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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며칠 집에서 완전 푹 쉬면서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그러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아, 겨울 햇살이 이리 좋은가. 절대로 사흘 연속 집에 못 들어오고 일하는 지랄은 안 하리라, 다짐하지만 글쎄, 이렇게 오랜만의 달디단 쉼은, 그저 계속 쉴 때는 모르던 것이기도 하지.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사랑 넘치는 한 교사의 수필 모음) 여기는 로스쿨(실용적이고 적나라하며 간결한 조언 모음) 어른이 되어 다시 듣는 이야기(마음을 돌보는 데 거울이 되는 이야기 모음) 늘어놓고 보니 역시 책 읽는 수준은 십대 때 끊긴 맥이 치명적인가도 싶지만 - 그러나 어쨌든 잡다하게 편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결국 누워서 고민하다가... 난 왜 어느 한 가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이리 매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 왔을까 하고... 결국 나를 자라지 못하게 잡는 것이 그 강박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역시 '직업을 갖는 일'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늘 한 과정이 개강했다. 어제는 짜증이 났는데 - 오늘은 즐겁고 설렌다. 오랜만에 나갔다 와서도 그렇겠고, 같이 일한 선배가 밥을 사 주어서도 그렇겠고, 사무실에 함께 가서 ('오너'는 못 만났지만) 수다를 떨다 와서도, 뭔가 하나 작게 시작해서도 그렇고, 나갔다 와서도 발목이 아프지 않고 걸을 때도 훨씬 편해져서도 그렇겠고 -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반깁스한 발목으로는 냉장고에서 식탁으로 내 밥 차려 먹는 일도 불편했는데 오늘은 드뎌 먹을 것들을 TV 앞에까지 거의 성큼성큼에 가까운 걸음걸이로 가져와 먹을 수 있었으니 감동이었다 - 자기를 향한 모든 비판을 대놓고 빠져나가는 대선 유력 주자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마저 반가울 지경이니... 오랜만에 겸언니랑 통화해서도 즐겁고. 지갑에 70원이 남고 통장 잔고에는 인출 불가의 잔액만 있어도 일단 발목 땜에 택시 타고 다니는 게 불쌍해서 집에서 지원해준 한 주 전쯤의 3만 5천원, 다시 5만원, 그리고 신용카드로 주말과 이후 한동안을 날 생각을 하면서, 역시 신용카드로 아카데미 과정을 긁으면서, '오너'와의 뒤늦은 협상을 구상하면서, 과외가 끊길 것도 각오하면서, 이제 거의 다 나아 가는 발목으로 일을 (제대로 따 와서) 재개해야지 생각하면서... 뭐, 나쁘지 않아. 그림도 배워야지, 아니 그려야지. 아니면 악기를 연주하든지 노래를 해야지. 사실 다른 것보다도 오래 전부터,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싶은데... 다른 어떤 일보다 본능에 가까운 그 일에 충실하기가 가장 박세고 돈도 가장 많이 드는 데다 거의 모든 다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라니... 아무튼 말이다, 밤샘을 밥먹듯 하지 못할 체력이라면 입문도 못 하리라는 그 분야에는 발도 들여 놓지 않겠어. 내 몸의 자존심과 최소한의 품위(그것이 바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고, 누고 싶을 때 눈다'는 것이다)는, 내가 기꺼이 내 몸을 던지고 싶은 일이나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면, 조금도 양보를 강요할 수 없다. 대체 인권인지 뭔지, 이건 점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동물권만도 못해지잖아?! 아,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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