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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과 성격?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짓기'에 관하여('재미로'라는 이름으로 돌고 도는) 거부/혐오감을 갖고 있다.

 

1. '재미'는 없어도, 생각나는 정보 정도만 늘어놓아 보자면(물론 이것들은 이미 중요하지 않지만-_-)

- 혈액을 분류하는 방식은 ABO식, RH+/-식 등 스물 여섯 가지 정도가 있다고 한다. (H가 말해 줌)

- 애초에 (과학적 근거와는 무관하게) 작위적으로 만들어져, 역시 인위적으로 도입되었다.

- 한국, 일본 정도의 문화적 현상인데, 원래는 헌혈, 수혈시 필요한 의료 정보일 뿐이다.

- 통계적으로 '근거 없음'이 여러 차례 증명됐다. (학부 때 교양 심리학 논문 쓰느라 찾아 본 논문들)

 

2. 믿는 사람들의 심리를 주제로 쓴 그 논문과 이후의 생각으로 더해지는 결론은, 

사람들은 편하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것. 체계 없는 변화의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편히 안주하기 위해 적은 양의 에너지만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 심리테스트나 사주, 운세 풀이처럼 두루뭉술한 언어로, 또는 특정 단정적인 말이라도 사람의 다양한 면모에 어딘가에는 들어맞을 이야기로 왠지 그럴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발화의 힘',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믿음에 도움이 되는 예만 수집하는 성향(도움이 안 되는 반례들은 인식도 하지 않아 버리거나 기억에서 쉽게 삭제하거나, 정 안 되면 '소수 예외' 범주로 분류해서라도 '큰 원칙(믿음)'은 유지하려고 한다).

 

- 한국과 일본 문화에 관해, 편견 많은 내 생각이겠지만(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잠정적 결론인데), 아직까지는 비교적 인종이나 민족적으로 '겉보기(피부 색, 머리 색, 눈 색깔 등 눈에 띄는 외모)'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다른 식으로라도 의미를 부여하여 분류하고 싶은 심리가 있던 것은 아닐까. 또는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가 비교적 센 문화에서, 사람들을 단지 몇 개의 집단으로 분류해 그 범주마다에 포함시켜 버리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 게다가 마침 사람이 쉽고 편하게 기억할 만한 단위가 네 개를 넘지 않는다니(전화번호 등을 네 자리씩 끊는 것도 그 때문이고), 단 네 개가 전부인 ABO식 혈액형은 얼마나 편리한 틀인가. 별자리 같은 건 서양처럼 신화의 뒷받침이 있지 않고서야, 너무 많고 복잡하지 않은가.

 

- 한국의 인구 비율로 보면(일본은 모르겠다), O형과 A형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이 두 가지 혈액형에는 일단 사람이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밝고 넓고 내뿜는 면/어둡고 좁고 숨어드는 면, 또는 외향형/내향형을 이분해 적용하고('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B형과 AB형에는 '괴짜', '특이함', '개성' 등의 의미를 붙여 저항의 확률을 줄이고, 심지어 획일적인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가치 판단마저 ('이상한 건 다 B/AB형'이라는 식으로) 부여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소수라도 치명적인 편견도 아니고 어차피 네 개로 분류된 것 중의 소수라 충분히 그 안에서도 집단성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B형들 모여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 나름의 '희소성의 가치' 또는 그와 무관치 않은 '특이함'이라는 의미 부여 덕분에, 긍정적으로는 재미있고, 매력있고, 부정적으로는 동병상련(?까지는 아니더라도, 애교 있게 억울함을 나누는 관계 - 앗, '애교'라는 것에 관해서도 생각이 많다)의 의미라도 띠고 있으므로, 이래저래 'O형 모여라'보다야 훨씬 활발할 수 있다).

 

3. 그러고 보면 혈액형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재미'에 내가 불쾌하기까지 한 이유는,

 

- 연상되는 것이 나치의 인종에 따른 성향 구분이나 반대로 유태인의 선민의식, 또 흑인들을 인간 취급 안 하던 시절과 여성의 뇌를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하던 시절 등, 뭔가 선천적인 특징과 사람의 내적, 개성적 특징을 연관짓는 것의 부자연스러움과 심한 비약, 관련도 없는 과학적 '사실'의 영역을 사람의 주관적 '믿음, 성향, 판단'에 끌어다 부리는 일에 대한 역겨움

 

- 내가 어떤 범주에(원하든 하지 않든 결국 또 선천적인 이유 때문에 더욱 그렇지만) 분류된다는 것, 그래서 나와 타인의 각각의 개성을 보는 눈을 조금이라도 가려 버리고, 같은 혈액형끼리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쓰인다는 것(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냥 끼적이는데 점점 길어져서 1, 2, 3 번호까지 붙이게 됐는데... 결국 내내 '싫다 싫어'만 한 것 같군.

정말 저런 재미는 싫어.

 

여기서야 누군가 또 '너 X형이구나?' 이렇게 하진 않겠지만...... 이런 얘기 들으면(다른 세계에서 참 많다), 흐음...... 예전에 한번 다른 편견에 관한 글을 싸이에 썼다가, 어떤 친구가 퍼간 아래 덧글에, '길다 암튼 너한테 OO라고 안 할게' 한 것을 구경했을 때의 허탈함이 재현되겠지. 엄청난 편견과 그 때문에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닌' 제재를 겪는 경우보다야 훨씬 작겠지만 말이야.

 

믿음이란 건 신앙이고 종교라, 혈액형도 요즘 (재미로 믿는) 작은 종교들 중 하나이고(하긴 다른 종교들도 재미로 믿는 사람들 많은데), '체험의 종교인데...'라고 말한 최근 지인의 한 '진지하고 배타적인' 형태의 기독교도 그렇고(회의를 느끼면 '말씀'으로 돌아간다), 그래 다들 어쩌면 체험의 종교일 수 있지. 체험과 인식의 종교...... 내 종교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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