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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8/06/13

아고라 실망입니다.컨테이너를 넘는게 폭력입니가? [21]-2008.06.11

    * (명박퇴진)아고라 실망입니다.컨테이너를 넘는게 폭력입니가? [21]
    * 도를 아십니까
    * 번호 1097835 | 2008.06.11

도무지 존중해야될 사람들을 다 무시하시고
확실한 신원을 밝혓는데도 의심하시고
도데체 뭘할수 잇씁니까?
 
이메가로부터 재협상을 받아내고 대운하를 포기시키고
공공부분 민영화포기를 받아내고
공여방송 장악음모 포기선언을 받아내려면..
저렇게 확실한 신원을 밝히고 앞장서 일하시는 분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솔직히 저 컨테이너를 넘어 수백명이 넘고 연행된다면
아마 이메가는 코너에 몰릴겁니다.
용기가 없어 그렇게 못하는 우리들을 대신해 스스로 연행되겟다는 분들입니다.
컨테이너를 넘는게 폭력입니까?
쇠파이프도 없고 각목도 없는 그야말로 비폭력 저항 아닙니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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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스티로폼. 그게 바로 민주주의 입니다.- 2008/06/11

 광화문 스티로폼. 그게 바로 민주주의 입니다.
by 자그니 | 2008/06/11 17:24

<옮김: 원글을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작가의 전작 '은과 금'을 보면, 한 부패한 정치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 확실히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단 말이지.

어제 제가, 광화문앞에서 있었던, "스티로폼 산성 쌓기" 퍼포먼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느낀 것도, 딱 이런 기분입니다. 물론, 부패 정치가의 입장-_-에서 느낀 것은 아니지만... :)

예, 민주주의는 너무 느립니다. 사공도 너무 많고, 단번에 딱딱 결정되어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헛 것 같은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대충 중간쯤에서 합의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는 그 과정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사실 어제 명박산성에 처음 접근했을 때에는, '인권단체 연석회의'분들과 '다음 아고라 비폭력 대책위(? 가칭)' 분들이 평화롭게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평온스럽고, 그냥 다들 관광지에 놀러와 기념 사진 찍는 분위기였답니다. 속담 그대로 '하룻밤에 컨테이너장성을 쌓은' 장관을 구경하는.

▲ 다음 아고라에서 나오신 분들

▲ 인권단체 연석회의에서 나오신 분들

스티로폼을 둘러싼 논쟁의 시작

하지만 분위기는, 서대문쪽으로 잠깐 행진을 하고 돌아온 사이에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kyoko님이 스티로폼을 가지고 오시면서, 다음 아고라 분들과 논쟁이 붙었고, 그 과정에 인권단체 연석회의 분들이 끼어들어 중재를 시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 래 동영상은 초기에 진행되었던 토론입니다. 인권단체 연석회의분(이분 중간까지 계속 사회보셨죠?)의 사태에 대한 간략한 정리와, 아고라에서 나오신 듯한 분의 주장이 담겨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권단체연석회의에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스티로폼을 쌓아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밑의 동영상은 스티로폼을 가져오셨다는 분과, 그에 대한 한 학생의 반대 발언입니다. ... 저도 이 분 발언 듣고 스티로폼을 이 분이 가져오셨나? 했는데- kyoko님 글 읽어보니 이 분은 '옮겨오는' 일을 함께 하셨던 모양입니다.

공식적인 토론(?)장밖에는, 스티로폼을 둘러싼 아고라 분들과 다른 분들의 조금 쎈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스티로폼을 쌓자'와 '쌓으면 위험하다'라는 분들 사이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 그럼 '3M 정도 떨어진 곳에다 쌓자'로 정리가 됐습니다. ... 그래서 3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한 아저씨가 강하게-_-;;; 안된다고 반대하시고(이 분은 얘기가 안통하는 타입), 다른 한 분(아마도 kyoko님?)은 단을 쌓으려면 스티로폼이 더 필요하다-라는 이야기에 그럼 가져오겠다고 휙-달려나가신 상태....

한 개 있었던 스티로폼을 서로 뺏기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는 상태에서, 두 분이 자유발언을 하러 그 위로 올라가셨을 때 찍은 동영상입니다. 초기 현장 근처의 분위기는 이랬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더 쌓지 못하고, 몇개 정도 쌓아놓은 상태에서 양쪽(마이크 있던 쪽, 없던 쪽)의 토론장을 통합, 하나의 토론장으로 만들고 논의가 다시 진행되었습니다. ... 사실 서로 뻔한 --;; 이야기들이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양쪽의 입장은 서로 합의될 수 없을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아고라 분들은 '누가 흥분해서 올라갈지 모른다'라는 전제를 바탕에 깐 상태였고, 다른 분들은 '시민의 정당한 저항 행위를 다른 시민들이 막아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불복종과 비폭력의 사이에서

잠 시 빠져나와서 시청쪽을 둘러보고 오니, 어느새 명박산성 앞에는 스티로폼으로 산성이 쌓여져 있더군요. :) 사실 여기부터는 많은 분들이 생중계로 다 보셨을테니, 제가 뭐라고 더 드릴 이야기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뒷쪽에서는 좀 다툼이 있어서... 여기서 다른 분들 격해지는 것 말리느라고 막상 동영상은 찍지 못했네요. 작지만 프락치-_-로 시민기자분을 오해하는 사건도 있었구요.

