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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20
    "공익제보자 보호 우리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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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2/20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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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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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2/13
    이문옥 전 감사관 "내부고발 법적보호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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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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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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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1/13
    카드회사 배만 불린 카드연체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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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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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1/13
    "인권운동 위기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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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1/13
    인권운동가가 말하는 인권운동 위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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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 보호 우리가 책임진다"

공무원노조가 공직사회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공익제보자 보호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오는 3월 1일부터 임기 시작하는 권승복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당선자는 “공무원노조 차원에서 내부고발자를 양산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공익제보자는 민주주의 발전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소중한 존재”라며 “공익제보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부당한 인신공격에 시달리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승복 공무원노조 위원장.
강국진기자
권승복 공무원노조 위원장.

현재 공무원노조는 지난해부터 공익제보자모임에 사무실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등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무원노조 부정부패추방본부장은 공익제보자모임 부대표도 겸하고 있다. 공익제보자모임은 공익제보와 관련한 상담활동을 펼치는데 현행 부패방지법상 상담자는 모두 현직 공무원들이다.

권 위원장은 현준씨 전 감사원 주사 사건에 대해서는 “공무원노조 부정부패추방본부에서 항의 차원에서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자는 의견이 나온 적도 있다”며 “앞으로도 재판과정을 계속 주시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법부가 과거 정권의 판단에 따라 ‘사법살인’을 했듯이 감사원도 ‘감사살인’을 저지른 적이 많았다”며 “감사원도 과거사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권 당선자는 공직사회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강조했다. 권 당선자는 부정부패추방본부장을 부위원장이 겸하도록 하고 인력과 예산부족 등 그간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적했던 부분을 적극 수용해 부정부패추방본부를 공무원노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은 공무원노조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라며 “부정부패와 공무원노조는 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는 그간 △촌지와 떡값 안받기 운동 △계도지 예산 폐지운동 △기자실 폐쇄운동 △비리 지자체장 퇴진운동 등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수사권과 감사권만 없을 뿐이지 공직사회 부정부패에 관한 자료는 공무원노조가 감사원보다도 많이 갖고 있을 것”이라며 “공무원노조와 국가청렴위, 감사원이 손을 맞잡으면 공직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자고 청렴위와 감사원에 계속 요청했지만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시기상조라는 답만 들었다”며 정부에게 “열린 자세”를 주문하기도 했다.

1976년 11월 9일부터 강원도 원주시청에서 공무원(9급) 생활을 시작한 권 당선자는 지난 2004년 공무원노조 파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2004년 12월에 파면 당한 해고노동자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7일 오후 14시 5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7호 8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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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을 아시나요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파면을 당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11년 동안이나 재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1996년 4월, 효산그룹이 콘도건설을 위해 권력층과 결탁해 불법인가를 받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중단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양심선언’한 ‘전직’ 감사원 6급 공무원 현준희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준희씨.
양계탁기자
현준희씨.

지난 13일 현준희씨를 만나러 찾아간 곳은 서울 가회동 북촌에 있는 한옥이었다. 그는 2000년부터 비는 방 2개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고 그게 이제는 제법 큰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발전했다. 시골 농사꾼 같은 인상을 한 현씨는 삽살개 두 마리와 놀다가 기자를 맞는다. 악수를 하는 그의 손은 시골 농꾼 마냥 굳은살이 박힌 흙빛이다.

“양심선언을 할 당시 불광동에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전세 계약이 끝날 때였습니다. 일부러 감사원 코앞인 가회동으로 이사왔지요. 떳떳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죠. 사실 감사원 앞에서 농성이라도 하려는 이유도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입에 풀칠하는 문제도 있고 재판을 하고 있는데 대놓고 시위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해서 시위는 안했지요.”

현씨는 1996년 6월 28일 감사원에서 파면당했다. 파면을 당하지 않았다면 5급으로 승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부정을 참지 못하는 양심과 불편한 진실을 참지 못하는 세상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1995년 봄 감사원 4국 1과 감사담당관으로 일하던 현씨는 효산그룹과 관련한 제보를 받았다. 효산그룹이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경기도 남양주에 불법건축물 인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소통령’으로 불리던 김현철 사단을 이용해 건교부 등 주무기관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당시 김우석 건교부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의 오른팔이었지요. 그 때 효산그룹이 남양주시에 있는 서울리조트 스키장에 인접한 임야에 콘도를 지으려고 했는데 수도권정비법에 따르면 수도에 인접해 있어 콘도를 지을 수 없게 돼 있거든요. 1995년 5월18일부터 31일까지 건교부 감사를 했는데 건교부에서도 잘못 시인했구요. 그런데 감사원 4국장이 갑자기 사건을 5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했어요. 감사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1995년 6월 1일 5국으로 넘기도록 기안문을 썼는데 그후 깜깜 무소식이 돼 버렸죠.”

