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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아침에 몇몇 사람의 글에서 '울었다'라는 표현을 본 후에

(그러니까 '~~해서 울었다', '이만한 일로는 울지 않는다'와 같은)

울어본 지 참 오래되었다는 걸 발견했다.

여름부터 이상한 징후에 휩싸이더니 10월 1일부터 격렬한 변화를 맞고 있다.

걱정이 취미였던 엄마를 닮아버려서 나또한 한동안 그러했던 적이 있었지만

<아이들>의 마지막 나레이션처럼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나를 불안하게 하지만 삶은 항상 지금 여기에서 이뤄진다는 걸 믿고 싶"어하며

살아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다 갑자기 삶에 위기가 닥쳤고

그동안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살아오느라 저금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큰 돈이 생기면 기부를 하거나 빌려주는 것으로 예금잔고를 줄여왔던 것도 생각났다.

(기부한 돈들은 사라졌지만 빌려준 돈은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

그리고 10월 이후에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이 많아 '내 몸엔 수분이 너무 많은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울어본 적이 기억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울컥 했던 건 2주일 전 엄마와의 통화.

엄마의 전화는 매번 콩은 익었더냐, 녹두는 땄느냐, 서리는 내렸느냐에서 시작해서

냉장고 어디 몇째칸에 있는 어떤 반찬은 쉬는데 잘 찾아먹었느냐

애들 옷은 잘 찾아입혔느냐.....

가끔은 집나간 고양이는 들어왔느냐 와 같은 폭넓은 안부를 묻고

"집에 일찍 들어와서 애들 건사 잘 해라"와 같은 당부로 끝을 맺곤 한다.

 

그런데 그날 엄마는 

"미예야(엄마는 늘 나를 이렇게 부르신다. 이게 원래 내 이름이니까)....

내가 너를 보는데 힘이 없어보이더라. 

사람은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게 마련이고

이번 일도 그냥 당연히 오는 일이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애들하고 잘 지내라.

건강하면 그걸로 되는 거다" 하셨다.

나는 의아해하며 그리고 뜻밖의 엄마의 훈화말씀이 재밌어서 웃으며  

"나 힘없지 않은데? 나 아무렇지 않은데? 나 괜찮아~" 했는데

엄마는 그 때부터 우기기 시작했다.

"아니다. 너 힘 없다. 니가 이번 일로 고민하는 거다"라고 했고

나는 "진짜 아니라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앞으로 살아갈 계획도 다 세웠고 아무 걱정 없어"

라고 했고 그렇게 우기기를 계속하던 엄마는 결국

"아무튼 내가 보기에 너 힘 없는 거 맞으니까 마음 굳게 먹고 잘 살아라" 라고 말을 맺으셨다.

 

울컥임은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엄마한테 "나 힘없지 않은데? 나 괜찮아" 하는데 갑자기 울컥 했다.

그 울컥임이 뜻밖이라서 혹시 나 지금 나 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거였던가, 라는 의문이 솟았다.

그리고 그 무의식까지 점령한 방어가, 엄마 앞에서 흔들렸던 건가.... 하는 의문.

사실 최근 한 달은 내가 생각해도 좀 나의 태도가 좀 이상하긴 하다.

나는 사실 소심한 사람이고 작은 일에도 깊이 상처받는 사람이라서

20대의 나에게 푸른영상 선배들은 늘 너는 너무 예민해, 너는 너무 마음이 약해...에서 시작해서

다큐멘터리 감독은 마음이 더 굳세어야 한단다, 라는 걱정을 하긴 했는데

최근 한 달 여동안 나의 마음엔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밀양에 가있었던 5일동안, 그 5일의 마지막날에 109공구의 할머니가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왔노?" 하고 물었을 때

나는 그때서야 '아, 나한테 아이가 있었지'라고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근거지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마도 남편은 강화를 떠나야할 것같고

내년에 각각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되는 하은, 은별,

친구들과의 공놀이에 한창 빠져있는 한별 때문에 나와 아이들은 강화에 남아야할 것같다.

5년 전, 서울에서 강화로 이사왔을 때, 강화에서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새삼 느끼며

이 풍요에 익숙해지지 말자, 라고 결심했지만

다시 도시로 떠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중2때, 고1때 전학을 겪으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나는

그래서 아이들이 나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집이 없다.

주말이면 강화의 동네들을 돌며 집 구경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집 구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을 해놓긴 했는데

집이 없다.

다행히 빌라는 있지만 그리로 들어가려면

별이, 보미, 토토, 미오를 다른 데에 맡겨야 한다.

다 큰 개와 다 큰 고양이를 맡아줄 데는 없다.

그리고 다롱이 사건 때 주장했던 것처럼 

하은, 한별, 은별 처럼 별이, 보미, 토토, 미오도 우리 가족인데

생이별을 할 수는 없지.

 

아직 11월이니 3개월이나 시간이 남아있다.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야야해.

상황이 안좋은데 마음까지 안 좋아져버리면 그건 내 손해니까.

좋은 생각, 좋은 생각.

그리고 밝은 미래

그것이 지금을 견디는 방법.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밤새 창고방이 추워서 아침이 되자마자 현관으로 들어온 아이들

 "아웅 졸려~ 나가려거든 빨리 나가"

네네~~ 쓰레기 얼른 버리고 살금살금 들어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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