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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5
    우리는 논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자작나무숲
  2. 2006/09/05
    컬러리더십, 자신의 강점으로 이끌어라
    자작나무숲

우리는 논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리더십컨퍼런스 현장중계] 놀이 통해 마음 열어봐요
2006/8/26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노는 것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기계가 된다.”

노지향 ‘극단 해’ 대표는 갖가지 놀이를 통해 땀 흠뻑 젖도록 놀게 한다. 웃고 즐기며 노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연다.

시민의신문 박상진 

시민의신문 박상진

첫 번째 놀이는 술래잡기다. 한명이 술래가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행사장 한끝에서 다른 끝으로 계속 옮겨 다닌다. 술래에게 잡힌 사람도 술래가 된다. 안 잡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술래한테서 도망쳐서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쫓고 쫓기는 난리법석이 펼쳐진다. 즐거운 비명이 강의실을 가득 채운다. 술래가 계속 늘어나 열 명이 넘자 노지향 대표는 방식을 조금 바꿨다. 눈을 감고 반대편으로 가도록 한 것. 세 줄로 자리를 잡은 술래는 제 자리에서 사람들을 잡아 자신과 같은 술래로 만든다. 몇 분이 되지 않아 술래가 절반이 됐다. 자, 이제 전체를 두 조로 나눈다.

시민의신문 박상진

두 무리는 각자 ‘고양이 쥐잡기’라고 할 만한 두 번째 놀이를 시작한다. 술래들은 동그라미를 만든다. 거기서 두 명을 빼고 나머지 사람이 원을 만든다. 두 명씩 손을 맞잡는다. 동그라미에서 빠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쥐, 한 사람은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가 쥐를 잡으면 쥐가 고양이가 되고 고양이는 쥐로 바뀐다. 고양이한테 도망치던 쥐가 손을 맞잡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의 손을 잡으며 ‘찰칵’이라고 외친다. 그럼 나머지 사람이 그 순간 쥐가 되고 그 쥐는 고양이에게 쫓긴다.

노지향
시민의신문 박상진기자
노지향 ‘극단 해’ 대표

두 사람씩 짝을 이루게 한 다음 1미터 정도 되는 막대를 나눠준다. 그 막대 끝을 한 손가락으로 지탱하며 두 사람은 춤을 춘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움직일 뿐이다. 대신 막대는 떨어뜨리면 안 된다. 춤을 못 추는 사람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몸치’에게 축복을 주는 시간이다. 5분쯤 춤을 추고 나면 짝을 바꾼다. 이제는 말을 하지 못한다. 노지향 대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주문한다.  

그 밖에도 노 대표는 여러 가지 놀이를 가르쳐줬다. 강의실을 지도라고 가정하고 고향대로 자기 자리를 찾게 한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장 즐거웠던 곳으로… 강의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0에서 10으로 나눈 다음 여러 가지 주제에 따라 자기 자리를 찾도록 하는 놀이도 있다.

스스로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얼마나 활동적인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성격은 얼마나 급한지,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놀이를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이후로 한번도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밤새 술을 마셔도 한번도 취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8월 25일 오전 11시 2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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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리더십, 자신의 강점으로 이끌어라

[리더십컨퍼런스 현장중계]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강의
2006/8/26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중시하고 비전을 고민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면도 강하다. 포용력도 상당히 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다른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시민운동가들이 사회 전체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결국 시민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미래 한국사회의 지도자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
박상진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

신완선 성균관대 교수는 ‘컬러 리더십’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하다. 그는 빨강(사랑형), 파랑(지식형), 주황(창의형), 남색(비전형), 노랑(예방형), 보라(용기형), 초록(실행형)으로 사람들의 리더십 유형을 구분한 뒤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고 그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라고 설파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지식형은 판단력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창의형은 튀는 아이디어로 자율을 추구한다. 비전형은 장기적인 비전으로 희망을 얘기한다. 예방형은 준비로 미래를 평안하게 만든다. 용기형은 가치관으로 올바른 일을 추구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한 시민운동가들에게 컬러 리더십을 설명한 뒤 신 교수는 각자에게 자신의 유형을 자기진단하도록 했다. 결과는 신 교수에게 상당히 인상깊었다. 그는 “시민운동가들은 남색(비전형)과 주황색(창의형)이 대단히 강하다”며 “이런 특성을 보이는 집단은 대단히 드물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단히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 색깔을 갖고 있다”며 시민운동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신 교수는 따뜸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우선 “시민운동가들은 합리성(파랑)이 약하다. 이 부분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걸 잘 못하는 겁니다. 내 신념을 소중히 여기는 대신 남의 신념을 소홀히 하는 거지요. 가기주관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해석도 가능하구요.”

창의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행력이 떨어진다는 건 신 교수에게도 약간 뜻밖이었다. 그는 “경쟁개념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며 “방향을 정하고 자기 스스로 평가하는 구조다 보니 분명한 상호 경쟁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단기몰입력이 취약하니까 비전이 강해지는 면도 있다”며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 성과를 관리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부족한 실행력과 높은 비전을 조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목표와 실행에 대한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신 교수는 “사회 전체적으로 장기적인 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며 “명확한 미래상을 공유하지 못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방향을 잡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그가 보기에 “시민운동가들이 갖고 있는 지향점을 사회와 공유하려면 멀리 보는 시야를 구체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는 “시민운동가들의 특성은 우리 사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며 “장점을 살리고 약점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고 조언했다. “리더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정할 때는 남의 머리로, 추진할 때는 자신의 힘으로.”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빨강색이 대통령을 만든다”
신 교수가 말하는 사회집단별 색깔

신 교수는 ‘컬러 리더십’을 여러 집단에게 강의했다. 그러다보니 직업 성격 등에 따라 색깔이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조중동 기자들은 빨강과 노랑이 강해요. 상당히 뜻밖이었죠. 장관이라도 민간 출신은 초록색이 강하고 공무원 출신은 빨강이 강합니다. 민간기업은 특히 초록이 강하죠. 디자이너들은 주황색이 높게 나오구요.”

이런 분석은 정치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자. “후보 시절 사람들은 그를 ‘빨강’으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황과 초록’으로 인식하지요.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면이 강한 반면 화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거죠. 결국 후보시절 그의 모습은 ‘이미지’였다는 결과가 나오죠. 그게 바로 이미지 정치 아니겠습니까.”

그는 ‘준비된 리더가 미래를 경영한다’는 책에서 이명박과 정동영은 노무현과 같은 ‘주황과 초록’으로 고건과 박근혜는 ‘빨강, 노랑, 초록’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을 포함해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이다. 중요한 것은 “선거는 빨강을 잡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선거에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웃집 아저씨 혹은 아줌마’ 같은 후보가 국민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나라가 경제개발을 해야 할 때는 초록색, 즉 강한 추진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빨강과 남색이 중요하죠. 미래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강국진 기자
2006년 8월 25일 오전 11시 2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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