야 어쩔 수 없고 두려움은 말걸기가 줄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포스트를 올린다. 통증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두려움도 그만큼 줄지 않겠는가.

 

 

사랑니가 자꾸 귀찮아지는 사람들은 우선 가까운 치과엘 가길 권한다. 진짜 그 치과에서 뽑겠다고 맘 먹으라는 건 아니다. 잘 하는 치과에 가서 뽑아야 하겠지만 일단 진단을 받는 게 좋다. X-ray 사진을 찍고 사랑니 주변 여기저기를 찔러 보면 사랑니가 어떤 상태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위아래 모두 곧고 예쁘게 나 있다면 기뻐하라. 그냥 뽑으면 그만이다. 잇몸을 잘라낼 필요 없이 뽑을 수 있으니 빼고 나서도 통증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편한 날 예약해서 걍 뽑으시라.

 

그런데, 말걸기처럼 아래 사랑니들이 철퍼덕 자빠져 있으면 고난의 이뽑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사랑니들이 꾸벅 절을 하고 있음에도 두려움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용감한 사람이다. 고통을 즐길 줄 아는 부류라고 봐야지. 어쨌든 철퍼덕 누워서 시위하는 사랑니라면 사랑니 잘 뽑는 치과엘 가기 바란다. 어느 치과가 좋냐구? 말걸기는 신촌 세브란스 치과병원에서 뽑았는데 만족스럽다. 신촌 세브란스 치과병원은 거의 공장 수준이라 사랑니 뽑으러 왔다면 다 알아서 안내해 준다. 또 어디? 여기 말고는 아는 데 없으니 알아서 수소문 해보시길. 개인병원 중에서는 철퍼덕 누운 사랑니 안 뽑아주는 데도 있으니 참고하라. 왜냐고? 큰 수술이라고 안해준다나...

 

사랑니를 뽑는 순간. 즉, 아랫니 맨 안쪽의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부수어 꺼내고 잇몸을 꼬매는 순간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국부 마취 주사 놓을 때가 약간 아픈데 그것도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하나도 겁낼 것 없다. 만약,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면? 아파야지 뭐. 근데 그런 사람이 많을까? 마취 상태를 의사가 체크하니 마취가 덜 된 것 같으면 얘기해 보라. 말걸기는 두번째 뽑을 때는 마취 두 번 했다.

 

결국 사랑니를 뽑을 때는 문제가 아니다. 통증은 마취가 풀려서부터 시작해서 3주까지 지속된다. 즉, 사랑니를 뽑은 후부터 구강과 상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고통은 확연히 달라진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통증을 확연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도록 하겠다. 물론, 병원에서 안내하는 관리법은 기본이다.

 

 

① 하루 일을 쉴 수 있다면 꼭 쉬길 바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기는 힘들겠지만 시도해 보라. 만약 하루 일을 쉬기 어렵다면 가장 오래 쉴 수 있는 시간대를 찾아라. 예를 들면 주말 하루 전 퇴근 직후라든가 등등. 하루 쉴 수 있다면 예약 시간은 최대한 오전 일찍으로 잡아서 길 게 쉴 수 있도록 한다.

 

② 사랑니 뽑는 수술을 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아이스팩. 둘째, 죽. 집에 아이스팩이 없다면 주위에서 미리 구해 8시간 이상 냉동실에 두도록 한다. 2개는 있어야 하고 여름이라면 3개도 좀 모자란 느낌이다. 구할 수 없다면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죽은 3끼 분량은 준비해 두도록 한다. 가족 중 누군가 꼬박 죽을 쑤어줄 수 있다면 행운이지만 자기가 밥을 차려 먹어야 한다면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다.

 

③ 사랑니 뽑는 날 아이스팩을 가지고 가서 사랑니 뽑은 직후부터 찜질을 하면 좋다.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싸서 사랑니를 뽑은 자리의 바깥쪽에 댄다. 마취가 풀리지 않아서 통증이 별로 없기는 할텐데 이때부터 열심히 찜질을 하는 게 좋다. 언제까지? 통증이 가실 때까지.

 

④ 사랑니를 뽑고 잇몸을 꼬맨 자리의 지혈을 위해 의사가 거즈를 물린다. 거즈를 물 때 천천히, 그리고 가장 편한 자세로 윗니와 아랫니들이 물리게 한다. 거즈를 계속 물고 있으면 턱이 긴장해서 힘들고 아프다. 그래서 가볍고 편하게 입을 다문 자세를 처음부터 찾는 게 좋다. 그리고 거즈는 2시간 정도는 물고 있어야 하고 입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말도 삼가고 물도 음식도 먹지 말고...

 

⑤ 병원의 안내대로 입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이건 2-3일 동안 무척 아픈 날들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1주일이 지나서도 계속되는 통증의 정도는 사실 처음부터 얼마나 깨끗한 구강을 유지하느냐에 달렸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식염수나 수돗물로 자주 입안을 씻으라고 한다. 주의할 것은 상처에 자극이 될 정도로 거칠게 가글을 한다거나 하면 안된다. 상처에 혀를 댄다거나 입을 크게 벌려 상처가 벌어지게 해서도 안 된다. 그냥 살짝 씻어낸다. 침을 퉤퉤 뱉어도 안된다. 그 순간 상처에 자극이 된다.

