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현실과 꿈은 분리해야하지 않을까?

9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6/30
    오늘은 가야할 것같은데...
    하루

집에 오는 길

하루님의 [밥] ,  [꿈의 기록] 에 관련된 글.

 

좋게 말하자면 불편함...솔직히 말하자면 험담을 털어놓고 싶어 글을 쓴다.

 

3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하늘과 하늘의 공부방 친구S를 함께 데리고 다녔다.

월, 수, 금은 내가, 화, 목은 S의 엄마가.

화,목이라고 해서 내가 나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세 아이 중 첫째 하늘은 작고 여림에도 큰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생들을 돌봐야한다는 강박 같은 걸 가지고 있다. 

하돌 없이 하늘과 함께 걷는 시간은 하교길이 유일하다.

(앵두야 항상 등에 업혀있으니 어쩔 수 없고)

그래서 매일 하늘을 기다렸다 같이 집, 혹은 공부방에 다녔다.

하늘도 아침마다 당부했다. "엄마, 꼭 와야해...."

처음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주고받으며 즐거웠던 그 길이

S와 함께 가면서 삐걱이게 되었다.

 

S는 작년까지 할머니가 키웠다고 한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던데

학교 적응이 힘들었는지 매일 울고 혼났다.

준비물을 안 챙기는 일들이 많아서 자주 혼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아주 오래 울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애는 말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남자애가

"오늘 얘 엄청 많이 울었대요~" 했고

내가 왜 울었냐고 물으려는 순간

그 애는 정색을 하고 "비밀이예요. 우리 엄마한테 절대 말하면 안돼요!" 했다.

 

그 애는 무척 명랑했고 붙임성이 좋았다.

공부방에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오시는데

낯선 분들에게도 쉽게 웃고 말도 잘했다.

문제지를 풀 때에도 각자 한 장씩 푸는 시간이 되면

혼자서 푸는 게 아니라 꼭 선생님 옆에서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풀었다.

뭐 성격탓이겠거니 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는데 하늘이 그 애한테

"빨리 내려!"라며 꾸짖는 듯한 어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집에 와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하늘은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조심하지않으면 다치니까.

좀 기가 막혔다고나 할까.

그 태도는 하늘이 하돌에게 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였다 .

 

공부방 선생님과 상담 결과 그런 모습은 종종 보였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이 S의 어휘나 행동들은 6세 정도 수준이라고. 

많이 어려서 학교 적응도 힘들어 한단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S를 "애기"라고 부른단다.

어느 순간 하늘에게 S는 친구가 아니라 챙겨야하는 동생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좀 속이 상했다. 엄마로서의 이기심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매사에 누군가를 돌봐야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아이가

공부방에서조차 그러고 있다는 생각에 좀 불편했다.

나는 하늘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챙기려는 마음은 좋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었다.

6월초 쯤 학교에 식사도우미로 가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방과후 교실 중 컴퓨터가 끝나는 날이라서

모두들 과자파티에 간다고 몰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엄마와 함께 공부방에 가야하기 때문에" 내 옆에 있었다.

나는 뭔가 문제를 느꼈다.

 

사실 공부방은 2시 부터이다.

하늘이 친구들과 놀거나 여유를 부리다 가도 되는데

S를 데려다줘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끝나자마자 공부방으로 간다.

하지만 곧 대학들은 종강을 하기에

S의 엄마는 월, 수, 금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과 S는 방과 후 스케줄이 사실 다르다.

S는 공부방에서 4시 30분쯤 나가서 피아노와 미술 학원을 거쳐 집에 간다.

하늘은  6시까지 공부방에 있다가 피아노학원에 들러 집으로 온다.

사실 공부방 시작 시간은 2시라서 하늘이 피아노학원에 갔다가 가도 되는데

S의 스케줄에 맞추다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다.

 

처음 3월에 S의 엄마가 "아이가 너무 하는 게 많아서 마음 아프다"고 하길래

공부방을 소개시켜준 것이었다.  

그 때 S는 학습형 공부방-피아노-미술, 이런 순서로 떠돌았고

집에 가서야 숙제를 하고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하늘이 다니는 공부방은 씩씩이어린이집과 비슷한 곳이다.

가서 숙제도 같이 하고 산에도 놀러다니는 그런 곳이다.

