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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현실이 꿈에 스미고 꿈이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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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8
    2014/08/18
    하루

뒤숭숭

지난 주에 어떤 회의에 갔다가

예전에 내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담당피디였던 사람이

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 때문인지 어제밤에는 별로 안좋은 꿈을 꾸었다.

내가 라디오에서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소개한지는 올해로 16년째이다.

중간에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는데

첫번째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몇 해동안은

담당피디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는데

이번에 승진했다는 그 피디가 오자마자

여러 번 잔소리를 들었다.

군소리가 너무 많다, 내용이 너무 지루하다 등등.

그러더니 둘째  출산하고 나니 부르지 않았다.

방송은 애키우느라 일을 쉬고 있을 때에도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약간 충격이 있었다.

한 번 출연료는 61000원일 뿐이지만 

사적 영역 이외의 활동으로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세상으로부터 잊혀질까봐

더이상 내가 쓰임새가 없어질까봐 걱정했던 것같고

그 피디로 인한 활동단절은 심리적으로 내게 큰 실망을 주었다.

오래지않아 다른 프로그램에서 의뢰가 왔고

그 프로그램에서 지금까지 방송을 하고 있다.

그 때의 단절로 인한 실망은 종종 꿈으로 나타난다 바로 어제처럼.

 

첫번째 꿈.

곧 방송인데 나는 깜박잊고  방송원고를 안썼다.

어쩔 줄 몰라하며 나는 속성으로 원고를 준비했다.

마침 내가 소개하려던 영화에 대한 논문이 있어서

나는 논문을 기반으로 방송할 내용을 가볍게 재구성한 후에

영화 속 장애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그렇게 원고를 준비해서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웬걸, 그냥 원래 논문이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담당피디가 그 피디였다. 

엿됐다, 라고 생각하며 잠에서 깸.

 

사이.

내 꿈은 늘 단절적인데 내가 화장실 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열살 때까지 나는 소변을 못 가려서 집안의 골치거리였고

닭모래집의 껍질이 효능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는 동네에서 닭을 잡으면 그 집에 찾아가서 그 껍질을 얻은 후

바삭하게 구워서 가루를 내어 먹게 했다. 

하얀 백지에 싸인 가루와 갈색 엽차잔.

늘 먹는 건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억지로 억지로 먹었다.

어쨌거나 그 뒤로 오줌싸개 신세는 면했지만

잠을 깊이 자지는 못한다.

밤에 두번은 화장실엘 가야한다.

신기하게도 화장실은 꿈에 스미어

꿈 속의 나는 항상 뭔가를 하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게 된다.

꿈 밖의 내가 얼른 화장실엘 다녀오면 문제가 없는데

만약 얼른 잠에서 깨지 못하게 되면 화장실엘 갈 때까지 꿈 속의 나는

화장실을 찾아 헤맨다. 꿈 속  화장실은 늘 더럽다. 

꿈 속 더러운 화장실은 러시아언니와 나의 공통점이다.

언니가 양말을 꿰매신으면서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집을 산 이유는

꿈 속 더러운 화장실과도 관련이 있을 거다.

우리는 민감한 시기에 더러운 화장실 때문에 고통받았으니까.

그래서 꿈은 늘 그렇게 끊긴다.

중년이 된  나는 이제  꿈 속에서 소변이 마려우면 얼른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 누워서 꿈을 이어보려 노력한다.

오줌싸개가 루시드 드리머가 된 연유이기도 하다.

 

두번째 꿈

87학번 선배와 89학번 동기와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뒷풀이를 어디로 갈까 신나하고 있는데

p가 나타났다.

p는 삐삐로 이별을 통고한,

제대한 후 7개월만에 94학번 영문과 여학생과 연애를 시작한,

그래서 나를 다시는 안암동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만든

(안간 건 나의 의지였지만)

나의 첫번째 연인이다.

꿈 속에서도 나는 활활 타오르면서 화를 내고 나와버렸다.

87학번 선배한테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느냐?"고 항의하자

그 선배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이건 자기가  만든 자리라고 했다.

내가 극장을 뛰쳐나오는 동안 87학번 선배와 89학번 친구는 나를 잡지 않았고

다만 (갑자기 나타난) 91학번 동기가 나와  함께 걸어주었다.

 

나는 잠에서 깨었다.

아직도 남은 분노가 남아있다니.

의아해하며 나는 아이들을 위해 밥을 차렸다.

꿈해설가와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그는 현재 해외에 체류하고 있으므로 

나는 우울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

저번 주엔 허리가 아파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는데

오늘은 목 뒤가 아파서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몸이 아파서, 그 아픔 때문에 신체활동이 부자연스럽다.

이런 날이 오다니.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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