현씨는 ‘감사원장에게 제대로 보고해달라’며 서면건의서도 제출하는 등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반응 뿐이었다. “명백한 사건을 그런 식으로 덮어버리는 것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감사원장에게 제대로 보고하라고 말했지만 윗선에선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더라구요. 7월 11일 서면건의를 했는데 사실 기관에선 항명이지요. 당시 승진도 임박했을 때였구요.” 4국에서 일하던 현씨는 2국으로 전보됐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던 현씨는 1996년 4월 8일 서류보따리를 들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찾아간다. 감사원은 그날 바로 현씨를 직위해제했다. 그리고 성실의무, 복종의무, 직장이탈금지, 품위훼손을 이유로 파면했다. 검찰은 감사원이 현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자 곧바로 현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현씨는 지루하기만 한 민변과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다행히 1심과 2심은 현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2002년 결과를 뒤집어버렸다. 현재 고법에 계류 중이다. 현씨는 “3월 3일 마지막 심리 하고 선고공판이 있을 것”이라며 재판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다.

“프랑스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은 드레퓌스 사건이 있지요. 프랑스군 대위 드레퓌스는 간첩 누명을 쓰고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3년을 감옥에서 있어야 했습니다. 프랑스군은 100년이 지나서야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라는 것을 공식인정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건을 통해 프랑스는 한단계 성숙한 사회로 올라설 수 있었잖습니까. 제 판결도 그런 결과로 이어진다면야 바랄 게 없지요.”

그는 감사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거짓말 하나를 감추기 위해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결국 감사원 체면 때문에 이렇게 재판이 길어지는 겁니다. 전윤철 감사원장에게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감사원은 부정비리를 세상에 밝히라고 있는 겁니다. 감사원이 남의 비리는 철퇴를 가하면서 자기비리에 대해서는 모르쇠라면 어느 누가 감사원을 신뢰하겠습니까. 내부고발이 민주화를 이루는데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를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항상 고생담을 강조하는데 나는 그거 싫거든요. 사실 그게 독약이라 봅니다. 언론 입장에서야 관심 끌 수 있는 소재니까 그러겠지만 결국 독자들이 봤을 때는 ‘내부고발 하면 저렇게 작살나는구나’ 생각할 테니까요. 동정심만 자극하지 말고 사실을 좀 추적해 주십시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7일 오후 14시 5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7호 8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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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논란' 확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의 내부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시민사회단체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송무호 전 본부장은 사업회 입구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6개 단체는 대책모임을 만들고 문국주 상임이사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도 오는 20일 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사업회는 “근거도 없고 일방적인 문제제기라 대응할 내용이 없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업회 관계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려고 했지만 문 상임이사 쪽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송무호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부장은 지난 2월 13일부터 기념사업회 입구에서 기념사업회 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국진기자 
송무호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부장은 지난 2월 13일부터 기념사업회 입구에서 기념사업회 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로 계약이 만료된 송무호 전 본부장은 지난 13일 오전 8시부터 사업회 1층 계단 입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성에 앞선 지난 10일 송 전 본부장은 사업회 내부게시판에 “사업회 민주화와 공공성 회복을 위해 함세웅 이사장과 문국주 상임이사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함 이사장과 문 상임이사로 인해 사유물이라도 된 듯 내몰리고 있는 지금 사업회는 백척간두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민주화운동 진영과 국민 모두를 위한 명실상부한 공익기관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운동기념과 계승,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조직으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농성 첫날 민가협, 유가협, 불교인권위원회, 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 등 6개 단체로 이뤄진 ‘민주화운동 사태에 대한 대책모임’ 관계자들이 사업회를 방문해 함세웅 이사장과 문국주 상임이사를 면담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태 해결을 위한 촉구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촉구서에서 △문국주 상임이사 사퇴 △최상천 전 관장, 송무호 전 본부장, 양경희 팀장 등 3명 원상복귀 △사태와 관련한 모든 고소고발 취하 △외부 운동단체를 포함한 혁신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함 이사장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함 이사장보다는 문 상임이사를 더 강하게 비판하며 퇴진을 주장했다. “이미 1기 사업회 때부터 내부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으며 지금도 조직운영을 책임지는 실무집행책임자로서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제기조차 투명하게 설득하고 합의를 이루어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외부까지 확산시킨 것만으로도 문 상임이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이는 사태를 수습하는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대책모임이 함 이사장에게 결단을 촉구하면서 ‘퇴로’를 열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들은 특히 “사업회의 ‘공’은 사업회가 가질지 모르지만 ‘과’는 민주화운동진영이 받는다”며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 민주화운동진영 전체가 국민들한테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사업회와 관련해 제기된 모든 사업과 사항에 대해 잘못한 것이 없다는 항변과 문제제기한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등 사업회 임원들의 “감정적 대응”을 지적하기도 했다.

관련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빨리지고 있다. 38개 관련단체로 구성된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는 오는 20일 회의를 열고 사업회와 관련한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화운동단체들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다.

사업회 내부 민주주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번 논란이 시민사회단체로 확산되고 있지만 사업회의 공식입장은 ‘무반응’이다. 양금식 사업회 홍보팀장은 “대책모임에서 요구한 사항들은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반박할 내용도 없어 고려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고려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송 전 본부장이 농성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도 “농성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답했다.

지난 13일 임기란씨 등 민가협 관계자 3명은 함세웅 이사장을 면담하고자 했지만 “때마침 함 이사장이 급히 나가시는 바람”에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송 전 본부장은 “농성을 시작하고 나서 함 이사장과 마주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밝혔다. 부산지역 운동단체 대표와 활동가 40여명은 최상천 전 관장과 송 전 본부장, 문 상임이사 등을 초청해 사업회와 관련한 논란에 대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전을 위한 부산지역 간담회’를 15일 열려고 했지만 문국주 상임이사 쪽에서 불참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되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6일 오후 21시 2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7호 3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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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 전 감사관 "내부고발 법적보호 강화해야"

“공익제보자는 배신자 소리가 아니라 의무이행자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문옥 전 감사관.
시민의신문 
이문옥 전 감사관.

