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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1

다롱이가 죽었다.

 

다롱이가 안보인다는 걸 깨달은 건 '목요일' 아침이었다.

"갔다올께~, 안녕~"하며 인사를 하는데 다롱이 모습이 안보였다.

다롱이가 왜 안보이지? 묻는 내게 하은이는 "자고 있겠지. 늦겠다, 빨리 가자" 채근을 했고

나는 서둘러 기차를 타야 했다. 

금요일, 서울로 돌아오는 KTX기차 안에서 하은에게 전화해서 다롱이가 돌아왔는지 물었다.

하은이는 "엄마, 아빠가 다롱이 다른 사람한테 줬대"라고 말을 했고

깜짝 놀란 나는 그 때부터 다롱이를 찾기 시작했다.

KTX에서 보내는 문자는 자주 실종되었다.

다롱이의 거취를 책임졌던 장애인센터 선생님께 여러 번 전화를 해서

인천의 한 식당에서 잔반처리할 개가 필요하다고 해서

거기로 다롱이를 보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다음 주 중으로 다시 데려오겠다는 센터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내일이라도 내가 데려오겠다고 했다.

 

나는 여러 번 '다롱이가 살아있느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아마 그럴 것이라고, 키운다고 해서 보냈다고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이런 일을 당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언니 등록금이 없어서 집에서 키우던 짱구와 멍구를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장사가 안되던 가게 마루에 앉아서 떠나가는 짱구와 멍구의 뒷 모습을 보았다.

참 순하게도 잘 따라가던 그 애들.

며칠이 지나고 그 애들을 보려 이웃마을에 가려고 하자...엄마가 그 집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했다.

 

서울에 살 때 장애인센터가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진돗개였던 황진이와 아롱이의 거취를 알아보다가

서산에 있는 기러기농장에서 개를 맡아준다고 해서 보냈다.

몇 달 후 장애인사업장들 모임이 서산에 있어서 

황진이랑 아롱이가 잘 있는가 보러오라고 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벌써 하늘나라 갔지.

짱구나 멍구도 아마 그렇게 세상을 떠나갔을 것이다.

다 자란 개들을 데려가는 경우는 직접 가서 확인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지 않으면 그렇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다롱이를 데려간 사람과 밤 10시가 넘어서야 통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나는 여러 번 전화를 했고...

센터 선생님은 통화가 안되었다고 토요일 아침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인천의 그 곳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나 나는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논문이 끝나면 다롱이와 별이와 보미를

정기적으로 산책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미안해 애들아, 이제 열심히 같이 다닐께...그런 다짐.

 

토요일 아침, 센터선생님과 문자도, 통화도 되지 않았다.

친구는....그렇게 빨리 무슨 일이 있겠냐며 좋은 생각만 하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토요일 11시에 남편이 전화했다.

"... 다롱이 잡아먹었대"

 

그때부터 오늘 아침까지의 시간을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로 지나왔다.

주로 표출된 감정은 분노였다.

남편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침통할 겨를이 없었다.

"누가 먹었대?"

센터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입장이 난처하다고 했다.

"그래요? 선생님이 난처하시면 저는 어떨까요? 저는 어떨 것 같아요?"

늘 착한 '척' 지내던 내가 그렇게 변해가는 게 그 선생님은 놀라웠겠지.

본능에 충실한 시간이었다. 나는 반쯤 미쳤을 것이다.

가만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저기 수소문해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태다큐를 만드는 동료감독은 반려동물에 대해서 정해진 법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겨우 민사소송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몰래, 혹은 강제로 데려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남편이 자진해서 넘겨준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울었다.

하은이와 한별이는 "다롱이는 많이 만져주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며 울었고

은별이는 예전에 하늘나라로 간 순돌이와 집 나간 모모 얘기까지 하며 목놓아 울었다.

남편과는 함께 울 수 없었다.

... 토끼사건 때 좁히지 못했던 그 거리감은 이렇게 비극으로 돌아왔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우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소를 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남편을 원망해도...

다롱이는 살아돌아오지 않았다.

센터 선생님이 찾아왔지만 눈과 목이 부어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하지만 선생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다만....다롱이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다롱이는 일요일날 끌려갔다고 한다.

다롱이가 끌려가던 그 순간을 내가 안다.

그날 나와 아이들은 집으로 오는 비포장도로 옆에서

오디를 따고 있었다.

오디를 따고 있는데...센터 선생님의 트럭이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그 트럭에 센터 선생님이 아닌 낯선 세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 남자들이 나를 봤고 내가 그 남자들을 봤다.

적대감이...알 수 없는 적대감이 생겼지만.... 그건 너무 더워서...라고 생각했다.

그날 정말 너무 더웠으니까.

 

우리가 오디를 따지만 않았더라도 다롱이가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롱이는 낯선 트럭에 실려서 그렇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들의 냄새, 우리들의 소리를 다 느꼈겠지.

인사도 못하고.

 

선생님한테 다시 물었다.

"다롱이는 죽어서 실렸나요? 왜 그 트럭이 지나갈 때 다롱이는 조용했을까요?"

