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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기억들

 

정리를 안해서인지 전신마취 때문인지 기억이 뒤죽박죽

1.  2월 9일인가 10일쯤 고흥아저씨(이 아저씨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장을 할애해야함)가 

보내주신 굴로 엄마가 젓갈을 만드셨고

그것을 먹던 남편이 굴의 파편 때문에 이가 깨졌다.

그리고 13일 월요일에는 나의 임플란트가 빠짐.

그래서 이참에 치과 검진도 받고 부산 동생네 집에도 가보자 해서

치과 예약을 하고 부산여행계획을 짰다.

14일 화요일에는 강이네병원에 가서 정기검진도 받았다.

정기검진 때 초음파 검사를 하는 이가(여성이었다) 담낭에 1.2cm 크기의 혹이 두개다 있다고

담낭벽도 두껍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저 그런가했다.

수면내시경까지 모든 검진을 끝내고 집에 돌아옴.

15일 수요일에는 남편 차례.

남편의 초음파검진을 담당했던 사람은 남자였는데(나도 원래 매년 이 사람에게 받았다)

남편 이야기를 듣고 내 검진기록을 본 후 지금 즉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나는 그 때 서울에서 회의중이었는데 남편의 연락을 받고 다시 강이네병원으로 갔다.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8시간 금식을 해야 해서 4시까지 대기.

그리고 초음파 검사. 결과는 다음날 나온다 했다.

집에 돌아와서 웹서핑을 해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니까 담낭에 작은 돌이 많은 건 콜레스테롤 때문이라 걱정할 건 아닌데

큰 게 하나 있는 게 문제라고. 그리고 그것이 돌이 아니라 혹인 경우가 문제.

혹이 1cm 이상이면 암일 확률이 높은데 담낭암 1기는 암이 담낭 안에만 있으니 잘라내면 되고

담낭암 2기는 주변에 번진 상태이니 담낭을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해야 하고

담낭암 3기인 경우는 2기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데 예후가 좋지 않아 생존율이 10%라고 한다.

그런 저런 내용들을 보는데 내가 해야할 일 리스트들이 머리 속에 주루룩 올라감.

하은이 기숙사 입소준비는 어떡하나,

한별이 생일선물로 휴대폰 골라야하는데,

은별이는 누구랑 철판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나

그리고나서야 영화 생각이 났다. SP형이 고생해서 2년이나 미뤄줬는데 완성못하면 너무 미안한데...

 

담낭암 증상 중에 얼굴이  노랗다는 게 있어서 거울을 보니 정말 내 얼굴이 노란 거 같아서

"나 얼굴 노래" 그랬더니 애들이 "엄마, 정말 얼굴이 노래!" 했다.

어머, 나 어떡하니.

그리고 목요일 12시에 강이아빠가 전화해줬다.

CT결과 혹은 아니고 돌이라고. 큰 돌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슬러지가 끼어서 혹인 줄 알았다고.

담낭이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니 절제하는 게 좋겠다고.

한의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 강이네와 통화해서 수술 날짜를 23일 목요일로 잡았다.

수술하기 전에 할 일들이 많았다.

일단 금요일 부산행 기차표 5개 중에 1개를 취소해야 했고

동생네한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한별의 핸드폰 주문, 은별 철판아이스크림 체크, 하은 기숙사입소준비.

 

2. 

18일 토요일에는 은별과 서울로 철판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여행을 한 건데

은별과 은별의 친구는 광장시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대학로 철판아이스크림-광장시장 마약떡볶이- 집

이렇게 계획을 잡았는데

대학로에 가보니 겨울에는 철판아이스크림이 안나온다고.

그러니까 인터넷의 수많은 리뷰들 날짜를 확인했어야 했던 거다.

철판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에 출발지인 김포공항 역에서는 한껏 부풀어있던 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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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나갔다 온 후에는 풀이 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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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광장시장에 가서 마약떡볶이를 먼저 먹고

비즈재료를 구한다고해서 동대문 종합시장을 들른 다음

(은별은 하고많은 풍경 중에서 폐지리어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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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 갔지만 거기도 철판아이스크림은 없었음.

