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얼굴(들)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왜 보여주지 않느냐는 여론의 십자포화에 견디다 못한 나머지 조선닷컴이 연쇄살인 피의자 강모의 얼굴을 과감하게 공개했단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배부른 자들이 떠들어대는 피의자 인권보호따위는 망설임 없이 걷어차 버릴 수 있다는 이 숭고한 조선일보의 결단 앞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조선닷컴 사이트를 방문했나보더라. 그러고보면 클릭질에 목숨을 건 조선일보는 금번에 강모의 얼굴을 팔아 자사 홈페이지 가치를 꽤나 올렸을 법도 하다. 결국 문제는 인권이고 나발이고가 아니라 돈인 거다. 물론 고결한 '알 권리' 운운하는 레토릭은 그들의 장사속을 충분히 가려주고도 남는 포장지이고.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는 참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놈 얼굴은 왜 그리 보고싶은 걸까? 그놈 얼굴을 공개하라는 저 도도한 인민의 요구는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총의의 발현인 것인가? 물론 그럴리가 전혀 없다. 검경은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지 말라고 권고한 인권위에게 책임을 돌리지만, 애초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은 인권위가 권고씩이나 하기 전에 검경이 먼저 책임을 지고 지켜야 한다는 것은 왜 무시되는가? 이거 보면 이명박이나 그 휘하 똘만이들이 이야기하는 "법치질서확립"이라는 것이 순전히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만 열면 "법치질서 확립"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째 이런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뭐 어차피 쥐박스러운 일파들이 떠드는 "법치질서 확립"이야 입냄새 풀풀 나는 개뻥이라는 사실을 이젠 죄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염치가 없어서야 어디 '영'이 서겠나? 재개발 조합과 건설사들의 이익을 위해선 하루밤을 참지 못해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경찰이지만, 실종사건 수사에는 안면몰수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무슨 프로파일러를 키워야 한다는 둥 헛소리만 찍찍 해대고 있는 것들인지라 이런 것들이 무슨 법치질서를 운운하는 것인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긴 얘네들도 할 말이 있는 것이, 강모가 저지른 연쇄사건 중 일부는 참여정부 당시에 벌어진 일인데 왜 이 정부만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고 볼맨 소리를 하기도 한다. 뚫린 입이라고 변명이야 늘어놓지만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핑계없는 무덤이 있겠냐? 지금 어느 정권에서 생긴 사건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소위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 아니라 "릴레이 살인범들(relay killers)"이다. 릴레이 살인범이라는 말은 걍 만들어낸 말이니 괜히 구글서치 돌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어쨌든 강모라는 엽기적 연쇄살인범보다 더 무서운 넘들이 바로 이 릴레이 살인범들이다. 초상권 침해라고 입에 거품물고 덤빌까봐 겁나서 얼굴을 올려놓는 짓은 하지 않겠다만, 역대 정권의 수장들은 도대체 그 얼굴 보고 싶냐?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을 거쳐 드디어 이명박까지.(이승만 치하에선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일단 제외) 그들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과 시민과 활동가들이 죽어갔던가?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되 강모라는 연쇄살인범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행인은 이들의 얼굴조차 보기가 싫다.
연쇄살인의 대상은 전부 여성들이었다. 그 연령과 직업은 달랐다고 할지라도 건장한 청년 한 사람을 제어하기에는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는 여성이었고 혼자였다. 강모가 이상성욕자든 아니면 돈 때문이었든 아니면 말 그대로 싸이코패스였든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어차피 당하는 사람은 저항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여성이었다. 연쇄살인의 대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 대를 이어 살인을 저지른 정권에 의해 죽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벌레처럼 짓밟히던 노동자였고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농민이었으며 존재의 가치를 보호받지 못하는 빈민들이었다. 뭐가 다른가? 연쇄살인범은 직접 자기 손에 피를 묻혔고, 저 릴레이 살인범들은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는 거? 연쇄살인의 피해자들은 법없이도 살 사람들이었지만 릴레이살인의 희생자들은 파업과 도심시위 등 불법과 위법을 일삼던 범법자들이었다는 거?
강모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을 거다. 최고형을 구형하는 검찰도 부담이 없을 것이고 최고형을 선고하는 법원도 부담이 없을 거다. 그리고 강모에게 떨어지는 법정최고형에 대해서도 이 사회 구성원의 99.99%는 반대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장사속을 채우는 일부 언론사들의 죄과에 대해선 아마도 별다른 말 없이 조용조용히 넘어갈 거다. 그놈의 언론사들은 돈을 벌었고, 그놈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얼굴봐서 된 거고, 어차피 행인처럼 그놈 얼굴 보고 싶은 생각이 쥐뿔도 없는 넘들이야 안 보면 그만인 거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도 되는 건가? 정말?
용산참사는 물론이려니와 올해 시작될 실물경제 파탄의 과정에서 암에푸 당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거나 빚에 밀려 도망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누구는 한강다리와 아파트 베란다에서 중력가속도를 실험할지도 모르고, 누구는 목에 줄을 걺으로서 살아서 못해본 공중부양을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개인의 책임을 전부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의 가동을 통해 이를 최소화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면 최소화는 커녕 오히려 조장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연쇄살인범은 잡혔다. 극히 일부 미제사건이 남아있겠지만 어쨌거나 이번 사건의 해결을 통해 한국의 검경은 "완전범죄는 없다"는 신조를 깨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릴레이로 살인을 해대는 이 천박한 자본가 정권은? 그냥 또 그렇게 역사가 판단하리라 하면서 고고하게 돌아 앉아 있으면 그뿐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과 그 휘하 쥐박패밀리들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나서진 않을 거다. 어차피 이들의 얼굴은 지겹시리 봐왔던 데다가 얘네들이 지들 얼굴 깐다고 해서 별로 쪽팔려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얼굴들 봐봐야 꿈에 나올까 겁나지 뭔 영양가가 있겠나?
늦게라도 연쇄살인범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 엽기적인 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이런 엽기적인 사건마저도 잽싸게 이용하는 찌라시스런 일부 언론사들을 보면서, 그 와중에 그동안 뻔뻔하게도 "법치질서 확립"을 운운하다가 강모의 얼굴공개와 관련해선 인권위에 책임을 돌리는 검경의 치사한 작태를 보면서, 씨펄 벌써 바깥은 봄날인데 염병하게 삭신이 쑤시고 떨리는 건 역시나 춘래불사춘인 덕분이냐...
1. 뭐 했어? (0:00) 2. 강호순의 얼굴 (02:48) 3. 조선일보 왈 (05:44) 4. 중앙일보 왈 (14:23) 5. 사진은 어디서 났어? (23:45) 6. 끊어갑시다 (25:45)
1. 이어갑시다 (0:00) 2. 미디어오늘 김창룡 교수 왈 (0:53) 3. 무엇을 위한 공개인가 (9:58) 4. 무엇을 희생하게 될까 (13:42) 5.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23:38) 6. 그렇다면 대안은? (27:08)
연쇄살인범 강씨의 신상공개에 이어 얼굴공개까지 이루어지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얼굴사진공개는 조선, 중앙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무죄추정의 원칙 존중과 반인륜범죄자의 얼굴 공개 등의 논리가 맞부딪히고 있다. 그 와중에 미디어오늘에 김창룡 교수가 세 가지 전제조건으로 연쇄살인범의 신상공개에 찬성하는 글을 썼다. 이것이 타당한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죄추정의 원칙' 또한 하나의 원칙일 뿐이고, 예외는 있다고 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은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