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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껌뻑

9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4
    재단.
    껌뻑
  2. 2006/02/23
    내빛나는청춘.
    껌뻑
  3. 2006/02/06
    걷기.
    껌뻑
  4. 2006/01/29
    레오노르 피니.(3)
    껌뻑
  5. 2006/01/28
    나이.
    껌뻑
  6. 2006/01/22
    '성매매운동'논쟁을 보며 걱정만 태산.
    껌뻑
  7. 2006/01/21
    5년전에는 어땠을까.
    껌뻑
  8. 2006/01/21
    다음생에나.
    껌뻑
  9. 2006/01/20
    일종의 협박인가?(5)
    껌뻑
  10. 2006/01/19
    무식한게 죄냐.
    껌뻑

재단.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전자족쇄니, 화학적 거세니

그런 논의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피해를 입은 여성이 가해자를 지목하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히 가해자의 남자 동료들은

가해자가 "내가 성폭력 가해자인게 맞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방을 일삼곤 했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구설수에 올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으로 제2,3의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을 스토킹하고

어쩔 땐 협박과 무력을 통해 피해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과 별 관련이 없거나,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한 후에 그들의 태도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도 속았다"부터 시작해서

"그런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저런 놈들은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패야 한다"는 등의 말을 앞다투어 쏟아내다

종국에 가서는 "그래도 모든 남자들이 저런 놈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

아니, 그 동안 자신이 피해자와 피해자의 지지자들에게 저질렀던 모든 폭력들을

무화시키려는 듯,

가해자들을 린치 했다.

 

피해자는 동의한 적도 없는, 가해자 집단린치의 자리에 피해자를 세워 면죄부를 얻고,

가해자 한 명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그 사람들의 눈에 어렸던

무서운 광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말 기가 찼던 건

몇 십분의 린치 이후,

그들은 그 짐승같은 놈이라고 지칭했던 가해자를 피해자와 같은 자리에 앉혀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제 모두 용서해라"라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성폭력의 문화를 구성하고, 그것을 적극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인해왔으며

제2,3의 가해를 저질렀던 그들은

항상 결백하다.

 

그들이 처벌하고, 그들이 용서한다.

여전히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문화에 동조했고

그것을 복돋으며, 여성비하적인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말이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공식적인 해결을

욕설로, 협박으로, 비난과 가쉽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가로막았던 그들은

성폭력의 또다른 가해자들이었다.

 

 

성폭력과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해

그들은, 하나의 제물로써 가해자들을 린치했다.

 

이런 일련의 광기의 결과는 이렇다.

 

피해자는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또 가해를 저질렀다.

가해자들은 이후의 더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그는 "그들"의 좋은 친구다.

여전히, 그들은 술자리에서 여자를 안주삼고

무용담처럼 가해자의 성폭력 사실을 재구성한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한 명으로써,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그러나 참 우스운 것은

그들은 자기들이 인정할만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린치'방법으로 해결하려할 뿐,

성폭력을 둘러싼 여성의 노동권과 가부장적 문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한 것은

함구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네들은 입닥치고 있어"

 

그래서 좀 무섭고 황당하고 두렵다.

여성의 노동권..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해

항상 반대하고 나섰던 보수적 인사들이

잇따라 성폭력범죄에 대한 강력처벌을 핏발세우며 이야기하는 것이.

 

이건 또하나의 린치가 아닌가..

가해자들에 대한 집단적 린치로..재단의 희생물로

그들은 다시 순결해지는 거다.

 

"우리도 여성문제 관심있다고..우리 그렇게 나쁜 놈들 아니라고..우리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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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빛나는청춘.

 

학생 신분을 달기 전까지는 꽤나 몸을 산만하게 움직이는 꼬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모험을 찾아 떠난다는 홀로 설정에 심취하여 마을 곳곳에 '비밀장소'를 만들고 그 곳에 맞는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을 혼자 캐내고..그런 순례를 하느라 항상 부산했었는데.

 

버려진 공터, 짓다만 건물 공사장, 인기척이 없는 집.

 

내가 한창 쑥쑥 몸을 키웠던 80년대의 도시외곽에선

2-3층 규모의 상가건물이 건축중이거나,

60-70년대의 기와얹은 집들이 철거대기중이었다.