...그러니까, 안티MB 카페의 한 분이 인권단체 연석회의에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 스티로폼 산성을 쌓은게 안티MB 카페 사람들인데, 컨테이너쪽에 쌓는다고 해서 도와줬는데, 왜 자기들 맘대로 산성을 만들었냐고- 해명하라고 -_-;;; 다행히 몇몇 분들의 현명한 대처, 차분한 설득으로 일은 무난하게 풀렸습니다.

사실 이 논쟁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비폭력'과 '불복종'의 사이에서, 우리가 그 수위를 어느 정도로 이끌어갈 것인가-가 배경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복종'과 '자율'의 힘을 좀 더 믿는 분들은 당연히 명박산성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반면 '비폭력'의 힘을 좀 더 믿는, 조중동에 이용당할 빌미를 주기 싫으신 분들은 '충돌없는 평화'를 선택하실 겁니다.

결국 지난한 논쟁이 이어지고, 새로 조금씩 더 스티로폼을 쌓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발언이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간간이 터져나오는 '동의'와 '이의'의 목소리들 가운데, 더 많은 동의를 얻었던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 그래서 스티로폼 추가 공수작전 시작.

그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과 같습니다. :) 우리는 산성을 해체하고 명박산성에 오르는 계단을 냈고, 그 위에 깃발들을 올려보냈으며, 날이 밝자 멋진 퍼포먼스로 마무리 했습니다. 느리지만 합의를 이뤄냈고, 서로 조금씩 불만스럽지만 양보하며, 서로가 가지고 있었던 원래 목적을 모두 이루는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개 인적으로 저는, 이 논쟁의 뒷 편에서, 어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말로 싸우며 다투고 상대를 이기려는 것이 아닌,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소통의 가능성이랄까요. 사실 인권단체연석회의 분들은 고생 많이 했습니다. 안티MB 카페 분들과 아고라-로 상징되는, '불복종'과 '비폭력'의 대치점에서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느라 맘고생이 심하셨던 것, 알고 있습니다. ... 게다가 많은 인권단체연석회의 분들이 '불복종'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죠.

하 지만 새벽, 2시쯤부터 사회를 보셨던 분의 언행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존 시민단체에서 관행적으로 보여주는, 시민들을 '설득'의 대상이 아닌 '선동'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달 까요. 단적으로, 그렇게 사회자가 말 많은 자유발언은 처음이었습니다. -_-; '우리 지금까지 인권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니, 우리 믿고 (따라달라)'라는 식의 말이라던가, 억지로 동의를 끌어내는 어법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성적 소통의 가능성은, 오히려 논쟁이 격렬했던 연단의 뒷 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목소리 높이고, 오해가 오해를 낳는 상황에서, 몇몇 분들의 차분한 설득과 그에 대한 동의는... 직접 보고 있는 제게는, 거의 감동이었달까요. 남자들이라면 주먹다짐이 오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 ... 그 와중에도, 차분히 한분 한분 설득해내는 한 사람의 언행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 뭐, 그렇다고 -_- 뒷쪽의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바로 그곳이, 민주주의가 머무는 곳입니다.

따 분하고 지리한 논쟁 속에서, 서로 다른 대안이 나오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합치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상대에 대한 설득이 이뤄집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넓혀나갑니다. 동의를 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누가 옳은 말 한마디 했다고 옳소-하고 몰려가버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요. :)

어제 스티로폼을 둘러싼 논쟁이 불편하셨나요? 저는 정말 좋았답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성숙해가고 있는 지를 볼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았답니다. :) 그 자리에 함께 해주셨던 많은 분들, 수많은 논쟁속에 지치고 짜증나셨던 분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정말 소중한 자리에 계셨던 거랍니다. 저는 이 분들에게, 비난이 아니라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멋지셨다구요-

아, 맞다- 이 와중에 우리 이글루스 메딕팀의 플랭카드도 나왔었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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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배후에다 프락치냐-2008/06/11

