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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07
    오바마와 트위터, 노벨평화상(1)
    나르맹
  2. 2009/10/07
    [펌]신종플루와 데톨의 비밀(2)
    나르맹
  3. 2009/10/06
    Hopenhagen(1)
    나르맹
  4. 2009/10/04
    <평화는 나의 여행>
    나르맹
  5. 2009/10/01
    Actions against DSEi arms fair
    나르맹
  6. 2009/09/30
    <너 군대 왜 가니?> 토론회 후기(6)
    나르맹
  7. 2009/09/24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1)
    나르맹
  8. 2009/09/23
    '끕'이 다른 공직자들(1)
    나르맹
  9. 2009/09/20
    2009/09/20
    나르맹
  10. 2009/09/15
    '싸가지 없는 애'(3)
    나르맹

오바마와 트위터, 노벨평화상

미국 피츠버그 G20 반대 시위 현장에서 트위터로 경찰 이동/진압 경로를 알려줬다는 혐의로 체포된 케이스에 관한 기사가 떴다.  이 기사의 필자는 이번 체포를 비난하면서, 얼마 전에 이란 대선 때 정권 반대 시위자들이 '서방'의 주목을 받으며 트위터 역시 확 떴을 때에 오바마가 당시 인터넷 검열 등을 통해 시위대를 방해하는 이란 정부를 비난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 때 오바마가 내세운 근거가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가치이며 자신은 그 가치를 지키려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런 오바마의 미국에서 정작 경찰의 움직임을 트위터로 전송하던 사람을 '對테러수사대'까지 동원하여 체포를 한 것에 대해 짧으면서도 비교적 명쾌하게 비판하고 있는 기사인것 같다. 

 

오바마가 자기 대선 기간엔 트위터로 열심히 홍보를 했던 것을 떠올리면, 노무현이 대통령 되고 이라크 파병, FTA 추진했던 모습 그리고 이명박이 실명제를 놓고 구글과 싸우면서 한편에선 트위터를 하니마니 한국에도 닌텐도가 나와야 한다느니 하는 모습이 겹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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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 어제는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날아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되기 며칠 전인 이번주 월요일 백악관 앞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점령 중단 시위가 크게 있었나보다. 아래 영상에 나오듯이 이날 시위대 60명 정도가 바로 연행이 됐다고 한다. 내가 뭐 언제부터 노벨평화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자기 집 앞마당에서 반전 시위 참여자를 진압하는 자가 '평화'상 이런 걸 받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환멸과 냉소가 찾아드는. Waging Nonviolence라고 종종 들어가보는 사이트에도 이번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관련한 이 하나 떴다. 오바마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요지의 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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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신종플루와 데톨의 비밀

 

안 그래도 휴교가 끝난 첫 등교일 학교 모든 곳에 마스크와 손세정제 향균 스프레이 등등이 '보급/살포/투척'되었는데, 방금 우연히 위 웹자보를 보고 나선 한방 먹은 듯한 놀라움과 신선함이 동시에 찾아든다. 최근의 내 일상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발견인 듯.ㅋㅋ 암튼 이런 웹자보가 매우 매우 반갑다. 학교에 액상 핸드워시가 설치된 다음에 나도 몇 번 사용해보곤 했는데 이 웹자보를 보고 나니 최근 내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게 다 그 세제 탓인것만 같은 기분이 마구 든다.-_- 앞으론 절대 쓰지 말아야지..
 

1+1 대량구매로 몇 박스씩 교무실에 쌓여있는 향균 세제와 스프레이들..다른 선생들은 모르겠고 원어민 교사들한텐 밥 먹으며 살짝 얘기해봐야겠다...

