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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먹을까봐

1.

출근하자마자 앞글 오린다.

어젯밤엔 어떻게 됐나봐.

 

2.

오늘 부산영화제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14일까지 편집본을 제출해야 하고..

그리고 상영하기 힘들면 그냥 상영 안하게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퀄리티가 떨어지면 그냥 끝! 인거다.

제작지원기금을 받아서 참 미안하고 또 고맙기도 하고

정말 영화만들기만 없으면 행복할 것같다는 시간 안에서도

부산영화제라는 등대가 나를 버티게 해주었는데..

그래 거기까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어제는 사무실 언니를 붙들고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그래서 위로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돌아서면 항상 문제는 그대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저께는 정말 사무실에 오기 싫었다는 것.

구성안이 안풀려서 아....정말 싫어....했었는데

어제 오늘은 빨리 가서 붙여야지...했다는 정도.

예전에 천계영 운운하며 빨리 사무실 가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아직 안오고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한걸음 한걸음 가고 있다.

사무실 언니가 위로해주었다.

니 영화 보면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잖아.

훌륭하지 않더라도 그게 힘일 수 있잖아.

 

내가 무서운 건 차이이다.

언니들이 나한테 "다 그렇게 살았어. 너만 그랬어?" 라고 말할 때

아니 사실은 이렇게 말하지. "니가 뭐가 힘들어. 호강에 초치는 소리 하지 마"

그런 내가 내 삶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면 관객 중에 반 이상이

"저만 애 키웠나' 하면서 스르르 나갈 것같은 그런 상상.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그 힘으로 10년을 버텨왔으니까.

처음엔 생경한 눈빛으로.

나는 한 번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날, 애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

언니들도 선배들도 척척 애를 키워가길래 그냥 저냥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잠을 잘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물 먹을 틈도 없길래

도대체 왜 이런 얘긴 아무도 안해주는 거냐

하고 생각하며 기억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생경함이 사라져있다는 것.

 

지나고나면 내가 그 때 간직하고 싶어했던 그 느낌들을

말로 표현해냈을 때 공감보다는 차이가.

반가움보다는 오바스럽다는 이물감을 선사할 거라는 두려움이다.

 

요즘 하는 일은

가편집본의 모든 컷들을

한 컷 한 컷 맛사지 하는 거다.

나의 의미를 입혀서 다시 순서를 정하고

공들여서 다시 내레이션을 쓰는 거다.

 

감독님이 말해주었다.

아무리 못해도 너희 집 포토앨범이 남는 거잖아.

그러니.... 지치지 말고 해보는 거야.

 

그래. 그러는 거야.

누구도 불러주지 않아도

우린 추억을 볼 수 있는 거야.

 

3.

이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게  

지난 토요일 가편집본을 보여줬더니

강화집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냐만

앵두는 "나는 왜 안나와?', '나 언제 나와/' 하면서 질문을 퍼붓더니

나중엔 뒹굴면서 떼를 쓰기를 "나는 언제 나오냐고???" 하며 절규를 하고

 

하돌은 "왜 누나는 어린 시절이 많은데 난 없어?" 라고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하늘은 다 끝난 후에 씩 웃으며 "하돌이 제일 많이 나오네~!' 하는 거였다.

 

하기사 <송환>끝난 후 장기수 선생님들도

불태워버려~! 하시면서 자기 비중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보기 전엔 좋았던 분위기가 엄청 심각해져서

울고 싸우고 그래서 달래느라 혼났다.

 

정말 쉽지 않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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