 

그리고 구강의 청결을 위하여 뭐든 먹고 나서, 그리고 자기 전에는 꼭 이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약이 상처에 자극을 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치약물이 상처에 닿는다고 따끔거리지도 않는다. 아마 오전 일찍 사랑니를 뽑고 2시간 이상 거즈를 물고 지혈을 했다면 점심 먹을 시간일 것이다. 거즈를 빼고 죽을 먹은 후 꼭 이를 닦아라. 칫솔이 상처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중요한 건 이만 닦지 말고 칫솔로 입안의 모든 곳(상처를 제외한)을 닦아야 한다. 아프고 퉁퉁 부은 입안 전체를 닦기에는 전동칫솔이 편한 점이 있다.

 

말걸기가 왼쪽 위아래를 뽑았을 때는 치약이 자극적일 것 같아서 하루 넘게 이는 닦지 않고 식염수로 입을 헹구기만 했는데 입냄새도 지독하고 통증도 오래갔으나, 오른쪽 위아래를 뽑은 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입안을 열심히 닦으니 입냄새도 없고 1주일이 지나서는 통증이 상당히 약해졌다.

 

⑥ 담배는 구강 청결 때문에, 술은 상처가 낫는 데 방해가 되서 그런지 담배, 술은 1주일 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니 뽑은 날부터 술과 담배로 사는 이들도 있다. 의사들이 그런단다. 사랑니 뽑는 정도의 일로 사람이 죽거나 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이 지나면 다 낫기 마련이다. 그래도 담배와 술은 분명히 고통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줄이고 싶다면 삼가는 게 좋다.

 

 

말걸기의 사랑니 뽑은 후 고통 줄이기 방법의 핵심은 두 가지. (1)냉찜질은 통증이 가실 때까지 자나 깨나 계속한다. (2)입안을 열나 열심히, 자주 닦아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두번째 뽑은 오른쪽이 붓기도 오래갈 정도로 심했지만 통증은 첫번째 뽑은 왼쪽보다 덜하다. 열흘째인 오늘을 비교해 보자면 확연히 그렇다.

 

 

아픔을 참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큰 아픔과 고통을 참고 있는 걸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참았는지 경쟁한다. 자기에게 닥친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관리하여 확연히 줄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하고픈, 혹은 해야 할 일을 더 잘 누리거나 해낼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픔과 고통은 관리하지 않으면서 봐달라고 한다. 심지어는 아픔과 고통을 관리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겁쟁이라고 힐난까지 한다. "야, 안 죽어!" "남자가 무슨. 마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다. 아무래도 바보들이다.

 

 

곧은 사랑니가 아니라 잇몸을 절개해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면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사랑니 주변이 건강하다면 뽑지 않다도 되지만 아프다면 뽑아야만 한다. 뽑은 후 고통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뽑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사랑니 옆 어금니까지 손봐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사랑니가 사랑해 달라고 보챈다면 바로 치과엘 가서 뽑으시길. 고통은 확연히 줄일 수 있으니 뽑고 나면 시원해서 생활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진경을 만나다

 

엄마되기님의 [아기와 모임] 에 관련된 글.

 

화요일 칙칙한 하늘이 심상치 않았지만, 말걸기는 고장난 컴퓨터를 들고 용산에 갔었다. 어찌어찌하다 인연이 닿은 분이 용산에 매장을 열고 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단골로 거래해 볼까 싶어서. 용산 전자상가까지 행차한 김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진경네 집에 미루네가 왔단다. 미루맘과는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루팜과는 한 때 한솥밥 먹었으니 또한 반가운 이였다.

 

 

진경이 사과를 좋아한다니 사과를 한봉다리 사 갔다. 말걸기는 누구네 방문을 할 때 빈손으로 가기가 머슥하다면 대체로 먹을 걸 사 간다. 그리고 말걸기가 먹고 싶은 걸 사간다. 그런데 오늘은 복숭아가 아닌 사과를 사 갔다. 진경한테 아부 좀 해보려고. 그러나...

 

진경이 뱃속에 있을 때 진경맘은 임신빈혈이었다.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 수 없으나 외출도 자주 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때 행인과 바람을 부추겨서 쇠고기 먹인다고 꾀나 훌륭한 중국요리집에 모시고 가 맛난 음식 많이 사줬던 일이 있었다. 그 단백질과 철분과 기타등등 영양소를 받아 먹었을 진경이... 말걸기를 보자마자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나올 때까지 얼굴 디밀면 도망가듯했다. 말걸기의 빨간 배낭하고만 놀고... 치.(이 얘기를 파란꼬리한테 했더니 여자아이가 아니라서 그런단다... 음... 좀 위로가 된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 낯설지도 않다. 오래전에 핏덩어리 조카가 말걸기와 몇 개월 함께 살았으니까. 그때야 일이 바쁘다고 가끔씩만 조카를 봤지만 사실 별로 했던 건 없고...