 

위생에 대한 전 사회적인 강조가 이렇게 컸던 적이 있나 싶다. 100년 전 조선이 그랬으려나.. 근데 감옥(혹은 군대)에서 누가 돼지독감 걸린 것으로 판명(검사 자체가 이루어지기는 할까?)되면 그럼 수감자(사병)들은 다 풀려나는 건가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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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hagen

다른 곳도 아닌 논술제시문에서 더 자주 들어본 것 같은 교토의정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는데 미국만 거부했다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아마도 그 교토의정서의 후속판이 곧 나올 모양인 듯 하다. 세부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더 공부를 해봐야겠지만 그냥 지나가는 곁눈질로 보건대 올 12월에 코펜하겐에서 전세계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UN 소관으로) 기후변화 협약에 관한 큰 회의가 있다고 한다. 그 회의에 앞서 지금 방콕에서 사전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에 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기사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이미 발달할 만큼 발전한 나라들(소위 '선진국')이라서 그런지 환경 문제가 그쪽 동네의 주요 이슈가 되는 것 같다. 경제 10위에 올라섰다는 국가인 한국에선 아직도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인권을 두고 싸우고 있는데,,쩝. 한국에선 최근 몇 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유기농'이 떴지만, 걔네 국가들에선 '채식'도 일종의 웰빙 차원으로 올라섰기에 그렇게 베지테리안 푸드도 잘 갖추어진 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광우병 촛불시위가 먹는 것과 직결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더 일어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 것처럼 우리보다 좀 더 세련된 자본주의 국가에선 '채식'이 그 자체 내포한 다양한 문제의식들과는 별개로 일종의 먹는 문제의 하나로 격상되었기에 다만 또 다른 세련된 삶의 방식의 하나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환경 이슈가 주요 의제가 되는 곳에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덜 타는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선진국'들이 과거에 얼마나 식민지 수탈을 했고 환경을 파괴했는지와 별개로 아직 한국은 이래저래 환경 문제에 대한 그들과 같은 자각 수준을 갖기엔 갈 길이 먼 듯 하다.

 

다른 신문이나 기사는 안 봐서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디언에서는 이 코펜하겐 회의에 매우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같다. 이번에 코펜하겐에서 체결될 기후협약에 관한 용어 설명 웹페이지도 따로 있다. 한편 여기 'Hopenhagen'은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 맞춰 생긴 것 같은 서명운동 사이트. 작명센스가 참 멋지다. 다음은 이 사이트(단체)의 목표라고 한다.

To connect every person, every city, and every nation to Copenhagen. To give everyone hope, and a platform from which to act. To create a grassroots movement that’s powerful enough to influence change.

 

일상에서 문제의식을 자주 갖게 되지만 기후변화나 온난화 등등의 이슈가 한국에선 아예 잘 다루어지지조차 않다보니 덩달아 내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 하다. 국가간 협약이라고 했을 때 이미 내 삶과 멀어진 듯한, 마치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하지만 왠지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열리고 있다는 방콕 회의나 앞으로 있을 코펜하겐 회의에도 분명 한국 측 대표가 참석을 할텐데, 여기서 얼마나 기사화가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올 12월이라고 하니 언제 또 마주칠 일이 생기겠지. 

 

다음은 기후변화 협약과 같은 환경 이슈들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티피컬한 질문들이라고.

 

• How much are rich countries willing to cut their greenhouse gas emissions, and by when?

• Will large developing nations such as China make an effort to put at least a dent in their soaring levels of pollution?

• How much money must flow from the developed world to developing countries to grease the wheels and secure their approval? How much to compensate for the impact of past emissions, and how much to help prevent future emissions?

 

 

 

덧.

이 포스팅과 직접 관련되는 것 같진 않지만 재밌는 기사를 또 발견해서 여기 링크를 걸어둔다. 런던의 수돗물에 관한.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본 여행 갔을 때도 그랬고 적어도 내 경험에선 유럽에서 수돗물을 바로 컵에 받아 마시는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근데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0.5리터 생수병 그리고 그걸 생산하는 '생수' 회사와 수돗물 제공 업체(영국은 물도 민영화다)간에 논쟁이 런던시 정책을 둘러싸고 붙은 거다. 그 와중에 조그만 생수병이 플라스틱 생산을 조장함으로 환경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확 눈길을 끈다.

서울의 아리수...를 시작한 이명박은 어떤 면에선 선구적인 환경론자인 것일까?ㅋㅋ 그래도 아리수는 여전히 내키질 않는다.. 차라리 그냥 먹으면 먹었을 텐데 공무원들 불신하는 이 '못된' 심보 때문에..먹었으면 보리차를 끓여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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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이라크에 첨 와본 건 열아홉 살 때예요. 걸프전이 터지고 나서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있던 이라크 아이들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그땐 그냥 한 번 와보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행이 이렇게 길어졌네요. 벌써 십 년째예요.

