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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

1.

7월 29일 논문 발표 이후에 논문 컴은 켜질 않는다.

인터넷 할 일이 있으면 폰으로 확인하고

어쩔 수 없이 컴 쓸 일이 있으면

"지금 외부라서...." 어쩌고 저쩌고 뻥을 치면서 그냥 넘어간다.

보름만에 컴 앞에 앉았다.

정확히 말하면 17일만인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논문은 열어보지 않은 채

새로운 일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컴을 켠다.

 

2.

문득문득 생각을 했다.

나는 어울리지 않은 곳에 간 것일까.

나는 2011년에 공부를 시작했고

2012년에 전과를 했다.

그리고 2013년 7월에 논문을 완성한 후에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소위 '학계'라고 하는 곳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겠다....

 

물론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이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냥 여기까지.

힘닿는만큼 일하고

상식과 예의로 일상을 영위해갈 것이다.

정말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3.

영진위에 제작지원을 했고 면접을 앞두고 있다.

하나의 패착은

제작비를 너무 적게 쓴 것이다.

2년 6개월동안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있었고

제작비를 쓴다고 열심히 써보았지만

변화된 환경을 내가.....파악하지 못했다.

논문제출하고 바로 다음날 마감에 쫓겨가며 쓴 터라

동료들하고 상의할 틈도 없었다.

어쩌지? 포기할 것인가, 밀고 나갈 것인가

지금 나의 고민.

 

4.

엄마는 잘못이 없다. 나도 잘못이 없다.

이건 각자의 자존감, 혹은 각자의 세계에 대한 입장, 그리고 일상을 영위하는 태도의 차이일 뿐.

일주일간 다섯 아이를 건사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나는 오늘 처음으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와서 밥상이 어떻고...하면서

어지러진 집에 대해서 한마디 했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잔소리 할 거면 우리 집에 오지 마"

 

엄마는 노여워하며 당신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사과할 마음이 없다.

이 집은 나의 집이다.

내가 엄마 집의 살림살이에 지적질을 하지 않는 것처럼

엄마 또한 우리 집 살림살이에 지적질 하지 말아야한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어질러져있다 하더라도

그건 내 일이다.

 

5.

어떠한 정신노동없이 보름을 지나온 후에도

정신노동에 대한 욕구가 없다.

그렇다고 돌아갈 자리에 대한 욕구도 없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6개월은 기뻤다.

사유한다는 것의 기쁨을 그 때 알았으니까.

그 다음 6개월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나의 거취를 결정해야 했을 때

나는 고민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도작파하고 일터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학교로 진학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코스웍을 마치는 것을 선택했다.

가장 근접한 과를 골랐고 그렇게 1년 6개월을 지냈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는 일은 참 싫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다 그렇게 힘들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7월 마지막 주에 참고문헌을 정리하면서

그 많은 참고 문헌 중에서 지도교수가 말해준 건 단 한 편도 없다는 걸 알았다.

당연하지.

나의 6개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내게 사유와 성찰의 길을 알려준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이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열심히 써가다가

논문 막판에 지도도 없으면서 지도를 확인하려고 하는 지도교수의 기분을 맞추느라

'나는 당신의 지도를 받았습니다'라는 표식을 논문에 기입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쓰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 방식이 아니다....'

나한테 학위가 필요한가...학위 때문에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내 안의 반발이 치솟을 때면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문득 또 생각하기를 '이건 나의 이름으로 쓰는 나의 글이다'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왔다.

그리고 여지없이. 늘. 막판 스피치를 올려야할 때면 뜬금없이 내려지는 목차 조정 지시.

결국 심각한 대립이 있었고

이런 저런 부침 끝에 졸업이라는 걸 할 수는 있었지만

이 논문은 어디에도 내놓고 싶지가 않아서 원문공개를 거절한 상태.

 

다시 한 번 묻는다.

나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 간 것일까?

막판에 다 집어치우자고 생각할 때

지나가다 그 히스테리를 다 지켜본 착하신 신부님이  말했다.

"정의롭지 못하다니...어디서나 통용되는 정의가 있을까요.......

함께 고생한 가족을 생각해야지요....."

그래서 다음 주에 졸업을 한다.

다시는 돌아보고싶지 않은 그 곳엘

한 번은 가야한다니

웃으면서 갔다가 웃으면서 돌아나와야지.

 

2년 6개월의 교훈:

장고 끝에 악수, 더 이상은 말자.

다큐멘터리감독이라는 내 중심을 생각하며

이제는 정박해야할 때.

애썼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나는 긴 시간의 인내를

한 방에 무화시키고야 말았다.

어디 가지 말고 쭉~~~~ 하던 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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