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가난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가난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 빈고의 발생에 대한 이야기(석류에 의한) -

 

빈집 초창기는 전셋집의 형태로 주로 있었던 듯합니다. 아랫집과 옆집(낭만집)이 대표적인 경우였죠. 아랫집은 특정 개인이 거의 전세자금을 모두 혼자 부담한 형태였던 것 같고 옆집은 구성원들이 조금씩 전세자금 마련에 동참은 했지만 실질적으론 몇몇 개인이 주로 부담한듯합니다.

 

전세자금으로 운영되었으니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담금 부담이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세자금을 부담한 몇몇 개인이 호혜적(선물?)이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 당시 분담금은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그동안 빈집의 변천사속에 분담금은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었을까요?

초기 전셋집에선 생활비 분담과 전세자금을 부담한 사람에 지급하는 이자(아마 저리)로 분담금이 책정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개인이 전세자금을 주로 부담하는 형태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듯 합니다. 그가 돈이 필요한 경우 혹은 빈집과 같은 공동 주거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에 그 개인의 판단여부에 따라 집이 사라질 수 있는 사태도 발생했겠죠. 특히나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삶에서 항상 불화의 긴장은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 큰 감정싸움이 되고 이것이 집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특히 전세자금을 많이 부담한 사람과 관련될 때)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초기 빈집의 모습은 몇몇이 전세자금을 거의 모두 부담하는 형태였던 듯 하고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때는 집이 사실상 붕괴할 수도 있었겠죠. 공동 주거하는 방식에 있어서 수많은 다른 의견이 제출될 수 있었을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다른 의견 제출이 감정 충돌로 이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 지점이 안정된 자금이 필요하다를 느끼는 순간이었을 듯 합니다.

 

이때 안정된 자금은 대형 전세자금 부담자가 이탈했을 때도 공동 주거를 계속하기 위한 것일겁니다. 안정된 자금을 모아서 공동 주거를 지속가능하게 하자. 특정 개인의 이탈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동 주거를 실현하자. 뭐 이정도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이런 주장도 공동체 내부의 어떤 합의의 형태로 출현했는지는 의심이 됩니다. 안정된 자금을 모으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을 하고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으는 형태로 진행될 만큼 빈집의 내부 역량은 없었던 듯합니다. 사실 현재도 그 정도의 빈집 내부 역량은 존재하지 않죠??

 

공동 주거 방식에 대한 여러 주장들 중 하나의 주장이 빈고라는 형식을 제안한 듯 합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 형식을 구상했는지 아니면 처음에는 안정된 전세자금을 모으자는 형태로 진행되었는지?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액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협동조합을 구상한 게 아닌가? 라는 질문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협동조합(빈고)의 출자금 대부분이 사실상 아랫집의 전세자금의 형식이었던 듯합니다.

 

빈집 초창기 주거형태는 주로 전셋집이었습니다. 전셋집의 형태로 계속 빈집을 구상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꽤 큰 목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빈집이 생기고 좀 지나면서 사실상 전셋집이 사라지고 있죠. 대부분 월세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월세의 비중이 보증금 혹은 전세자금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애초 시작이 안정된 공동 주거의 확보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면 월세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굳이 협동조합이라는 형식을 띨 필요가 있을까? 협동조합 형식을 띨 경우 목적도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출자를 받고 출자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고 조합원 교육도 실시해야하고 복잡한 회계처리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 않나?

 

- 빈고라는 협동조합에서 빈가게라는 수익사업으로 또 한 번의 도약 혹은 퇴보

 

빈가게 발생은 좀 더 복잡한 듯합니다. 빈가게를 시도한 이들의 최초 주장은 “일 놀이터”였습니다. 옆집 주도로 빈가게가 시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랫집은 소극적으로 응해주는 정도 였던 듯합니다. 빈가게는 빈고와 달리 따로 조합원을 모집하기도 했죠.

 

빈가게 주장자들이 어떤 고민속에 가게를 만들려고 했을까요?. 고민의 깊이는 어떠했을까요? 다만 빈마을이 많아지면 즉 빈집이 다섯 채 이상정도 되면 가게를 하나 운영해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지나가는 말을 통해 들었던 듯 합니다.

 

빈마을이 많아지면 풍부해진 역량을 가지고 일자리도 창출 가능 하지 않을까? 라고 고민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빈마을이 풍부했는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아랫집이 빈고라는 협동조합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하지 않았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빈가게를 만들고 운영하는데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두물머리로 떠났고 그 자리를 지음과 살구가 메꾸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좀 아이러니하게도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들은 가게운영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듯 합니다.

 

빈가게가 해방촌으로 옮겨갑니다.

옮겨가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나요?

예전 가게에서 역세권을 찾아 옮겨간 것이죠.

 

덧붙이며...

 

빈집에서 빈고로 그리고 빈가게로 그 발생의 역사를 한 번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빈집의 발생에 대해선 거의 다뤄지진 않았습니다. 제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전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공동 주거 운동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게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