지난 해 시월에 들어 왔어요. 이번엔 아마 제법 오래있게 될 것 같아요. 이탈리아에서 20여 개 단체가 힘을 모아 '바그다드로 가는 다리(Bridge to Baghdad)'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그 단체의 이름으로 파견된 거거든요.

제가 지금 맡은 일은 가난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우물을 파주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면 식수가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전쟁을 대비하는 거지요.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긴급구호를 하고, 그러고 나면 병원을 만들거예요.

위험이요?위험하죠. 하지만 군인들도 위험하잖아요. 전쟁을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평화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위험한 일을 왜 하냐고 해요. 참 이상하죠? 전쟁을 위해 죽는 것 보다는 평화를 위해 살다가 평화를 위해 죽는 게 더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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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s against DSEi arms fair

격년으로 런던에서 열린다는 무기박람회에 반대하여 이번 9월에 펼쳐진 행동을 정리한 이 떴다. 전쟁없는세상 지난 번 소식지 기획기사이기도 했고, 다른 곳도 아닌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라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읽다보면 하비엘의 말투가 떠올라서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올 초부터 WRI Triennial에 대한 글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데 이번에 읽은 은 읽으면서 와 잘썼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살펴보니 하워드가 쓴 글이었다. 난 으레 하비엘이 쓴 글인 줄 알고 또 하비엘에게 감동받으면서 읽었는데. 하워드란 걸 확인하고 나니 약간 맥이 빠지기도 하고, 여전히 반갑기도 하고 그렇다.

 

여유시간이 생기니 웹서핑하며 차분히 글 읽을 시간도 생기고 좋다. 용산에 이번엔 꼭 한번 가야지 생각이 들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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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군대 왜 가니?> 토론회 후기

돼지독감(신종플루)으로 순식간에 선생과 학생 모두 큰 공포에 휩쌓여버린 학교를 마치고 <너 군대 왜 가니?>토론회로 발을 뗐다. 연휴 전에 생긴 공짜 휴가기간 동안에 원래 헤치워야 했던 일들을 하루에 몰아서 끝내느라 하루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했다. 그래도 끝내버리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부장선생님은 재택근무할 것을 좀 챙겨서 가라고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시는데 나도 뭐 겉으로는 웃으며 '네네 그래야죠' 답하며 안심을 시킨다.푸핫

 

토론회 장소를 찾느라 연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좀 헤멨다. 밤바람을 맞으며 캠퍼스를 걷는 기분이 꽤나 괜찮았다.

 

패널들의 발제, 이후 질의응답을 지켜보며 든 가장 큰 느낌은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몇 년전(예컨대 2003년,04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나의 질문들.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왜 이렇게 잘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럼 내가 기대했던 내용,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뭐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가지를 친다.

 

뭐랄까 병역거부 논의에 있어 일종의 FAQ들. 국방의 의무가 곧 군복무는 아니다,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는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등등. 이젠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을 방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게 병역거부운동 10년의 성과라면 성과랄까. 대체복무의 의의, 실현가능성 등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변화일지 모르겠다.

 

요 며칠 또 <평화는 나의여행>을 읽다보니 전쟁의 참상에 대한 자각이 다시금 일어오지만, 그리고 이런 평화적 감수성이 병역거부 담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특히나 이제 곧 수감을 앞두고 있는 CO들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위와 같은 FAQ 이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아직도 한국 맥락에선 병역거부자가 되는 순간 놓여지게 되는 논의의 세팅들이 있는 것 같다. 기성품처럼 존재하는 이 프레임은 예컨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논의, 국방력을 둘러싼 논쟁, 국제관계/전쟁에 관한 이야기 등을 포함한다. 이 프레임에 놓이는 순간 병역거부자는 자기 자신의 몸, 삶의 지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예를 들어 수감을 앞두고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은 공론화되지 않는 것이다. 틀에 박힌 병역거부 FAQ들이 여전히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담론으로 남아있는 것도 기존의 논의 프레임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때문이겠지. 동시에 한편으론 이 FAQ들이 여전히 병역거부 운동 그룹이외에선 다루어지지 않고 있거나 혹은 그나마 병역거부자 지위를 획득해야 발언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정작 다른 방식 다른 내용의 말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이 죽고 노무현을 재평가하는 사회적 붐이 일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사람들은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들을 재조명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노무현의 인간적 측면에 오히려 더 주목을 했다. 노무현이 받는 것과 같은 그런 조명을 병역거부자들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병역거부자들은 자기 소견서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 측면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어도 표현할수 있는 언어가 없기도 하고, 뭇 사람들은 그에 관심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병역거부와 관련한 많은 얘기들이 나오다가도 결국 법정에선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월한 국방의 의무로 논의가 정리되어버린다. 

