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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죽음

토요일, 주말농장에 가기 직전 그 사실을 알았다.

12시 가까이 되어서 알았으니 한참 후였던 것같다.

언니에게 전화를 거니 울고 있엇고 엄마도 눈물밖에 안나온다고 하셨다.

남편도 울었다. 나는.... 약간 얼떨떨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슴이 아파온다.

일요일 아침, 그리고 오늘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그의 이름이 떠오른다.

교복을 입은 어린 사진, 그리고 야채행상으로 형제를 키웠다는 어머니의 이야기.

 

언젠가 한나라당 현직 의원들이 극단 여의도라는 이름으로 올렸던 연극을 보았었다.

그 연극 안에서 그들은 그 사람을 지극히 천박한 방식으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비올의 말처럼 그들은, 흔히 상위1%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들 틈에 껴서는 안되는 가난한 인간의 존재를 참아낼 수 없었던 것같다.

그리고 결국 그는 쓸쓸하게 죽어갔다.

죽기 얼마 전에 썼다던 실패에 대한 쓰라린 회한이 담긴 글을 보면 참 불쌍하다.

그런데 그사람에 대한 불쌍함 보다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나 원망같은 게 크게 밀려온다.

 

극단 여의도에서 나경원 의원은 갈래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낭낭하게 편지를 읽었었다.

"그 사람은 미친 사람 같아요" 뭐 그런 내용의 글이었는데

평상시 고상하고 아름다운 척 하는 그녀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그네들의 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 틈에 껴서는 안되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

이물감과 함께 불쾌감, 짜증, 분노를 미친 듯이 드러내고 있었다.

낙향하여 새로운 어떤 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그의 모습 또한

그네들에게는 참을 수없었을 것이다. 지가 감히...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 싶고.

 

<콘스탄트 가드너>라는 영화를 보면

비루하고 지저분한 아프리카 민중들과

새하얀 식탁보에 얼룩 한 점 없는 크리스탈 잔을 든 1세계 양키들이

미학적으로 대비된다.

그러나 테사의 죽음 앞에서 새하얀 양키들은 천박한 욕설을 주고 받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고 땀으로 얼룩진 까만 아프리카 소년은 꽃을 바친다.

그 아름다움의 뒤집힘은 생각보다 크게 마음을 흔든다.

 

<콘스탄트 가드너>의 절망적인 결말처럼 현실 또한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중이었다.

비올이 동력없음을 한탄하며 마음아파할 때 나도 마음이 아팠다.

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우리도 지금 이렇게 집에 있잖아"라고 말할 때

그래, 동력으로 나설 수 없는 생활의 무거움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루하루 아이들 입히고 먹이는 것에 골몰하고

내 앞에 쌓여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허겁지겁 빠듯하게 살아가노라면

이런 우리같은 사람들 때문에 저 1%의 사람들은 아무 두려움없이

자신들의 욕망을 노골화하면서도 아무 두려움없이 웃을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내 안에서 절망을 본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사무실 감독님은 그런 내게

"그렇지만 다들 지켜보고 있는 거 아니겠냐:"라며

그런 식의 절망은 별로 좋지 않다고 위로해주었는데...

1%의 탐욕은 구차하고 치밀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아르코며 아르떼며 영진위며 한예종이며

조금이라도 국물이 있을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샅샅이 뒤져

자기네 사람들로 채워넣는다. 있는 사람들 밀어내서 채워넣는다.

말도 안되는 뻔뻔한 이유들을 붙여가며 밀어넣는다.

그리고 원래있던 사람들은 그 뻔뻔함과 치사함에 혀를 내두르며 스스로 물러난다.

아마도 이제 그들은 그런 식으로 천년왕국을 건설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거칠것없이 내뱉는 조중동이라는 친위대와 함께.

(그런 말을 하는 곳들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같으니...)

 

연달아 침침한 꿈을 꾸는 중이다.

어젯밤에는 옛날 다니던 대학에 총을 든 군인들이 들어와서

시위대들에게 두 손을 들라고 하고

아마도 예전에 같이 활동을 했을 것같은 이들이

얘, 얘, 얘 하면서 시위대 중의 몇 명을 가리키면 군인들이 그들을 트럭에 실었다.

그들 중 몇몇과 함께 도망을 다니다가 일행이 쓰레기장에서 총살되는 것을 보았고

살아남은 나는 지하방에 살며 군인들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서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하은별을 보면 우울해진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거냐?

나는 전직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벼랑끝까지 몰고갈 수 있는

1%의 치밀하고 야비한 복수가 두렵다.

노회찬이 떨어지고 홍정욱이 당선되었던,

이명박이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었던 선거결과를 만들어내는 이 나라가...좀 무섭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원망이나 비판 같은 건 절대 아니고

그저 이런 무서움을 토로하는 일일 뿐이다. 

 

전국적으로 끓어오르는 것같은 이 슬픔도 곧 스러질 것이다.

그러고나면 뭐가 남을까?

궁금하진 않지만 좀 막막하긴 하다.

 

일단은..

인권영화제에 후원을 하고

그리고...당에라도 가입을 해야하는 건가 고민하는 중.

끝없는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힘있는 사람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

그동안 나는 너무나 폐쇄적으로 살아왔던 것같다.

내가 힘을 찾지 않으면 현재의 절망을 더 짙게 하는 것 뿐일테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나중에 후회하든 지금은 움직여야할 때인 것같다.

이렇게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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