 

황량하고 버려진 곳들 이 모든 곳들에서

모험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담넘기와 구르기, 기기, 엿보기, 도망가기.

 

항상 바쁘고, 머리 속이 부산하고, 몸이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몸놀리기엔 단순하고 핑계가 없었으며, 생각은 복잡하고 사족이 많았다.

이익보다는 호기심에서 촉발된 잔머리가 항상 즐거움을 쫓았는데..

 

내 가장 빛나는 청춘은 아무런 성과와 성취가 없었지만

내 자신으로도 충분했던 바로 그 시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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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날씨가 좀 따뜻해지나 했더니

금세 추워져서

주말엔 양변기가 얼었다.

다행히 지금은 날이 좀 풀려서 물을 내릴 수 있게 되었지만,

 

오늘부터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슬슬 걸어야겠다..다짐했는데

문에 낀 성에를 보니 당최 나가기가 겁난다.

 

음식물 쓰레기는 썩지 않아좋지만

내 엉덩이엔 곰팡이 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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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노르 피니.


 

Gorgone

Format : 61 x 46cm

Year : 1988

캔버스 위에 기름으로 그림

 

 


 

L'Entracte de l'apothéose

 64 x 45 cm

1938 - 1939

캔버스 위에 기름으로 그림

 

 

서구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욕망 해방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그나마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운동?에 여성들이 많았던 것, 또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등이 관심을 보였던 것도 그런 면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초현실주의는 그들 내부의 성적행위의 자유에만 지나친 관심을 쏟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던 여성미술가들은 남성미술가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초현실주의 (남성미술)운동의 일원으로 머물기를 멈추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것이다. 레오노르 피니 또한 그런 강인한 여성들 중 하나이며 또한 진정 자유롭고 싶었던 퀴어 중에 하나였다.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 혹은 고양이들은 이야기와 판타지의 중심으로 그려지지만, 모델로써 박제되지 않았다. 규격화된 몸짓이 아니라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내며 그녀 자신의 마음 만큼이나 다양하게 변모한다. 여성퀴어가 꿈꾸는 자유란 것이 있다면 아마 그녀 작품에 그려진 무엇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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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노르 피니 Fini, Leonor (1908-1996)

 

양성애자 아티스트인 레오노르 피니 Leonor Fini의 작업은 범주화에 저항한다. 종종 초현실주의와 결합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여성에 의해 다스려지는, 신비롭고도 상상력을 일깨우는 세계를 나타낸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아르헨티나 혈통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레오노르 피니는 190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생해 이탈리아의 트리스테 Trieste에서 자라났다. 독학한 예술가라고 할 만한 그녀는 십대 시절에 유러피안 박물관 European museums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양식을 배우고 트리스테 자료실에서 해부학 책을 보며 미술을 공부했다. 열세 살 무렵에 자료실에 출입하면서 그녀는 삶과 죽음, 부패와 재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녀의 예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그림 속에 보이는 해골과 뼈의 이미지는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립심과 자신의 직관에 대한 신뢰를 가졌던 그녀는 절친한 친구였던 레오노라 캐링턴 Leonora Carrington과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등 초현실주의 경향에 연관되어 있던 다른 여성 미술가들과 유대를 맺게 된다.

 

자신의 삶과 예술을 통해 피니는 아름답고 오만하면서 ‘열정에 의해 지배되는’, ‘자율적이고 완전한 여성’의 이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많은 구혼자가 있었지만 결혼을 거부했다. 그녀는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호했으며 종종 두 남자와 함께 지내기도 했으며, 양성애와 같은 성적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하지만 피니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했다. 1982년 휘트니 채드윅 Whitney Chadwick과의 인터뷰에서 동성과의 사랑의 경험을 자유롭게 언급했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을 택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나는 여자이고 ‘여성적인 경험’을 했지만 레즈비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적인 현실과 외적인 현실을 연결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피니의 강한 전념은 그녀를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앙드레 매종 Andre Masson, 한스 벨머 Hans Bellmer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과 함께하게 했다. 1936년 그녀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가졌고 이들과 제휴하게 되었다.

 

피니는 초현실주의의 관념들 중 일부를 공유했으며 충격적인 행동과 극적인 제스처에 대한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보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는 추기경이 입는 빨간 예복을 입고 나타나서 여자의 몸을 전혀 모르는 남자의 옷을 여자가 입는 불경스러움이 좋다고 설명한 것은 그 한 예이다.

