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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18
    비오는 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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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5/17
    요 며칠 신문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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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5/12
    킨제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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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5/10
    어버이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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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5/05
    다시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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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5/04
    <송환>, 다큐멘터리의 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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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5/03
    마르그리트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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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5/02
    귀여운 그 사람,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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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4/29
    우선 조심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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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518

7시 반에 눈을 떴지만, 잠결에도 누군가의 배를 찾는 규민(규민은 누군가의 배를 가끔 만지작 거려야 잘 잠) 때문에 꼼짝않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한 8시 반 쯤 되었을까. 삼십분 쯤 더 있다가 규민을 깨우자,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규민이 선생님이 규민이 왜 안오냐고 한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10시20분이었다.

 

나는 요즘 사실 겁이 난다고 해야할까, 두려워 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귀찮아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하여간에 총체적 슬럼프이다.

 

벼락을 맞듯 나란 인간을 밑바닥부터 바꾸고 야심차게 나의 새 일을 계획한 것이 불과 한두어달 전이다. 나는 이 새 일에 그야말로 인생을 걸었다. 그만큼 진지하고, 진지하다.

이것이 꺾이면 나는 갈 데가 없다. (정말 산골로 들어가야 할것이다.)

하늘을 채운 의지 뿐만 아니라, 바랐던 바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 더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나는 늘상 내가 바라는 바는 서너번 째 후의 순서로 돌려놓는 것에 익숙했었다.

 

그러나 이제보니 그건 나의 약은 계산이었던가 보다.

쓰다보니(새 일이 뭔지 이미 다들 알고 있을테니 괜히 돌려말하지 말고 소설 쓰고 있다고 밝히면서, 무지 쪽팔림), 숨이 턱 막히는 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내가 더 물고 늘어져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게 몹시도 귀찮다. 그냥 거기서 슬쩍 돌아 나가버렸다. 그러고나니 한글 2004를 열기도 꺼려진다. 안 열고 있다. 이게 어디서 생겨난 못된 버릇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원래 그 모양이었다. 무척 집중하고 있다가도 한 순간 몹시 귀찮다고 느낀다. 그러면 그냥 살짝 도망나온다. 아예 손을 놓으면 티가 나니까, 티 나지 않도록 비슷한 모양새를 만들어놓고서는 그 고비언덕을 살짝 돌아나오는 것이다. 공부할때도 그랬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다행히 공부나 일은 그런 식이어도 상관없었다. 더 생각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원래 그 모양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끝까지 가지 않아도 대충 다 돌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같은 논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평소 대충 돌아가는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말을 곧잘 하였다. 옳은 것이 옳은 대로 몫을 찾지 못해도 대충 돌아가는 세상, 원래는 옳은 것은 결국 옳은 몫을 찾고, 나쁜 것은 벌을 받아야하는 건데, 언제까지 기다리며 살고있어도 옳은 거나 나쁜 거나 지지구리 제자리이니... 그냥 제자리이기만 한가, 다양한 방식으로 돌연변이하며 다양한 버전의 제자리이다. 점입가경의 제자리이다.

 

그러나 사실은, 지구상에는, 귀찮은 순간에도 살짝 돌아가버릴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 몇몇 일들 덕분으로 진짜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가능한한 그 일을 떠맡지 않으려고 도망가지만, 도망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할 수 없이 떠맡아 세상을 돌리고 있다. 나머지는 다 거기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기생의 습관을, 이게 꺾이면 갈 데가 없다고 하는 절대절명의 일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이 몰두할 수 없을 만큼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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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신문들

한겨레가 17주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 동안 매일마다 제2의 창간 어쩌구하는 걸 봐왔었는데, 어제 신문을 들추니 겹겹이 신문이 한사발 들어있고 묵직한 게, 아 오늘 얘네 기념일이구나, 싶었다.

 

누가 그랬더라, 홍세화씨가 그랬나, 한겨레 보는 사람들은 민감하다고. 조선/동아/중앙일보는 뭐라 지랄을 해도 독자들이 그러려니 하지만, 한겨레 보는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신문을 끊기도 한다고. 그럴 것 같다. 나도 김규항씨 인터뷰 나왔을때, 참다못해 "이런 식이라면 보지 않는 게 낫겠다"라고 한겨레에 전화해서 성질을 부렸었다. 

하지만, 한달에 만이천원이 어디냐, 이 돈이라도 아끼기 위해 신문을 끊자, 하는 와중에도 끊지 못했던 건, 한겨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종이로 된 신문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책을 들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역시 신문이 최고다. 화장실에 앉아서 보는 신문의 맛은, 어제의 나를 배설하고, 오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물리적, 정신적, 최고의 카타르시스 행위인 것이다. 어린 규민도 이미 그것을 알고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옆에 있는 신문부터 허벅지 위에 펼쳐놓는다. (그러면서 만화를 찾는다.)

