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에 대하여

아마도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거나 진보블로그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식상할 주제, "법치"에 대해 나름 정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오늘 보게 된 한 편의 기사때문이다.

 

김석기, "법질서 바로 잡는 게 강경이냐" … MB믿고 '버티기'

 

김석기의 발언은 매우 간단하다. 법이 있다. 법은 지켜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범죄다. 경찰은 범죄자를 색출하고 처벌해야 한다. 법질서를 세우기 위한 경찰의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강경"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숭고한 법질서 확립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김석기는 여론의 질타에 아랑곳 없이 "결코 위축되지 말고 본연의 임무인 법질서를 세우자고 독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다.

 

김석기도  경찰이 되기 위하여 일정한 관문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 관문에는 예외 없이 "법"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한 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법전을 껴안고 살았을까? 그리하여 그 지난한 세월 동안 얻은 결과로 세운 김석기의 가치관은 "법질서 확립"이다.

 

김석기의 신조는 그대로 이명박과 상통한다. 후보자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명박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다름아닌 "법치질서의 확립"이다. 이명박이 오늘날 청기와집 주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법과 많은 관련을 맺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명박이 처벌을 받았거나 혐의를 받았던 사례들에서 이명박은 법을 집행하는 처지가 아니라 법의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였을 테니까.

 

그런데 도대체 이명박이나 김석기가 이야기하는 법질서 혹은 법치가 뭔지 헷갈린다. 이들은 군사정권시대에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된 "악법도 법이다"라는 선전문구를 정수리 깊숙한 곳에 박아놓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 이후에 이 땅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미 "악법"은 법이 아니라 다만 "악(惡)"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사고방식은 60~80년대 군사정권의 시기에서 한치도 발전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오늘날 행인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법치가 왜 공수표일 뿐인지를 주저리 주저리 다시금 되뇌이게 된다.

 

이들이 법치를 이야기하려면 자신들이 집행하고 있는 법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이나 김석기는 결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직 "실정법은 지켜야 한다"는 말로 법치를 이야기한다.

 

군사정권때라고 해서 법이 없었겠는가? 아닌 말로 히틀러도 법을 통해 집권을 했고 법을 통해 통치를 했으며 법을 통해 전쟁까지 일으켰다. 무솔리니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고, 스탈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고 이용했던 법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냉정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만들고 이용했던 법은 형식적으로만 법을 위장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법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법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 적용은 추상과 같은 것이어서 지위의 고하나 재력의 유무, 기타 성별이나 연령이나 인종이나 민족에 관계 없이 보편적이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법 앞의 평등이다.

 

또한 법은 그 구성과 집행에 있어 자의적으로 제정되거나 해석되거나 혹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형법에서 강조되는 "법 없으면 죄 없다"는 경구는 이러한 원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형법 뿐만 아니라 다른 법에 있어서도 이 원리는 달리 적용될 이유가 없다.

 

한편 법은 그 법이 시행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정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법이 집행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바로 이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이 미래를 전망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도록 예측가능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더불어 법은 정의의 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가장 근본적인 정의의 원리를 성문으로 규정한 것이 헌법이라고 한다면 법은 헌법의 정신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만일 헌법 자체가 정의의 원리를 위반하고 있다면 바로 그러한 헌법을 둔 정치체제는 전복되어야 한다. 이것이 저항권이다.

 

이러한 구성원리가 바로 법치주의(rule of law)의 근간이 된다. 영미에서 이야기되는 적법절차(due process) 역시도 절차적인 측면과 실질적인 측면이 모두 합치될 때에만 이를 적법절차라고 할 수 있다.

 

법치의 반대말은 다름 아니라 "인치(人治)"다. 역사적으로 볼 때는 바로 "왕치(王治)"라는 봉건적 체제를 구조적으로 뒤집기 위해 제시된 것이 법치다. 비록 이러한 개념이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법치의 개념은 고대 아테네에서도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오늘날에 와서 법치는 오히려 정부를 규제하고 사법부를 감시하기 위해 제기되는 논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함부로 인민들의 삶을 속박하고 탄압하기 위해 전횡을 일삼지 못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 바로 법치가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대적인 법치개념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나머지 시장지상주의를 해할 수 있는 정부의 각종 규제까지도 법치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지상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발동하는 공권력에 대해서는 법치라며 환호한다.