1990년 감사원 감사비리를 고발했다 파면당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 그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당시는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 ‘땅만 있어도 망하진 않는다’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죠. 정부에선 한달이 멀다 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없었구요. 재벌 계열 기업체 23개를 선정해 조사했더니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43%나 됐습니다. 재벌이 부동산투기 주범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갑자기 감사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거예요. 들어보니 당시 이종기 중앙일보 부회장이 감사원 사무총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결국 감사를 중단하고 보고서 낼 수밖에 없었다.” 이종기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매형이고 X파일 녹음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해 금융감독원에서 비업무용부동산 비율이 1.2%라고 보고했는데 이씨가 조사한 결과는 43%였다. 이씨는 감사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했고 한겨레신문은 1990년 5월 이 사실을 보도했다. “재벌이 로비해서 감사원 감사를 중단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사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과 동료만 생각했으면 못했겠죠. 죽을 각오 하고 한 일이었습니다.”

감사원은 잘못을 시인하는 각서와 사표를 종용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씨가 허위사실을 언론에 유포해 정부의 공신력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했다. 파면 처분을 당한 이씨는 이후 6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고 그해 10월에는 파면처분청구소송에서도 승소해 복직할 수 있었다. 그는 감사교육원 교수로 근무하다 1999년 정년퇴직했다.

그는 공익제보를 한 이후 “전화가 뚝 끊겼다”며 “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외로움이 가장 괴로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다 기억한다. 그는 “나와 가까이 지내면 피해본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통화라도 하면 도청당한다고 믿으니 어느 누가 선뜻 전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기관에 융자신청 서류 내면 이문옥 이름 석 자만 보고 바로 퇴짜 당했습니다. 전염병 환자 대우를 받듯이 사회에서 격리돼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위축되기 쉽죠. 나같은 경우는 오히려 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시민단체 활동도 열심히 했으니 약간은 특이한 경우이지요.”

구속 6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 난 이씨는 구치소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제도를 소개하는 칼럼을 읽게 된다. “눈이 번쩍 트이더라구요. 경실련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와 양심선언자모임 회장을 하면서 양심선언자보호특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지요.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했지만 세상이 바뀌면 나는 언제든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패방지법을 만들지도 못했는데 정년퇴직한다고 정부에서 주는 녹조근조훈장을 어떻게 받나 싶어 훈장수여도 거절했지요.”

정년퇴직하고 나서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부정부패로 피해받는 사람은 서민대중이고 잘사는 사람은 부패로 덕본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노조와 손잡으면 부패추방운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작용했다. 그는 2002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10년에 걸친 노력은 결국 부패방지법이 2002년 국회를 통과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그는 “부족한 게 많은 법이긴 하지만 제정과 개정을 거쳐 조금씩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패방지법이 부패추방을 위한 실질적인 힘을 가지려면 공익제보 대상을 기업과 민간단체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분식회계는 곧바로 탈세로 이어집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되지요. 사립학교재단의 부정과 비리도 결국 피해자는 국민 전체입니다. 부패방지가 전 사회적으로 녹아들어가려면 기업 내부고발이나 사학재단 내부고발도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하지요. 물론 감사원 독립도 중요하구요. 공무원노조의 책임도 큽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3일 오전 7시 3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6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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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는 왕따?

“2년 가까이 점심을 혼자서 먹었습니다. 동료들이 나와 얘기 한마디만 해도 불이익을 주는 분위기로 몰고 갔지요. 출근할 때마다 ‘지옥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구요. 그렇게 발이 무거울수가 없습니다. 따가운 눈총과 냉소, 모멸감으로 일터에서 ‘왕따’를 만들어 말려 죽이는데 징계보다 더 무섭더군요.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결국 당뇨증세까지 생겼지요. 해고됐더라면 가정파탄나고 모든 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심재봉 화백

지난 2003년 대한적십자사가 부실하게 혈액관리를 하고 있다고 고발했던 대한적십자사 직원 김용환씨(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 공익제보 혹은 내부고발이라고 부르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음에도 그는 2년 넘게 온갖 고통을 당해야 했다. 김씨는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나서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나를 해고하라고 촉구하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것을 보며 느끼는 상실감”을 기억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심신이 쇠약해지던 차에 허리를 다쳐 6급 장애를 입은 김씨는 2004년 6월 10일부터 지금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휴직 중이다. 그는 “처음엔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금껏 문병은 고사하고 전화 한통 없다”고 대산적십자사에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공익제보자가 당하는 고통은 크게 인사상 불이익과 인신공격이다. 공익제보자들은 좌천, 파면같은 인사상 불이익도 큰 고통이지만 “온갖 모략과 멸시, 따돌리기”라고 말한다. “원래 인간성이 좋지 않았다, 승진 못한 불만 때문에 그런 거다,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 언론플레이한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익제보자를 벼랑으로 내몬다. 조직 전체가 ‘왕따’에 공범이 된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최상천 전 사료관장에 대해 사업회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인사상 불만이 원인이고 원래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익제보로 인해 2003년 해고당했다가 법원 판결로 복직된 김태진 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은 “공익제보자를 도려내는 방법은 상식을 뛰어넘고 상상을 초월한다”고 증언한다. “엄청난 물적 자원이 기관장이나 단체장에게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를 해고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몇 억원을 쓰데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공익제보자가 겪는 스트레스와 순간순간 닥쳐오는 후회가 너무나 견디기 힘듭니다. 조직 우두머리들은 대놓고 말은 안해도 분위기를 보이지 않는 살얼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발 자체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절도,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걸 수 있는 건 다 겁니다.”