나중에 알아본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인천으로 실려가서 사흘 쯤 있다가 알약을 먹고 죽었다고 합니다. "

 

그러면...월요일에 맛있는 밥을 주려고 내려왔을 때

별이와 보미를 준 후에 다롱이 집을 찾아갔었다면...

그 때 내가 다롱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면...

그 때 내가 다롱이를 찾았다면..

다롱이는 살아있었겠구나...

그날 그 맛있는 밥을 보미가 다 먹어버려서

다롱이는 못 주겠네... 하고 그냥 집으로 올라와버렸다.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다롱이는 너무 힘이 세고

다롱이는 별이를 자꾸 물어서

주간보호센터 뒷편에 혼자 있었다.

다롱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 남편은

그 곳이 더 시원하다고 말했었다.

 

다롱이는 낯선 곳에서 사흘을 더 있다가

알약을 먹고 죽었다.

그래도...맞아 죽지는 않은 거지...

그래도...맞아 죽은건 아니라서..다행이다... 다롱아.

 

2011년에 우리 집에 온 다롱이를 보면서

나는

내 평생에 저렇게 교감이 안되는 반려동물은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다롱이는 우리 집에 온 세 번째 강아지였다.

첫번째 강아지는 그 전 주인이 두고 간 별이.

두번째 강아지는 초롱이.

초롱이가 집을 나간 후 강화 들판을 헤매던 우리들에게

콩나물 공장 반장님이 데려다준 강아지가 다롱이였다.

다롱이는.... 아마도 장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만했다.

그 애는 밤마다 깽깽거리며 울었고

하은이 옷에 똥을 쌌고

산책을 나가면 너무 빨리 뛰고 너무 힘이 셌다.

다롱이 산책 시키다 넘어져서 내 바지와 내복에는 구멍이 났고

그 구멍들에 천을 덧대어 꿰매던 엄마는

옷이 이렇게 구멍날 정도면 무릎에서 피는 얼마나 많이 났겠냐고 한심해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롱이는...

다른 애들보다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차차 우리랑 친해졌다. 

내가 밥을 가지고 가면 양말이 젖도록 발을 핥아주었다.

다롱아, 제발 그만 좀 해라...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주면 헉헉대며 먹던 다롱이

내가 가면 늘 무릎을 꿇던 다롱이.

우리는 자주 다롱이 흉내를 내며 웃곤 했었다.

어느 날은, 다롱아, 하고 엉덩이를 치자

뿡, 하고 방귀를 뀌어서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었는데.

 

하은이가 산 애견백과사전에 나온 '챠우챠우' 사진은 다롱이와 똑같았다.

챠우챠우라는 종의 기원을 알아보던 하은이가

"엄마, 중국말 '챠우'가 우리 말로 음식이래. 그러니까 다롱이네 종은 '음식음식'인 거야."

하며 정말 다롱이 성격에 잘 맞는 이름이라며 감탄하기도 했었다.

겨울에 빙판길을 다롱이와 함께 걸으면 저절로 개 썰매가 되었다.

동물학대야, 하는데도 하은이는 즐거워했고

하은이를 끌고 끙끙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다롱이.

 

겨울 이후엔 다롱이와 산책을 하지 못했다.

다롱이는 너무 힘이 세서 끈을 여러번 끊어먹었고

그래서 끈이 아닌 사슬에 묶여있었고

그 사슬도 여러 겹이었다.

그런데도 다롱이는 여러 번 그 사슬을 풀었다.

너무나 꽁꽁 뭉쳐진 사슬 때문에

몇 번 산책을 나갈 때에도 다롱이는 산책에서 제외되었다. 

다롱이를 산책시키기 위해서는 새로 끈을 마련해서 바꿔매야만 했지만....

그동안 나는 끈을 마련하지 못했다.

끈을 마련하지 못해서 남겨진 다롱이는

나도 데려가 달라고 보채며 컹컹댔다.

......

미안해. 다롱아....

미안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데..

밤이 되면 정신은 투명하게 깨어나서

그 순간, 내가 놓친 그 순간들이 손에 잡힐 듯이 살아온다.

그 때....오디를 따지 않고 집에 왔으면...

그 때....다롱이를 한 번만 살피러 갔으면....

그리고 그렇게 아슬아슬 비껴가는 그 순간에...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알 수 있었을 그 순간에....

하지만 비껴가서 몰랐던 그 순간에...

이 모든 순간을 다 알고 있는 '그'가 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다롱이를 그렇게 무신경하게 떠나보낸 '그'가 있다.

'그'를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러고나니..... 정작 다롱이를 위해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뒤섞인 감정들을 분해하고...

줄을 세우고...

그리고..애도하고 기억하고 제대로 떠나보내야하는 것을

가장 앞에 놓아야하는 거다.

미안해....다롱아.

후회나 미움이나 안타까움 같은 거는 뒷줄에 세우고

지금은 너를 애써 기억해내고

너랑 같이 좋았던 그 순간들을 떠올릴께.

함께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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