 

낯설지 않다는 건 어린 아이가 있을 땐 아이가 주목받기 마련이고 아이 중심으로 모든 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미루가 집을 나와 쉽게 잠들지 못해 엄마 아빠는 분주했다. 진경은 여기 저기 장난거리와 놀고 있었지만 엄마와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걸기가 할 일은, 방문한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아니다. 진경 땜에 사과를 깎다만 진경맘 대신 사과를 깎아야 하고 엄마들 아빠를 위한 케잌을 날라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게 아기네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진경맘네까지는 멀지 않다. 그래도 진경맘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망설였다. 진경이를 깨우는 건 아닌지, 말걸기가 방문한다면 또 다른 일을 생기는 건데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진경맘을 더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그러다 미루네가 와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방문했다.

 

직장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의 방문을 바라는 것 같다. 설마 매일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생활의 엑센트가 될 만큼은. 진경맘 뿐만 아니라 아기, 혹은 아기들과 집에서 지내는 엄마들의 초청을 여러번 받아봤다. 그런 초청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대체로 그런 초청은 결과적으로 거절하게 되었다. 말걸기가 게으른 게 젤루 큰 이유지만 계속 뒤로 미루도록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아기를 돌보아야 할 아기의 엄마에게 폐를 끼칠까봐. 또 하나는 아기를 돌보는 가운데 대화란 쉬운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 방문을 하게 되면 좋다. 왜냐면 진경맘 말대로 끊기고 집중하기 어려운 대화의 연속이기는 해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오늘에야 진경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아가라는 걸 확인했다. 아마도 앞으로는 진경맘과 다섯병의 블로그가 더 생생해질 것이다. 덩달아 운이 좋게도 미루까지 확인했다.

 

 

진경맘의 블로그의 글들은 무척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그런데 문득 진실 그 자체는 아닌 듯 느껴졌다. 짧은 방문은 다섯병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진경의 모습, 진경과 맘의 관계가 더 진실에 가깝게 느끼게 했다. 진경맘과 다섯병의 진실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하루종일 함께 지내는 진경맘의 경험과 하루 중 일부만을 함께 지내는 다섯병의 경험이 달라 블로그의 글들도 달라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 각자의 진실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지.

 

 

말걸기를 경계하는 진경을 보고 말걸기는, "애들은 말걸기를 싫어해." 이 말 듣고 미루맘은 "용기를 내쇼." 격려에 감사.

 

미루팜이 들려준 코미디같은 얘기. "내가 육아휴직 쓰겠다고 했더니 인천연합 출신 상근자가 재고해보라면서 했다는 말이 글쎄, '진보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변혁의 길이 있잖아'라고 하더라."

 

 

진경아, 말걸기를 담에 볼 때는 "고기 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거라.

 

 

정답은... 야스쿠니 신사...

 

말걸기[[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 에 관련된 글.

 

 

■ 발표

 

○ 정답 : 야스쿠니 신사.

○ 당첨자 : 없음.
※ re님은 정답을 맞추셨으나 응모기간을 넘기셨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퀴즈를 잘 내는 것도 재주인가 봅니다. 메이지신궁이나 센소지는 정말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동경을 가보았거나 관심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모를 곳이지요. 말걸기도 동경 가서 지도 보고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8월 초중순 한국과 일본 뉴스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야스쿠니 신사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곳이니 퀴즈로 내 보았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형편이 없었던지... 죄송 --;


 

위 사진은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문처럼 서 있는 걸 '도리(새)'라고 한대요. 야스쿠니에는 세 개의 도리가 있더군요. 들어가는 길은 엄숙함이나 웅장함, 뭐 그런 느낌은 없고 큰 나무들이 즐비한 공원 같은 느낌입니다. 첫 도리에서 참배하는 곳까지는 길도 넓고 길어서 좀 지루한 느낌도 있지요. 뜨거운 여름날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구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왠지 친숙한 곳을 방문하는 것 같더군요. TV에서 보던 야스쿠니는 왠지 깊은 종교적 색채와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참배하는 곳까지는 결코 아니더군요.

 

 

위 사진은 일반 방문객이 참배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저 앞에서 기원을 하더군요. 이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요, 안으로도 참배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정치인들이나 별도로 헌납을 한 사람들만 들어가서 참배를 한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경비가 못찍게 하더군요. TV에서 고이즈미와 함께 등장하는 음습한 분위기의 야스쿠니가 바로 저 너머인 듯합니다. 저 앞에서 안을 들여다 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답니다.

 

신사 건물 오른편에 작지만 왠지 익숙한 게 보이시지요? 퀴즈의 소재였답니다. 일본 사람들이야 그들의 신앙심을 드러내는 곳이 신사이니,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비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아마도 방문객이었던 한국사람이 야스쿠니에서 소원을 비는 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더군요.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야스쿠니까지 가서 전쟁박물관을 관람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금방 나왔어야 했지요. 전쟁박물관이 압권일 듯한데...

 

 

 

황당했던 마음에 퀴즈를 냈는데, 그 퀴즈마저 황당했던 듯... ^^;

 

 

[상품 퀴즈] 여기는 어디?

 

re님의 요청(?)에 따라 상품 걸린 퀴즈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 [문제] 아래 사진은 어디에서 찍었을까요?

 

 

왼쪽 아래를 보면, "ㅇㅇ, ㅇㅇ, ㅇㅇ 모두 가족이 평안하길 빕니다. 2006 8 2. Fighting" 이라고 적혀 있군요.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요?

