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풍경

풍경 1

 

설날 며칠 전에 학교 앞에서 밥을 먹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두 명의 학생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보아하니 선후배사이 같은데, 아마 후배되는 학생이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지 선배되는 학생이 지 군대생활 이야기며, 뭐며 이야기를 하더라. 거기다가 외국나가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하고, 울라불라...

 

그러다가 후배되는 학생이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후배 : 저번에 울 엄마가 친구들이랑 놀다 와서는, 제 방에 들어와서, 오늘 친구가 딱 네 얘기를 하더라... 그 친구 왈, 세상에 기름값도 오르고 뭐도 오르고 뭐도 오르지만 딱 두 가지 안 올라가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남편 월급, 다른 하나는 애 성적...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선배 : 뭐라 했는데?

후배 : 엄마, 나도 안오르는 거 하나 있는데... 내 용돈... 그랬더니 아무 말씀 안하시고 나가시더라구요. ㅋㅋ

 

흠... 그거 말 된다. 그럴싸 하네. 근데 궁금한 건, 나이 스물 넘어가면 지 먹고 사는 건 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풍경 2

 

용산 참사 일어나고 나니 방학중인 학교에도 누군가가 대자보를 만들어 게시했다. "이명박 퇴진하라~!" 뭐 이런 제목의 대자보였다. 학생회관 앞 자보판에 붙어 있는 대자보, 사실 좀 꾀죄죄해 보인다. 기왕 만들어 붙이는 거 좀 잘 해서 붙이면 어디가 덧나나...

 

그런데 그 앞에 남학생 하나, 여학생 둘로 이루어진 일행이 지나가다가 언뜻 남학생이 대자보를 보면서 잠깐 멈춰 섰다. 아주 잠깐... 정말 2~3초나 걸렸을까 하는 시간 동안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돌리면서 꽤나 큰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촤쉭덜... 지들이 먼데 대통령 퇴진하라 마라야. ㅎㅎ"

 

더 재밌는 건 이 남학생의 말이 전혀 우습지도 않고 오히려 기가 찰 노릇이었는데, 옆에 있던 두 여학생이 까르르 하면서 웃는 거다. 왜 웃지? 뭐가 웃기지?

 

그 짧은 시간에 대자보의 내용을 다 읽었을리는 만무하고, 아마 제목만 얼핏 봤겠지, 누가 붙였는지 대자보 작성자의 명의 정도까지는 봤을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용산참사에 대한 그 글을 보며 그 학생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거렸고, 그 피식거림을 보며 다른 학생들은 까르르 깔깔 거리며 웃고 갔을까?

 

 

풍경 3

 

생활도서관 후배들이 자본론 스터디를 하고 있다. 지들끼리 심각하게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목소리를 듣다보면, 아 그래 그런 대목이 있었지, 아 쟤들은 저 대목을 저런 식으로 이해하는구나, 어라? 이 중요한 대목을 왜 건너뛰지? 뭐 이런 생각들이 들곤 한다.

 

어쨌거나 지금 이 시대에 학부생들끼리 모여앉아 자본론 스터디라니. 이건 뭐 천연기념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팍팍 든다능... 곰팡내 팡팡 풍기는 선배들의 땀냄세 베어 있는 그 책들을 부여잡고 설익었지만 열띠게 이야기를 하는 후배들을 본다.

 

나중에 밥이나 사줘야겠다.

 

 

뽀놔스

 

설날 귀성길에 벌교까지 가는데 14시간이 걸렸다. 눈은 오고, 길은 막히고...

한국땅이 이렇게 큰 땅인지 처음으로 실감했더랬다.

 

4일간 설을 보내면서 무려 2Kg이 늘었다능...

이건 인간이 아닌기라...

짝꿍에게 꾸중들었다. 그만 좀 처먹어대라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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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12:38 2009/01/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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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요즘 부쩍 포스팅이 활발하셔서 반갑습니다. : )
    그런데 전화로 하신 말씀이 있어서 이걸 반갑게만 여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

    풍경 2.는 뭐랄까요. 좀 엉뚱한 생각이기도 합니다만...

    사회적인 인식 혹은 비판적인 의식이라는 걸 '유혹'하거나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인식'을 강요하는, 혹은 좀더 높은 도덕적 자리에서 '훈계'하는 방법론은 이제는 시효가 지나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풍경 3... 스터디 자료 후기라도 좀 올려주시면 독자에게는 큰 '뽀놔스'가 될텐데 말이죠. ^ ^; 좀 부담스럽겠죠?

  2. 풍경2는 정말 놀랍네요.

  3. 풍경 2 에 등장인물들 충분히 많다는걸 이번에 저도 알았어요.. 설날 차례 지내고 친척들 모여서 얘기하는데, 철거민들 외부 사주를 받았다는둥, 심지어는 유모차 끌고 나온 아줌마들도 분유값 줘서 델꼬 나왔다는둥... 거의 대한민국 하위 10%의 경제적 수준에 살면서도, 생각은 상위 1%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는.. 그 이면에는 아직도 팔팔 살아 뛰고 있는 지역감정... 큰소리 함 지를려다가 노인네들 어쩌겠어 하고 포기했다는..ㅠㅠ

  4. 풍경3. 뿌듯하네요. 생도지킨 보람이 있는것 같아서~ ^^;

  5. 민노씨/ ㅠㅠ 아픈 곳을... (풍경 2)에 관한 말씀은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대자보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그 학생에게는 이런 고민이 적용되지 않겠지만, 소위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이 좀 더 세련되어져야 할 필요성은 언제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거에요. 스터디는 제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지들끼리 하는 것인지라 뭐 자료 후기 이런 거 올리기가 쬐끔 난해합니다... 재미있는 발제부분만 발췌해서 올릴 수 있는지 한 번 검토해 보죠.

    세어필/ ㅠㅠ 그러게요... 놀랍기도 하거니와 한숨이 푹푹 나오더라구요.

    산오리/ 제 주변 어르신들 중에는 그런 분이 없었는데, 지나다니면서 전철이나 버스나 택시에서 산오리님이 들으신 그런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정말 많더군요. 연세 있으신 분들은 물론이려니와 이제 30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층 중에서도 갑갑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참으로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not/ 그려... 다들 not 및 다른 친구들이 있었으니 이정도라도 명맥을 유지하는 거 아닌가 해서 정말 고맙더라... 덤으로 나도 쬐끔 보람 비스무리 한 거 느껴도 될 듯 싶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