 

하지만 남성 미술가들과의 이러한 제휴는 많은 부분 사회적인 것이었다. 피니는 앙드레 브레통 Andre Breton의 청교도주의나, 남성을 해방시키는 ‘척 하면서’ 여성의 자율성은 존중하지 않는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또한 채드윅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피니는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의 욕망에 예속시키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사실상 피니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의 가부장적 가정에 대한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니는 그녀 자신을, 혹은 다른 여자들을 여성의 힘과 자율성의 이미지로 그림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그녀는 세밀하게 묘사된 현실과 판타지에 의해 고안된 극적 공간을 상징적으로 결합시킨다.

 

피니는 자신의 작품에 개인적인 토템인 고양이를 자주 그려 넣으며, 이는 종종 마술적인, 성적인 힘을 가진 여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삶의 특정한 인물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 나타난 모습이 지배적인 여성과 복종적인 남성의 추상적 원칙으로 읽히도록 의도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피니의 첫 단독 전시회는 1939년 뉴욕의 줄리안 레비 화랑 Julian Levy Gallery에서였다. 2차대전 동안 그녀는 몬테카를로와 로마에서 살았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무대디자이너로, 화가로 일해왔으며, 유럽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그녀는 1996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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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얼마전까지는

뭇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에-아무리 막산다고 그래도 '보통'이라도 해야되는건 아닌가- 집착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마음 조급하기도 했다.

그런 집착을 유지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서,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포기중이랄까.

 

얼마 전에 나이에 대한 누군가의 글을 보다 괜히 잡생각이 일었다.

나에게 나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과 지위, 목표 등을 상정하는 지표 기능을 상실한 지는 오래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이의 무게를 느낄 때는 있다.

 

그러니까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내부에서 고함쳐대는 소리에 귀를 귀울일 때엔,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조바심이 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의 결들을 꼼꼼히 되새겨볼 때면 말이다.

아... 불행히도 나는 뭔가를 많이 해버렸다.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고, 입장을 정하고, 누군가 토론하고 싸우고,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걸 해버렸다. 그래서 과거를 생각하면 벌써 숨이 가쁘고 버겁다.

도대체 60 혹은 70 그 이상의 세월을 살았냈다고 하는 사람들은

머리 속에 마음 속에 차고 넘칠 그것들을 어찌 추수리고 살아나가는 것일까

 

사회가 나이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나를 옭매어 짜증나기도 하지만,

어쩔 땐 내 스스로 인생의 발동을 다시 걸기가 힘들다.

과거들 때문에,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과오를 다시 저지른다는 게 너무 싫어서, 앞으로 그것들을 곱씹고 살아갈 날들을 헤아리는 것도 끔찍해서..

 

그렇다고 웅크리고 숨죽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주변에선 과거의 나를 비추어주는 사람들, 혹은 그런 인간관계들이 과거와 같이 나와 살아가기를 갈망하고 있고, 나는 그런 속도에 맞추어 가끔 성찰없이 발맞추어 나간다.

 

하..여즉 안죽은거 보면, 뭔갈 더 하라는 건가..싶기도 하고

뭔가 더 하려니 지나온 세월보다 더 잘살 자신이란 것도 없고 대략 그렇네 ... 에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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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운동'논쟁을 보며 걱정만 태산.

성노동자 관련 글들을 몇 개 보았다...

 

뭐랄까..걱정이 된다.

 

그냥 막연히 든 생각은,

 

성매매여성들이 주체로 나서기 위한 제반조건이 '성노동자'라는 언어든 다른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현장에 대한 책임감을 아는(이는 성매매여성과 그 아이들의 삶까지 포함한다. 불가항력적으로) 활동가들과 함께 구축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무서운게, 대부분의 여성운동단체가 성매매 현장을 잘 모르고 그에 대한 일천한 경험때문에 낭패보고, 성매매여성들도 고생이 심한데, 성노동자운동 또한 성매매 현장에 대해서 경험이 일천하고 여성들의 삶을 책임져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된다는게, 특히 지식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게 우려스럽고, 또 우려스럽다.

 

아..성매매여성들이 내팽겨치진 않겠지..'성매매여성'혹은 성노동자'의 이름을 걸고 논쟁만 하다가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을 헌신짝처럼 버리지는 않겠지..그런 불안감이 가중되는 건 왜일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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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에는 어땠을까.