그럼 내가 배후에다 프락치냐
by kyoko | 2008/06/11 03:53

 방금 집회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울하고 슬프고 쪽팔린다. 걍 블로그에 아무 얘기도 안 할까 하다가 들어오니 뭔가 엄청 어처구니없는 설이 여기저기 퍼져있길래 해명은 해야겠어서 자폭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 9시쯤 해서 광화문에 갔다. 여전히 동네 주민님들과 같이 가서 일단 명박산성을 보았는데... 진짜 화나더라.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 대도 저 놈은 눈 감고 귀막고 있다가 청와대 앞뜰에서 새소리 듣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고 있겠지. 확실히 오늘 사람은 정말 엄청나게 모였다. 하지만 그 인원들은 모두 경찰이 봉쇄한 라인 안에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박산성은 너무 높고,  행진의 물결을 따라간 안국동도 역시 컨테이너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냥 촛불을 들고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5월 말~6월 1일까지 보여주던 시민들의 재기발랄한 움직임.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어느 순간 똘똘 뭉치는 그런 모습은 대책위의 확성기 소리에 묻혀졌다. 우리는 그냥 명박산성으로 막힌 즉석 광장에서 무력할 뿐이었고, 아무리 공연 등을 한다고 해도 이건 그냥 관광버스 같은, 그들만의 축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주변은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 노는 거 좋아한다. 술도 무지 좋아하는 거 여기 오시는 사람들 다 아실 거다. 하지만 촛불시위에 왜 나오는 건가. 우리 놀러 나오는 거 아니다. 물론 많은 인원이 모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와서 경찰과 이명박이 마련해준 장소 안에서 술 먹고 도로에서 노숙하고 앞에서 어떤 얘기를 하든 적당히 흘려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나왔으니 됐어 얘들이 알아서 기겠지. 이런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배후가 없다는 거다. 진짜 없어서 문제다. 배후가 없어서 구호 하나 맞춰서 소리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6월 1일 새벽, 물대포를 맞으며 버틸 땐 우린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비폭력을 외쳤고, 쫓아오는 전경의 방패에 찍히면서도 눈물흘리지 않았다. 시위대는 당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집회에서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자 시민들은 두 종류로 갈라졌다. 한 편은 마치 소풍을 온 분위기이고, 앞의 사람들은 12시가 지나고 한시가 지나면 경찰의 무대응에 흥분해서 차를 흔든다. 그러다 결국 8일날 어디선가 들고 온 쇠파이프와 소화기를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거 실수 맞다. 그러면 그때 광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얼 했나? 그들을 말리기보다는 트럭에 설치된 오마이티비 화면으로 먼 나라 중계를 보듯이 소화기 가루가 난무하는 현장을 감상할 뿐이었다. 이게 시위인가?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돌출하는 사람들은 제지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새 집회는 모여서 자유발언 좀 하고, 도로를 점거하며 가두 한번 하고 적당히 모여앉아 있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는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집회를 특별히 제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시위대가 도발에 넘어가자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소화기를 뿌리고, 정당한 것처럼 몇 명을 연행했다. 나는 집에 와서야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에서 한 시간 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괴로워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 가장 많은 인파가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으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점심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무너졌다. 광화문 네거리엔 촛불집회에 나가고, 나가진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차단하듯 거대한 컨테이너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경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벽을 보며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직접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마치 관광이라도 하러 온 양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은 밧줄이 쳐 진 채 마치 폴리스 라인처럼 비폭력이라고 씌여 있는 라인이 있고, 그 안에 예비군이 있었다. 나는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우리가 컨테이너 벽에 어떤 폭력을 가하길래? 우리는 오늘도,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도 그저 준비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놀다가 가야 하는 건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걸어가는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앞에 잔뜩 쌓여있는 커다란 스티로폼이 보였다. 가로 1미터 50, 세로 1미터쯤 되고 높이는 50센티쯤 될 것 같았다. 굉장히 많았는데 아마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수량이었다. 안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느라 빼 둔 듯 했다. 그걸 본 순간 생각했다. 그래. 이걸 명박산성 앞에 쌓으면 어떨까.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자는 거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못 올라가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올라갈 수는 있지만 비폭력이어야 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지 않는 거라고. 너희가 치졸하고 야비하게 담장을 높게 쌓았지만 우리도 쌓을 수 있다고. 그냥 그거라도 보여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참 조낸 의미없고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옆 라인엔 전경 버스로 막아 두어서 오히려 전경 버스 쪽으로 쌓으면 돌파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얼마 전 폭력시위대 운운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바로 그 다음 무리수를 두어 전경과 마찰을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광화문 정면에 쌓는 게 더 잘 보이잖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넘어가고 아니고를 떠나 너희가 이렇게 막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궁리해서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명박이의 잔머리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윗층 주민님과 함께 일민미술관 앞에 쌓여 있는 스티로폼을 내렸다. 너무 커서 의외로 무거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낑낑거리며 명박산성까지 들고 갔다. 좀비님까지 붙어서 셋이 나르다가 어떤 남자분이 도와주셔서 나는 앞의 길을 텄다. 그리고 예비군 라인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뒤 한시간 이상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이런 걸 어디서 준비했냐는 배후(아놔 ㅅㅂ) 얘기부터 인화물질이라 위험하다는 얘기 등등. 그러면서 사다리 갖고 오면 올라가도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죽어라고 반박했다. 넘어가자는 게 아닌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생각이라고. 주변은 예비군님들이 스크럼 짜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제지하면 될 거 아니냐고. 예비군들은 왜 지키고 있는 거냐고 비폭력의 범주 내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도와주고 시민을 지켜 주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는데 나중엔 십라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내서 이런 도돌이표 같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싶을 정도였다. 스티로폼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조중동에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궁금해졌다. 명백히 시민에 대한 폭력임에 분명한 명박산성 앞에 그보다 높은 걸 쌓을 수 있음에도 넘어가진 않겠다는 게 과연 폭력인가. 톡 까놓고 얘기하자. 조중동 눈치보면서 지금 뭐하자는 건가. 우리는 야간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인원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명박산성이나 구경하다 가자고? 그게 안타까워서 비폭력의 범주에서 의견을 낸 건데 그냥 이렇게만 있어도 충분히 압력이 된다고? 그 뒤 확성기에서 주최측은 사실상 이명박정권은 끝났으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울부짖는다. 지금 장난하냐? 끝없이 설득에 설득을 계속했지만 많이 피곤해져서 그냥 이꼴저꼴 다 보기 싫어지는 상황에 그럼 뒤로 좀 밀어서 자유발언대를 만들면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것마저 감지덕지한 마음에 반 포기상태로 찬성했고 다시 일민미술관 앞으로 가서 스티로폼을 두 개째 날랐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은 일행들 뿐이었다. 두 개째를 쌓자 다시 논쟁이 붙었고, 하나 더 날라와서 세 개로 자유발언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나긴 자유발언 끝에 다 같이 쌓기로 결정이 났다. 혹시나 올라간다는 오해를 살까봐 명박산성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래 내 계획은 컨테이너가 6미터고 스티로폼 높이가 50센티 정도니 아래부터 12, 11, 10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층계처럼 쌓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분으로 안전하게 방사선 형태로 옆을 더 쌓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어느샌가 스티로폼 쌓기를 주도하고 있는 붉은 조끼의 여자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리고 끝없이 스티로폼은 올라갔고 붉은 조끼의 여자는 그 위에 올라가 아래 있는 시민들을 내려보았다. 확성기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높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저런 게 아니었다. 쌓고 나서 내려와 모두에게 얘기했으면 싶었는데. 우리는 못 넘어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저 병신들은 컨테이너로 막을 생각은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스티로폼으로 더 높게 쌓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했던 거라고. 저새끼들은 어릴 때 레고 한번 안 해본 모양이라고. 상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 결국에는 이기는 거라고. 그러니 패배감 같은 거 절대 갖지 말자고.