 

 

○ 응모방법

정답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 포스트의 덧글로 달기

- 트랙백 인정 안함

 

○ 응모기간 : 2006년 8월 22일(화) 자정까지

 

○ 당첨

- 당첨자 수 : 3인

- 정답을 제시한 자가 여럿일 경우,  말걸기가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에 멋진 덧글을 단 자를 선택함.

 

○ 상품 : 이 블로그에 공개된, 공개될 말걸기의 사진 중 1매 인화권.

- 사진은 당첨자 선택.(단, 인물사진인 경우 당사자의 허락이 있어야 함.)

- 8×10 이하 사이즈에서 당첨자가 선택.

- 인화권 유효기간 : 말걸기가 귀찮아지지 않을 때까지.(언제인지 확실히 모름. 기간이 평생일 수도 있음.)

- 말걸기가 인화하도록 함.

 

※ 응모 불가 대상자

- 파란꼬리, 행인.

- 이미 정답을 알고 있거나 너무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제외.

 

 

이게 어떤 장면?

 

아래 사진은 어떤 장면일까요?

 

 

정답은 '월출'입니다.

달이 산 뒤에서 뜨고 있는 광경이랍니다.

심심풀이 썰렁 퀴즈였습니다.

 

 

 

새까맣게 보이는 산은 '표범산'이랍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280km 정도 떨어진 'Bayan Gobi'라는 캠프 옆에 있는 산이지요. 바얀 고비 캠프는 몽골제국의 한 때 수도였던 '하라호린'이라는 도시에 가기 위해 머물렀던 캠프입니다. 하라호린은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을 35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지금 몽골 땅의 정중앙에 있지요.

 

표범산 근처에서, 초원과 사막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고비를 체험했지요. 이런저런 풍경은 나중에.

 

 

낙하산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고 절벽을 내려간다거나 하기 위해서 땅을 걷고 절벽을 긴다. 그러다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속도를 대폭 줄인 낙하산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참 대단해. 이런 것도 발명하고.

 

 

요즘은 즐기기 위해 낙하산을 타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재미난 발명품은 역사상 이런저런 '작전'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을 터이다. 땅에서 걷거나 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어서 '작전'이 위력을 발휘할 터이다. 그리고 낙하산은 항상 '작전'을 짠 배후의 명령에 의해 내려온다. '작전'에는 임무가 있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낙하산을 탄다.

 

그러니까 낙하산은, (놀이가 아니라면) ①보통의 수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한 방편이고, ②창공에서 그것을 뿌리는 배후의 목적을 위해 내려온다.

 

 

일반적인, 혹은 정상적인 방편이 아닌 방편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했을 때, '낙하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낙하산은 배후, 즉 '빽'이 있다. 배후의 목적은 주로 돈, 세습, 편의, 자기 목적 달성 따위다. 험한 산 앞에서 정상적인 방편으로 기어서라도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몹시 기분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세상이 다 그런거니까...

 

 

민주노동당의 정책부장이었던 우수사랑은 연초에 민주노동당에서 해고되었다. 해고의 진짜 이유, 그러니까 인사권자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드러난 이유는 이렇다. 우수사랑은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당 정책위원회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무총국에 가서 예전의 보직(총무실)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동복지(보육을 포함한) 분야는 여성위원회 등 사무총국 산하 기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어쨌든 사무총국으로 가라고 했다. 우수사랑 자신도 그러했고 소속된 제3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그러했고, 정책위 구성원들이 아동복지를 담당할 적임자인 우수사랑을 다른 부서로 옮기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아동복지 영역을 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그럼에도 인사권자들은 이 의견을 무시했고 우수사랑은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아 내쫓겼다.

 

이 일은 지방선거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지방선거가 끝나자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사람이 정책위원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방선거 후 우수사랑은 다시 당 정책위에서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연락을 받았단다. 인사, 참 재밌게 한다. 우수사랑은 이미 인생의 계획이 있는데 왜 돌아가겠나. "안 가!"

 

결국, 8월 16일 인사발령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는 새로운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이 왔다. 이 새 아동복지 담당자는 지난 3월 10일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일하고 있던 사람이다. 조직담당자가 정책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라면 좀 웃긴다.

 

 

현 지도부의 계획 중 하나가 조직실을 조직1실과 조직2실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조직1실은 현재 조직실 업무라 보면 무난하고 조직2실은 현재 부문위원회(여성, 노동, 농민, 학생 등)를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오래 전부터 당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거라 이런 분화 자체가 현 지도부만의 '색깔'은 아니다. 어쨌든, 조직2실 설치를 전제하고 P씨를 3월 10일에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냈다. P씨는 조직실이 분화하면 조직2실에서 여성부문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조직실 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선거 출마를 하게 된 여성위원회 J국장은 중앙당직을 사직할 의사를 밝혔었다. 그래서 여성위원회 입장에서는 더더욱 P씨를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J국장은 사직 의사를 철회했다. 조직2실은 설치되지 않았고 여성위원회 상근자 티오도 줄지 않았다. P씨는 한 순간에 조직실에서도 여성위원회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지도부의 관련자들이 모여서 결정을 내린 게 바로 P씨를 아동복지(보육을 포함)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것이었다. 정책연구원은 해당 분야의 전공과 활동 경력을 주요하게 판단하여 뽑은 사람들이다. 2004년 처음 뽑을 때에도 그러했고 중간중간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뽑을 때에도 그러했다. 처음 뽑았을 때 청탁으로 뽑힌 사람이 둘이 있긴 한데 이들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이력(둘 중 하나는 알고 보니 형편 없었지만)은 갖고 있었다.