 

묵직한 17주년 기념 신문 앞에서 나도 한겨레를 나름 축하해주는 마음을 가졌다. 한겨레가 아니면 사실 볼 신문이 없다. 우리 엄마네서 가끔 보는 동아일보는 매번 제 일면부터 숨을 콱 틀어놓는다. 오늘은 또 뭐래더라, 미국 압박하는 게 무슨 유행인가,라는 게 그 신문 수석논설의 칼럼 제목이었다. 몇달 전, 고등학생 대상의 쉽게 설명하는 시사문제 어쩌구 하는 기사에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이야기하며, 그야말로 농산물 내주는 대신 핸드폰 더 많이 잘 팔아 자유주의 선진국 되는 훌륭한 경제협정,이란 논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소릴 하고 있길래, 이걸 보는 고등학생들은 정말 어떤 생각을 할까, 잠시 생각했다가 한숨이 땅이 꺼지도록 나오는 바람에 엄마네 구들장이 금 갔던 적이 있었다. 고대생들이 이건희 명예철학박사수여에 반대집회 했다고, 폭력이 어떻고 하는 건 또 어떻고...  아무튼, 한겨레는 17주년을 맞아 대단한 결심을 한 듯 보인다. 인쇄체도 바꾸고, 구성도 바꾸고, 로고도 바꿀 것이란다. 미래에는 우주로 휴가여행을 가고, 설겆이 청소 로봇이 집안일은 도맡고,하는 알 수 없는 기사가 들어있는 경제엔진 업그레이드 섹션 때문에 이런 결연한 한겨레의 의지가 좀 못미덥지만... 그래도 그간 재미있었던 한겨레만의 기사들을 생각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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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

이런 영화가 나왔다지. 나는 이게 킨제이식 인터뷰 다큐 영화였으면 하고 바랬는데,

그거 비슷한 형식이 들어가있기도 하지만 극영화라고.. (리암니슨과  로라리니가 주인공이라는 말에 확 보기싫어진 이유는 뭘까.)

그래도 감독의 말 한 마디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쫌 들었다.(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대충 "인간의 성적취향은 너무도 다양해서 그에 대해서는 드물다/보편적이다 라고 해야지 정상/비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최초로 말한 사람이 킨제이였다."라고..)

 

아무튼간에 하려던 이야기는 딴 게 아니라, 한겨레에서 이 영화 소개기사를 보던 도중 기사 속 한 문장, ....킨제이(리암니슨)는... 헌신적인 아내(로라리니) 덕분에 성적으로 눈을 떴다..

 

우하하하, 너무 웃기지 않아? (나만 웃긴가.) 이게 웃긴 건 나의 선입견, 고정관념때문일 수 있겠지만, 문장 앞뒤가 너무 안어울리지 않는가

헌신적 아내 덕분에// 성적으로 눈을 떴다니??  헌신적으로 무얼 했길래?

헌신적이라고 하지말고, 솔직한 아내 덕분에, 혹은 꾸준한 아내 덕분에, 혹은 노련한 아내 덕분에,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여자가 리드하는 섹스에 대해 공포감이 있는걸까, 기자는.

왜 헌신이라고 했을까. 영화에서는 그런가. 어떻길래 그런가.

결국 영화를 봐야겠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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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규민이 학교에서 이런 걸 만들어왔다. 규민은 뭣도 모른채 마냥 오리고 붙이기에 반짝 재미있어하고 고 틈을 타서 선생은 축어버이날, 엄마사랑해요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규민이 엄마얼굴을 가운데에 그려넣는 것으로 내 인생 첫 어버이로서의 카네이션 화룡점정이 찍혀졌다.

나는 이걸 달고 시장을 보러 갔다.

 


 

 

시장에서 내 엄마아빠께 내가 드릴 꽃바구니를 하나 샀다. 천편일률의 꽃바구니는 요럴때 대목잡겠다는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있어 엄마에게 꽃을 선물한다. 마음같아선 봄에는 매일매일 엄마에게 꽃을 주고싶다. 개나리가 제일 처음 핀 날 개나리 한가지를, 살구꽃이 화사해지기 시작하면 살구꽃 한가지를, 라일락향기가 진할 땐 라일락 한무더기를, 배꽃이 솜덩이같은 날엔 배꽃 한무더기를, 엄마, 이꽃 좀 봐.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마음. 그 사람이 그 꽃을 받고 활짝 웃으면 그걸로 나도 기쁜 마음. 어버이날 행사치례로 숱하게 카네이션을 만들고 살때는 없던 마음이 그래도 몇 십년이 지나 이런 진심이 우러났으니, 자식 키우는 게 헛짓만은 아닌가보군.

