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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권위

최근 서로 다른 성격의 교육 몇 개에 참여했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

교육에 따라 강사로서의 나의 역할이 달라야한다는 거다.

당연한 이 사실을 현장에서 깨닫는 일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첫번째 교육은 동네 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내 생애 최고의 순간'

3년전에 한 번 진행했었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맡게되었는데

3년전에는 4명, 올해에는 6명이 참여했다.

강의 시작 전까지 단 1명만 신청을 해서 폐강될 뻔하다가 겨우 살아남은 교육이다.

스케줄 조정에 실패해서 첫날은 진행교사에게 '영화보고 감상나누기'를 부탁했다.

다음날부터 나흘동안 진행되었는데 마침 하늘의 공부방선생님이 첫날, 구경가셨었다.

 

사무실이나 미디액트에서 주최하는 교육과 생활에 파고드는 교육은 크게 다르다.

배우기를 원하고 준비된 사람들이 온 교육에서는 당연히 구비된 조건들을

생활속 교육에서는 만들어내야한다.

이번 '내 생애 최고의 순간' 교육에 온 분들 중 어떤 분은

'컴퓨터를 잘하게 해준다'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덩달아 오기도 했고

또 어떤 분은 <엄마...>를 보고 한껏 고양된 상태이기도 했다.

첫날 <엄마...>를 보신 어떤 분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했고

또다른 분은 "왜 날 이런 데에 데려온거야?" 라며 교육을 그만두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분들에게는 둘째날이 나에게는 첫째날이었으니....

가서 3년전 교육 결과물들을 보여드리면서 생활 속 이야기 찾기에 대해 설명하니

다행히 그만 두기로 한 분이 남았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야기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통해서 기억을 끌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3년 전 교육에서는 사진 한 장이었지만 올해에는 세 장으로 늘렸다.

(<미디어로 여는 세상>의 주안미디어센터의 여성 교육 참조)

여섯 분 중에서 한 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셨는데

다른 다섯분이 그렇게 자기 안에 쌓인 이야기 털어놓는 것을 애써 피하시니

얼른 눈물을 닦으시며 상황을 수습하더라. 결국 그 분이 선태한 건 '남편자랑' 이었다.

 

이번 교육은 참 힘이 들었는데

처음으로 미디어교육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이런 교육을 위해 부지런히 장비를 사모았다.

디카를 샀고, 비디오카메라를 샀다.

교육참여자 중 어떤 분이 인터뷰를 원하시기에 비디오카메라 작동법을 알려드리려 하니

너무 크다고 놀라셨다. (파나소닉에서 나온 mx2500이었다.)

내가 준비한 디카들은 400~500만 화소였는데

너무 화질이 떨어진다면서 집에서 가져오신 카메라들은 다 1000만 화소가 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집에 최신형 캠코더가 있었다.

 

교육참여자들이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라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건 아니다.

지난 몇 년간의 교육은 아이들의 열망과 나의 준비가 행복하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교육은 내내 설득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애원을 하며 보냈다.

그분들은 매일 아침,"전 이번엔 안하고 다른 사람 거 구경만 할래요"라는 말로 시작했다.

내가 막 이렇게 저렇게 설득을 하면 준비해온 걸 쫙 꺼내놓으셨다.

또 어떤 분은 항상 새로운 시작이셨다.

아침에 알려드리고 오후에 그분 댁에 갔었는데 '새로운 시작',

다 알려드리고 다음날 다시 만나면 또 깨끗하게 리셋되어있으신 거다. ^^

하지만 이 분과 함께 하는 시간은 좋았다. 이 분은 정말 열심이셨기 때문에.

또 어떤 분은 컴을 아주 잘 다루셔서 한번만에 모든 내용을 다 알아들으셨는데

이번 교육내용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던 다양한 기능들을 물어보시며

혼자서 노트북을 독점하시고 내내 연습만 하다가 가버리셨다.

마지막 시사회를 위해 그분이 하다만 편집을 할 때, 그 때가 제일 지쳤다.

 

교육이라고 하지만 별 건 없다.

이야기를 만들고 이미지를 찾거나 촬영하고 종이편집을 하고 그리고 컴 편집을 배운다.

나흘동안 컴편집을 완료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내가 말했다.

"상업영화도 이렇게 만듭니다. 컴퓨터 다루는 건 기술자들이 합니다.

중요한 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그걸 하신거예요.

박찬욱감독도 혼자 다 하지 않거든요. "

그렇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만들었고 시사회를 했다.

시사회를 하고 나니 그제서야 그분들이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열망들을 드러내셨다.

최초로 후속모임이 꾸려졌고 어제 첫모임을 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소박하게 편집방법 몇개를 실습해보았다.

2주일에 한 번 만나기로 한 것을 1주일에 한 번 만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다.

그 끄트머리에서 살짝 기뻤다.

 

두번째 교육은 영화로 배우는 인문학이다.

솔직히 나의 과가 속한 단과대학이 문과이긴 하지만 인문학, 잘 모른다.

몇년 전, 얼쇼리스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인문학강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정말 잘 모른다.

그저 듣기로는 상반기에 얼 쇼리스의 뜻을 받들어 인문학강의를 시작을 했는데

글을 모르시는 분이 대부분이라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는 것.

내가 낄 자리는 아닌 듯 한데 '칼럼니스트 교실'을 같이 진행한 신부님께서

당신이 반, 내가 반을 맡는 조건으로 이 강의를 받으셨다 한다.