 

진보넷 블로그홈에 이런게 떠있길래 해봤다.

 

영어로 써있길래 겁먹었는데, 친절하게도 한글로 번역도 해놓으셨길래, 냅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쑥쓰러워서..못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생각했다.

 

난 어디쯤 서 있을까. 4면 좌표가 가지는 한계같은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 나보고 골로 가는 인생이라고 그랬는데 뭔가 모서리쪽으로 가고 있는 것..같긴하다.

아니 모서리쪽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건 아닌가?

 

그런데 이게 또 웃긴게..

중간 중도 이런게 가운데에 있다는 거다.

 

좌편향 우편향..하여간 중심은 있다는건데,

시각적으로도 치우치게 보이게 해놓은 것이 재미있다.

 

사람들이 시각에 대해 가지는 편견도 대단하다는 걸..미술작품보면서도 몰랐는데

영상편집배운다고 이런저런 화면들 배치하면서 많이 느꼈다.

 

주인공은 가운데 위치해 있고, 덜 중요한 것들은 외부에, 옳은 지위나 권위를 부여할 때는 위에서 위압적이고 겁을 먹은 걸 표현할 때에는 아래에서..그런 식으로 찍고 배치한다.

화면첫부분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등장하더라도

대중속에 파묻힌 주인공..혹은 화자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이들은 금방 알아본다. 그런 시각적 장치 때문에.

 

이렇게 해보고 나니.

나의 위치란 게,

위로 우러러 보아야 할 것도 많고, 또, 옆으로 비집고 가야할 것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저 모서리 끝에 대롱매달린 사람들은 얼마나 위태해 보일까?

 

그런 설정이 또 재미있네.

 

어라..예시로 나와있는 사람들이..거진 남자네.

흠..페미니스트들..이 없어서 좀 아쉽다.

 

http://myhome.naver.com/deadbird99/political_compass_fram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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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생에나.

세상 아주 작은 문제 하나라도 대충 타협 안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완전히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 수는,

도대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아니겠는가

 

"어떻게 세상을 너 좋은데로만 살어."

 

너무 황당하게도,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딱,, 한명있다.

그 분은 자기 좋은 대로 사는게, 옳고 좋은 인생이다.

그리고 그 분이 좋아하는건,

하필, 이 시대의 무엇과도 맞지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역음악(우리가 흔히 국악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판소리와 민요도 좋아하시지만 젤루 좋아하는 건 시조다. 정말 가망없음이시다.

속되게 말하자면, 판소리나 민요는 잘팔린다. 어디 강사라도 나가고 가르치기라도 하면 얼추 돈이 되지만. 이 놈의 시조는 돈이 안된다. 그래도 그 분은 시조만 한다.

그걸 좋아하고 그게 옳다고 까지 생각하시는 양반. 지질이 가난하시다. 정말 똥꾸멍 찢어지게 가난하시다.

 

또 그분은 일부일처제를 지독하게 싫어하신다.

결혼은 했지만, 결혼제도 안에서 아내나 어머니답게 살지 않았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결혼한 것을 유치하게 생각하시고 창피해하시는 그 양반.

 

결국은 딴남자 꽤차고 아이들도 주렁주렁 낳아버렸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 연애질 중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한국사회 인간관계의 최후보루인 가족들한테까지 외면당했다.

모진년, 화냥년, 미친년 소리 들으면서 말이다.

그 분을 낳은 생모조차 더러운 여자라고 가까이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분은 이게 좋단다. 옳다고까지 생각하시는 그 양반,

지질이 고독하시다. 친구도 더럽게 없다. 오죽하면 나같은 백수나 붙잡고 놀고 싶어하실까.

 

게다가 그 분은 술먹고 사람만나고 예술하시는거 좋아하신다.

한국 지역음악뿐만이 아니라,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몸짓도 좋아라 하셔서

소시적에는 홍신자따라 어디 갔다 오고 무용치료한답시로 물건너 외국도 갔다오고 허신 양반. 누가 들으면 어데 교수자리라도 꿰찰듯한 이력이지만 또 하필 그 양반이 제일 싫어하는게 선생질이다. 학교시스템이 감옥인데 간수노릇하시싫다나, 뭐라나.