 

꽃바구니는 딱 고만고만한 모양새인것이, 내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어도 얼마짜리라는 딱지를 붙히고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이래저래 맞추어 산 티가 뚝뚝 떨어진다.

뭐, 어쨌거나, 내 진심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당신들이 눈에 넣어도 안 아퍼할 손녀딸이 고른 것인데..

 

정말 엄마는 잠시라도 기분이 좋았을까.

아빠는 손녀딸만 쳐다보다가 테레비만 쳐다보다가 했다.

우리가 언제 다정한 부녀 흉내라도 내봤던가. 뭐, 새삼.

....

가까이지내던 동네양반의 아들 며느리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

어, 그래?

....

이거 얼마냐, 한 오천원 하냐?..... 문득 날 쳐다보며 아빠가 던진 말....

(물론 돈으로 선물따지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겉치례는 괜히 하지말고 꼼꼼히 절약하고 근검하며 필요할때 잘 쓰라,라는 심오한 경제철학을 담은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딸래미 아끼고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이란 것 알고 있다. 딸래미가 자신들을 사랑해서 하는 짓을 보지 못할 뿐이지.)

 

저녁을 먹는 도중 아빠에게 꽃바구니가 배달돼왔다. 사무실 직원들이 보낸 거라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벼라별 꽃들이 양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를 지경으로 흐드러지게 꽂혀있으면서도 교양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무지하게 비쌀 것 같았다.

아, 초라한 내 꽃바구니...

아니, 어버이날에 자기네들이 왜 꽃을 보내? 고용주의 날도 아니고....

 

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동네아저씨 한 분이 아들래미를 앞세워 들어왔다.

나는 거기서 순간 주눅이 들었다.

화려한 꽃바구니에 한차례 꺾여있던 기운이, 울고 싶던 차에 뺨맞았다 싶게, 본격적으로 수그러들었다.

그래, 이 장면이구나.

우리 아빠가 원하는 것은.

아들이 앞서있는 것.

그가 칠푼이 팔띡이같은 놈이라도, 그가 앞서 있고 아버지가 뒤에 서있는 것.

칠푼이 팔띡이 같은 놈이 내놓는 게 천원 딱지 붙은 보잘 것 없는 것이래도, 이것이 우리 아들놈이 어버이날이라고 사온 것이라며, 어버이날에 마음껏 어버이됨과 자식됨을 드러내놓은 것.

 

父子양반이 잠깐 볼일을 마치고 일어났을때, 아빠는 배웅차 뒤를 따르며, 지나가는 말로 덧붙였다. 누구네 며느리 오늘 아들낳았다더라고.

누가 나에게 뭐라했는가.

근데 나는 또다시 모든 전후맥락을 혼자 꿰었다.

그래서 나에게 뭐 낳았는지 말을 안 했었구나. 그게 부러워서, 누구네 집의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든든한 저 끈이 내심 부러워 그 말을 편히 하지 못했었구나.

새로 낳은 아이가 아들이냐,딸이냐가 나에겐 별 관심거리가 아니어서 묻지 않았던 것이 저 양반에겐 가슴에 사묻힌 상처이어서 말을 못한 것이었구나.

 

 

엄마아빠 집에서 내 자리가 아리송한 기분은 참 오랜만이다.

동생이 없어지고나서, 유일한 자식으로 우뚝했던 내 자리는 결정적 순간에 여전히 아리까리한 것이었다.

 

어버이날에 시댁에 가지않고 친정부모님들과 밥먹겠다 했다고 아빠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 나에게 전했다.

얼씨구, 내 부모가 누군데? 어버이날이 시부모날인가? 여자는 결혼하면 부모가 바뀐다는 것인가?

날 애써 키워준 엄마가 고맙고 그녀를 사랑한다.

어버이날에 내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을 선물하고 즐겁게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참 소박한 소망이네.

이것도 딸래미라 하기 어렵다니,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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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뒤라스의 두 번째 책.

처음 것은 <여름날 저녁 10시반>. 나쁘지 않았는데도 그 책을 읽으며 내내 지루했다.

내내 푹푹 찌는 여름 낮이 배경이었고, 그 뜨거운 태양때문에 모든 일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살인사건이 났는데도 아무도 더위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책만 들면 머리 위로 쨍,하고 거울 깨지는 소리를 내며 태양빛이 직사광선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 말했듯 그 책이 좋았었다.