정신적 고통은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철도청 비리를 언론과 시민단체에 제보했던 조항민씨는 감봉과 지방전출 조치를 당한 후 2000년 7월 자살했다. 그와 함께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가 지난해 복직한 황하일씨는 조씨가 “주위의 따돌림과 징계, 특히 가정불화로 큰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공익제보는 공직자 의무

부패방지법 제26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다른 공직자가 부패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거나 부패행위를 강요 또는 제의받은 경우에는 지체없이 이를 수사기관ㆍ감사원 또는 청렴위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개정된 제32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에 의한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그 밖에 자료 제출 등을 한 이유로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실제 청렴위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조직에서 벌어지는 ‘왕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1992년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를 고발했다 구속된 적이 있는 이지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당시 육군 중위)은 “법이 아무리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더라도 사회가 이들을 보듬어주지 않으면 공익제보 활성화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나 노조를 대리인 형식으로 해서 공익제보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

지난 2000년 7월 주한미군이 포름알데히드를 기지에 있는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몰래 흘려보낸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현직 주한미군 군무원이 시민단체에 제보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공익제보자들은 “공익제보자 한 명만 있었어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말한다. “공익제보자들이 조직적으로 왕따당하고 징계를 당해도 누구하나 관심갖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겠느냐”고.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무’인 공익제보. 이제 사회가 답할 때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3일 오전 7시 33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6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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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연구원 노조탄압 논란

식품연구원 원장이 노조 지부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재임용을 하지 않겠다는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
강국진기자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

과학기술노조(이하 과기노조) 식품연구원지부는 지난 16일 ‘강수기 원장은 조합말살 공작을 즉각 중단하라’며 강력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반면 식품연구원측은 노조측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농산물, 임산물, 축산물, 수산물의 처리·저장·가공기술을 개발/보급해 식품산업의 기술기반을 향상시켜 농림수산물의 부가가치 제고를 통한 농어민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1987년 설립된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관 기관인 식품연구원. 이곳이 최근 노조탄압논란으로 시끄럽다.

논란의 발단은 2004년 노조가 강수기 식품연구원장 연임을 반대하고 지난해에는 연구원 지방이전과 관련해 노조와 강 원장측이 대립하면서부터였다.

특히 김명호 과학기술노조 식품연구원 지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7월 25일 검찰에 긴급체포 되면서 노사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결국 김 지부장은 지난해 12월 23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노조는 “현직 지부장 무력화를 통한 조합와해 음모”로 규정하고 “개인의 한풀이를 위한 왜곡된 독선과 아집을 표출한 작태”라고 강 원장을 비판한다.

“처음에는 사법처리 결과를 지켜보자며 파면의지를 굽히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검찰 조사가 길어지자 지난해 11월 16일에는 ‘사직서를 제출하면 처리하지 않고 가지고 있겠다. 대신 지부장을 그만두면 검찰에 선처를 호소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후에도 지부장 그만두지 않으면 국가청렴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무혐의로 종결처리 되자 이번에는 식품연구원 차원에서 특별감사를 하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지부장을 사퇴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식품연구원에서 만난 김명호 지부장은 “노조를 빼고는 정부 출연 연구 기관 기관장을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다”며 “바로 그것 때문에 원장이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원장이 진정으로 식품연구원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노조를 경영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지부장은 “지난 3일 면담을 할 때 강 원장은 ‘이번 사건은 사법적 처리가 마무리된 것일 뿐, 복무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조사해 지부장이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1월 14일까지 지부장을 그만두고 원직에 복귀하고 사과문을 제출하면 그대로 묻어두겠다’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강 원장은 지난 11일 아침 김 지부장을 불렀다. 면담을 녹음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내부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 조사를 받은 자체만으로도 파면에 해당하는 중징계 감이다”고 김 지부장에게 밝혔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해고는 인사위원회(사측 7명, 조합 대표 3명) 만장일치 의결사항이다. 그럼에도 강 원장은 “단체협약만 믿고 해고가 안될 줄 알지만 인사위원회는 원장 자문기구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원장측이 통상 3년으로 돼 있는 재임용을 2개월 계약으로만 재계약하겠다며 지부장을 사퇴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지부장에 따르면 12일 김동수 선임본부장은 “지부장을 그만두고 원직에 복귀하면 추가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본인이 보증을 하겠다. 아니면 더 이상 중재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16일에는 조한육 과기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각 지부장들이 강 원장을 항의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강 원장은 “지부장을 그만두라고 한 적도 없고 파면시키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 지부장은 “이날 오후에 다시 김 선임본부장이 나에게 와서 ‘계약기간을 원래대로 3년으로 할 테니 당분간 이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고 냉각기를 갖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동수 식품연구원 선임본부장은 지난 19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전혀 사실과 다르며 말도 안된다”며 노조측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꾸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며 노조와 원장측이 논쟁을 벌이면 직원들 보기에 좋지 않으니까 노사화합 차원에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 내사사건의 진정인과 그 배후세력을 밝혀 중징계하라”는 노조 주장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으로 본다”며 “조사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5년째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강 원장은 2004년 연임됐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23일 오전 11시 4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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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배만 불린 카드연체 판결