총 16회 교육 중 앞에 8회가 끝났고 뒤 8회 중 3회까지 진행했다.

신부님께서 맡으셨던 부분은 장애, 죽음, 종교, 교육이고

나는 가족, 여성, 이주에 대해서 하기로 했다.

 

처음 강의를 준비할 때에는 장애와 영화 강의 준비할 때처럼

키워드에 맞춰서 영화 클립들을 준비해갔는데 가보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최초 신청자들은 연령, 계층, 성별이 다양했는데 다양한 이유로 빠져나갔고

지금 남은 분들은 모두 60대 후반에서 80대에 걸친 여성들이었다.

1회에서는 <로맨스빠빠>를 보았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그 영화는 그 분들이 내 나이였을 때 크게 히트했던 영화이다.

참여자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유명했다고는 하지만 난 영화볼 기회도 없이 살았어"

또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 "영화 보니까 나 고생하던 게 막 생각나"

신부님께서는 강의를 주로 하셨지만 나는 주로 '영화로 이야기나누기 '가 될 것같았다. 

 

하지만 2회차 강의 때 <좋지 아니한가>를 보고난 후 내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로맨스빠빠>에 나오는 그런 가정을 꿈꾸지만

더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는데 어머니와 저의 생각의 차이처럼

그러니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여전히 고민입니다"

 

한 참여자가 내게 말했다.

"아니, 선생님이 그게 고민이라고 말하면 됩니까?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봤을텐데 그것도 모릅니까?"

그 분은 <로맨스 빠빠>같이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좋지 아니한가>처럼 그렇게 세상의 나쁜

면을 부각시키는 영화를 왜 만들어야하는지 기분이 나쁘다고 하셨다.

영화를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방식을 누구나 원하는 건 아니었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꺼낸 한 마디로 '뭘 모르는 부족한 강사'가 되었다.

나는 준비해간 이야기를 쭉~ 했다. 강사처럼. 권위를 가지고.

그 분은 "제가 잘 몰랐는데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흡족해하셨다.

 

강의가 끝나고 담당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 말씀.

할머니들은 권위있는 남자강사를 좋아한다.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그래서 엄마에 대한 3,4회차 강의 계획을 바꿨다.

3회에는 상업영화에서의 엄마, 4회에서는 <엄마...>를 볼 계획이었는데

4회계획을 수정했다. <엄마...>때문에 "저런 집안 딸이었군"이란 말을 듣고싶지않아서.

나는 공감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귄위를 가진 강사여야 한다. 그 분들은 많은 지식을 가진 강사로부터 설명받기를 원하지

영화를 통해 자기를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리 만들어진 교육이었고 나는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울산미디어연대와 함께 하는 여성미디어교육에 다녀왔다.

한 번 더 의뢰를 하셨길래 통화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비행기값이 비싸서 지출이 많으니 선생님이 진행하셔도 될 것같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최근 동네 교육에서 <엄마...>를 보고 어떤 교육참여자가 뛰쳐나가고 싶어했다는

얘길 해드렸다. 울산미디어연대의 교육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참고할만한 교육이다. 워밍업으로 이야기만들기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렇게 세번의 사이클을 거쳐가며 만들어진 영상물은 참 훌륭하다.

그 분이 말씀하셨다.

 

"<엄마...>가 그런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린 처음부터 보지않는다.

두 번 정도의 사이클을 거치고난 후에 본다.

보면서도 꼭 이야기를 한다. 꼭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꺼내자는 건 아니다.

이럴 수도 있다는 거다. "

 

그리고 그 분이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할 때

다큐멘터리 감독이 만든 영화라서가 아니라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가부장제 사회가 주는 심란함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저렇게 다큐도 만들었구나....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야기의 경계가 넓혀진다는 것.

나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정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아무 데서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내 자리를 아주 깊이 깨달았다.

교육은 정말이지 섬세하고 예민하고.....그리고 굉장한 무엇이다.

 

미디어교육 워크숍에 가서 깅이랑 모리한테 자꾸 맡으라고한 교육이 있었다.

교육과 작업 때문에 바쁜 그들이었지만 내가 자꾸 맡으라고 했던 이유는

어떤 교육은 에너지를 뺏기지만 어떤 교육은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었다.

삶에서 부닥치는 작은 문제에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섬세한 촉수를 세우며 고민하는 여성들의 가운데에 있으면

내가 가르쳐야하는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린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동등하게 만날 뿐인 거다.

나는 그래서 교육을 만들고 또 교육에 참여한다.

 

이번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교육들을 만날 것이다.

때론 나는 권위있는 교사가 되어야할 지도 모른다.

때론 다독이고 달래고 또 어르는 아이 엄마같은 태도를 취해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동등한 참여자이고 싶다.

교사라는 이름의 동등한 참여자.

내가 선 자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

당신과 나의 자리는 수시로 바뀐다는 것.

우리는 서로 배운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인문학강의 마지막 키워드는 사진이었다. 영화 속 사진.

애초의 나의 계획은 <8월의 크리스마스>라든지 <연애소설>, <...ing> 등등

무수히 많은 한국영화에서의 사진들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결국 참여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랬다.

권위든 공감이든 시작하는 자리가 어떠하든 결국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남길 바란다.

생활은 항상 짐작과는 달라서 또 어떤 시행착오를 겪을지 모르지만

생각하는대로 움직이고 실패로부터 배우다보면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면

또 나는 새로운 고민들을 하고 있겠지.

그 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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