뒤라스는 한 번도 구상을 해서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하던데, 그 여자, 사람의 심리를 직사광선처럼 꿰뚫고 있어 인물들이 읊는 대사는 귀신처럼 정확하고, 더디게 일어나는 사건도 상징과 함축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 건 지구 반바퀴를 돌아도 다 똑같은가 보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다시 숨막히는 더위의 여름날. 아침부터 공기는 밀도높은 더위로 꽉 차있다. 바캉스중의 두 쌍의 커플과 한 여자, 한 남자, 그러나 사랑은 권태로워도 위대하다,의 결말까지 엇갈리는 관계. 결말 직전 그 숨 가쁜 심리전들...으으으

뭐, 실제로 결말이 사랑은 위대하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쉴 새 없이 캄파리란 술을 마신다. 다른 거 말고 오직 캄파리만.

다음에 나도 캄파리를 마셔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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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다큐멘터리의 힘


 

이제서 본 영화를 가지고 호들갑떠는 제목이 촌스럽다.

어쨌든간에 나는 새삼 다큐멘터리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최근들어 내가 영화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던 것과 일견 맥락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위적이라고 치자면 다큐멘터리도 작위적이지 않으랴만, <송환>은, 영화 중엔 애써 눈감아두었다가 영화 끝나고부터 그 감춰두었던 꼬리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공룡몸땡이를 보이는 듯 드러나는 찝찝한 구석들이 아직까지 없는 걸로 봐서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냐 극영화냐의 경계선이 아니다. 극영화도 잘 만들어졌다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을 것이고, 찝찝한 구석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요즘들어 나는 영화보는 것마다 좀 그러그렇고, 어쩌다 보았던 다큐멘터리들에 감동받는다.

하긴 내가 영화를 많이 보았길 하나, 내가 영화를 뭘 잘 알길 하나. 이런 소릴 영화가 들으면 나한테 그럴 것이다, '니나 잘해.'

 

<송환>은 국민학생 아이가 찍은 것 같다. 스스로 잘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백지에서부터 대상을 좇는 카메라를 그래서 잘 따라갈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입장도 아니고, 반이데올로기 입장도 아니고, 어느날 만난 모르는 아저씨들을 호기심으로 그냥 주욱 따라가는 국민학생.

 

남파간첩, 체포되어 30년, 때로 40년 넘게 수감되어 전향목적의 고문에 시달림- 비전향 장기수, 대부분의 사람들과 너무도 다른 과거를 가진 그들이지만, 카메라가 좇아가는 현재의 아저씨들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너무나 똑같다.  단지 그래서 영화는 충격적이고, 새삼 이데올로기를 묻는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길래, 체재가 무엇이길래.

 

그들을 수십년 동안 잔인하고 굴욕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으로 고문하고 감금하면서 얻으려했던 전향동의서. 그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거기에 정말 이데올로기가 있는걸까. 

감독이, 이렇게 어린애마냥 순진무구한 얼굴은 이 사람에게서 처음 보았다고 하는 (포스터 오른쪽 상단에 나온 얼굴--감독은 정말 이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렸나 보다. 포스터에도 얼굴을 쓰고, 이 사람 인터뷰 중에는 얼굴을 클로즈 업 한채 몇번을 슬로우모션했다가 정지시키곤 한다.) 사람도 끝끝내 그 고문들을 이겨낸 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눈빛의 간첩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먼 이미지. 그는 거의 실신된 상태에서 손이 묶인 채 전향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는데, 그것을 두고두고 가슴에 담고 있다. (북으로 송환된 후, 전향 취소선언을 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그렇게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때문이었다고. 오히려 모진 고문을 해댔기때문에 거기에 굴복할 수 없었다고.

 

나 같아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백이면 백, 누구나 그러하지 않았을런가. 드럽고 치사하여 거기에 머리 숙일 수 없는 것이다. 인권이란 누군가에게는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그걸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다 그걸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내가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 그 운이 없었다면 나도 딱 저 꼬라지다.

 

그들이 송환될 시점, 주변에 남한친구들이 많았다. 남한친구들은 그들의 송환을 두고 기뻐서도 울었고, 드라마틱한 그들의 인생때문에도 울었고, 지금 가면 다시 만나기가 막막하다는 현실에도 울었다. 꼭 일년 후에 다시 만나자며 손을 흔드는 그 말만으로도 눈물이 나온다.

