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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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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눈덩이처럼 굴러 커진 것인지 - 같은 눈덩이라도 그것이 모두 당사자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내 다른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슬픔도 분노가 억눌려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리고 나는 다져진 슬픔도 아닌, 날것 그대로의 화 때문에, 이틀 연속 잠을 설쳤다. 그저께 밤에는 거의 완전 꼬박 못 잤고, 간밤에는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으나 여러 가지 꿈이 복잡했고 깨어 보니 아주 잠깐 잔 것이었다. 평균 9~10시간을 자던 데에 비하면;;

 

내 감정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원인을 잘 찾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할 수 있고, 그럴 경우 그것이 아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 다른 가능한 요인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다.

요즘 내가 최근의 몇 가지 일들로 힘들고 지쳐서 마음의 여유가 없나? 또는 한 가지 그 상처에 매여 있나?

돈이 바닥을 팠고 들어와야 될 알바비도 안 들어오고, 하루에 몇 번씩 입금 확인을 하고 있어 초조한가?

아직도 덜 끝낸 일로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은 채, 앞으로 일단 한 해를 버틸 엄두가 안 나서 그런가?

 

이런 상황 말고도, 요즘 잘 마음 통하는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피상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에는 더 이상 마음이 놓이지 않고 뭔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토대 위에서 마음이나 감정의 공감도 덮여야 비로소 뭔가 갖추어진 듯하다고 느끼는 바람에 아예 소통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내 일정에 쫓긴다든지... 마음 불편한 상황을 누르고 소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편함만 호소할 수도 없고 사실 그럴 데도 없으며 아마도 나는 사람은 결국 누구나 혼자다, 라는 걸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요즘의 상태에서는 웬만한 마음 나눔 가지고는 공허감만 더욱 크게 할 뿐이라 그런가.

 

마음보다 몸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다. 열이 오르고, 표정과 말투뿐 아니라 온몸이 굳고, 잠도 쫓아내고, 순간순간 분노로 흥분해서 작은 기억을 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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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답을 알고 있다. 내가 배려하고 기대한 어떤 만큼의 배려나 성찰이 오지 않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다. 그리고 배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적어도 나는 아직 그만큼의 배려를 할 그릇이 못 되었는데 무리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배려하는 데에 감정 노동뿐 아니라 신체적, 물질적인 대가도 든다. 생각보다 아주 클 수도 있다. 내가 능력 밖의 배려를 해 놓고 예상치 못하게 후회할 만큼 힘든 이유는 그 소통이 좀더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이라고 순간순간 했겠지만, 그래도 서로의 신뢰가 없을 때 그 정도라는 것은...

 

*

하지만 내가 너무 오버인가, 과대망상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이들 둔감하고 무감각한 세상이다. 자기 아픔이 아니라면 말할 것도 없다. 찔리고 아픈 쪽에서 찌른 쪽에게 자꾸 이것저것 귀찮게 물고늘어지는 것이 흉이 된다. 유난스럽고 과민한 일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분위기에서 혼자 예민함을 고집하는 것은 영락없는 과대망상이다. 대체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관계의 유토피아라도 만들고 싶은 것인가? 또는 그것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내 위주의 생각을 강요하는, 나르시시즘과 또 다른 침범과 폭력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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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차분히 하나씩 보기 위해 어제 하루(라도)를 돌아본다.

 

눈뜨자마자 잔고 확인을 했다. 소식이 없다. 동생에게 다 못 전한 남은 합의금을 보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동생이 직접 (교통사고) 가해자와 그것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통화하며 입금 확인하고 어쩌고 하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일 것이라 내가 연락하면서 받아서 보내고 있는데, 이번엔 남은 합의금을 다 받았는데도 내 통장에서 휴대폰 요금이 인출되면서 몇 만원이 모자라게 되어 버려 며칠째 미루는 중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이것은 알바 계약이나 사전 중간 사후 소통의 문제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일어나서 친구를 만나러 충무로에 갔다. 오랜만에 참 반가운 시간이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알뜰하게 써서 밥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러나 친구는 눈에 띄게 몸이 말랐고 몇 개월째 몸을 혹사하고 있고, 끊임없이(전화, 부탁, 심부름, 오가다 만남 등으로) 일터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 1시간의 자유시간 안이나 경계에서도.