 

<폭력의 예감>으로 썼던 에 적기도 했지만, 그래서 병역거부와 관련한 요즘 내 고민은 저항의 새로운 언어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갈망이랄까. 그런 점에서, 꽤나 도발적이었던 '너 왜 군대가니?'라는 질문이 새로운 저항의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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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아내 폭력"은 명백히 성별화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성별의 문제는 가장 쉽게 간과된다. 가정 폭력적 접근 방식은 왜 언제나 때리는 사람은 "남성"이고 맞는 사람은 "어성"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남편이 스트레스 때문에 때린다면 왜 아내들은 술을 먹고도 남편을 때리지 않는지, 분노 처리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라면 왜 그 분노를 언제나 "집안에서만" 표출하는지, 폭력 행위가 손실(형사상 제재, 이혼)보다 보상(분노발산, 타인을 통제)이 크기 때문에 사용된다면 왜 여성들은 이 방법을 쓰지 않는지, 종교와 성격 차이 등 부부 갈등 때문에 때린다면 왜 남성들은 이혼한 이후에도 전 부인을 때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84쪽) (중략)

가해 남편과 당한 아내 모두 "피해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 경험의 간극은 세상 그 어떤 정치적 적대자들보다도 크다. 폭력 남편들에게 아내는 자신의 욕구, 요구, 의지, 이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대상 즉 남편의 권리 행사 대상이기 때문에 폭력 상황에서 인간적인 호소나 대화는 불가능하다. 폭력 남편이 자신의 푹력 행위를 반성하거나 정당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권력이 가족이라는 정치적 구조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그 자체로부터 보장되기 때문이다.(106쪽)

- 정희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지난 6월? 가출 아닌 가출을 했을 때 너무나 보고싶었는데 막상 찾으려니 안 보여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는 중이다. 읽다보니 내가 엄마를 뺀 가족들과 대판 '싸웠던' 그 날의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 다가오는 추석, 내게 명절은 가족이란 존재에 다시 떠올려보게 되는 때인듯. 너무 끈적끈적해서 뗄래야 떼지지도 않고 벗어나려해도 선뜻 벗어날 용기도 안 생기는 그런..

 

 

* 기아가 12년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이룬 날. 김상현과 최희섭이 홈런을 치고 로페즈가 잘 던지고 있는 동안 나는 극도로 높아진 일 스트레스에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쥐고 있더랬다. 칼퇴근은 하고 싶고 근데 업무는 남아있고, 내 스스로의 업무능력에 대해 회의가 먼저 찾아왔다. 집에 돌아와 기아 우승 확정 소식을 듣고 인터넷으로 오늘 경기를 다시 보니 새삼 감동이.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끼리 환호를 하던 순간 카메라에 잡힌 이종범 이대진 김상현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얼굴은 잔잔히 웃지만 그냥 웃는 것만은 아닌 듯한 표정이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가뿐한 마음으로 일 하려 했더니 뜬금없이 일에 대한 승부욕에 발동이 걸려버린 듯. 미친 듯이 끝내줄테다.

 

 

 

 

배설욕-_-;;

 

 

가을 바람이 솔솔 부는 출근길. 지난 겨울 오리가 파일을 보내줘서 날마다 들었던 이소라 앨범을 다시 꺼내 들으니 바로 감정의 과잉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어폰을 꼽고 걷던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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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끕'이 다른 공직자들

나에겐 공직자란 표현이 기사에서나 보고 듣게 되는 말이긴 한데, 오늘 가디언에 난 기사 를 읽고 나서 느낀 바를 메모하려다 보니 공무원 대신 공직자란 말을 쓰게 된다.