지난해 9월 30일 대법원 2부(재판장 유지담, 주심 이강국, 김용담, 배기원 대법관)는 적법한 방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지만 변제 능력을 상실해 연체자가 된 신용불량자에 대해 적극적인 사기의사가 없더라도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특별히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신용카드 회사에 제출하지 않고 적법하게 카드를 발급받은 경우는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광주지방법원(2004.12.12.선고2004노2370)의 원심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사용자는 6개월 뒤 사정이 변하여 일정한 수입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 채무를 막기 위해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다가 2천여만원의 빚을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대법원은 과다한 채무 누적으로 변제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은 사기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한 카드회사의 책임을 도외시한 판결인가 아니면 신용카드 사용자의 도덕적해이에 경종을 울린 판결인가. 무리한 법률적용으로 오히려 채무자의 사회복귀를 어렵게 하는 판결인가 아니면 경제정의를 세우기 위한 판결인가. 대법원 판결은 법리적용과 사회정책 차원에서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까.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다섯 번째 주제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정했다. /편집자주

●일시: 2006년 1월 12일 오후 1시 30분     ●장소: 참여연대 2층 강당
●사회: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참가자: 김남근 변호사(부평종합법률사무소) /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강희정 변호사(법무법인 바로세움) /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지난 12일 오후 참여연대2층 강당에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주제로 제5회 시민포럼 '법정밖에서 본 판결' 토론회가 열렸다.
양계탁기자

지난 12일 오후 참여연대2층 강당에서 '카드연체 사기죄 적용 대법원 판결 올바른가'를 주제로 제5회 시민포럼 '법정밖에서 본 판결' 토론회가 열렸다.

△한상희: 오늘 다루고자 하는 대법원 판결은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IMF 당시 사회적 합의가 깨졌고, 법리적 측면에서 사기죄를 너무 폭넓게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국가의 힘을 이용해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를 압박하고 자기 이익을 취하는 근대 이전 법률관계로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남근 변호사 부평종합법률사무소.
양계탁기자
김남근 변호사 부평종합법률사무소.

△김남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신용카드회사가 카드연체자를 검찰에 고소ㆍ고발하는 경우가 부쩍 늘면서 카드회사가 검찰을 채권추심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사회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신용카드회사가 카드빚 연체자에 대해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각하’ 처분을 내려 카드빚 연체자를 사기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법원에서도 무죄로 판결하는 흐름이 있었다.

카드대란 당시 사회적 합의를 법조계에서 잊어버린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민변이 검찰청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를 보면 1999년 신용카드 연체자에 대한 신용카드 회사의 고소건수가 1천566건이었지만 2000년에는 425건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2004년에는 무려 5천222건으로 급증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도 2000년 132건에서 2004년에는 1천360건으로 무려 10배나 늘었다.

강희정
양계탁기자
강희정 변호사, 법무법인 바로세움.

△강희정: 대법원은 과다한 부채 때문에 신용카드로 대금을 변제할 수 없는데도 계속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을 사기죄로 판결했다. 사기죄는 간단하게 말해 처음부터 돈을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으면서 누구에게 돈을 빌릴 때 성립한다.
 
신용카드회사는 신용평가를 하고 나서 신용카드를 발급하는데 신용카드를 쓰다가 부채가 늘었거나 경제적 사정으로 갚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쓰는 것을 사기로 볼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법원 판결은 신용카드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막연히 부채가 많으면 신용카드를 알아서 쓰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카드 사용자에게 떠넘겨 버렸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사용자가 신용카드를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을 회사에 고지해야 하는데 현재 법적으로 그런 의무는 없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그런 의무를 부여한 게 된다. ‘법률이 없다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죄형 법정주의 원칙을 거스른 판결이다.

모든 책임을 카드 사용자에 떠넘겨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양계탁기자
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대표.

석승억: 변제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채권추심만 하지 말고 변제능력을 키워주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데 대법원 판결로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부채를 갚기 위해 ‘돌려막기’하는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했다.

△서상혁: 경찰 입장에선 마치 우리가 흥신소 직원이 된 것 같을 때가 있다. 조사를 해보니 소액대출은 신분확인만 간단히 하면 1~2백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고소고발은 최후 수단으로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작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신용카드와 관련한 고소를 13만건이나 받았다.
 
7만여명이 사기죄로 입건됐고 기소된 사람은 1만5천여명이었다. 개인 의견을 말한다면 이런 상황은 경찰관이 적정 업무를 초과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번 판결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양계탁기자
임동현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부장.