 

매우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지만 이러한 법치의 원리들을 이명박과 김석기의 발언에 대입해보자. 용산참사와 관련해서는 물론 그 이전에도 이명박과 김석기류는 법치질서의 확립을 강조해 왔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법치가 왜 웃기는 이야기인지는 법치의 기본원리에 비추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명박 집권 후 발생한 사건들을 보자. 사노련 사건, 촛불집회 사건, 촛불관련 광고불매운동 사건, 미네르바 사건, 이번에 발생한 용산참사까지. 이들 사건이 터질때마다 이명박과 어청수, 김석기 등은 법질서 확립이라는 말을 아예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해당 사건들의 배경이 된 각종 법률들(한미 FTA포함)을 보자.

 

국가보안법, 집시법, 도로교통법, 공정거래법, 형법상 업무방해죄 및 명예훼손죄, 전기통신기본법...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은 법률 자체가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고, 법적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정권의 보위를 위한 목적을 가진 법률들이다. 온라인에서 촛불관련 광고불매운동을 벌인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을 아예 코메디에 불과하고, 형법상 업무방해나 명예훼손은 공안기관의 편의대로 법률을 적용한 사례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의 해당 조문은 아예 "허위통신"이라는 범죄사실이 뭘 말하는 건지조차 명확하지 않고, 이것을 허위사실유포로 본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헌법의 한계를 넘어선다.

 

정리하면 이따위 법들을 법치질서 확립한답시고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이 법치가 아니라 이처럼 정의관념 자체를 넘어선 법률들을 고치거나 과도한 법해석을 통해 무리한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치이념에 적합한 것이다. 물론 청와대와 검경은 이러한 기본원리에 대해선 쌩까는 것으로 일관한다.

 

다음으로 위 사건들과 다른 어떤 사건들을 비교해보자. 예컨대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고 하면서 촛불시위자들에게 물대포를 쏴가며 강제진압하고 구속수사도 모자라 처벌까지 단행한 이 땅의 사법집행기관들은, KBS앞에서 가스통을 굴려가며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어떤 단체와 그 단체의 조직원들에 대해서 처벌은 커녕 지원금까지 퍼다 주고 있다. 하나의 법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행위의 주체에 따라 처벌과 포상이 갈리는 것이다.

 

현저하게 법적용상의 형평성을 위반하고 있는 이러한 법집행과정을 주도하는 자들이 "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전과가 십몇개를 넘어선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자가 대통령씩이나 해먹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은 노동자들의 파업, 시민들의 집회는 물론 온라인상의 의견제시까지 대대적으로 탄압하면서 법을 들이민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검경은 이를 무시한다. 원칙적으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되어 있지만 법률을 집행하는 경찰은 지들 멋대로 집회를 불허한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민들은 과연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거리에 나가 집회를 해도 되는지, 온라인에 글을 써도 되는지, 아니면 더 나가 파업을 해도 되는지. 물론 이런 짓 하면 언제 어디서든 걸려들 수 있다. 법치질서 확립에 동참하고 있는 사법부 역시 과감한 형량과 벌금을 통해 다시는 딴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인민들을 단도리 한다.

 

시너와 연료를 준비하고 화염병을 제작 보유했던 철거민들에게는 폭력행위를 했다는 오명을 씌우면서도 정작 지난 몇 년 간 용산 일대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온갖 폭력행위를 해온 용역깡패들과 이들을 사주한 조합과 기업에 대해선 단 한 번도 폭력을 행사했다고 단속한 바가 없다. 극단적 상황으로 철거민들을 몰아가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용산구청장이나 서울시장은 아예 말 자체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할지라도 권력을 잡고 있는 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밖에 볼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청기와집 주인 및 이와 연계된 권력기구와 자본의 입맛에 따라 법이 집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법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하게 인정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따르지도 않고 있는 것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와 여당은 소위 'MB악법'들을 만듦으로써 청기와집 주인 멋대로 세상을 주무를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법치인가 인치인가?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볼 때, 이명박은 법치질서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떠드는 것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지 꼴리는 대로 삽질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법치체제로 인식하고 있다. 되먹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상당히 나쁘다.

