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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콘서트


 

한 때 노래방에 가게 되면 '미워요'를 불렀었다.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 내가 노래방에서 마이크 붙잡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좋아하는,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심수봉의 '미워요'도 정말 좋아했었다. '그 때 그 사람'도 가만 부르고 있자면 가슴이 울렁한다. 명곡인 것 같다. 국민가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그녀의 곡이고, 생각해보면 심수봉은 훌륭한 뮤지션인 것 같다.

 

'음악에 관한 한' 나의 스승인 나의 남편은, 그가 음악(과 영화)에 관하여 여러가지 점 영향 받았던 한 사람(이미 고인이 되신 그 분의 명복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빕니다.)이 좋아했던 뮤지션 중 하나가 심수봉이었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었다. 사실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심수봉은 정말 훌륭한 뮤지션인 것이다. 

 

심수봉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 오만원 씩이나 하는 표 두 장이.

민우회 후원콘서트라서 내 돈 주고 사야할 것인 것을.. (언젠가 십만원 짜리 두 장 사는 날이 오겠지.) 하여간에 이게 왠 떡인가.

어린이는 7세부터 관람이 가능하다고 표에 써있었지만, 딱히 맡길 데도 없고, 평소 라이브 콘서트 비디오를 보며 콘서트 관람자세를 익혀온 터라 규민이도 데리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이번 민우회후원콘서트는 심수봉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 심수봉/김범수 콘서트였다. 김범수가 누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이 사람 싼 맛에 불렀나보다. 심수봉 먼저 하면 심수봉만 보고 갈까봐 김범수가 먼저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심수봉 때까지 어떻게 참냐, 했는데, 왠걸 심수봉이 먼저 나왔다. 앗, 다행.

 

아, 이런 조명, 이런 라이브, 5년 전 쯤에 '차게&아스카'공연를 공짜표로 본 거 이후 처음이다. (과부 딸라빚을 내어서라도 부에나 비스타 쏘셜 클럽 공연을 봐야 했었다.) '차게&아스카'라니??? 어리둥절한 이름이시겠지만, 나도 어리둥절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인데도 공짜표 맛에 갔었다. 일본의 조용필급 가수라더니, 정말 수백명의 일본사람들이 올림픽공원까지 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라 그냥 대충 앞대가리만 보다가 나올 심산이었는데, 왠걸 끝까지 손뼉치며 잘 봤다. 차게와 아스카 두 사람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열심히 노래하는 데 감동하였다. 같이 봤던 남편은 그 후로 이 두 사람 노래를 엠피쓰리 다운 받아 듣고다니기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다 감동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다. (남편은 그로부터 몇년 전 에릭 클랩튼 공연을 거금주고 보러갔었는데, 좀 성의 없이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했었던 경험이 있어, 이 날 차게&아스카의 교훈은 더욱 빛이 난다.)

 

역시 '그 때 그 사람' 첫곡. 아, 가슴을 울린다.

이런 노래를 갓 스무살 처녀가 만들다니.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노래에 대해 좀 외설스런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 뜻은 아니에요. 실제로 제 친척분 중에 누가 외항선원이었어요. 그 분 배타러 가실때 부부를 제가 인천항까지 태워드린 적이 있는데, 인천항에서 남편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에 신도림까지 그 부인이 우시더라구요. 그걸 보고 만든 노래에요." 창작자는 이래서 부럽다. 그 순간, 그 감흥, 손으로 만들어 남기다.

"그러니 외설스러운 뜻은 아닌데, 아무튼 좋습니다." 외설스러운 것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좋다니, 역시 진정한 창작자는 자기 손을 떠난 창작품 앞에서 겸손하다.

 

이어지는 노래와 이어지는 이야기.

'남자의 나라'라는 노래에 관한. 남편이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가사. (가사를 읊음)

 

남자의 여자로 길들여진 척박한 이 땅

오늘밤도 마음 몇번이나 이별잔을 든다

선녀가 왜 떠났는지 나무꾼은 아직도 모르나...

하루가 천년같이 어이~어이~ 어이~

저 선비 왜 공부했나 사투리 나라 패싸움말고

자손들에겐 인색과 분노도 대물림 마오

---(중략)--

허기진 고독만 미끼처럼 칭칭 감아

이곳은 여자가 노예처럼 묶여지고 부려지는

남자들의 나라다

 

우뢰와 같은 박수.

민우회 후훤콘서트라서 일부러 한 이야기이겠지만, 실상 털어버리고 싶은 응어리였을 것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자서전도 냈으니까(그러고보니 내가 심수봉에 관해 많이 아네) 이미 털어버려진 사연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하면 박수치고 응원해줄 듯한 사람들 앞이라 일부러 맘먹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었을 그 심정이 정말 위로받았기를...

첫째 남편에게 너무 무섭게 맞았던 이야기, 둘째 남편의 언어폭력과 의처증, 세번째 남편은 자기에게는 무척 자상하나 아이들을 때려서 헤어질 결심을 했던 이야기..

 

정녕 훌륭한 예술가는 신의 질투를 사,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신의 질투를 받아 삶이 고달플지언정 나의 예술혼을 불태울 예술적 천재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혼과 천재성을 팔고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눈물과 피는 흐르지는 않는 삶을 택할 것인가(삼십대 후반에 이런 고민).

 

맘먹고 아픈 과거사를 털어놓아서일까,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종종 눈가를 닦았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한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기가 가장 좋아한다는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다. 이 노래 왠 신파야, 했었는데, 갑자기 좋아졌다. 가사가 정말 평화지향적이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그리고 앵콜송은 '무궁화'.

심수봉씨, 앞으로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노래 감사합니다.

 

김범수로 바뀌기 전 사이 시간에 '민우회 18년 ' 비디오가 나왔다.

민우회는, 아주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음에도 애증이 겹쳐있는 이름이다.

그곳에서의 실망은 다른 곳에서의 실망보다도 열배 백배 얼얼했었다.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젓고 몸을 확 틀었지.

그러나 '민우회 18년' 비디오를 보고있자니, 지지고볶으면서 저렇게 해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김범수 차례, 무대 양 옆 거대화면에 무슨 사극 드라마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최수종이 오방 오바하며 투구를 쓰더니 여전 오바하는 눈빛, 상대는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칼싸움,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아련한 눈빛의 아씨, 아씨의 한숨, 밤길, 최수종과 아씨와의 포옹, 아씨의 고전무용, 이번엔 아는 드라마인 것 같다, 본 적은 없지만, 인기가 많았다는 '다모', 배우들의 표정은 최수종의 오바 저리가라다. 노래는, 어디선가 들었었던 것 같은, 500만번째 똑같은 스타일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 똑같은 가사 똑같은 멜로디..

과도한 얼굴표정의 배우들과, 과도한 액션들, 500만번째 듣는 저 판에 박힌 목소리와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 이것들이 합쳐져 몽롱한 기분을 만들더니 배멀미를 하듯 어느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제발 그런 식의 극과 노래는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공해다.

잘 달리던 말들을 수없이 넘어뜨리던데 저런 극을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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