 

"그럼 뭐하고 먹고 살라 그러슈?" 답답해서 한 소리했더니

그양반이 나한테 그런다

 

"정 배고프면 아쉰대로 하겠지, 제일 허기 싫은걸루 하하하"

 

여자나이 50넘으면 할 수 있는게 없다. 정녕 없다. 일자리 없다.

그나마 목소리가 좀 고와서, 폰섹스자리를 어떻게 운좋게 얻어서 하더니

한 두달 썩을 놈들 배설물들을 다 받아주다가 - 그 양반은 전화건놈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거시기에만 관심같은 놈들이, 인생이며 예술이며 섹스 그 자체에 대한 성찰 그런거에 신경이나 쓰겠냔 말이다! 그런데도 그 양반은 이야기한 내용을 다 받아적더라. 나중에 내게 그걸 읽어주었는데, 정말 박장대소했다!!!! - 한 두달 허더니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한다.

 

아..지금 그 양반은 고문받는 중이시다.

세상 제일 싫은 선생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분 성정에 꼬박꼬박 시간지켜서 국영수가르칠리 만무하다.

거의 모든 수업은 임의대로 한국지역음악과 연극, 기타 예술로 대체!

그러니 항상 얼마안가 짤리고

정말이지 그 분과 딸들이 먹고 살 돈도 모자랄 지경

그래도 신기한게 술마실 돈은 어디서 나온다. 덕분에 나도 가끔 호강도 하고..ㅋㅋ

 

항상 씩씩하던 그양반이

몇 년전부터는 욕만한다.

 

"씨발놈의 세상,환생하기도 싫다!퉷!"

 

내 속으로 그랬다.

 

'혹시 알어, 다음 생에는 좀 나아질지...'

 

대부분은 자랑스럽지만

가끔은 그 양반을 보면 눈물이 난다.

 

대한이라 그런가.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까 괜히 궁상맞아지고, 그 양반 생각이 사무치네.

일요일이나 그즘해서 술한잔 걸쳐야 겠다. 그양반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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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협박인가?

평범한 가장에서 연쇄성폭행범으로 (대전=연합뉴스)

 

조용학 기자 = 10여년간 대전을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10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거된 속칭 '발바리' 이모(45)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둔 이씨는 평소 금실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했으며 자녀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한 가정의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었다. 영업용 택시기사를 거쳐 개인택시를 10년 가까이 운행했고 가족들 모두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는 등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회원들과는 그다지 친분있게 지내지 못하는 등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으로 특정하고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일 때도 이웃주민 등 주변 인물 대부분이 이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년시절 절도전과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성장했으며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등 건실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씨의 범행이 결혼을 하고 대전으로 건너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시작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진술조사에서 이씨는 "집에 있다 새벽에 운동하러 나간다고 얘기하고 나온 뒤 여자들만 사는 집에 들어가 범행을 했다"고 진술해 평소에는 평범한 가장으로 생활하다 밖에서는 엽기적인 성폭행범으로 돌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동기에 대해서 이씨는 "택시를 탄 한 여성승객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해 모멸감을 느껴 보복심리로 이 여성승객을 쫓아가 처음으로 범행을 했는데 쉽게 성공해 계속 범행을 하게 됐다"고 말해 한번의 우발적인 범죄가 희대의 연쇄 성폭행범을 만들어 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날 서울의 한 PC방에서 검거될 때도 이씨가 "마음이 후련하다"며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자세한 수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범행사실과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씨가 범죄사실을 시인했다"며 "범죄양형과 관련된 성장과정이나 정신적인 문제 등도 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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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보고 화가 났다. 성폭력가해자가 평소에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기술하는 기사의 태도와 논조를 보면 마치, 이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아니 매우 건실한 사람이었으나, 재수없이 입을 놀린 여자가 멀쩡한 사람 성폭력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식이다.

나아가서, 그러니 여자들이 택시탈 때 입놀리는 걸 조심하라고 경고 하는 듯 하다.

 

대부분이 남성인 택시기사들이 여성들만 태우는 것도 아니고, 택시기사들에게 욕을  해대고 함부로 대하는 게 어디, 여성들뿐이겠는가?