△임동현: 정부가 어떤 구실을 했는가를 짚어봐야 한다. 미성년자 카드발급, 길거리 카드발급, 서비스 한도 폐지 등은 모두 정부가 허가해 준 것들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카드사용을 방치하면서 구제책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개인회생제와 파산면책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채권추심을 일단 피하기 위해서 신청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김: 정부나 대법원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할지 모르지만 채권추심기관, 금융기관과 정부의 도덕적 해이도 살펴봐야 한다. 카드를 만들 때 거짓으로 신용평가를 받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길거리 등에서 미성년자, 대학생들에게도 별다른 절차도 없이 카드를 발급해준 것은 카드회사였다. 카드 사용한도를 한달에 몇백만원으로 해 준 것도 카드회사다. 채무자 뿐 아니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카드회사 도덕적 해이는 어떡할 건가

△임: 재산이 있는데도 남의 돈 빌려놓고 안갚는 게 도덕적 해이다. 그럴 경우 현행법상 강제집행을 하면 된다. 그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상정해놓고 몰아붙인 게 대법원 판결이다.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양계탁기자
서상혁 서울경찰청 수사과 경위.

△서: 수사를 하다 보면 ‘피해자’가 더 얄미운 경우가 있다. 주요소에서 일하던 한 30대 남자가 동생 주민등록번호로 카드를 발급받으면서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니 카드회사 직원은 상관없다고 했다. 카드회사는 나중에 ‘돌려막기’ 방법까지 알려주며 채무를 갚으라고 종용했다.
 
편법으로 카드 발급해주고 돌려막기 방법까지 알려주다가 나중에 고소해 버렸다. 한 카드회사는 인천에 사는 한 가출청소년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곳을 정식직장인 것처럼 기재하도록 해서 카드를 발급해 주기도 했다.

△강: 무절제하게 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을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사상 문제는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채무자를 형사처벌하는 게 아니라 회사 스스로 구조개선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판결은 신용카드를 계속 부실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400만 신불자 벼랑으로 내몬 판결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양계탁기자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한: 신용카드회사는 카드를 발급할 때 신용조사하고, 발급 후 사용내역을 보면서 신용정도를 조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조치도 없이 계속 쓰게 내버려뒀다. 신용불량을 방임했거나 조장한 면도 있지 않을까. 대법원 판결로 인해 개인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문제도 생겼다. 기업 자생력을 국가가 막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임: 수수료율을 포함한 카드 이자율이 30%가 넘는다. 이자가 너무 많다. 과거 1998년에는 금리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제한법 폐지 이후 개인 대상으로 공격적인 행위를 카드회사들이 했다. 그 책임을 지금 채무자들이 지고 있다. 과잉대부를 엄격히 금지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카드회사는 마감 강제집행 안내 통지장, 독촉장 등으로 위협하고 심지어는 밤에 아이들 있는 집을 방문해서 압류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 불법채권추심을 막는데 공권력이 나설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불법채권추심신고센터를 운영하지만 감사원 자료 보면 70% 이상 민원을 카드회사로 돌려보낸다.

△석: 신용카드회사는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추심하는 과정에서 돌려막기, 연대보증 등을 통해 더 많은 채무를 만들어 놓고는 채무자에게 죄를 떠넘기고 있다. 신용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집인이 허위정보를 고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카드회사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한: 이 판결이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 같다. 당장 채무자에게 이번 판결을 들이밀 것 같은데.

△임: 벌써 그렇게 되고 있다. ‘못 갚으면 사기죄’라고 점잖게 협박한다. 채권추심 독촉장에는 사기죄 언급이 있는데 카드 발급할 때 그런 내용을 설명해주거나 약관에 적시하는 건 없다.

△김: 형사정책 차원에서 앞으로 만만치 않은 후유증이 있을 것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3일 오전 10시 2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2호 17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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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분실서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 열려

1987년 1월 13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서울대 대학생 박종철군은 바로 다음날 고문 끝에 사망했다.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고 19년이 흘렀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고 인권기념관으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옹 등 40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3일 열렸다.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학생이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옛 남영동분실 509호 조사실.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강국진기자 
한 추모제 참가자가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열사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자'라고 쓴 피켓을 올려 놓았다.

옛 남영동분실을 찾은 시민·학생들은 7층 강당에서 박정기 옹과 박경서 인권대사(경찰청 인권수호위원장)의 인사를 들은 다음 곧바로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던 509호 조사실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흰 국화를 헌화한 이들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노래를 부르며 박종철 열사의 뜻을 기렸다.

박정기 옹은 “작년까지는 서울대 교정에서 추모제를 했지만 올해는 종철이가 죽은 이곳에서 종철이를 만나고 싶었다”며 “그 때 그 자리를 후배 여러분들이 봐주는 것이 종철이 아버지로서 크나큰 영광이다”이라고 밝히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두번 다시 종철이가 겪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며 “지난 일을 되뇌이며 일생의 기억으로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509호 조사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준 경찰 당국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강국진기자 
박종철 열사가 고문끝에 숨진 옛 남영동분실 509호 앞에서 연설하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 옹.
박경서 인권대사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마치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이어졌듯이 한국 민주화로 이어졌다”며 “우리가 할 일은 열사의 뜻을 어떻게 심어 나가느냐에 있다”며 “한국이 인권선진국으로 도약하도록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옛 남영동분실을 견학했다. 한 학생은 “이 자리에 오니 많이 부끄럽다”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와 같은 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김학규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형식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박종철 열사가 그토록 갈망했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과제”라며 “오늘 자리를 앞으로 살아가는데 근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1월 13일 오후 16시 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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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인권운동 위기 처해 있다&quot;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위기에 처해있는가? 적지 않은 전문가와 인권운동가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국가는 약해지고 시민사회는 분열된 상태에서 활력이 예전같지 않다. 이 와중에도 사적영역은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인터넷실명제, CCTV, 두발자유화 등 많은 인권쟁점들이 사적영역을 두고 벌어졌다. 인권운동에 대한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이 인권운동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민의신문>은 올해 인권현안과 인권운동을 평가하고 내년을 전망하는 기획대담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참가자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일시: 12월 21일 오후2시
■장소: 시민의신문 회의실

