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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2

어린 시절부터 한심해하는 눈길을 자주 받았었다.

가게의 쥐를 잡게 하기 위해 데려온 고양이는

밤이면 내 품에 안겨서 자기를 바랬고

내 옷에 발톱을 박은 채 안 떨어지려는 고양이를 보며 언니는

"너한테는 마녀의 피가 흐르는가보다" 라고 했었다. 

밥을 먹을 때면 밥상 아래에서 내가 주는 맛있는 반찬을 기다리던 고양이.

내 걸 덜어서 주는데도 번번히 혼이 났다.

 

어린 시절에 내 친구는 개와 고양이였다.

나는 고양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고양이와 함께 놀았다.

내가 숙제를 하고 있으면 고양이는 움직이는 연필 끄트머리를 앞발로 살짝살짝 건드려서

그러지 말라고 머리를 꽁, 하고 때려주기도 했었다.

물걸레질을 한 방바닥에 밖에서 놀다 들어온 고양이가 발도장을 찍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애들이 내 말을 들어준 건 아니었지만.

 

구슬 굴리기....

손으로 유인하기...

나 한 입, 너 한 입 하며 하드를 함께 나눠먹던 백구도 있었고

껌을 잘 씹어서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던 메리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늘 그 애들과 함께였다.

나비나, 야옹이, 백구나 메리. 바로 그 애들 때문에

내 유년은 외롭지 않았다.

서울생활이 힘들었던 건 그 존재들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 애들이 사라진 틈을 나는 공부로 채웠다.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29살에 처음으로 독립이라는 걸 했을 때

나는 다시 반려동물을 만났다. 

하지만 방을 구할 때부터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집주인은 고양이 얘기를 했다.

처음 집을 보러 갈 때 복덕방에서"고양이랑 함께 삽니다"라고 말하자

"자기 집인데 고양이를 키우면 어떻고 개를 키우면 어때요?"라고 말했던 집주인은

나중에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준다던 전세보증금은 안주고

고양이 얘기를 하며 냄새난다고 불평을 했다.

내 집에 함께 머물던 내 반려동물에 대해 그 사람이 불평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일은 행복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의 반려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힘들다.

2년 전에 순돌이가 병으로 죽어갈 때,

아니다...순돌이는 강아지 시절부터 아팠다.

데려오자마자 토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빈혈이 심하다고 해서 수혈을 했었다.

그 때 30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지만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다.

강아지한테 그 돈을 썼다는 걸 알면 사람들한테 욕을 먹었다.

무엇보다 나는 청빈해야할 사제의 아내였으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강아지에게 들이는 돈은 사치와 동격으로 여겨졌다.

작년에 순돌이가 죽어갈 때에도 병원비는 50만원이 넘게 나왔지만

통장의 돈을 다 털어넣으면서도 엄마한테는

친구가 공짜로 봐준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반려동물 병원비는 나의 경제규모에 벅차다.

눈병에 걸린 모모의 치료비가 5만 5천원이었다.

의사가 모모를 위해 해줬던 건 안약을 준 것,

그리고 그 안약을 면봉에 짜서 눈에 넣어준 것이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 만큼의 비용을 군말없이 내지만

동물병원비가 비싸다는 말을 반려인이 아닌 사람들한테는 할 수가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않는다.  

 

슬픔에 대해서도 쉽게 공감받지 못한다.

다롱이가 그렇게 죽어간 후

함께 슬퍼해준 사람은 아이들이었다.

함께 울어준 사람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내 친구였다.

센터선생님과 남편은 내 반응을 보고 놀라고 내 반응 때문에 뒤늦게 미안해했다.

나는 다롱이와 별이와 보미의 얼굴을 안다.

다롱이와 별이와 보미도 나와 아이들의 얼굴을 안다.

서로 다른 종들끼리 얼굴을 알아보는 관계.

우리는 시간과 삶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아침이면 남편은 개들의 밥을, 하은이는 냥이들의 밥을, 그리고 나는 사람의 밥을 준비했다

우리는 그렇게 역할분담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아침마다 남편은

개들의 대변을 치우고 맑은 물과 사료를 주었다.

사람 밥이나 냥이들의 밥을 주는 것보다 

개들의 밥을 주는 게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 그 일을 했었으니까 나는 그 힘듦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게 역할을 분담한 후에 안타깝게도 애들 얼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다롱이, 별이, 보미 뿐 만 아니라 하은, 한별, 은별의 얼굴 또한 자주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아침밥상에서 주고받는 대화 때문에

하은, 한별, 은별에 대해서는 다롱, 별이, 보미보다는 더 잘 안다.

 

아이들은 '만져준다'고 표현한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만져준다.

하은의 학교 숙제 중에 '부모님한테 자주 듣는 말'  다섯 개를 쓰는 게 있었는데

그 중 두번째가 "개 만지지 말아라"였다.

아이들은 늘 개를 만지고 개하고 놀았다.

그리고 개들은....

하루에 단 한 번, 혹은 두 번 뿐인 그 시간을 늘 기다렸다.

그랬다.

돌이켜보면 그애들은 늘 그렇게 기다렸다.

 

논문심사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고쳐할 게 많다.

이 논문만 끝나면.....

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서

개들과 산책도 하고 더운 여름엔 목욕도 시켜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논문심사가 끝난 그 주에

도서관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빌렸다.

'명탐견 마사의 일지 '라는 책에 등장하는 하라쇼라는 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정말정말 반성했고 우리 애들한테 미안했다.

정말 미안해... 산책도 자주 하고 잘 놀자...라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다롱이가 죽었다.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온다.

더이상 후회하지 않기를.

 

이번 주 토요일에 다롱이를 위한 추도식이 열린다.

성북 나눔의 집 민숙희 사제님이 맡아주신다.

좋은 기억을 모으고 좋은 마음을 모아서

다롱이의 명복을 빌고 싶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금요일부터 시작된 나의 노력과 슬픔을

이해받았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다롱이를 위해 추도식을 드릴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다롱이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 우리들의 슬픔에 대해서 

그것이 100프로는 아니더라도 이해했다는 거다.

 

다롱이는 '개 한 마리'가 아니다

아니다.

내가 하나의 사람인 것처럼 다롱이는 한 마리의 개이다.

나라는 사람의 삶과 사연이 존중받아야하는 것처럼

다롱이라는 개의 삶과 사연은 존중받아야했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옮겨져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책임지겠다고 나섰던 사람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사과하고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센터 선생님은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잘 알아보지 않은 자기의 잘못이라고 사과한다.

나는 센터 선생님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그 선생님한테 서운하다.

다롱이를 알약으로 살해하고 그 시신을 먹은 자들은 한 치의 미안함도 없이 살아갈 것이고

비슷한 일을 또 저지를 것이다.

우리들의 슬픔은 그들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롱이를 추억하고 영혼의 평화를 비는 일 밖에 없는 것같다.

아니,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자꾸 미안함과 후회와 원망이 덕지덕지 묻어나서

투명한 마음으로 다롱이를 생각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애도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롱아 미안하다.

다음에 만나면 같이 산책가자.

너를 잊지 않을께.

너와 수많은 너들을.

잊지 않을께.

나의 삶에 깃들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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