 

20여년간의 택시탑승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남성승객들이 택시기사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가해자 놈은 그 사람이 '여성'탑승자였기 때문에, 감히 여자가 그따위로 말을 했기 때문에,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게 때문에 성폭력을 저지른것이다. 더 괘씸한 것은 그가 한 명에 그치지 않고 힘의 과시로 최소 90여건에 이르는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나쁜 놈을 위해 구구절절 평소행실 운운하는 열정 아끼지 않는 기자의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 결론적으로 받은 느낌은, "싸가지 없는 여성승객 한명 때문에 건실한 가장이 이렇게 타락했단 말이다. 똑똑히 봐, 그리고 네들도 조심해."이런 거 말이다.

 

성폭력 사실을 말하거나 혹은 기사화 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성폭력에 대한 기사들이"여성들이여, 그러니까 똑바로 하란말이야"란 경고나 협박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여성집단에 대해 남성이 가지고 있는 통제력을 과시하고, 강화하고, 나아가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공포만 가중시키기 때문에. 그런데 저 기사가 딱 그렇다.

 

그럼 어떻게 써야 좋겠냐고..

 

 "다른 죄질이 나쁜 성폭력 범죄자들과 같이, 이 성폭력 범죄자의 경우도, 겉으로는 건실한 가장과 존경받는 사회인인양 행세하였다고 합니다. 범죄동기 또한, 택시기사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여성승객만을 타겟으로 삼아 성폭력을 저지름으로써 해소하려 했다는 점으로 볼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저질렀으므로 이에 대한 가중처벌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라는 건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는 걸, 비겁하게 숨기지 않는다면, 저렇게 쓴 것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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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게 죄냐.

다음의 쓰레기 같은 덧글이든

진보넷의 논쟁꾼이든

모두 공통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무식하면 가만히 있어라"류의 비판글말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말이 매우 불쾌하다.

정말 무식하면 가만히 있어야 하나.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면서 근거없는 억측과 막무가내로 떠드는 사람을

제압할 목적으로, "당신이야 말로 무식하다는 걸 아셔야죠"라고 말하는 전략도, 뜨뜻미지근하게 싫다. 어쨌든 그 말의 기저에는 지식권위에 대해서는 합의하기 때문이다. 뭔가 정보를 더 많이 알고 뭔가 근거를 더 많이 디밀고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들이 근본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무엇을 했나.

 

그치만 적당히 필요한갑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논의 필요한갑다. 왜냐하면 금방 혁명날 것도 아니고, 지식인들, 중산층들의 의조직화를 할 때,시민운동할때, 그런 말들이 필요하고 지식들이 필요하다고들 하니까.또, 뭔정파가 맞냐 어떠냐 할 때도 사회에 대한 과학적이고(이 말 쓰는게 무섭지만) 체계적인 분석도 필요하다니까.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필요없진 않은 갑다. 

 

다만, 무식하면 입닥쳐라라는 말이 공고화하는 것들을 보라. 나의 어머니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사장들, 중간관리자, 학교선생,업주등으로부터 매일 그 말을 듣는다. 아주 모멸적인 뜻으로 말이다. 그 나쁜 놈들(가끔은 이렇게 편하게 부르는게 용인받았으면 좋겠다.)은 무식하면 입닥치고 있어야 하고, 무식한게 죄라는 명제에 대해 가장 열성적으로 따르는 인간들이다. 그건 그 사람들의 현재의 위치과 착취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왜? 내가 많이 배웠으니까!! 내가 먹물이니까, 내가 너보다 많이 아니까!! 우리가 그전략을 써서 잠시 나쁜놈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고 결국 그들 머리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없어지지 않는데!

기껏해야 "내가 저놈보다 무식해서 당했다. 공부를 더 해야지" 정도일 것이다.

 

운동은 지식인들만 하는 것도 아니고 먹물든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봤던 많은 사람들, 삶의 모순들을 체감한 사람들은 논리적인 말하기에 익숙치 않다.

비명소리, 악이받쳐 나오는 고함, 울부짖음, 그런 것들.

그러니까. 무식해도 가만히 있지 못할 때가 있다.

무식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기를 들 때가 있다.

무식하기 때문에 억울하고 분할 때도 있다.

 

자신이 지식의 우위에 있음을 내비치는 그런 말들 또한 지식권력을 휘두르는게 아닌지,

혹은 지식이 권력이라는 논제에 기대선 비겁한 행동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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