 

사진을 찾았다. 노출부터 뭐 아주 엉망이다. 뭐 이런 거야 사실 아무 기대도 실망도 없다. 그러나 사진이나 포토피아에는 내 여러 기억이 묻어 있다. '사진 세계' 어쩌고 하는 이와의 관계의 삐걱임이 찜찜함으로 남았다.

 

문득 숙제를 안 했다는 생각이 나서(아 늘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나는구나), 킨코스에 들어가 작업을 해서 보냈다. 친절한 직원이 안내와 배려를 잘해 주어서, 작업하긴 편하고 좋았다(뭐... PC방이 아니고 킨코스니까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학원에 갔다.

어젠 아니지만 그저께의 기억은, 학원의 한 빈 강의실(자습실로 쓴다) 뒷쪽 에어컨에서 올라오는 악취였다. '잘 관리하지 않은 낡은 건물의 찌든 화장실' 냄새가 바람으로 폭폭 나오고 있었다. 뭐 내가 느끼기엔 폭폭, 이었지만, 자리를 거의 채운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얌전히 앉아 공부만(말로 주고받는 스터디도) 잘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냥 조금 멀찍이 떨어진 자리로 옮겼을 뿐이었지만, 나중엔 나갔다 들어올 때 강의실에 엷게 퍼져 있는 그 냄새에, 사무실 직원에게 알렸다. 그사람은 그 기기를 꺼 보려고 하다가 스위치를 못 찾고, '이게 지금 (스위치 등이) 다 막혀 있어서 끄진 못하는데, 조금 있으면 중앙 냉방이 꺼지니까 그때까지 좀 기다리시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체적인 시스템 문제는 아니냐는 물음에 그건 아닌 것 같고 이 기기 하나에 뭔가 음료 같은 걸 흘렸다든지 그래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아, 실내 공기. 내가 마시는 공기. 서울시내 공기. 최근 이틀 동생은 (아마 스모그 때문인 것 같다고) 알레르기 증세를 보였다.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고 코와 입천장 등 점막이 가렵고 등등. 동생과 나는 둘다 호흡기가 약해서 먼지나 매연에 민감하다. 천식 경력이 있거나 여전히 가지고 있고. 몇 달 전 '육식' 관련한 책읽기 모임에서, 나는 책은 다 못 읽었지만-_-;; 내가 개인적으로 아토피 때문에라도 관련지어 생각해 봤다고 언급했을 때, 친구가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엄연히 자본주의적 육식 생산물에 거부하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육식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땐 그런가,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이후 그런 개인적 특수한 질병의 문제가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육식 등 식생활 관련해서, 또는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아토피나 알레르기는 개인 몸의 건강을 챙기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약하거나 건강치 못한 체질인 사람부터 전체 집단의 병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1급수에서밖에 못 사는 물고기부터 차례차례 죽어 나가듯이.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혼자 수동적으로 앉아 수업을 들으려니, 역시 불끈 하는 화와 싸우며(싸우고 누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동시에 이런 감정에 당황스럽고 의아해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직접적인 이유는 아까 친구와 만나느라 몇 시간 뒤로 내가 미뤘지만, 그 직전에 잠깐이라도 그 (교통사고) 가해자와 통화를 한 것에 있다. 그는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라고 했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 같지만 내 화는 그때부터 완전 부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많이 다치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그게 남 일이냐? 가해자인 네가 할 소리냐! 내 동생이 직접 듣지 않은 게 다행이다') . 역시 말 한 마디에 내가 과민했던 것으로밖에 볼 방법이 (표면상으로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합의하기 전인 한참 초기에, 치료비 등과 관련해  '당연히 그건 제가 해 드려야죠' 이런 표현에 관해서도 나는 화가 나서, 전화로 그 말에 관해 따지기도 했었다. 내가 너무 어휘 표현에 집착하나? 생각하면서도, 서로 부딪친 것도 아닌, 캠퍼스 내 횡단보도에서 멀쩡히 건너고 있던(신호등이 없었는지 있었는지 모르겠다. 