 

P씨는 당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싶었을 터이고 당 지도부도 그렇게 하라고 여성부문 업무를 담당할 조직2실에 가기 전에 조직실로 발령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냈다?

 

예전에 우수사랑더러 정책위원회에서 나가라고 할 때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나가라고 했었다. 정책연구원만 정책위원회에 있어야 한다면 우수사랑을 정책연구원 시켜주든가. 이미 정책연구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처사였다. 일반 상근자와 정책연구원을 애써 구분한 지도부가, 일반 상근자인 P씨를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건 일관된 태도일까?

 

일반상근자 딱지가 평생 갈 이유도 없으니 정책 분야 능력이 있으면 정책연구원, 아니 그 이상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이번 발령은 P씨의 아동복지 분야 정책 활동 경험을 심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개별 분야 정책연구원을 뽑을 때 이런 식으로 뽑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책연구원이 대단한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당 조직이 커지고 쪽수가 많아지면 업무도 분화하기 마련이고 그 업무를 수행할만한 이력과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게 제대로 된 절차라는 것이다. 인터넷실에 프로그래머가 필요한데 프로그래밍 능력은 안보고 "너 컴퓨터 잘 하니까 인터넷실로 가서 일해!"라고 하면 그게 멀쩡한 인사냐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여성운동을 해왔고 그러고자 하는 사람한테 아동복지(사실 상 보육) 분야 정책을 맡겼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를 다루어 왔다면 아동복지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판단한 지도부의 생각이 걱정스럽다.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다니.

 

 

8월 16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 '낙하산'이 떨어졌다. '낙하산'에 매달린 당사자도 불쌍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는 다른 절차로 들어왔고 그 때문에 대등하지 못한 입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그리고, '낙하산'을 떨어뜨렸으면 '작전'이 있어야 하는데 '낙하산'을 집어던지 자들의 '작전'은 과연 무엇일까? 아동복지(보육) 정책 강화? 아님, 여성위원회를 책임지는 박최고의 정책위 내 인맥 심기?

 

 

여행 퍼레이드 끝

 

에~ 김이 샜다.

 

시베리아, 몽골, 태국, 일본에 이어 중국에 가려고 했었다.

실크로드와 천산산맥을 보러 중국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꽝났다.

말걸기의 4개국 순방에 배 아파하던 인간들의 통증이 완화될 듯하다.

 

어쨌든, 이러다보니 갑자기 9월 일정이 붕~ 떠버렸다.

추석연휴 전까지 무얼해야 할 지 막막해졌다.

 

 

일단,

① 청소 및 집안 구석 정리

②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 만나기

③ 예전에 배우고 싶었던 것 배우기

④ 대가리 굳지 않게 책을 읽거나 공부하기

⑤ 집에서 뒹굴기

 

이 정도의 일거리 후보가 있다.

물론, 가장 강력한 후보는 ⑤번이다.

 

 

위기라 하네

 

행인님의 [언젠 위기가 아니었나?] 에 관련된 글.

새벽길님의 [민주노동당의 위기?] 에 관련된 글.

 

 

민주노동당이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언론까지 탄다. 이렇게라도 언론을 타야 민주노동당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겨레21>이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말걸기는 잼나게 봤다. 구구절절 나름의 진실을 담은 기사들이었다. 이걸 두고 행인과 새벽길은 불만 혹은 비평을 토로했다. 왜들 이러시나, 기자란 그렇게 먹고 사는 족속인 걸 알고 있지 않았나. 대한민국 어느 언론도 문제를 보여줄망정 결코 그 해법의 고민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나들. 릴렉스! 릴렉스!

 

*

 

행인은, "우리 안에 위기는 언제나 존재했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다. 그 위기를 돌파해나갈 용기도 방향도 없다"고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제대로 지적했다. 말걸기는 "조직의 능력은 위기를 피해가는 데에 있지 않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행인과 새벽길의 글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공감도 있다. 두 글이 <한겨레21> 기사의 뒤집기 버전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새벽길은,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되려면, 이를 지지한다는 사람들, 그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당에서는 참여의 통로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교육과 토의를 일상화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는데 그 방식에 대한 고민은 위 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진보진영의 운동권들과 민주노동당의 활동당원은 운동의 위기를 얘기하면서 수없이 이런 류의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몽땅 대안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안을 도출할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참여의 확대, 인식의 전환, 교육, 토론, 실천 등등. 모든 평가서와 사업계획에 들어 있는 단어들이다. 돌파구를 찾을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돌파구를 찾으면 절대 안되거나.

