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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든 사람

과외하는 중1(앗 지난 3월부터 중2;;)인 사촌동생이 '재미있게' 해준 얘기 1. 담임샘이 반 아이들 중 한 명을 '스파이'로 점찍어서 그 애한테만 살짝 알려준다. 그의 역할은 담임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과목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에게 걸리거나, 떠들거나 암튼 그런 친구를 담임에게 낱낱이 알리는 것. 스파이를 제외하곤 아무도 누가 스파이인 줄 모른다. 2. 반 아이들은 누가 스파이인지 맞추러 담임에게 가서 500원을 걸고 도전할 수 있다. 답이 틀리면 500원을 그대로 담임에게 잃고, 맞으면 1,000원으로 돌려받는다. 그 순간 스파이였던 애는 노출되므로, 다른 애로 즉각 교체된다(역시 담임과 새로운 스파이만 알게 비밀리에). 전직 스파이는 다른 아이에게 들키도록 서툴게 일을 수행한 죄로 벌금 1,000원을 낸다. 3. 최근 내 과외학생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스파이로 의심되는 다른 아이를 하나씩 찍어서, 각기 번갈아 500원을 내고 도전해 보았다. 내 학생과 두 친구 모두 예상이 틀렸고, 그렇게 각기 500원씩 잃었다. 그런데 어떤 다른 남자애가, 또 다른 아이에게 "야 OOO, 너 스파이지? 다 알고 있어! 나 지금 선생님에게 말하러 가는 길이다." 하였다. 지목당한 아이는 "어 나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는 바람에 들켰다. 처음 말한 아이는 "야 진짜야?! 떠본 건데 진짜라 그러면 어떡해!ㅋㅋ" 하며 결국 선생님에게 가서 말하고 1,000원을 벌었다. 4. 스파이로 밝혀진 아이 주위에선 다른 아이들이 "야 너땜에 지난번에 나 걸렸잖아." "나도 걸렸어 그게 너 때문이었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고 투정부리듯 따지다가, 그 아이가 당당히 "스파이니까. 어떡해." 해서 다들 더 뭐라 말하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 나는 꽤 당황하여 걱정하면서, 여러 가지 물어 가며,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많지만) 자칫 왕따 후보자를 양성시킬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걱정했다. 사촌동생은 내가 이렇게 걱정하고 놀랄 줄 모르고 그냥 가볍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그 떠본 아이 이야기를 재밌다고 하려던 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심각해지니까) 좀 김이 빠져 했다... 그 아이뿐 아니라 반 아이들이 그걸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인 듯했다. 이 스파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피아 게임'이 저렇게 적용될 수도 있구나. 그 담임 진짜 놀랍구나. 집에 와서 동생에게 이 이야길 하니 그는 나보다 훨 심각하게 놀라고 고민하면서 말했다. 이게 아직 학기 초라 그냥저냥 잼있는 듯이 굴러갈지 몰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곧 문제들이 불거질 것이다. 많이 떠들었거나 걸렸거나 한 것이 아니라 '조금' 잘못해서 애매한 경우, 자기랑 친한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감아주고, 안 그런 아이는 걸러낼 수 있다. 평소 밉게 본 아이에 대해 별 거 아닌 문제를 트집 잡아서 얼마든지 '보복' 심리로 자기의 스파이로서의 놀라운 '비밀 절대 권력'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그 담임은 평소 다른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에게 지적받은 아이들을 종례 시간에 혼냈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스파이를 통한 정보 수집의 결과였다는 것을 아이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담임이 공지는 조금 늦게 했나 보다). 혼나는 수위가 어떤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지각한 아이나 서로 싸웠는지 아무튼 무슨 말썽인가를 피운 남자아이들을 '두 손으로 두 뺨을' 쳤다는 둥 하는 얘길 그 아이가 하는 걸 보면(그 아이는 그것도 '선생님 무섭다'고만 표현했다), 게다가 만우절에 무슨 기합을 줬다느니 갑자기 달리기 시험을 본다고, 수행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며 아이들을 달리게 한 걸 보면, 평소 체벌을 포함, 아이들에게 폭력과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선생인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대로 "아니 어떻게 그런..." 