있었다면 당연히 녹색불이었겠지만(나와는 달리 그는 절대 무단횡단하지 않으니까)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을 달려와 치고는, 물론 매우 매우 죄송해하며 몸둘 바를 몰라 하셨기에 나도 서로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이야길 나눴었지만, 변명이란 말이 '진짜 안 보였어요...' 라니, 내 동생이 무슨 개미도 아니고! 아니, 이건 화나서 하는 말이고,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가 아니면 형사 처벌인데. 당연히 안 보였겠지,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게 '제가 절대 보였으면 멈췄을 텐데 밤이고 또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계셔서 안 보여서요... 절대 고의가 아니고...'를 변명이라고 피해자측 앞에 해야 하나. 치인 사람은 그 사람 말대로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날 그래, 어두운 밤에, 비 오는 젖은 땅바닥에, 한참 쓰러져 있었단 말이다. 합의 과정에서 너무 많은 배려를 한 것이, 두고두고 홧병이 나는 것이라, 이제는 합의금 그거 도로 내가 몇 달 더 알바 해서 갚더라도, 그런 개념을 가진 사람의 돈 필요 없으니까, 뭔가 이제라도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철회할 수 있다면, 탈것으로 사람 몸을 치었을 때의 위험함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라도 이게 '보통 일이 아님'을 알고, 그 흔한 교통 사고에서 그나마 안 다쳐서 다행인 게 아니라, 얼마큼 다쳤든 이 일 자체가 큰일임을, 알아 주었으면, 제발 뭔가 한 대 맞듯 정신을 차릴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아마도 분명 보복 심리를 포함한, 내 화가, 나는......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치미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 것은 법에 의한 강제 처벌도 아니고(그것은 내 보복 심리 정도를 충족해 주겠지만 그래 봐야 나도 허무하고(직접 피해자인 동생은 더 허무할지도) 무엇보다 가해자가 반발심밖에 더 생길까, 그런 권력 행사는 참으로 하기 싫은 '(내 안의) 악의 유혹'일 뿐이다.), 진심으로 하는 대화를 통한 (사태 심각성이나 피해자의 아픔이나 힘듦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의 진심어린 표현이었는데, 그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인데 내가 내 언어 표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오해, 매도하는 것은 아닐까. 헷갈려. 또는, 설사 내가 온 힘을 다해 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소통을 꾀하더라도, 그가 그것을 (이미 최근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피곤해하거나 아무튼 아무 말없이 거부해 버리면 끝이지. 역시 사람 마음이, 마음 (서로?) 움직이거나 통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지. 아아. 또는 내가 시간이 많아서 이런 고민을 억누르지 못할 뿐인 건가. 친구처럼 과로하는 데에만도 정신이 팔리거나 미친듯이 전업 공부 중이라면 이러지 못할 텐데, 아쉬움이 없어서(?) 이런 건가...... 그 가해자도 피해자 입장에서 대략 감수하고 넘어간 경험이 있다는 것을 봐도, 다들 그렇게 대략 감수하고 넘어가는 것뿐인가. 역시 내가 인간관계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진 어리석음을 못 버렸을 뿐인가. '타인이 어느 수준까지 ~하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은 분명히 있지. 그 기대 때문에 분노를 떨치지 못하는 내 더한 어리석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겪는 문제인 한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지 못하고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듦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문제인가. 몇몇 사람들의 지적처럼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인가, 과연?

 

(아, 쓰고 다시 보니, 역시 차분히 보기 위해... 라는 건 꿈이었어OTL 차분해지긴 무슨.)

 

학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는 문제처럼, 적극적으로 얘기해서 고쳐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귀찮아서 그냥 지나갔어도 당장 내게 별 큰일이 없는 일이면야, 저렇게 화나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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