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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뭇거림

학교에 들어간 하늘이 자주 묻는다.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해?"

매주 화요일은 5교시라 간식을 싸는데 씩씩이 어린이집에서의 습관대로

떡과 과일을 넉넉하게 쌌는데(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하늘은 자기만큼 많이 싸온 애가 없었다고 울었다.

선생님도 다음부터는 많이 싸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같이 집에 다니는 S가 간식을 싸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가 너무 떨어져있어서,

혹은 거기까지 가서 나눠주기가 부끄러워서,

그리고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은 다른 애들보다 많이 싸온 간식을 남겨왔고 그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하늘도, 나도, 하늘아빠도 달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애쓰며 사는 것같다.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3월 3일 입학 이후 매일 하늘의 등하교를 함께 한다.

끝나는 시간에 운동장에 서있으면 적극적인 엄마들은 말을 걸어온다.

어떤 엄마가 내게 어디 사느냐고 물었고 국회단지라고 하니

국회단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함께사는세상'이라고 말했다.

그 엄마는 무척 반가워하고 급격하게 친밀함을 드러내는 제스쳐를 보였다.

나는 성격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리고 그 엄마 얼굴도 잊었다)  

저녁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편이 

"그냥 입구쪽에 살아요"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했다.

왜? 함께사는세상에 사는 게 부끄러운 일이야?

당신은 당신 일터가 창피해?

입밖으로 내지 못했지만 나는 남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기다릴 때마다 자주 만나는 그 엄마는

항상 "하늘 엄마~"하고 반겼다.

(학기 초,하도 많은 엄마들을 만났기 때문에 난 그저 반 엄마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어제, 소풍준비를 하느라 마트에 갔다가 그 엄마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녀의 딸은 하늘과 반이 달랐다.

난 왜 그리 그녀가 나를 반기는지 궁금했지만 같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나에게 뭘 샀느냐고 물었다.

유부초밥이요.

"어머나, 우리랑 똑같네~"(너무 신기한 듯이)

"몇 호에 살아요?"(어디 사는지는 물어보지 않은 채...)

5층에 살아요.

"몇호요? "

남편이 옆에서 팔을 잡아끌었다.

"5층에 집 많아요?"

아니오. 저희집 밖에 없어요.

"그러면 제가 꼭 놀러갈께요."

나는 그제사 그녀가 누구인줄 알았다.

그녀는 내가 함께사는세상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밀감을 드러냈던 그 엄마였다.

집에 돌아왔고 나는 어제부터 걱정이다.

그녀가 언제 우리집에 들이닥칠지 정말 걱정이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마트에서의 대화 이전에 단 두마디를 나눴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 집에 놀러오겠다는 것이다.

평소에 함께사는세상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일까?

내가 인상이 너무 좋아서 친해지고 싶은 것일까?

혹시 보험설계사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나는 오래 전에 겪었던 한 사건이 다시 기억났다.

 

우리가 사는 건물 3츧에는 S터라는 곳이 있다.

S터앞에는 위기가정공동체라는 말이 붙는데 원래는 IMF이후 노숙인들 중

가족단위로 노속생활을 하는 분들이 6개월 정도 머무는 곳이었다.

그리고 1~2년 전 부터는 살곳이 없어진 가족들이 6개월 이상 머물면서

자립생활을 준비한다. 숙식이 제공되고 취업을 알선하며

6개월 이후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S터에서 독립한 분들은 S터 주변에 집을 얻어서 살기도 한다.

 

그 날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하늘, 하돌을 데리고 느릿느릿 계단을 오르고있었다.

고급옷과 고운 화장때문에 손님인 듯, 아마도 3층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듯

그렇게 보이는 분이 나를 보고 "힘드시죠?"한다.

그 목소리는 깊은 울림을 가졌다기 보다는 마치 아나운서의 목소리인 듯

혹은 연기를 하는 듯 경쾌하면서도 과장된 친밀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녀는 여전히 경쾌하고 친밀한 목소리로

"힘내세요.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죠. 자~ 화이팅~ 해보세요"

그녀는 정말로 TV 속 연예인들이 하듯이 힘껏 쥔 주먹을 끌어내리며

화이팅~ 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뻘쭘해진 그녀는 내 아이들에게

"얘들 좀 봐~ 어른보고 인사도 안하네. 나 몰라?" 했다.

하늘, 하돌은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고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 힘내세요~"하며 내려갔다.