△오창익: 올해 인권상황을 돌아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변화가 거의 없었다. 구체적으로 인권현실이 개선된 것도 별로 없고 많은 분야에서 후퇴도 보인다. 정부는 긍정적인 구실을 못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얘기하듯 낙담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일부에선 ‘신자유주의 경찰국가화’를 얘기하지만 그 정도로 급격한 후퇴라고 보진 않는다. 너무 단선적으로 정세를 보는 건 문제가 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로비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 및 집중단속 유공자 포상식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이정민기자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로비에서 열린 '마음놓고 학교가기' 포스터 시상 및 집중단속 유공자 포상식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한상희: 올해 여러 쟁점에서 보면 국민들 수준에서는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지식도 많아졌다. 그 점은 긍정적이다. 고전적인 인권문제를 넘어서 좀 더 사회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인권을 다루려는 노력이 많이 나왔는데 그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 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성과만 신경쓰다 보니 정책과정에서 인권을 무시하는 면이 많아졌다. 올해 정부는 국민들의 인권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인터넷실명제는 반인권 결정판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시민의신문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오: 참여정부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정권의 의지와 태도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인권의 기준에서 정책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노골적이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는 노벨상 수상 영향도 있고 해서 외국이나 인권단체 시각을 많이 의식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참여정부와 여당 구성원들의 이력이나 성향만 봤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왜 ‘참여정부’가 인권진전에 도움이 안될까. 내가 보기엔 그들이 인권에 관심도 없고 인권투쟁이 이전보다 정권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면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권운동이 정권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줘야 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침체돼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본다.

△한: 이전에는 인권운동이 정권의 정당성을 건드리는 거시적 차원에 집중했다. 이제는 미시적 차원으로 넘어갔다. 정권이 인권운동을 두려워할 이유가 적어졌다. 정권차원에서 인권을 실천하고 개혁한다고 말은 하는데 구호와 이념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 빈 공간은 ‘관료적 판단’이 차지하고 실천을 담당한다. 정권이 관료들에게 장악당하는 양상이다. 그것 때문에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 가장 반개혁적인 방안을 들이밀게 된다.

인터넷실명제가 대표적이다. 관료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에서 인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정책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보면 게시판이 주된 규제대상이다. 그런데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게시판으로 규정하다보니 전체 인터넷을 규제하는 양상이 돼 버린다. 인터넷상에서 사이버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장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손쉬운 대안만 들고 나왔다. 본질적인 문제와 대안을 인권의 기준으로 따지지 않는다.

386은 이미 기득권세력

△오: 정권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혁이 온통 관료 손에 맡겨져 있다.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이 공부가 부족해서 그럴까? 인권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오해를 각오하고 말한다면 그들이 이미 인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심하게 말해서 ‘인권의 반동’이 돼 버린 측면이 더 크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들은 이미 주류세력이다. ‘어제 혁명적 인권담론이 오늘 상식이 되고 내일은 반동이 된다’는 명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게시판 ‘나도 한마디’는 실명게시판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유토론방도 실명제로 하려다 반대에 부딪친 적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지금 어떻게 ‘반동’으로 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사이버상 명예훼손을 가장 큰 인권문제로 꼽는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 누리꾼의 자유로 인해 가장 피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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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법대교수.

△한: 어떤 사람이든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권침해를 할 수 있다 뜻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걸 생각지 않고 과거 운동했던 기억만 간직하고 있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자신은 인권과 민주의 화신이고 따라서 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정치권력이 그 자체로 반인권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인권, 혹은 합리와 인권의 대립구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오: 효율과 인권의 대결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효율이 강해지면서 사적영역 침범으로 이어진다. 사적영역에 대한 인권침해가 예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권력 뿐 아니라 지방권력도 작용하고, 지방의회도 작동하고, 지역주민 자체도 작동한다. 다변화되고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과거 대학 정문에서 경찰이 불심검문 할 때는 쟁점이 명확하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경찰은 가해자였다. 대응방식도 단일했다. 이제는 가해자도 불분명해지고 난해해지고 교묘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뒤섞인다.

△한: 자기 자신이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인권의식은 높아졌는데 인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도 필요하다는 인식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원한다는 이유로 두발자유화, 인터넷 실명제 등을 주장하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 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이비 인권이 횡행한다

△한: 인권 구도에서 또다른 변화는 기업이나 시장에서 재산권, 경영권 등을 인권으로 포장해 개인들이 가진 사생활권, 노동권, 생존권 등 인권담론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최근 그런 종류의 사이비 인권담론이 많이 나타났다. 그건 인권을 ‘이 인권과 저 인권의 선택사항’으로 물타기하는 담론조작이다. 인터넷실명제를 보자.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립하자는 주장은 인권의 요구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람의 인권은 별개로 보호해야 할 문제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은 대립되는 담론이 아니다.

