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정권
참담함에, 분노에, 그렇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이 키보드를 통해 올라왔다. 그러다가 다 지웠다. 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손의 떨림이 멎을 때까지 자판기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올해는 금연을 한 번 해봤으면 했는데, 아마도 북받치는 감정이 피난할 수 있는 도피처로 담배는 그냥 놔두어야겠다.
혹시 이러다 누가 죽는 거 아닐까라는 불안감은 지난 해 촛불집회당시부터 줄곧 가슴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제발 "열사투쟁"만큼은 할 일이 없기를 바랬더랬다. 입방정이 일낼까봐 이 불안감을 누구에도 말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기에 답답함은 더했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가자에서는 천여명이 죽었다. 전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방적 살육.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가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맹폭하는 이 이상한 현상. 하지만 그것은 저 먼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제 아침, 내 살아가는 터전의 한 귀퉁이에서, 단지 현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의 보상만을 바라던 몇 명의 사람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화염에 휩싸인채, 연기에 질식하며, 경찰특공대의 군화발에 짓이겨져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현장 상황에 대한 분석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다시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멍해진다. 눈물마저 나오려 한다. 담배 한 대를 더 피워야겠다.
촛불집회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공으로 영전된 신임 경찰청장은 취임 첫 사업으로 사람 6명을 불에 태웠다. 경찰도 1명 포함되어 있다. 죽은 자가 경찰이라고 해서 그 죽음이 슬프지 않겠는가? 왜 죽어야 했을까? 부하경찰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리한 작전지시. 전쟁터에서조차 있어서는 안 될 일일텐데, 화염병에 놀란 건가, 왜 그토록 강제진압을 서둘러야 했을까?
아, 다시 흥분한다. 이러면 안 된다. 가라앉히자. 냉정해져야 한다.
이명박은 집권 2년차를 맞아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개각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KKK 내각, 돌격형 내각, 상왕형님내각, 삽질내각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조차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박희태가 되었든 홍준표가 되었든 인상 구기기 딱 좋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난 1년 간 청와대 눈치만 살피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짜웅질을 했는데, 그 결과는 '팽'이었다.
단행된 개각은 이명박의 집권 2년차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주미대사 한덕수. 한미 FTA의 완결을 위한 포석. 전임 행안부 장관의 안기부행. 권력기관의 직접통제. 어청수의 퇴장과 김석수의 등장. 공안정국의 안착. 기타 등등.
이 과정에서 배제된 한나라당. 왜 이런 일이? 그건 간단하다. 이명박은 "정치"가 싫은 거다. 그에게는 돌격정신으로 무장한 친위대가 필요하다. 머리 속에는 온통 운하 생각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걸 밀고 나가야 하는데, "정치"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백년하청. 아무리 수구꼴통들이 떼로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은 정치집단. 여기서 한나라당이 이명박에게 배제되는 이유가 밝혀진다.
정치집단 본연의 자세는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는 일이다. 여기선 치열한 장내 장외의 정치투쟁도 벌어지지만 근본적으로 대립집단 간의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한나라당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정치집단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MB악법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그 난리를 쳤지만, 결과적으로 김형오조차 한 발 빼는 상황이 벌어지고, 믿었던 여당은 이 상황을 풀어나가지 못해서 일단 유착. 돌격정신이 필요한 이명박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는 놈들은 그들이 야당이건 여당이건 믿을 바가 못된다.
이명박은 급하다. 2009년 올 한해가 집권 마지막 해가 될지, 아니면 안정적 집권체제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될지 결정되는 한해다. 올해 하지 않으면 자칫 영원히 하지 못할 일들이 발생할 수가 있다. 대운하며, 재벌특혜법률들이며, 강부자 고소영을 위한 백년지대계며, 상왕으로 추앙받고 있는 형님의 입맛을 맞추는 일이며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런데 그거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올해 한 해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이 이명박의 조급증을 부추긴다.