하고 어버버하며 몇 마디, 그건 정말 아닌데, 너무하다, 중얼중얼하다가 굳이 최대한 이해를 해서 "나도 삼사십 명 되는 아이들을 관리하다 보면 그랬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관리)하고 싶어졌을까?" 하고 씁쓸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래도 정말 아니라 생각해서 뭔가 이걸 제대로 문제제기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그곳에 인질(?)로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모르겠구나..." 할 뿐이었다. 어제 아니 목요일 인권연구소 창의 강좌에 늦게 갔다가 끝나고 다과(그보단 거의 요리를 내어 주시는;;ㅎ) 시간에 몇 명 안 남았을 때 이 생각이 나서 얘기했더니 '떠든 사람' 이름 적는 것의 발전된 버전이라 하며 다들 놀라워하였다... 스파이로 지목된 아이가 친구를 일러바치면서 뭔가 불편한 마음이 안 드나?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변하거나 조금씩 불합리한 걸 깨달아가는 데에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는 얘기, 각자 학창시절의 그와 비슷한 경험. 심지어 선생이 '반 평균 깎아 먹은 애들'과 '잘한 애들'을 같은 수로 앞으로 불러 내어 '잘한 아이들'에게 "너희도 친구들이 공부 못하는데 도와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평균이라면 어차피 늘 그런 숫자는 존재하는데 어차피 또 무슨 논리?) 잘하는 그룹에게 못하는 그룹을 "때리라"고 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 선생이 구구단을 못 외운 학생과 잘 외운 학생을 불러 내어 못하던 학생이 외울 때까지 잘하는 아이를 한명씩 붙여 가르쳐 주게, 훈련시키게 한 기억을 얘기했다. 그리고 어제는 TV를 봤는데 'VJ특공대'에서 '귀농해서 부자 된 사람들'을 주제로 한 한 영상이 나왔다. *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화분 채소를 키워 파는 사람 * 여러 가지 색깔과 무지개 색깔의 장미를 만들어 낸 사람 - 진짜 이뻤고, 이걸 반차별공동행동에서 어찌 활용해도 좋겠다 집회 때 또 머리에 달면 어떨까, 참 좋겠다 하면서 보는데 어쨌든 화분에 온갖 색소 주사기를 꽂아 놓은 장면에선 좀 불편했다 * 야생 동물인 오소리를 대량 사육하여 파는 사람 - 먹이를 주려고 주인이 들어가자 온순히 모여드는 오소리들을 보며 "예전엔 이런 장면이 연출이 안 됐죠, 하지만 가축으로 다 등록이 되어 있답니다. 제가 재네들이 어릴 때부터 키우니까 정이 들었어요" 하고 말한 주인, 바로 다음 장면이 '오소리 기름'을 짜내는 커다란 기계 앞에 그가 쭈그려 앉아 관을 통해 흘러내려와 똑똑 떨어지는 기름을 받는 모습이었다. "오소리 기름이 화상과 피부에 아주 좋다고 예로부터 OO에도 나와 있구요, 오소리 한 마리가 100만원 정도 하는데 2차, 3차로 나가면 그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 장수하늘소를 재배(?)하는 사람 - 흙 속에 빽빽이 묻혀 동그랗게 움츠리고 있는 애벌레들을 손으로 만지는 걸 보고 "징그럽지 않으세요?" 하는 질문에 "징그럽긴 왜요? 이게 다 현금인데." * 지렁이를 대량으로 역시 재배(!)하는 사람 - 지렁이 무더기를 흙 푸듯 퍼다가 진흙 묽게 탄 게 든 통에 붓고 무슨 약품인가를 넣고 잘 저으니까 '단백질이 녹아내려서' 피부에 좋은 지렁이 진흙팩이 된다. 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방에 일렬로 누워 "지렁이 하나 발랐을 뿐인데, 피부가 장난이 아니네" 하고 즐거워하였다. * 시골의 폐교를 개조하여 '폐교팬션'을 운영하는 사람 - 엠티 온 대학생들이, 깔끔한 마룻바닥 인테리어 한쪽 벽(교실 앞부분인 것 같다)에 잘 보존된 칠판에 분필 낙서를 하며 논다. 여지없이 '떠든 사람'이라고 낙서하는 화면이 잡혔다. "학창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서 뭉클하고, 좋아요." 그 영상은 "농사 지어 재벌 됐다는 얘기 듣고 싶다"는 그 오소리 농부의 인터뷰와 맞물려 '귀농해서 얼마든지 부자 되자'는 주제로 끝을 맺었다... 저 '떠든 사람'을 보고 새삼 놀란 거지. 떠든 사람의 마피아 게임 버전... 아아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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