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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행복한 상영회' 준비 1탄: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어제 노원상영회를 다녀와서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에, 후회에 가슴을 쳤습니다. ㅜ.ㅜ

지난번 파주 교하도서관 상영도 그렇고 이번 노원 평생학습관 상영도 그렇고

연극놀이가 꼭 필요했던 장이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가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아이들이 몰두하지 못해서 힘들어하시다가 결국 나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행복한 상영회 첫번째도,

그리고 제가 곧 후기를 올릴 두번째 열리는 어린이집 상영회도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준비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사실 그 상영회들은 세상에 없는 것들을 만드는 일이라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겠지요.

 

도서관, 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이 짧았습니다.

도서관이야말로 '행복한 상영회'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데

저는 그동안 극장만 생각을 했던 것같아요.

세번째 행복한 상영회를 준비합니다.

그 준비1탄은...왜 그걸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2탄은....너무 중요하고 또 너무 소중해서 너무 각오와 준비를 많이 하느라

미루고 미루면서 실제 글쓰기를 시작도 못하고 있는 '열리는 어린이집 상영후기'입니다.

사흘 안에 올리도록 할께요.

  

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영화를 한 편 만들 때마다 영화가 실천지침을 한 개씩 보여준다. 2004년 세 번째 영화 <엄마…>를 만들고 나서는 미디어교육에 전념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특히나 여성들이!) 마음 깊은 곳에 보물단지 하나씩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교육이 그걸 들여다보고 꺼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거라 믿었다. 이번에 완성한 네 번째 영화 <아이들> 또한 내게 길을 보여주었다. 거칠게 단어를 만들어보면 ‘여성들의 문화향유권 복원’이다. 나는 요즘 이 실천지침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생각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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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다큐영화 <아이들>의 주인공인 하은,한별,은별. 이 아이들과 함께 한 10여년의 시간은 엄마인 나를 자라게 해주었다. 

 

당신에게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독립영화는 제작 뿐 아니라 배급에 있어서도 상업영화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극소수의 선택된 영화만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뿐, 대다수 독립영화들은 바늘구멍만한 상영기회를 얻기 위해 영화제다, 공동체상영이다, 발품을 팔아야한다. 지난 여름, 부산영화제라는 마감시한을 지키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영화를 만들고 났더니, 웬걸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배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또 죽을 둥 살 둥 몸부림치며 상영을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극장개봉을 못해서? 아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극장개봉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세 번째 영화 <엄마…>가 운좋게 극장상영의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내가 만나고 싶었던 엄마들은 극장에 오지 못했다. 천만 관객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영화는 아무나 볼 수 있는 예술장르가 아닌 것이다.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극장은 멀고 먼 곳이다. 아기가좀 자라서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더라도 엄마들은 신데렐라처럼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톱니바퀴처럼 꽉 차인 일상을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극장 나들이는 ‘맘 먹고 질러야’하는 일이다.  

 

이번에 만든 <아이들>은 기획에서부터 완성까지는 6년, 영화 속에 담긴 시간은 12년인 나름 대작이다. 뒤집기 연습을 하고 첫 걸음을 떼던 어린 하은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의 시간들을 잘라 붙이며, 나는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엄마들을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엄마들은 아이 때문에 쉽게 나들이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더듬더듬 방법을 찾다가 문득 몇 년 전 어떤 여성미디어교육이 생각났다. 그 때 교육을 진행했던 선생님이 “미디어교육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이 봐준다니까 왔다”고 말하던 아기엄마 얘기를 해주었다. 일주일에 단 두 시간이었지만 안심하고 아기를 맡긴 채 자기 시간을 갖고 싶어하던 그 엄마의 열망을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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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나의 세번째 영화 <엄마...>의 한 장면. 내가 엄마가 되어 우리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던 이 영화 덕분에 같은 무늬를 가진 여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두근두근 비밀상영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이들을 위한 연극놀이였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와서 엄마는 영화를,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것이다. ‘반짝’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는 분이 좋은 극장을 3시간동안 쓸 수 있도록 해주셔서 상영공간이 확보되자 나는 교육연극을 전공한 선생님과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돌보미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극장사정상 공개적으로 홍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화와 메일로만 조용히 상영소식을 알려갔다. 초대를 받은 이들은 ‘비밀상영회’라며 나름 즐거워했다. 128석이라는 작은 소극장이 과연 채워질까 하는 궁금증과, 한 번도 해보지않은 일을 한다는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치며 행사 당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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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아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을 기념하고 싶어서 처음으로 포스터 촬영을 해보았다.