어쨌든 S의 엄마는 공부방에 한 번 가보더니 S를 그 곳으로 옮겼다.

공부방 선생님이 일주일이든 2주일이든 다녀보고 선택하라고

신중하게 선택하시라고 말씀드렸음에도 간 지 하루만에 결정을 했다.

그리고 당시에 일하는 엄마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내가 S 공부방 가는 길을 도왔다. 

 

처음 S의 엄마는

"이미 낸 수강료가 있어서" 미술과 피아노 학원에 다녀야한다" 고 했다. 

매일 다니던 학원을 월, 수, 금으로 횟수를 줄여서 집중시켰다.  

그래서 월, 수, 금에는 4시 반 쯤에 공부방을 나서서

미술과 피아노 학원으로 가야했는데 그 일은 S의 큰아빠(집에서 쉬신다)나

외근이 없는 날, 남편이 했다.

우리는 그 일이 과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의 엄마는 마음이 바뀌어서 계속 그렇게 하기로 했다.

 

5월 말, S의 엄마가 하는 말이 공부방 언니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야겠단다.

큰아빠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하늘이 엄마가 해주신다고 했으나 미안해서"

공부방 언니들에게 돈 좀 줘서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을 맡기면 어떤가 했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하자면

S가 원래 다녔던 학습형 공부방은 한달에 27만원을 냈다고 한다.

지금 우리 공부방은 한 달에 5만원이다.

씩씩이어린이집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공부방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돌봐주는 곳이라 학습형 공부방과는 다르다.

공부방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니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공부를 가르쳐준다.

 

올 2월, 공부방 학생 중 한명이 차비가 없어서 걸어다닌다는 사정을 들었고

우리는 그 때부터 월 5만원의 후원금을 낸다.

처음 S의 엄마가 너무 싸다고 해서

이 공부방은 후원자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곳이라고,

우리도 형편껏 월 5만원의 후원금을 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 엄마에게 해준 것과 그 엄마가 이해한 것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엄마는 5만원을 후원하고 대신 학원 보내는 일을 공부방 언니 중 한사람에게

맡기면 어떻겠는가라는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후원의 반대급부로 아르바이트를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을 했고

그 엄마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라고 했다.

(우리 공부방 애들은 대부분 조손가정이나 수급자 층이라고 한다)

공부방 선생님하고 상의를 해봐야할 거라고 말을 했더니

공부방 선생님이 "하드 하나만 사줘도 좋아할 거다"라고 말씀하셨단다.

 

나는 그 날 밤 공부방 선생님께 전화해서

공부방 언니 중 한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것에 동의하셨냐 물었고

공부방 선생님은 그런 일은 없다고 하셨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언니들이 가끔 데려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정도였고

그 말 끝에 "하드 하나만 사줘도 좋아할 것"이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고

그러면 도울 수도 있다.

일하는 엄마가 자신의 아이가 뺑뺑이 도는 것에 가슴아파해서

공부방을 소개시켜줄 수도 있는 것이고

공부방까지 가는 길이 문제라고 하면 데려다 줄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시스템은 아니다. 

그 엄마가 시간이 되면,예를 들어서 휴강을 했거나 종강을 했다면

자기 아이는 자기가 데려가야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자기 아이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돕고 싶어서 돕는 것과 시스템으로 굳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인지상정으로 돕는다면 고마워할 줄 알아야하고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스스로 할 몫을 열심히 성심성의껏 수행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일을 미루는 것은 아니다.

 

3개월의 시간을 거치며 그제사 알았다.

그 엄마는 자기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할 계획이 없는 것이었다.

바빠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차적인 도움의 대상을 자기 주변에서 찾는 게 아니라

(쉬고있는 큰아빠, 혹은 학원장을 한다는 아이 아빠)

아이를 매개로 한 엄마들 안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그 순간부터 그 도움은 의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엄마는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같았다.

 

어쨌든 그런 대화가 오고간 후 목요일, 그 엄마는 차가 있어서

화, 목에는 우리들을 태워다주는데 차 안 분위기가 냉랭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내가 방해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불편해서 2주일 동안 화, 목에는 나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3개월동안 내가 나가지 않은 건 단지 4일 뿐이었다!)