4월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보궐선거는 시작일 뿐이다. 이 보궐선거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현재 상황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민심의 향배가 어떠하다는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2010 지자체 선거. 한국 정치지형 상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 토호세력의 영향을 발본색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명박도 한나라당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 선거를 죽 쑬 경우, 우선 문제되는 것이 대운하사업. 하긴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한 자리 하게 되면 그들이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달라질 것은 없다. 대운하사업을 죽자고 반대하는 민주당이 경인운하사업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운하사업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사안 자체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이해관계가 얽매어져 있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대운하는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진척이 불가능하다.
지자체 선거를 죽 쑤면 그 때부터 이명박은 실질적인 레임덕에 빠지게 된다. 이반된 민심을 다잡을 방법도 없고, 해야할 사업을 돌격정신 하나로 밀고 나가기도 어렵게 된다. 국내사정은 물론 국제환경 역시 이명박식 짝퉁 뉴딜추진에 그다지 도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고 있다. 이명박이 충성을 맹세했던 부시는 며칠 사이에 언제 존재했던 사람인지도 모를 정도로 잊혀져 버렸다. 죽마고우처럼 붙어다니던 아소는 올 3월을 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중국경제는 가라앉고 있고, 유럽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이러한 상황을 이명박은 잘 알고 있다. 이건 정치인으로서의 감이 아니라 전직 CEO로서의 감이다. 장사가 될 시기가 언젠지, 언제 움직여야 돈이 될지를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 맞추는 자본가. 이명박의 피는 정치인의 피로 변형을 일으키기엔 너무나 오랜 세월 '사장님'의 피로 굳어져 있었다. 문제는 영업의 세계에서는 통하는 돌격정신이 정치의 세계에서는 그닥 유용한 무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용산 참사는 이명박의 조급증이 어느 정도까지 극에 달해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철거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찰특공대의 진압이 아니라 보상금의 조정이었다. 대기업이 돈놀이 하다가 망할 지경이 되면 세금을 때려 박아서도 원금보전은 물론 장래 이익까지도 보전해주는 정부다. 반대로 철거민들에겐 그들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던 간에 쫓아 내면 그뿐이다. 용산참사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왜 그들에겐 대화와 타협, 적절한 보상의 지급이 그토록 불가능했던가? 재개발 지분의 상당부분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자리에서 수십년 간 아웅다웅하면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이 엄동설한에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던가? 그것도 모자라 생으로 몇 사람의 목숨을 불태워버렸어야 했던가?
이명박 정권은 그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고지를 향해 달려 나가는 돌격정신만이 필요하다. 양손으로 굳게 삽을 쥐고 재벌과 건설사와 정권에 빌붙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전진 앞으로 할 수 있는 자만이 이명박 치하 대한민국의 신민으로서 자격을 인정받는다.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폭력진압의 대상일 뿐이다.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하면서 돌격정신을 헤이하게 하는 자들의 뒤에는 반드시 배후가 있다. 그 배후는 좌빨이다.
21세기라는 시대분류가 무색해지는 이 막장정치. 국민 1%를 제외한 전 국민을 막장인생으로 몰아가는 정치. 측근의 주머니가 무거워지는 것으로 국가경제의 호전을 결론짓는 무개념 정책. 그로 인해 스스로를 막장대통령으로 만들고 있는 이명박의 무지.
2009년을 전망하는 이명박의 입장에 비추어보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이명박의 임기를 종료시키는 것이다. "국민성공시대"라는 조잡한 선동에 놀아났던 이 사회의 혼미한 정신을 다시 깨우는 거다. 이명박의 조급증이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다시는 아침 뉴스를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떨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거다.
아... 냉정해지기가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는가...
국민들이 이명박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최선책은 합법적으로 물러나게 하는 거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차선책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미친설치류의 이빨을 죄다 뽑아버려도 션치않습니다...
그러나... 디민... 가슴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세어필/ 반세기만에 대통령 하야라는 말이 다시 나오게 해야겠죠. 어차피 이승만도 애초에 지가 알아서 내려간 것이 아니니까요.
not/ 바로 그 가슴에 걸리는 무언가때문에 더 답답하네... 항상 되풀이되는 일, 조직, 이것들은 오늘이 지나면 또 어딘가에서 똑같은 일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죽어나갈텐데...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