 

그 조용했던 놀이방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해서 행사 일주일 전부터는 참가신청을 받을 수가 없었다.특히 아기엄마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참가신청자들에게 나는  다음 기회를 꼭 마련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그리고 그 날이 되었다. 나도, 연극놀이 강사도, 그리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모두들 아이들 놀잇감을 한가득씩 들고 와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극장에 함께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놀이공간에 남았다.

영화가 상영됐고, 이야기손님으로 오신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준비했던 모든 행사가 끝나가자, 행사를 함께 준비했던 친구가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나중에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문을 여는데 애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극놀이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었어. 하도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문을 여는 줄도 모르더라”

행사가 끝나고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멀리서 우리 막내딸 5살 은별이가 “엄마~”하고 뛰어오면서 물고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정말 서로, 그리고 각자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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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영화에선 목도 못가누던 막내 은별이가 이제는 유치원생이 되어서 자기는 학생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첫애 하은이를 낳고서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아기를 보느라 남편과 번갈아가며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요즘 애기엄마들은 참 대단해. 어떻게 저런 어린 애를 데리고 식당에를 오냐? 애가 다 클 때까지 참아야지~!”

세 번째 영화 <엄마…>를 초청상영한다고 해서 기쁘게 찾아갔던 영화제에서 내 영화 말고 다른 영화를 좀 보려고 했더니 자원봉사자들은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아기업은 엄마는 출입금지라고 했다. 나는 초청받은 게스트라고, 아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사정하자 자원봉사자 한 명을 딸려서 들여보내주었다. 말하자면 그는 감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냥 돌아나오는데 서러움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식당에서 만난 아줌마 말처럼 ‘애가 다 클때까지’ 많은 것들을 참았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하는 걸까? 아기키우는 엄마들은 ‘나는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 안의 욕망을 죽여야 하는 걸까? 보통 사람들처럼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면 안되는 걸까? 엄마가 아기와의 관계에서만 행복할 거라는 기대는 혹시나 강요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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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영화가 상영되는 곳이면 우리는 늘 같이 다닌다. 관객과의 대화를 나는‘GV'라 부르고 아이들은 ’무대인사‘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주연배우들인 것이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하기 위하여

나는 네 번째 영화 <아이들>을 가지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처음엔 돌보미선생님만 모시려 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내 생각을 들은 교육연극전문가 선생님이 연극놀이를 함께 진행해주셨다. 그리고 정말 기쁘게도 연극놀이 선생님은 나를 돕는 게 아니라 자기 영역으로 그 일을 받아 안으셨다. <아이들>을 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번엔 그냥 놀이만 했는데 다음엔 주제가 있는 놀이를 해보고 싶어요. ‘동생이 생겼어요’같은 주제로 자기표현놀이를 해보면 영화를 본 엄마와, 연극놀이를 한 아이 사이에 공통의 끈같은 게 생기는 거잖아요~”

 

우리는 지금 더듬거리며 길을 찾고 있다. 한 번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이 길을 꼭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게 성급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엄마가 보낸 문자가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아이도, 저도 행복했답니다”

영화를 만든 나도, 연극놀이를 진행하던 선생님도 행복했다. 미래를 위하여 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더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금 나는 간절히 꿈꾼다. 같이 꾸는 꿈이 길을 만든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당신, 당신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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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행복했던 비밀상영회. 더많은 엄마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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