 

김석기 역시 마찬가지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 평생을 매진한 김석기는 사실 법질서가 뭔지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자본과 권력이 철거민 좀 쫓아내라고 하면 그 자리에 경찰을 동원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판단하기 전에 주인 본 강아지처럼 냉큼 쫓아간다. 게다가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몰상식한 짓까지 자행한다.

 

법치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 사회라면 이들이 이렇게 염치 없이 법치를 떠들기 어렵다. 아니 저 자리에 앉을 가능성조차도 없다. 법치 운운하기 전에 지들 입단속이나 먼저 해야할 거다. 입단속 못하고 계속 법질서 어쩌구 하다가는 가장 강력한 법질서의 형식에 의해 처단될 거다. 바로 민중의 저항이라는 법치질서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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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7:23 2009/01/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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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9/01/23 21:21

    1. 본질 국가가 가장 우선해서, 최후까지 국민에게 부담해야 하는 의무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의무를 국가에 부여한다. 그 의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국가는 필요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번 용산 참사는 이런 기본적인 계약을 파기한 국가공권력의 야만적인 폭거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조세희가 토하는 울분에 깊이 공감한다. 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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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 2009/01/23 21:32

    * 이글루에 이 포스트 올릴지 모르겠지만, 혹시 이글루에서 똑같은 포스트 보신다면 검은달빛이란 사람 저 맞습니다 -_-;; 근데 일단 여기를 링크는 안 시켜둘게요. 왠지 링크 시켰다가 무언가 몰려올 듯 싶은데 그건 일단 2월말에 감당할래요 -_- ; 지금은 좀.. -_- ;; 사람들이 '법치주의'라는 단어를 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한국 근현대사 소견이 짧아서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에 이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박정희가 등장시

  1. 적절한 지적이십니다.
    명문이네요.
    안그래도 이런 글을 내심 기다렸는데 말이죠...

    트랙백 보냅니다.

  2. 추.

    "도대체 이명박이나 김석기가 이야기하는 법질서 혹은 법치가 뭔지 헷갈린다. 이들은 군사정권시대에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된 "악법도 법이다"라는 선전문구를 정수리 깊숙한 곳에 박아놓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 이후에 이 땅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미 "악법"은 법이 아니라 다만 "악(惡)"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사고방식은 60~80년대 군사정권의 시기에서 한치도 발전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위 명료한 지적이 특히나 인상적입니다.

  3. 추.2.
    이룬... 트랙백이 안간다 싶어서 여러 번 눌렀더니...
    모두 제대로 갔네요.
    나머지는 삭제를 부탁드립니다..

    아, 설 잘 보내시구요...
    일간 맥주라도 한잔 함께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4. 왠지 포스트 쓰고 진보넷 죽 훑어보니 비슷한 포스트가 보여서 -_- ;; 트랙백 날립니다 ^^

    그런데 제 식견이 좁아서 잘 모르는 부분인데, 시민들을 제어하는 원리로 '법치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가 혹시 다른나라 헌법학계나 정치계에서 있었나요? 교과서적 의미와 얘들이 사용하는 의미가 상당히 달라서 혹시 딴데서도 이렇게 사용한 전례가 있나 하구요..

    아우 아무튼 잘 뒹굴던 고시생을 물밖으로 끌어내는 건 전두환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군요. 많은 고시생들이 시사에 관심을 가지는 건 근래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는데.. 쩝.. 올해 1차 덕분에 또 망칠 것 같다능..

  5. 명문입니다. ~~
    명절 잘 쇠소서..

  6. 행인님...요근래 본 글 중에 최고 감동...ㅠ.ㅠ 프린터 해서 두고 두고 읽어볼랍니당>.<
    이제껏 법치의 반대말은 넘들의 말처럼 '불법'인 줄 알았는데, '인치'라는 것 처음 들어봤어요>.< 아..도대체 십몇년간 받은 제도권 교육이 도대체가 쓸모가 없게 느껴지네염...OTL;;;

  7. 넘 길어서 다 못읽겠어요..ㅎㅎ
    설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끊임없는 구라발 포스팅을...