△오: 의권, 변호사권 등도 이권을 인권으로 포장하는 사례들이다. 누구도 인권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제는 너도나도 인권을 들먹인다. 반인권 태도를 갖기 보다는 사이비 인권을 만들어 인권담론 속에 반인권적인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북한인권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권운동 일부에서는 ‘전선운동에 인권운동이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선운동에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인권운동 내부에 여전히 구시대적 접근이 있다. 전반적으로 인권운동이 시대변화에 제대로 조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상당히 무책임한 면도 있었다.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건 관성이다. 관성과 운동이 같이 갈 수는 없다. 특히 연대운동에 대한 고질적인 관성이 대단히 심하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인권운동은 위기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조직이 회계감사를 비롯한 평가와 성찰 기능이 없어졌다. 그냥 앞으로 갈 뿐이다. 브레이크도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운동을 비판하면 불순한 책동으로 치부해 버린다. 내부비판은 금기시하고 내부성찰은 없는 사이 인권운동은 잡일에 시달리며 삼팔선은 혼자 지키고 있다. 나는 지금 인권운동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돌파구가 잘 안보이는데도 운동가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별로 없다. 지금 활동하는 인권단체 가운데 5년이나 10년 후에도 비전을 갖고 운동하는 단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살아남을 인권단체가 없다

△한: 가끔 왜 한국 시민단체들은은 왜 똑같은 이슈를 갖고 싸우면서도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인권단체들도 인권단체와 다른 분야 단체가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인권운동이 해야 할 일이 많다. 과거에는 국가가 주도권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삼성을 비롯한 경제권력이 국가를 주도한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난다.

△오: 지금 구조는 인권운동가를 소모시키고 고갈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바쁘기만 하고 남는 게 별로 없다. 일단 권하고 싶은 건 관성적인 연대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해체하고 사안별로 연대해야 한다고 본다. 인권단체 연대체가 전선운동을 지키는 투쟁 수단이 돼선 안된다. 한정된 역량을 지혜롭게 써야 한다.

△한: 국가인권위원회 얘기도 하고 싶다. 향후 운동과정에서도 제도권 내에서의 인권운동이란 측면에서 인권위 역할이 중요하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스스로 인권의제를 발굴한 적이 한번도 없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시급하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극단론부터 배제하자”
북한인권문제를 보는 시각

“북한인권문제는 극단론을 배제하는 게 우선이다. 현재 시민사회에는 ‘공화국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는 극단과 ‘북한에만 인권문제 있다’는 극단이 존재한다. 먼저 실체에 대한 극단을, 그 다음에는 ‘어떻게’라는 문제에서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 체제붕괴론 뿐 아니라 ‘정부는 교류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정어린 조언조차 하지 말자’는 것도 극단이다. 정부는 가만있고 민간단체만 얘기해야 한다는 것도 극단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실체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인 목소리가 극단적으로 크고, 접근론에서도 극단론이 횡행하며 불순한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인권에 대해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극단론과 극단론자들을 배제해 나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때서야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국가단위에서 북한 인권 얘기하는 것은 필요할 때도 있고 껄그러울 때도 있다”며 “정부 부근에서 북한인권 얘기하는 ‘아웃소싱’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냄새가 나면서도 정부가 주도하진 않는 인권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정부가 무조건 입닫고 있다는 것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이와 함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언제까지 기권만 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국진 기자
2005년 12월 26일 오전 8시 2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9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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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가 말하는 인권운동 위기론

현직 인권운동가가 현재 활동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이 5년이나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아 논쟁이 예상된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21일 <시민의신문> 기획대담에서 ‘인권운동 위기론’을 주장하며 이같이 밝혔다.

오 국장은 “기존 운동의 성과로 커진 영향력만을 향유하려는 관성은 위험하다”며 “특히 연대운동에 대한 고질적인 관성이 대단히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인권단체연석회의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해체하고 사안별로 인권단체가 연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인권단체가 단순히 전선운동을 지키는 투쟁 수단으로만 돼선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한정된 역량을 지혜롭게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재봉 화백

오 국장은 “관성에 빠진 인권운동”을 지적하며 “내부성찰 기능이 사라진 사이 인권운동은 격무에 시달리며 ‘삼팔선은 혼자 지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인권운동이 시대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즉자적인 대응만 남발한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지목했다. 그는 “국가보안법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며 지난해 무기한 단식을 했던 1천명 넘는 사람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느냐”며 “프로그램이 없는 운동으로는 정권은 고사하고 시민들도 설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오 국장은 이와 함께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권에서 말하는 구체적 개혁이 온통 관료 손에 맡겨져 있다”며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들은 이미 인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 심하게 말해서 ‘인권의 반동’이 돼 버린 측면이 더 크다”며 인터넷실명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기도 했다.  

오 국장과 함께 대담에 참여한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도 “정권차원에서 인권을 실천하고 개혁한다고 말은 하는데 구호와 이념을 빼면 남는 게 없고 그 빈 공간을 ‘관료적 판단’이 차지하고 실천을 담당한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와 오 국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먼저 극단론과 극단론자들을 배제해야만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며 일부 반북성향을 가진 단체 뿐 아니라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인 단체들도 함께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는 북한인권문제를 얘기하면 안된다는 것도 또다른 극단”이라며 “정부가 ‘아웃소싱’을 통해 북한인권문제를 건설적인 방향에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12월 26일 오전 8시 3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29호 1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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