정말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운동장에서 내가 '함께사는세상'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밀감을 드러냈던 엄마도 그런 사람이면 어떡하나?

쥬스 같은 것을 들고 갑자기 들이닥쳤다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오는 건 예의도 아니고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내가 반응하면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거나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많아, 라는 식으로 입에 오르내릴까봐 걱정.

(이런 말 쓸 때마다 몸이 스멀거린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우리집 운전사도 가난하고, 우리 집 정원사도 가난하고.."

그런 글을 썼다던 우스개 속 어린아이가 되는 것처럼 부끄럽다.

그녀가 나를 S터 입주자로 오해한 상태에서 저렇게 생각할 가능성을 적은거다)

 

그래서 어제밤에는 청소를 열심히 했다.

혹시라도 찾아오면 친절하게 맞으며 그 분의 호의를 받아들여야할지도 모르니까.

청소를 하면서 그러면서 ..... 정말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에 넘치는 호의도, 눈에 띌 정도의 냉냉함도, 그런 특별한 선긋기는 피곤하다.

세상에 당신과 같은 사람은 누구도 없다.

왜 그런 다름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면서

가난이라든지, 장애라든지, 성적 취향, 한부모 가정이라든지 ....

그런 식의 다름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취급하는가?

 

그냥 그런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혹시라도 누군가가 "사실은 말이야 난 아빠가 없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래서,그게 뭐?"라고 반문할 수 있는 경우는 왜 드문가 말이다.

열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쩔 수 없는 호구조사를 통해 그 사실을 말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엄마가 고생이 많으셨겠네라든지

힘들었겠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나는 그런 게 참 너무나 싫었었다.

아버기가 돌아가신 후 급변했던 동네사람들의 태도를 상기해보면

(매일 집에 와서 형님형님하고 따르던 인간들의 급변하던 태도라니...)

S터 자원봉사자의 태도도, 운동장 엄마의 과도한 친밀감도 정말 피곤할 따름이다.

 

그런데 뭐, 나는 다른가?

나도 그런 식의 태도를 취했다. 온 몸이 따갑도록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날 인터뷰를 끝낸 모 잡지사 기자가 내게 "제가 게이거든요"라고 말하자

나는 갑자기 말을 믾아지면서 내가 보고 있던 책을 두 권이나 선물했다.

이제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더라.

나는 자신을 게이라고 밝히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의 동생(후배??)가

"와, 나 장애인하고 처음 얘기해봤다"라고 신기해하는 것과

갑자기 말이 많아지면서 보고 있던 책을 선물하는 그 과도한 친밀감이랑

다를 게 뭐냔 말이다.

 

좀더 세심하게 돌이켜보면 일상 속 나의 태도에도 그런 점들은 많은 것같다.

우리는 건물 안 사람들에게 항상 열심히 인사한다.

나는 남편이 그래서 따라하고 아이들은 또 우리를 따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인사를 거북해한다.

인사하지 말까?

돌이켜보면 결혼 전에 살던 집에서 같은건물 주민들에게 인사한 적 없었단 말이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나도 어쩌면 S터 자원봉사자와 같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래, 너도 우리를 특별하게 보는 거잖아. 그렇지 않니? '

우리가 공손히 인사할 때 S터 입주민들은 그래서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던 거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어쩔 수없이 경계인이다.

하늘은 S터 공부방에 다닌다.

S터 공부방은 함께사는세상 건물에 사는 아이들, 혹은 함께사는세상 출신의

아이들만 다니는 곳이다.하늘은 언니 오빠들과 신나게 놀고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학교 운동장에서 마주치는 언니, 오빠들은

평소와 다르게 하늘의 인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어제는 운동장에서 골키퍼를 하는 S터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애의 친구가 "누구야?"라고 물으니 S터아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내가 "옆집 아줌마야"라고 대답하니 S터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 머뭇거림.

아직 가난에 대해서, 차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하늘은

그런 식의 머뭇거림을 모른다.

같은 공부방에 다니고 있어도 하늘은 절대 모른다.

 

그리고 난 비겁하다.

함께 집에 오던 하늘의 같은 반 친구 엄마가 '함께사는세상'으로 들어가는 내게

"아, 여기사셨어요? 급식비 안내겠네요~"라고 말하자

"저희는 내요.제 남편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예요"라고 대답한 날,

나는 돌아서서 내 비겁함이 부끄러웠다.

 

나의 모멸은 쉽게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수없이 머뭇거렸다.

이 머뭇거림과 그 머뭇거림 사이.

내가 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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