그러니까 노점이 아닌 철판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야했는데

종로 코아빌딩에 콜드스톤 크리머리 종로점이라는 데가 있다고 해서

전화를 해보니 망한 듯.

노량진은 늘 수험생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사시사철 있을 듯해서 가봤지만 거기도 망.

마지막으로 강남역과 홍대가 남았는데 제비뽑는 기분으로 홍대 선택.

그리고 결국 우리는 철판아이스크림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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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단골집 부려원과 키티까페,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카카오프렌즈스토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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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11시였다.

 

3.

중학생이 되면 폰을 갖게되는 가족규칙에 따라 한별이 생일선물로 휴대폰을 가져야함.

한별은 LG V20을 갖고 싶어했으나 기계값이 89만원이었다.

약정으로 싸게 사게 되면 요금제를 선택할 수 없어서

공기계를 사려니 저렇게나 비쌌음.

그래서 한별에게 '저렇게까지 비싼 휴대폰을 살 이유가 없으니

만약 샤오미폰을 선택한다면 엄마가 그 차액에 해당하는 노트북을 사주겠다'고 제안.

 

싼 폰도 많은데 왜 V20이냐고 묻는다면

첫단추를 잘못 끼운 나의 책임이다.

첫째 하은이가 휴대폰을 처음으로 가졌던 3년 전에 마음껏 골랐기 때문에

한별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별은 며칠 고민을 하더니 나의 제안을 받아들임.

그래서 샤오미 홍미노트4와 레노보 510S-141SK 주문.

한별 생일은 2월 26일인데 중국에서 직접 받는 거라

생일 전에 닿을 수 있기를 기원.

 

4. 

수술 전날엔 심사회의가 있었고 

회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하은과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만나기로 했다.

필요한 물품들을 고르고(욕실슬리퍼, 침구, 세면용품 그런 거)

신학기를 기념해서 가방과 

하은이 갖고 싶어했던 아이다스 바지를 삼(예전에도 샀는데 잃어버렸다고...)

수술 일정을 잡는 데 수요일의 심사회의가 중요 고려대상이었다.

심사비는 30만원이었는데

그날의 쇼핑에 그 정도 들었다.

하은은 참 쇼핑을 꼼꼼하게도 하여라.

갔던 곳을 다시 가고 봤던 것을 다시 보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가방을 고를 때까지 쉴새없이 돌아다님.

그렇게 하은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고른 후에

마지막으로 나는 무지에 들러 베게커버를 사주었다.

보드랍고 푹신한 그것에 기대어 매일의 잠이 편안하기를 바라며.

 

5.

수술이 있던 23일 목요일엔 한별이가 같이 있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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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시간은 4시였는데 6시쯤 수술실에 들어간 것같다.

12시부터 6시까지, 다른 가족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나를 찾아올 때까지

한별과 같이 있으면서 중국에서 출발한 한별의 핸드폰이 어디쯤 왔나 찾아보면서

"와, 파나마 국적의 배가 우리 핸드폰을 싣고 오나봐~" 놀라기도 하고

러시아언니와 채팅도 했다.

오른손에 주사바늘이 꽂혀있어서 한별은 이 모든 일을 대신 해줬다.

나는 작아져가고 아이들은 커져서

이제 너에게 기대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에 애틋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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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월 3일 금요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퇴원예정일은 3월 1일이었지만

염증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며칠 더 있어야 했다.

한별의 입학식을 보지 못했다. 

토요일, 하은을 데리러 온수리를 가는데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밥을 차리고

운전을 해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그 일상들이

꿈 같았다.

병원에서 약에 취해 자다가 밥을 먹고 30분을 걷고 다시 자던 그 시간과

강화에서 내가 누리는 일상이 그냥 다 연결되어있는 것같았다.

이것이 꿈은 아닐까, 꿈이 아니구나 안심하며.

토요일 저녁엔 읍에 새로 생겼다는 쌀국수 집에 갔다.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 

내가 고3때 테이프 앞뒤로 반복해서 녹음해서 늘 들었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직거리는 LP의 소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 노래처럼

내 모든 시간이 다 까마득한 옛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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