그동안 그 엄마는 해결책을 보았다.

피아노학원 선생님이 공부방으로 S를 데리러 오고

모든 강습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고 한다.

S는 다시 매일매일 학원엘 가게 되었고

그녀는 화, 목 하교만 책임지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한 것이다!

화, 목에도 그녀는 가끔 약속을 이유로 내게 양해를 구했다.

이제 그 시스템 안에서 나의 임무는 공고화되어버리는 것같았다.

 

후원금과 아르바이트에 관한 논쟁 비슷한 걸 하던 그 때에

내가 말했다.

"이제 아이들이 서서히 혼자 다닐 수 있도록 조금씩 연습을 시켜야지요"

그녀는 말했다.

"지금은 너무 빨라요. 올 1년 동안에는 어른들이 함께 해야 할 것같아요"

공부방 적응기 1~2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두 아이 책임지기를

1년동안이나 해야 한다니!! 정말 비명이 나올 것같았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아이를 업고 두 아이를 책임지는 일은 힘겨웠다.

특히 훈육방식이 다른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었다.

씩씩이에서 매일아침 동네 한바퀴를 돌며 살아온 하늘은

차가 쌩쌩다니는 비탈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엄마 차만 타고 다니던 S의 호기심과 부주의함을 감당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이제 포기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 딸과 함께 걷고 싶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둘이서만 소곤거리며 하루의 일을 나누는 그 때를

다시 돌려받고 싶었다. 

나도 나의 시간이 필요했다.

돌봐야할 아이들이 있고 중단된 작업이 있고 참가해야할 회의가 있다.

그렇게 저렇게 틈새 시간을 이용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버텨가고 있는 것이다.

그건 누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시간을 위해 내 시간을, 내 소망을 침해받고 싶지 않았다.  

 

종강했다는 걸 알게 된 6월 중순,  그 엄마에게 이제부터 하늘은

피아노 학원을 먼저갔다가 공부방에 가겠다고 말을 했다.

학교에서 학원까지 걸어오는 연습도 하면서 조금씩 혼자 다니게 하겠다고.

6시 이후에 피아노학원에 가면 아이들도 아무도 없고 하늘도 피곤해했다.

그런 사정을 말하며 사전에 상의를 하니 공부방 선생님 또한

종강했으니 그 엄마가 S를 데려오면 될 거라고 말했다.

 

전화를 걸어 그 말을  전하니 그 엄마는 "네 그러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대화이다.

그녀는 말했다.

 

그녀-그럼 피아노학원까지 같이 갔다가 하늘은 피아노학원 가고 우리 S는 공부방까지 걸어가면 안될까요?

나-그건 불가능해요. 아이들한테 너무 먼 길이예요.

기가 막혔다. 하기사 그 엄마는 비탈길을 차로 올라가며

"등산이 따로 없네요. 이 동네 사람들은 좋겠어요.

따로 시간내서 운동 안해도 되니까. "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나는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독립하는 데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니까

각자의 자식들은 각자가 알아서 하자고요.

당신 몫의 책임을 저한테 전가하지 마시라고요.'

 

내가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 역할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그 엄마는 화를 냈다.

 

그녀-나는 항상 하늘을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 S 생각은 안하세요?

S엄마가 소개해서 공부방엘 다니게 했는데

이제 와서 혼자 다니겠다고 하면 S는 뭐가 되나요?

 

나-아이가 너무 뺑뺑이돈다고 걱정하셔서 공부방을 소개해드린 것 뿐이예요.

제가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신중하고 냉정하게 생각하시라고.

하늘 때문에 공부방을 선택했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않나요?

이 공부방은 하늘에게 집같은 곳이예요. S한테도 그러길 바랬어요.

그런데 여전히 다니는 곳은 많은데 단지 두 세시간을 위해서

산꼭대기 공부방까지 오는 건 애한테 무리 아닌가요?

 

그녀-말씀 이상하게 하시네. 사실 우리 S는 공부방에 안가고 싶어해요.

제가 집에 있는 날에는 저랑 같이 있고 싶어해요.

그래도 하늘이 때문에 공부방에 보내는 거고

공부방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피아노,미술 학원에 보내는 거예요.