 

*

 

새벽길은, "운동의 암적 존재들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을 때가 되었다. 사안별로 연대할 수 있을지언정 당을 함께하는 것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했고, 행인은 "한겨레21은 죽었다 깨나도 민주노동당 부진의 원인이 바로 오늘날 지도부를 뽑아준 특정정파의 몰지각에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총선 직후 민주노동당을 좌지우지했던 NL-국민파 동맹의 기막힌 행태가 제대로 평가받지 않으면 안되고, 그들은 이제껏 저지른 만행만으로 진보진영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옳다. 그런데, 정치영역에서는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설정하고 그 기준으로 특정 정치집단을 단죄할 수가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무능한 정파가 가장 거대한 정파라는 아이러니에서 알 수 있는 건, 머릿 속에 박힌 '진보라면 이래야 정상 아니야?'는 현실과 괴리된 관념 덩어리로서 현실의 정치룰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말걸기는 NL-국민파 동맹의 그 추악한 행태를 까발리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하는 일이 무용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꼭 NL-국민파 동맹이라는 특정 정치집단을 겨냥하지 않는 방식으로 민주노동당 위기의 책임을 따지는 것도 무용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이 모든 비판과 비난이 완벽하게 현재의 정파구도로 빨려들어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비판과 비난이 약발이 생긴다.

 

현재의 정파구도의 힘은 무지막지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대책이 잘 서질 않는다. 사실 정답은 '무법자들'을 퇴출시킬 '의적단'을 창설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진보정치의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진보정치 주체 형성을 열망하는 자들은 이미 기존의 정파구도에 편입되어 있는 골때리는 상황이다. 어떠한 '상식적' '진보적' '합리적' 움직임도 이미 정파의 한편에서 타정파를 공격하는 논리나 실천이 되어버린다. 이게 현재 정파구도 순환의 힘이다. 놀랍다. 이런 정파구도를 만들어 낸 운동권들. 위대하다!(매직이야, 매직.)

 

또 한가지 측면에서는 '무법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만 '의적'을 규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면 '무법자들'을 응징한 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진보진영 내 모든 정파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NL-국민파 동맹에 대항한 거대 동맹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민주노동당 최고위 선거 때부터 서울시장 후보 선거까지 <전진>과 <혁신>의 유치 뽕짝 한심 퍼레이드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고 본다. 당권 경쟁에서 자기 파벌이 승리해야 하고,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 중 최대한 많은 파이을 자기네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정파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패턴이긴 하다.)

 

이 두 가지(①모든 행동은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 ②이 조직에서는 우리 정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가, 그 순환의 폐해가 오래도록 지적되어 왔지만 어느 누구도 정파구도에 손대지 못한 배경라고 본다. 말걸기는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인식과 밀접하다고 본다. 그게 뭐냐면, "진보진영의 승자가 이 사회의 승자가 될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건 주체사상이건 소위 '혁명이론'에서 이 나라 운동권들이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오직 위대한 사상으로 무장한 주체(노동계급이라 하든, 민중이라 하든, 혹은 선진 혁명가라고 하든)만이 혁명을 완수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떤 '혁명이론' 책에는 한 줄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결론을 내려버린다. "위대한 사상으로 무장한 주체가 나(우리)네!" 책에 인쇄된 '노동계급이든 민중이든 대상으로 삼지 말지어다' 따위의 진리는 논쟁이나 후배 가르칠 때만 튀어나오는 말일 뿐이다. 머리와 진심이 분열되어 있는 오만함은 운동권들의 공통점이다.

 

재미난 건, 현실 진단과 문제의 발견, 앞으로의 사회상에 대한 견해에 앞서 진보(평등, 해방, 통일, 혁명, 뭐든)를 위해 뭔가 한다는 의식이 우선한다는 점이다. 이 의식을 공유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바로 운동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운동권의 이런 공유의식은 '선민의식'이라고 비판받아왔다. 그래서 김정진이 말하는 '독수리 5형제 의식'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이런 태도는 진보진영 밖의 사회집단이나 룰(법 따위)에 대한 지나친 폄하를 낳으며 진보진영 내 경쟁에서의 승리가 진보의 최대 목표가 되도록 한다. 민주노동당의 급여 세탁이나 대표 부정 선거와 같은 범법이 쉽게 벌어진다는 점이 그렇고, 사업계획의 대부분이 진보진영 내 어떤 조직이나 단체와 어떤 일을 벌일까로 채워진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궁극은 각 정파들의 손익계산이다. 그냥 한 마디로 우물 안에서 논다는 것이다.

 

결국 NL-국민파 동맹은 위협받을 수가 없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태도를 제외하면 한국 사회의 주류이데올로기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NL-국민파 동맹의 노선에 동조하는 운동권은 언제나 다수일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이라는 펜스 쳐 놓고 그 안에서 싸우면 힘 센 놈이 계속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오픈 프라이머리나 진보정치 인물론 따위가 진보의 이념에 부합하느냐를 미리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말걸기는 김윤철이 '교과서 좌파에서 벗어나라'는 말에 동의하는데, 그가 글에 써 놓은 이런저런 거 하자는 게 아니라(해도 좋고. 어쩜 이미 하고 있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념과 정책을 뽑아내서 새로운 '눈높이 교과서' 써야"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 태도는 오픈 프라이머리나 진보정치 인물론을 진보의 이념에 부합하느냐를 미리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이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혹은 필요한 조치이냐를 판단하게 한다. 당이 정해 놓은 진보의 잣대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정해 놓지 않고,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개인과 집단들과의 접촉으로 진보를 표방한 정당에게 요구되고 있는 조치를 도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

 

말걸기의 정리되지 않은 긴 주저림의 요지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운동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희망이란 없다. 스스로 정치조직이라고 한다면 훨씬 넓은 밖을 보고 정치를 하라는 거다.