  8. 좋은글, 많이 배웠습니다. ^^
    사실은 저도 조금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국가기구들의 경우에 시스템화(또는 구조화)가 지나치게 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장 단순하게 보면 국가조직이란 것도 거기 결부된 인간들의 집합이고 또 그들 사이의 "관계"들의 총체일 텐데, 문제는 그 "관계"가 구조화가 덜 되어 이를테면 권력자 개개인들의 사사로운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거죠. 어찌보면 그런 영역이 줄어드는 게 선진화(?)가 아닐까 하는데, (이명박 일당이 아닌) 행인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치주의가 확립된다는 것도 비슷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9. 울화통이 생기다가 홧병이 났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이 와중에 도시계획 공부를 한다는 것이 치가 떨립니다. 욱, 욱..

  10. 항상, 시원하게 읽고 있습니다.
    경기안산에 행인님을 모시고 초청강연회를 한번 가져보고 싶은데,
    어떠실런지...?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골고루 나누어주시면서~ ^^*

  11. 민노씨/ 게으른 불질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네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자폐/ 공부하시기도 지금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결국 명박이가 학업에까지 지장을 주는군요... 에궁...

    "법치"를 시민사회의 제어장치로 활용한 예는 제가 본글에 언급했던 나치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칼 슈미트가 위기상황에서의 카리스마적 통치를 옹호하면서, 전시동원체제를 만들어가는 법률체계가 나치독일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법치주의"가 악용되었죠. 본질은 그때 독일이나 지금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법이 있으니 지켜라. 애초 법 실증주의의 한 축을 이루었던 켈젠같은 경우, 비록 법실증주의의 입장에 있었지만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권력자의 전권위임이 법치주의의 실질을 담보하는데 어렵다는 주장을 했지만, 기왕에 존재하는 성문의 법이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극복하지 못한 한계로 인해 칼 슈미트류의 주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죠. 훗날 칼 슈미트의 이론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부활하는데, 이 때도 역시 법치질서확립이라는 구호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구요.

    서울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산오리/ 또 장황포스팅의 악몽이 되살아나는군요... ㅠㅠ 짧게 글쓰기 연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불질할 때는 그게 잘 안되는군요. 새해엔 좀 더 깔끔한 구라발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EM/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걍 막 꼬집어 내시는군요... 한국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는 법질서의 체계를 들여다보면, 시민사회의 형성과 구체제와 신체제 간의 대립과정이라는 것을 겪지 못한 채, 일방적인 외부의 힘에 의해 자본주의체제가 도입 성장하고 근대국가화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 내부의 관계형성이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현대국가화된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제도적인 틈이 너무 많고, 그 틈에 대해 사회적인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문제해결의 기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틈을 알고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이를 전횡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집니다. EM님의 지적처럼 권력자 개개인들의 사사로운 의지의 개입이 너무나 쉬운 것이고, 반대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법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바로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숙제인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지적을 받을 때는 뜨금할 정도로 상황이 변변칠 않네요.. ㅜㅜ

    봄날의 곰/ ㅠㅠ... 사실 제가 조금만 더 도시계획 등에 전문적 식견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잽을 날리기 보다는 한국의 재개발이 왜 이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을 겁니다. 공부의 폭이 너무 좁다는 한계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정진하셔서 한국이라는 이 요사스런 토건공화국에 서로 같이 잘 살 수 있는 개발과 재개발의 논리를 잘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홧병 잘 다스리시구요....

    마르레니/ 어휴... 제가 강연씩이나 할 깜냥이 될까요??? 안산이야 제 근거지기도 하니 좋기는 합니다만, 제가 나눠드릴 영양분이 기껏해야 구라밖에 되지 않아서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

  12. 이런 구라들이라면 청중을 즐겁게 해 주실것 같군요! ㅎㅎㅎ~

  13. 마르레니/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