 

'그럼 안다니면 되겠네요'라는 말이 정말 혀뿌리에서 근질거렸지만

그녀가 왜 공부방에 애를 보내는지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주는 건 우리 공부방이 아니라면 부모의 몫이다.

학습형 공부방에서는 단지 공부만 시킨다.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하면 엄마가 같이 있어주면 되는 거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거고. 

정말 물에 빠진 사람 건졌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 같았다.  

 

어쨌든....정말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끝을 냈다.

 

나-언제까지 애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요? S엄마는 1년 내내 데리고 다닐 계획이시라는데 저는 그럴 계획이 없어요. 그리고 처음 1~2개월동안만

데려다주는 줄 알았지 이런 시스템으로 고정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 때 이후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아, 문자가 한 번 왔었다.

"그동안 S걱정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뵈요"

S는 하늘과 같이 다니든 안다니든 신경을 안썼다.

그애는 누구와도 붙임성이 좋고....또 누구와도 친하지 않은 그런 아이다.

나는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가진 S가 가엾다.

공부방 선생님은 혼난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선생님께 항의를 한다거나

그런 식의 행동을 할까봐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햇다.

 

그나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건 공부방 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이 말했다.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 문제에는 엄마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늘이 엄마나 내가 자기 시간을 포기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처럼

그 엄마 또한 자기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S는 각별한 정성이 필요한 애다.

작년에 우리 공부방 애 중에서 다시 1학년을 다니게 된 애가 있다.

그애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발달 단계가 있고 그 단계에 맞는 할일이 주어진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도태되는 거다.

S가 자주 지적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엄마가 그걸 모르진 않을 거다.

담임이 얘기를 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우리가 애기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몸소 겪으면서 실감을 할 때 달라지는 것이지

우리들의 얘기는 그저 참견으로 다가갈 뿐이다...

 

어제 공부방에 갔더니 이제 S도 혼자 다니는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데 뭐랄까 한심하다고나 할까.

일주일에 단 이틀만 시간을 내면 될 때에는 1년 내내 데리고 다닐 기세더니

한 달도 못 되어서 계획을 바꾼 것이다. 

매일매일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의 고단함을 이제사 알았나보지.

어쨌든 그건 그녀의 선택인 거고 S또한 그녀의 아이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나는 다시금 득도한 고승들의 냉정함을 떠올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었다.

나는 내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남의 아이를 돌볼 생각이 없다.

그 남이 지극히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다다는지

나의 도움만이 유일한 것이라면 좀 달라지겠지만

그 애에는 엄마도, 아빠도, 큰아빠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애의 미숙함은 그 애 엄마가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할 부분이지

세 명의 아이를 돌보느라 지쳐있는 내 몫은 아니었다.

 

스릴러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복선을 떠올리는 플래쉬백 장면처럼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올 5월이 1주기였다는 시어머니의 별세를 회상하며 그녀가 말했다.

"다 키워주겠으니 낳기만 하라던 시어머니가

작년 5월에 눈을 감으시면서 마지막까지 '내가 S를 더 돌봐야하는데...'라며

안타까워하셨어요. 나는 하늘엄마나 공부방 선생님을 보면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저 그렇게 들었던 그 얘기를 나는 3개월이 지난 후 공포스럽게 떠올린다.

그녀에게는 시어머니처럼 자기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게 나였던 거고 공부방 선생님이었다.

나는 냉정하게 손을 끊었고

공부방 선생님 또한 "저는 엄마가 일하는 낮 동안만 아이를 돌볼 뿐입니다"라고

선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밤 9시건 10시건 자기 일이 있을 때면 아이를 맡겨두던 그 엄마에게

그 선들이 냉정하고 야속해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큰아빠에게는 미안해하면서

학원을 운영한다는 아이 아빠에게는 요구하지 않으면서

나와 공부방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지

왜 아이아빠의 자리는 없는지 안타깝기는 하다.

어쨌든 하나 배웠다.

사람을 쉽게 선 안에 들이지 말 것.

나는 그동안 너무나 좋은 사람들,

너무나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왔던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도와주던 씩씩이의 부모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 순진한 착각이었다.

이렇게 세상 안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하늘의 혼자 걷는 길이 차차 늘어나듯이

나 또한 하늘과 함께 조금씩 배우고 자라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