 

영국 법무부 장관(성이 'Scotland'인 사람은 처음 봤다)이 자기 집에 고용한 가정부가 알고 봤더니 취업 비자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통가에서 온 가정부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 장관은 이 가정부가 영국인과 결혼을 했기에 당연히 취업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암튼 강화된 영국 이민법에 따르면 고용주가 알고도 '불법' 고용을 할 경우에 최대 10,000파운드(한 2천만원)의 벌금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 여성 법무부 장관은 이 일로 5,000파운드의 벌금을 징수받았다 한다.

 

유색 여성 법무부 장관의 존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영국 내각의 논쟁과 지금 한국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관료들 인사청문회의 논쟁이 오버랩되며 내게 찾아든 감흥도 꽤나 흥미롭다. 영국도 일본처럼 곧 내각 선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암튼 지금 영국 내각의 수상은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이 사람이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법무부 장관을 토리세력의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안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스코틀랜드 장관이 'unreservedly'하게 사과문을 발표했고 통가 출신 가정부를 고용한게 법리상으론 불법이 맞지만 벌금도 다 지불했으며 가정부와의 고용관계에 있어 깊은 상호 신뢰가 있었던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유임의 요지인 듯 하다. 이에 반해 토리쪽에서는 지난 2006년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민법 개정의 결과물을 자신이 어긴 것이고 따라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법무 장관은 핑계조차 댈 자격도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걸 얼핏 보면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논리의 근거나 구조는 비슷해 보이지만, 지금 웨스트민스터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왠지 한국 인사청문회에서 다뤄지는 이슈들과는 뭔가 논의의 질이 달라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인 것일까?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세금탈루, 명의신탁 등등..병역비리를 제외하고는 익숙하지도 않은 말들이지만 그래도 이 모든 논쟁 사안들이 부동산, 재테크 뭐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이 얼마나 천박한 자본주의의 산물들인지. 법치주의와 서민경제를 날마다 입에 달고 사는 위정자들부터가 자기모순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에 반해 '불법' 이민자를 고용시켜주었다가 벌금을 물게 된 걸 가지고 싸우는 것은 적어도 재테크 방식을 두고 싸우는 것보단 나아보인다. 내가 영국에서 막판에 비자문제 때문에 골머리 썩이다가 결국엔 여권에 '불법' 낙인 도장을 받고 나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영국 법무부 장관이 저질렀다는 '범죄'에는 오히려 일말의 호감마저 드는 이 미묘한 기분.

 

안 그래도 지금 학교에서 일 시작하고부터는 사람들이 비인격화되어 공무원 집단으로 뭉뚱그려진 상태에서 그 집단의 미운 것들만 자꾸 보이는데, 공무원들의 최고봉(?)인 장관급 각료들이 국회에서 하는 말들을 보고 있으니 차라리 안 보는게 속이라도 편하지 싶다. 심지어 정운찬 이 사람은 옛날에 본부 점거 농성 하던 시절 젤 미운 사람이었는데. (난 진중권이나 재범처럼 영향력 있는 인사가 아니니 설마 이렇게 썼다고 날 잡아가진 않겠지--;;)

 

"Hate the sin and not the sinner"

 

내 스스로를 비폭력이라는 가치로 학대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의심도 살짝 들지만 그래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내가 먼저 벽을 쌓으면 내가 더 힘들어질테니. 귀족의 도덕, 강자의 도덕을 위하여. 아래 영상은 은행 광고인데 이 광고에서 간디의 아힘사Ahimsa를 유추해낸 글이 있길래 링크를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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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0

학교에서 학생들 자습시간에 감독을 하는데 요 며칠 새에 애들 사이에 구글 어스 바람이 불어서 공부는 안 하고 노트북으로 가고싶은 대학을 검색해서 보느라 바쁜 것이다. 구글 어스 기능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애들이 너무 삼매경에 빠져 있길래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조용히 공부 다시 시작하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애들이 구글 어스로 보던 모습이 떠올라 나도 호기심 반에 런던을 찍어봤는데 왠걸 street view 기능을 통해서 정말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장면이 뜨는 거다. 그냥 위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위성사진을 기대한 거였는데, 나도 학생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 드래깅을 하며 한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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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caleroad에 있는 housman  책가게. 이 건물 2층에 wri가 있다. 지난 겨울의 기억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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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내가 3개월 정도 머물던 플랏과 그 앞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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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스퀘어..그 때가 춥긴 추웠나보다. 내 기억엔 우중충하니 스산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햇살 가득한 모습을 보니 왠지 낯이 설다..

