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진화

1. 2004년,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엄마...> 편집을 하고 있는데 방송이 들렸다.

"주민 여러분, 지금 음식물 분리수거통을 무료로 나눠드리고 있으니 나와서 받아가십시오.

내일부터는 돈을 내고 사야하니 지금 나오셔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돈을 내야하는데 지금은 공짜라고 하니 사무실 동료와 같이 얼른 내려갔다. 

사무실 음식물 쓰레기는 늘 처치곤란이었으니까.

 

사무실 바로 앞에 금산농협 마크를 단 트럭이 서있었고 나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두 명의 남자는 음식물 분리수거통을 무료로 나눠주는 건 자신들이 금산농협 홍보요원이고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돈을 내는 대신 자기들 말을 들어달라고 했다.

빨리 통이나 주지....하는 생각으로 서있던 나는

대답 크게 하거나 퀴즈를 맞추는 사람한테 결명자차, 비누 같은 걸 주는 걸 보고

열심히 참여했다.(동료 또한 열심히... )

마지막 선물은 금산인삼 농축액이었다!!

그런데 인삼은 원래 한 통만 먹으면 안 되고 두 통을 먹어야되기 때문에

한통은 공짜로 선물로 주고 나머지 한 통은 사라고 했다.

모여있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돌아섰지만 일부는 남아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받아갔다.

동료는 한 통 받는 사람에 뽑히긴 했지만 나머지 한 통을 사야한다는 말에,

그리고 그 한 통의 값이 20만원 가까이 되어,

못하겠다고 했는데(그 때 내가 옆에 서있었는데)

동료한테 화를 내는 걸 보고

'이 사람들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2. 얼마 후 사무실의 다른 동료의 반려인이 비슷한 일을 당했고(그 경우도 인삼이었다)

몇 백만원 어치 계약서를 썼고,

나중에 반품을 하려고 하니 계약위반이라고 해서

그는 법적으로 해결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써야했다.

 

3. 2014년 3월, 동네찜질방에 갔다.

계란을 먹고 <감격시대>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방송이 들렸다.

순창고추장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으니 받으러 오라고 했다.

딱 20명만 준다고 했다.

집에 고추장 많은데....하면서도 바로 옆에서 비닐봉투를 나눠주며

"이 봉투를 받은 사람만 고추장을 준다"고 하고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나도 구경을 갔다.

이 분은 마천농협에서 오신 분이었다.

마찬가지로 크게 대답을 하거나 퀴즈를 맞추면 블루베리 얼굴팩, 블루베리 비누를 줬다.

그 사람은 마천농협에서 블루베리 홍보요원의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처음엔 약장사 아니야? 하고 미심쩍어하던 사람들은

비닐봉지를 선착순으로 주는 과정에서 관심을 가지더니

중간에 틀어주는 영상물을 보면서 그 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듯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정말 놀라웠던 건 영상물이었다.

영상물은 <생로병사의 비밀>과 <6시 내고향>과 자체제작한 영상물이 교묘하게 섞여있었다.

<생로병사의 비밀>에는 블루베리 복용으로 시력이 좋아진 한 연예인이 등장한다.

미국에 휴가를 갔다가 블루베리 얘기를 듣고 규칙적으로 복용했더니 눈이 좋아졌다는 거다.

<6시 내고향>에서는 블루베리 수확 농가를 찾아간 리포터가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은 블루베리 과수원에서 블루베리를 막 따먹자

농부가 "아유~ 이게 하나에 얼마인지 아세요? 한 알당 320원이예요~!" 라고 말하고

리포터는 더 열심히 따먹는다.

리포터가 따먹는 손 마다에 320원,320원, 320원 하는 자막이 우수수 달린다.

세번째 영상물은 마천 농협 앞에서 찍은 거였다.

양복입은 한 남자를 <6시 내고향> 삘 나는 리포터가 인터뷰한다.

남자는 말한다. "저희 마천 농협에서는 질좋은 블루베리를 100% 원액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구입을 원하시는 분은 마천농협으로 직접 연락하시거나 홍보팀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영상물을 틀어주고 중간중간 소개하는 동안

객석(?) 에서는 "이거 사려면 어떻게 해야해요?"하는 질문이 두 번이나 쏟아졌고

홍보요원은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면서 어머니 반응에 힘이 난다고

얼굴팩을 또 나눠줬다.

모든 영상물이 끝나고 홍보요원은 ,마천 농협에 연락해서 직접 구입하셔도 되지만 

지금 구입하시면 특가에 모실 수 있다, 라면서 신청서를 나눠줬다.

내 옆에 남자는 신청서에 찍혀있는 마천농협 홈페이지 주소를 갤럭시탭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홍보요원은 "마천농협 찾아보시는 거예요?"하며 너그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당연히! 그 홈페이지의 주소는 틀림이 없었다.

 

신청서를 낸 사람은 고추장까지 다섯개의 선물을 받고 나갔다.

옆에 사람이 고추장을 달라고 하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다 끝나고 나면 주겠다"라고 했다.

신청서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곳에 작성한 주소지로 블루베리와 함께 지로용지가 발송되면

받고나서 입금을 하면 된다고 되어있었다.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빈 신청서를 가져가지 말고 내라고 했다.

2004년의 음식물 분리수거 통과 2014년 순창고추장. 

 

홍보요원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결국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느라 내 옆을 지나가는데 이마와 귀 뒤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그 땀을 보고 어쩌면 사기일지도 모르는 그 일들을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