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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올챙이님의 [혈액형과 성격?]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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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과 성격 같은 것을 연관지어 믿는 일이(또는 적어도 그럴 듯하게, 의미 부여하며 얘기 나누는 일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자리나 사주를 믿는 일도 그렇고, 신화를 믿기도, 종교를 믿기도, 과학을 믿기도 어떤 면에서는 닮은 점이 있다. 그건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것', 미지의 영역(그것이 내 성격이든 운명이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고 어디서 어디까지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것들)에 관하여, 잠시라도 명확하게 설명해 보여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성으로 생각해서 파악하거나 설명하기에 너무나 복잡한 마음속과 세상을, 한마디로 명쾌하게 또 두루뭉술한 말로 그럴 듯하게 설명해 주는 저런 장치들은 매력 있을 수밖에 없다......

 

로또 같은 복권을 사느니 그 돈으로 경제 신문을 사서 읽는 일이 훨씬 돈 버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정말로 경제 신문을 사서 열심히 읽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의 귀차니즘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 선택적 애정은, 자신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것들을 빼고는 '대략' 생각하고 믿고 버리도록 할 테니까......

 

이런 얘길 쓰려고 들어왔다가, 친구의 블로그를 보고, 저런 믿음의 또 하나의 매력은, 그곳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깃든 사연, 이야기. 허구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훨씬 재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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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엄마의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30대 중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20대 초반의 주변 사람에게서, 절친한 친구가 역시 스스로 삶을 끝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격을 받은 그 친구는 며칠을 24시간 내내 깨어 있다가, 또 24시간 내내 잠들었다가, 하는 식으로 보냈다고 했다. 절친한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탁구 파트너로도 몇 년을 함께한 엄마 역시 정신이 없고 멍하다고 한다. 내 주변이나 건너에서 기도한 사람이야 몇이나 되고......

 

오늘 휴대폰을 고치러 갔다가 수리기사가 마이크 이상이 '충격 때문인 것 같다'고 하기에, 내가 수긍하는 표정으로 떨어뜨린 적은 있다, 다만 바로 최근은 아니었다고 하니, '그야 당연하죠' 하듯 웃으며 이것이 '사람 교통사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실감 나게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런 비유를 가볍게 쓰는 걸 보고 아마 그 사람은 주변에서 교통사고로 심각하게 다치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은 없나 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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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인의 식탁>(내가 본 몇 편 안 되는 영화, 특히 매우 드문 공포 영화, 중 하나다)에서처럼, 사람은 하나씩 모두 챙기기에는 너무 복잡한 일상에 지쳐 자잘한 믿음들을 주워 섬기기도 하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픈 사연 때문에 아예 커다란, 믿음으로 굳건한, 새로운 세계를 마음속에 짓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미 존재하는 질서 - 역시 복잡하게 분화된 종교의 수많은 범주 중 하나 - 에 부합하면 그럴듯한 종교로 불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미신이나 소수 종파(또는 종교라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소수의 세계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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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짓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나, 생각해 보는 중이다...... 처음부터 좋아하진 않았지만 점점 더 싫어하게 되어, 이제는 공공연히 '혐오한다'고 말할 정도까지 되었다. 운세나 별자리에 관해서는 그렇게까지 드러내 놓고 '혐오'하지는 않고, 위의 이유 때문인지 여전히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아니 혈액형도 굳이 선천적인 '피의 유형'과 연관시켜서가 아니라 다만 하나의 상징으로 쓰이는 데에는 재미에 공감할 때도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요즘 내가 더더욱 민감해진, 믿음과 인간관계의 문제 때문은 아닐까 한다. 내 성향을 알 만도 한데 - 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있을 테지만 -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쪽으로 가고 있는 친구의 면모를 반복적으로 발견하면서 느끼는 (처음의) 당혹스러움이나 분노, 날이 갈수록 어느 정도는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기, 그리고 처음 만났는데 다른 데선 얘기가 다 잘 통했지만 어떤 농담에 대한 내 반응에 "왜요, 아니 뭐, 여권 운동 하는 분이세요?" "무슨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그런 거예요(설마 아니라고 하겠지, 하고 기대하는 듯)?" 하고 물은 두 사람, 그리고 또, 나는 그냥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는 모습이 나름 좋아 보인다는 뜻으로 "성경 공부 많이 하네" 했더니 나의 기독교로부터의 '중도 일탈'을 안타까워하며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 나를 집어넣고 대화를 이어 가는 동갑내기 사촌, 이런 요즘의 작지만 하나로 꿰어지는 경험들이 나를 더더욱 민감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내가 이래저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온 화두이기도 한 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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