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과 박재영

자고 깨면 들리느니 '법치질서 확립'이라는 구호가 '새벽종이 울렸네~' 우렁차게 울려퍼지던 70년대의 향수마저 불렁일으키고 있는 이즈음이다. 하기사 불과 1년 만에 한 세대 이상의 과거로 빽투더퓨처를 시전하는 이 정권의 신기가 이미 감탄사마저 거두게 하는 터에, 돌격정신과 삽질정신으로 중무장한 채 박정희의 영정을 이명박의 사진으로 갈아치운다 해서 놀라울 것이 없을 터이다.

 

워룸에 들어앉아 국민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은 오늘날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신민이 될 것이냐 죽을 것이냐. 요컨대 주군의 성은으로 삽 한 자루라도 쥘 수 있는 광영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대오 이탈하여 불가촉 천민으로 전전하다가 강부자 고소영의 발 아래에서 짐승처럼 죽어갈 것인지, 이 두 가지 선택지 외에 우리 앞에 놓인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요즘이다.

 

살기를 원하는 자는 알아서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되, 항거하고자 하는 자는 찬바람부는 광야로 일신을 드러내야 한다. 비록 화무십일홍이라 했다지만, 현재 스코어는 권불십년이 아니라 명바기즘 장수만세가 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손을 비비는 자의 모습은 자주 보이는데,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잦아들어간다.

 

손을 비비는 자는 백주를 활보하는데,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어둠을 틈타 초를 들기조차 힘들어진다.

 

손을 비비는 자는 대처를 횡행하는데,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온라인마저 빼앗기게 생겼다.

 

손을 비비는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 명박시스템의 한 축이 되고자 노력을 거듭하는 나경원 같은 이는 수치라는 것을 모른다. 적어도 법치질서라는 말이 이 땅에서 이토록 거듭 외쳐지는 상황이라면, 판사출신 나경원은 그 법치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만한 자격과 지위가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법치는 팽개친 채 왕정복고의 시대에 부응하여 신민의 작위를 얻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소위 MB 악법을 처리할 수 있느냐가 달린 임시국회가 진행되려 한다. 여야의 대회전이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쪽수로 세상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한국의 정치사회경제문화 분야를 300년 이전으로 돌려놓을 것인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나경원은 사이버모욕법이며 복면금지법이며 더 나가 떼법방지법이라고 일컬어지는 각종 MB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초를 자처한다. 다시 한 번 상기하거니와 나경원은 판사출신이다.

 

법을 전공하고,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연수원에서조차 우수한 성적을 거둠으로써 법정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나경원은 이제 법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법학개론만 제대로 배웠어도 하지 못할 일을 판사까지 했던 처지에 부끄럼도 없이 척척 해치운다. 하긴 '법학'에 대한 참구보다는 '사시'에 대한 욕망이 가득찼었을 그 정신세계에서 법학개론이 가르치는 법의 정신이라는 것이 제 값어치나 했겠는가.

 

나경원이 보여주고 있는 원칙파괴의 기행은 나경원 본인만의 개념상실 차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적어도 고난의 행군을 거쳐 이제 국회의원씩이나 하는 나경원을 롤모델로 삼을 수많은 법학도들이 대체 학교에서 배운 기초상식이 왜 나경원에 의해서 다 깨져버리는지 의문을 가지며 고뇌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잘못된 것이고 나경원의 행동이 정당한 것이라고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제정신인 사람들은 그럴리가 없겠지만.

 

반면, 나경원과 마찬가지로 사법고시를 치고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판사에 재직하던 어떤 이는 법률의 원칙과 법조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법복을 벗어버렸다. 집시법 상 야간집회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했던 서울 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 행인은 소상히 알지 못한다. 다만,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담당하면서 나름 소신있는 재판절차를 진행했고, 그 이유로 수구세력으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걷게 될지에 대해서도 행인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박재영은 수많은 법학도들이 법학개론에서 자신들이 배운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나경원을 바라보며 도대체 내가 배운 것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자괴감을 느끼던 법학도들은, 이제 박재영을 보면서 나경원이 잘못된 것일 뿐 자신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개념방출한 이들은 새롭게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박재영이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나경원이 개과천선 하기를 바라는 것 중 어느 것이 가능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사회 이곳 저곳에서, 나경원 류와는 그 질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안을 느낀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맞는지 잠시 두고 볼 일이다. 체념하기엔 좀 빠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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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 20:10 2009/02/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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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불십년 하니까 갑자기 봉고 대통령이 생각나네요 ㅜ..ㅜ;; 1톤 트럭도 승합차도 봉고끼리 만나면 인사한다는 봉고 시리즈도 벌써 3세가 나온지 오래됐는데 말입니다...

  2. 제발 권불사년해야 할텐데 말이죠....

  3. fessee/ ㅠㅠ

    민노씨/ 권불 4개월도 깁니다. ^^

  4.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는 사시생 1人 orz
    좀 게을러 터져서 이번에 절대 안 될 것 같은데 오히려 안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자기합리화에 나경원을 써 먹는 1人 orz

    ...이라곤 하는데 나경원도 그렇고 요즘 들어 조금씩 더 의욕상실입니다요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