 

 

이 여름의 더위

 

이번 여름은 무섭도록 긴 장마와 짜증스럽고 질긴 한국의 무더위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 날씨도 제각각인 동네를 돌아다녔으니 더위도 나름의 더위를 맛보았다. 집에 들어 앉아 맞은 더위가 아니어서 그런지 더운 것도 맛이다.

 

 

6월 말에 도착한 하바로프스크는 한국에서라면 이 계절 한낮에는 내려갈 수 없는 영상 12도였다. 밤에는 9도까지 내려갔다. 오후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오락가락하는 가랑비와 함께 돌아다닌 하바로프스크에서는 쌀쌀함, 혹은 약간의 추위를 느꼈다. 시원한 초여름이다.

 

그렇다고 동토의 땅이라 알려진 시베리아가 춥거나 서늘한 땅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더운 곳이다.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더위를 마주하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기 전 하바로프스크는 28도까지 올랐단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는 더위를 피할 수 없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하루 종일 달궈진 열차는 밤새 열이 가시지 않았다. 열대야의 더위는 이미 6월 말, 7월 초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맛보았다. 한 개의 차량에 4인실이 9개가 있는 '쿠페'라는 등급의 열차를 탔었다. 방마다 창이 있었지만 창문을 내릴 수가 없었다. 독특한 생김새의 열쇠같은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차장만이 갖고 있었다. 말이라도 통한다면 얘기라도 해보겠으나 러시아에서 영어란 별 소용이 없다. 한국어는 더더욱.

 

시베리아의 햇살은 따갑다.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시간이 길다. 그리고 시베리아는 건조한 동네가 아니다. 강도 많고 짙푸른 녹음이 만연하다. 습한 기운과 따가운 햇살은 음료수와 맥주를 유혹하기 충분하다. 시베리아의 아저씨들은 낮부터 1.5리터 이상의 맥주 PET병을 끼고 산다. 그게 아무리 따뜻한 맥주라도.

 

 

바이칼 주변 도시인 이르쿠츠크는 7월초에 34도까지 올라가는 더위를 기록했다. 이렇게까지 더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해가 거듭할수록 날이 더워진단다. 지구온난화가 이런건가? 이르쿠츠크 시내에서는 사뭇 떨어져 있는 앙가라강변 통나무집 호텔에서 몇 일 머물렀는데, 이 통나무집들의 창문들은 창틀에 제대로 물리지 않았다. 더위때문이란다. 이 통나무집들은 오래전 소비에트 시절 국가가 모든 인민에게 나누어주었던 여름 휴가 별장이었다. '다차'라고 한단다.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이 별장들은 이용하던 각 개인의 소유가 되었다. 개인이 소유한다는 건 개인이 팔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부의 다차는 숙박업자에게 팔렸단다. 말걸기가 방문한 곳은 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작년에 이르쿠츠크의 모기업으로부터 인수한 것이란다. 어쨌든 오래된 통나무집들이, 올여름 더위 때문에 자기몸 구석구석을 늘이고 있다.

 

햇볕이 쨍한 이르쿠츠크 시내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다. 이런 날은 바람도 잘 불지 않는다. 한겨울에는 코를 베어간다는 이르쿠츠크가 한여름에는 사람을 증발하게 만든다. 시베리아를 여름에 방문한다면 꼭 맥주값은 챙기고 가시라. 오후 늦게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는 일은 방문객으로서는 꼭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알콜은 오히려 더위를 부추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한가운데 초승달 모양으로 난 깊은 웅덩이, 바이칼 호수는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숲에 가려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수가 주변에 있다는 건 몸으로 안다. 갑자기 찬 기운이 돌면 호숫가다. 강한 햇살에 끈적이는 몸이라도 호숫가에 있으면 문득 추위마저 느낀다. 바이칼 호수의 물은 한여름에도 평균온도가 4도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경험 상 그럴듯하다.

 

해가 지기 직전에 바이칼 호수로부터 안개가 밀려온다. 무척 차가운 물방울인 이 안개가 호숫가와 알혼섬의 후자르마을을 뒤덮는 장면은 장관이다. 바이칼 호수에 떠 있는 알혼섬은 밤에는 춥다. 하루 종일 맑은 날이었어도 그렇다. 이틀밤 중 둘째날은 벽난로에 불을 때고 잤다. 재밌는 건, 벽난로의 불이 꺼져버린 이른 아침의 추위는 결코 방안에서 이겨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른 아침이 춥다면 밖으로 나와서 햇살을 쬐야 한다. 공기는 방안보다 차지만 햇살이 몸을 녹여준다. 잠에 취해 이게 싫다면 벽난로에 찰싹 붙어서 남아있는 온기를 빨아들이는 수밖에.

 

그렇다고 바이칼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게 덥지 않은 일은 아니다. 바이칼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새파랗다. 자외선, 적외선 만땅의 따가운 햇살은 부드러운 하얀 피부를 거친 붉은 가죽으로 바꾸고 머리까지 열이 오르게 한다. 호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안개 속이라면 추위를 느끼겠지만 바람과 안개 속이 아니라면 덥다. 지치도록 덥다.