 하지만 붉은 조끼의 여자는 내려올 줄 몰랐고 주변으로 카메라 플래쉬는 계속 터졌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자 참으로 많은 얘기가 있다. 스티로폼을 준비한 게 프락치의 소행이다. 일부러 불을 지르려고 하는 거다. 모든 게 음모다. 그리고 그 위에는 비명과도 같은 비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우리가 아니라고. 경찰이라고. 프락치라고. 하지만, 비폭력이란 말이 가장 힘을 발휘했을 때는 우리 위에 무자비한 폭력이 떨어지던 6월 1일 새벽 바로 그 때였다고 나는 믿는다. 부당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게 우리의 힘이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시민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만 해도 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싹을 짓밟아 버리는 게 아닌가. 비폭력이라 외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타인의 시도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건 폭력 아닌가. 모든 걸 프락치 때문이고 경찰 때문이고 명박이 때문이라고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하지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일수도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감싸안고 말리며 그럴때일수록 더욱 더 목소리높여 구호라도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오늘 비폭력으로 포장한 폭력을 본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하다. 지금 말들이 많은데 이 글 때문에 쿨게이 쏘쿨병 사람들한테 졸라 까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곳곳에서 프락치가 주동한 거다 어쩌고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더라. 에라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까인다고 죽냐. 그렇다면 이명박은 지금쯤 원자단위로 작살났게.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난 다음에도 나갈 거다. 진짜 많이 실망했고 기분 더럽고 너무 화나고 완전 삐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또 보자. 이렇게는 안 끝날 거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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