완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오른쪽으로 붙어있는 national portrait gallery도..그 쪽으로 더 올라가면 소호가 나오고 한쪽으론 피카딜리서커스 다른 쪽으로 가면 코벤트가든이 나오는.. 주말마다 꾸준히 돌아다녀도 아직 못 가본 미술관들이 산재했던 런던. 미술관 박물관은 게다가 죄다 공짜. 혼자 지내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와우북 페스티벌 구경하러 홍대에 나가긴 했지만 홍대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헤이스팅스도 찍어봤는데 안타깝게 거리 사진이 뜨진 않는다. 시골은 시골인갑다.. 구글 어스로 북한이나 한국 군부대 내부도 다 보이려나..문득 궁금해지는.. 암튼 구글 어스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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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애'

*다른 선생님들한텐 고분고분한데 나에게는 싹수가 별로 없어보이는 학생 때문에 오늘 오후 내내 그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나의 평가가 덧씌워지면서 그 학생이 자꾸 얄미워지고 일말의 적개심 혹은 증오의 감정들이 감지되길래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근데 바쁘고 다른 일에 치여 퇴근할 때 쯤엔 진이 다 빠져버려서 다시 곱씹어볼 기운도 없더라. 그래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메모를.

 

"오늘 에세이 시험은 안 보면 안 되요?"

"왜요?"

"아 에세이는 봐도 별 의미도 없잖아요(!)"

"아 근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저는 권한이 없고 xx 선생님하고 얘기해보세요"

 

언제부턴가 내 안에 있는 '착한 선생 컴플렉스'에 대해 자각을 했다. 그리고 학생과의 관계에서 내가 학생에게 강요하거나 혹은 반대로 무조건 받아주거나의 이분법을 넘어서기 위한 대화방식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하는 중이다. 변화하려는 과도기에 있어서인지 종종 대화가 이도 저도 아니면서 내 말투에 은근슬쩍 가시들이 묻어날 때가 있다. 나중에 후회할 거 알면서도 일단은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마치 탁구칠 때 2,3구 뒤를 생각하며 스윙을 하듯 말할 때에도 대화전개양상을 미리 상상하며 말을 꺼내보려 하지만 조금만 긴장줄을 놓쳤다 싶으면 이내 나를 자극하는 말들에 대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다.

 

위 학생과의 관계를 복기하면서 처음에 내가 찾은 내 욕구는 자율성, (권한?)이었다. 근데 그건 그 학생보다는 내 보스와 더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욕구인 것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마치 종로에서 (보스한테) 뺨맞고 한강가서 (그 학생에게) 화풀이하는 상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학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 진짜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힘겹게 찾아낸 욕구는 '존중'이었다. 근데 막상 내 욕구를 그 학생에게 얘기를 한다고 상상해보니 왠지 그 학생은 바로 "저는 선생님 존중 안 한적 없는데요" 뭐 이런 식의 반응을 할 것 같았다. 마치 상대에게 자기 느낌을 말할 때 '난 무시당한 기분이야'라고 생각을 말하면 바로 상대가 그 말에 반발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욕구를 더 찾아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학생을 공감해보려고 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병행을? 비폭력대화 연습 모임에 나가면 이 사례로 좀 도움을 받아볼텐데, 아쉽다. 도움/지원, 명료함이 필요한 것 같다.

 

외고 국제반 3학년. 1년에 최소 오천이 든다는 미국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처음 학교 갔을 때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이 애들은 영악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자꾸 생각이 난다. 진정한 소통, 진정한 관계 이런 걸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안에 자꾸 젤 먼저 찾아오는 '싸가지 없는 놈'라는 이미지는 없애고 관계를 맺고 싶은데.

 

덧.

저녁에도 그 학생이 내 바로 앞에서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가길래 내가 인사를 먼저 했건만 본척 만척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 때 난 속으로 '오오 자 날맹 릴랙스 릴랙스'를 연발했더랬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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