 

 

바이칼의 햇살 속의 추위와는 다르게 몽골의 초원은 그림자 속 바람의 추위를 선사한다. 몽골의 초원은 여름이 우기라고는 하지만 연 강수량이 300mm 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땅이다. 올 여름에는 비도 많이 오고 구름도 많아서 사람들이 좋아한단다. 기상이 변하는 건 시베리아 뿐만이 아니라 몽골도 그러하다.

 

건조한 곳은 무더위가 없다. 햇살을 피한다면 열을 식힐 수 있다. 한국의 더위보다 좋은 건 이것이다. 초원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열 식힐 나무그늘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올 여름은 구름이 많아 수시로 그늘이 생겼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그 순간에 바람이 분다면 싸늘함을 느낀다. 만약 뒤산 능선에 올라 계곡으로부터 불어 올라오는 바람과 마주친다면, 그리고 햇볕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방풍자켓이 없다면 추위에 벌벌 떨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순간에도 따가운 자외선은 여전하다.

 

초원에서는 햇살 아래 오래 버티기 힘들다. 한낮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루 종일 풀을 뜯는 양들도 한낮에는 그늘을 찾는다. 한 떼의 양들이 외딴 집이 만들어 은 작은 그늘로 다닥다닥 모여 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몽골의 초원이 바이칼과 비슷하다면 밤에는 불을 때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몽골 초원의 게르 안에서 불을 때면 순식간에 더워진다. 그 온기가 새벽에는 다 사그라들어서 바이칼에서처럼 이른 아침에는 햇살로 몸을 녹이는 게 추위를 떨치기에 좋다. 한여름에 건조한 건 한국인에게는 낯선 일이기는 하나 사막이 아니라면 입술 찢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니 약간 건조한 게 더위를 이기기에는 좋긴 한 듯하다.

 

 

태국과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무더운 곳이다. 7월 중순 태국에서는 운이 좋게도 구름이 많이 껴서 강렬한 남쪽 나라의 햇살을 피했다. 가이드는 진정한 태국의 여름을 맛보지 못했다고 서운한(?) 듯했으나 결코 맛보고 싶지 않은 더위다. 태국의 더위는, 뭐랄까, 텁텁하고 뜨거운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다고나 할까. 한낮에는 걷는 것 자체가 싫다. 태국은 너무 더워서 집에 부엌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음식을 사먹는단다. 부엌이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는 하는데 특히 여름이라면 불 댄 음식을 정말 만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태국에서 길거리를 지나면서 딱 8대의 자전거를 보았다. 태국 여행을 시작할 때 가이드가 3박 4일 동안 자전거 몇 대 못 볼 거라고 해서 세어 봤는데 3대는 세워져 있던 것이고 5명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걸 보았다. 이와 달리 오토바이나 스쿠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게 다 더워서 그렇단다.

 

 

일본은 땅이 워낙 남북으로 길어서 동네마다 날씨가 제각각이기는 할 것이다. 8월 초순 서울과 동경의 여름은 비슷하다. 동경과 그 주변은 서울보다 조금 더운 정도인 듯. 무더위도 비슷하다. 다만 서울보다 공기는 깨끗해서 텁텁함은 훨씬 덜하다. 대신 햇살은 더 따갑다. 공기가 깨끗하면 그늘은 더 시원하기 마련이니 숲 속과 나무 아래에서 쉬어가며 구경다니는 건 할 만하다. 그러나 빌딩 숲에서는 그늘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메탈릭한 분위기의 동경 어느 동네에서는 오직 더위를 피하기 위해 쇼핑센터만 전전했다. 그게 살 길이다 싶어서.

 

동경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양산을 쓰고 타는 사람들도 많다. 한낮에는 그늘에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목적지에는 에어컨이 있을 터이니 저렇게 달리겠지 싶다. 동경은 결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낼 수 없는 도시인 듯하다. 서울처럼.

 

 

6월 말부터 들락날락, 한 달 넘는 시간을 한국이 아닌 곳에서 보냈다. 집에 들어 앉아, 혹은 서울바닥 돌아댕기며 맞는 더위가 가장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맞닥드리기 싫은 더위인 것 같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보다. 이제는 이놈의 서울 더위도 올 봄에 챙겨 놓은 에어컨 없이는 못 보낼 듯하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에어컨 없이 헥헥거리며 여름을 보냈는데...

 

 

또 나간다. 룰루루.

 

말걸기 평생 이런 시절이 다시 올까.

3개국 순방 후 잠시 쉬고 있는 말걸기,

또 나간다. 룰루루.

 

파란꼬리와 친한 선생님. 알고보면 말걸기의 학과 선배님의 초대로 일본 간다.

동경과 그 근처에서만 1주일 놀다 올거다.

 

슬슬 편하게 돌아댕기면서 사진 좀 찍어 와야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밀린 숙제가 생기는 것 같아 부담되기도 하나,

좋은 풍경을 한 컷이라도 담아 와야지.

 

흐흐흐. 부럽징?

 

 

PS. 오늘 저녁 8시 15분 뱅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