이상한 경험이다, 이것은. 몇년 전 북으로 노래를 하러 간 가수들을 티뷔로 보고 있을 때도 그랬다. 태진아, 핑클, 등등이 북에 가서 쇼를 하고 이제는 남으로 돌아간다며 버스를 타고 있는데, 그들이 일제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태진아 같은 사람들은 실상 전쟁과 분단을 경험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핑클 같은 애들도 눈이 벌겋게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던 나도 즉각 눈물이 주르르 흘러 이상했었다. 민족주의자는 커녕 민족이란 말에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나인데, 우리 땅, 우리 겨레는 이제 좀 다르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편인데, 이 대목에서 왜 눈물이 자동으로 나오는 걸까.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이들이 모여 그랬을 것이다. 이 빨갱이 간첩놈들, 대한민국이 어떤 데라고, 체재우위를 보여주려면, 이 놈들 고문을 시켜서라도 전향시키라고 회의에서 통과되었을 것이다. 양복에 넥타이 맨 이들이 모여 회의를 하시며 그랬을 것이다.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자고, 독재정권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하니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회의탁자에 앉아 에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이들이 또 얼마나 엄한 인생들을 지옥으로 만들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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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을 읽다가...

 

 

-그렇게 느껴져. 네가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다는 것 말이야. 날 좀 이해해 줘.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믿어. 더는 진실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고 느끼게 되는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해. 그 이전이나 그 이후가 아니고 바로 그 경계 지점에서 말이야. 그러나 나는 이 경계선을 확장시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해. 침묵해 버리고 마는 사람들보다는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라는 벽에 가서 부딪히며 가능한 한 표현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래, 난 그런 사람들이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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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그 사람, 하얗다.

그의 한국 이름은 정대충(뭐든 대충대충 한다해서), 호는 성문학.

성(性, sex)과 문학(文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해맑게 웃는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면 문학 쪽으로는 수긍이 간다, 싶지만, 성도? 고개가 갸웃하나, 갸웃은 잠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성에 대한 수다는 산을 넘고 강을 이뤘다가 바다로 넘쳐 흐른다.

나는 그 사람의 성문학을 들으며 2000년도를 맞았다. 다 끝내고 시계를 보니 대망의 2000년 1월 1일 새벽 6시 반이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환타지, 환타지에서 자신의 소설 속 세계로 무궁무진 이어지는 섹스의 세계. 그의 소설들 속 인물들과 이야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었다(그의 경험담은 별로였지만). 중학생과 사십대 술집마담(이태원 킹클럽의 한 아가씨가 모델이었던)의 섹스 여행, 노출을 즐기는 치어리더를 지팡이로 혼내는 종로 할아버지. 지금 기억하려니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나는 눈도 반짝반짝하며, 고개도 연신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또 그 양반, 얼마나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지...

 

전수찬과는 문학 이야기를 많이 하였나보지만, 그러고보니 나하고는 주로 성 이야기를 하였다. 이건 왜일까. 내가 문학을 잘 몰라서 였을까. 아니면, 내가 문학보다는 성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그가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애자인 그가 성 이야기를 할때에는 아무래도 동성보다는 이성애자의 여자에게가 나았기 때문일까. 하여간에 그래서 전수찬이 등단했을때, 이 양반은 남다른 감회를 보이며 몹시 기뻐하고 흥분하여 주었다. 소설쓰기를 희망하는 동료로서 축하의 의미를 담아.

 

그러면서 이 양반은 예의 그 허풍,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아무튼 말로 전체 돌아가는 사정의 십분의 구를 해먹는 습관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는데, 자기가 그것을 일어로 번역하여 일본에서 출판하겠다는 것이었다. 뭐, 나쁠 건 없지. 전수찬은 기쁘게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러고나서 몇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반년하고도 몇 달이 또 지났으나, 이 양반, 번역은 커녕 아직 책도 못 읽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오늘 낮, 전수찬에게 갑작 전화를 하더니만, 드디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꼬박 일년만이시네). 이번 주중에 서울로 한 번 오시겠다고(현재 대구에서 거주). 왠고하니, 소설의 배경이었던 덕수궁 부근도 거닐고 싶고, 거기서 차도 한 잔 마시며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 정말 귀엽기 그지없는 그 양반, 하얗다.

그 양반 보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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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심스레

새집을 점검 중.

 

블로그를 만든대니까, 처음에 이름써라, 설명써라, 그러더니, 블로그의 주제를 대주제, 소주제로 분리하랜다.

음.. 나의 대주제를 무얼로... 이리저리 보다가 '평화'를 골랐다.

어때? 어울리지?

근데, 대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글만 올리면 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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