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대운하급 삽질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인하여 왠만한 일간지를 다 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다. 근데 신문 읽는 시간이 예상보다는 훨씬 짧다. 대여섯개의 일간지를 읽는데,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두 가지 신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시간 이상이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메인기사나 단독기사 몇 꼭지를 제외하면 신문기사의 내용이 거의 거기서 거기다.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한날 한시에 한 장소에 모이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매일 매일이 곗날이라고나 할까...

 

어찌되었든 간에, 그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쭈그리고 앉아 각종 신문을 탐독하던 중 오늘자 신문 기사에서 그나마 자기 색깔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기사가 하나 눈에 띄는 관계로 이를 널리 전파하고자 하노라...가 아니고, 원 별 희안한 기사를 메인으로 떡 올려놓고 있는 동아일보 기사를 쬐꼼만 짚어볼라고 그런다. 동아일보라...

 

오늘자 동아일보는 메인 타이틀로 이런 기사를 뽑아 놓았다.

 

"이용자 0.1%가 댓글 30% 도배" 1면

 

이것도 모자라 관련기사를 4면과 5면 양면에 걸쳐 전면기사로 다루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거창한 뉴스길래 명박신문 동아일보가 이런 과감한 지면할인을 하기로 했는지 궁금하기 이를데가 없다. 항상 조중동문에 실린 기사들을 기대 가득 품고 보다가 하품만 하면서 신문지를 접었던 과거의 악몽은 접어둔 채, 동아의 기사를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과는?

 

이번 기사는 동아일보와 인터넷진흥원이 공동으로 포털사이트 기사게시물에 달리는 덧글들을 분석한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사의 기준은 이렇다.

 

조사대상 : 네이버, 다음, 야후 3개 포털의 언론기사 중 200개 이상의 덧글이 붙은 기사들

대상 기사의 기간 : 2008년 8월 ~ 11월

전체 조사 덧글의 수 : 약 32만개

전수분석 덧글의 수 : 6만 9671개

분석결과 : 정리하자니 귀찮아서 링크를 걸겠심. 직접 확인들 하시기 바람

 

악플꾼 5%가 악성댓글 44%도배… 3대포털 댓글 7만건 분석

 

 

아무튼 이 동아일보의 기사들이 주장하는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악플 다는 넘들은 극소수다. 둘째, 이 극소수가 도배신공을 펼쳐 '여론몰이'를 한다. 셋째, 이념에 따른 쏠림현상이 있다. 넷째, 악플 중 상당수는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다. 등등 울라불라...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엄청난 지면을 할애한 동아일보의 단독보도가 그닥 영양가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조사대상의 문제. 동아일보는 조사대상을 네이버, 다음, 야후 3개 포털로 한정했다. 왜그랬을까? 정작 기사를 작성하는 주체는 각 언론사이고 포털사이트는 계약에 따라 언론사의 기사를 링크하거나 자사 웹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그렇다면 포털에 실린 기사에 올라오는 덧글을 분석하면서 각 언론사들의 홈페이지 기사에 달리는 덧글들은 왜 분석하지 않았을까?

 

동아일보에서 악플이 달린 기사로 예를 든 사건 중 문근영 기부관련 기사가 있다. 샘플이 되었던 데일리안의 기사 "문근영 악플, 기부천사에 제정신인가?"는 다음포털에서 검색하면 바로 데일리안 홈페이지의 기사로 링크가 되어 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 달린 덧글을 분석하면서 덧글의 성향을 분석하고 있는데, 정작 자기 신문에 실렸던 문근영 관련 기사의 덧글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동아닷컴에서 몇 건의 문근영 기부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이번 기사에서 동아일보가 주장하고 있는 덧글의 폐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 발견된다.

 

첫째, 별로 덧글이 없다. 즉 포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는 기사에 달리는 덧글의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소한 덧글만이 동아닷컴 해당기사들에 올라와 있다.

 

둘째, 몇몇이 여론몰이를 하는 경향이 발견되기는커녕 찬반 공수가 아주 균형감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문근영 지지자가 악플을 단 사람에게 개념간수를 요청하면 악플러는 너도 빨갱이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응수한다. 이게 비교적 양측 균형이 맞아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덧글들이 기사와 직접 관련이 있다. 포털 기사에 올라가는 덧글들이 본기사와와 별반 관계 없는 덧글들이라는 동아일보의 분석은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덧글들에 적용할 때 별로 부합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넷째, 이념지향인데 물론 이건 동아일보의 오바질이다. 동아닷컴 기사에 달린 덧글을 보면 이건 뭐 이념지향은 구경도 할 수 없고, 단지 개념탑재냐 개념상실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런 성향은 동아닷컴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왜 동아일보가 기사를 직접 생산하는 언론사가 아닌 포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후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적절한 추론에 의할 경우 그 의심이 가르키는 해답의 방향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오늘 올라온 동아일보의 기사는 이미 결론을 내놓고 시작한 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는 거다. 동아일보는 자신의 기사에서 내린 결론, 즉 극소수의 악플러들이 이념에 집착하여 도배신공을 펼침으로서 온라인 상에서 의견의 쏠림현상을 유발하여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픈 거다. 이렇게 안 봐도 비디오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언론사 홈페이지를 조사하는 것은 도끼로 제 발등 찍기다. only, 오로지, 포털만을 조사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면 하필 왜 이따위 결론을 내려야만 할 이유가 뭐였을까? 그건 잠깐만 생각해도 그림이 나온다. 최근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려는 사이버 악법 추진사업이 상당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이버모욕죄, 온라인 완전실명제 등을 비롯한 각종 사이버 악법들을 돌격정신 발휘하여 악플전문 덧글링 러쉬를 자행하는 온라인 악동들은 물론 지들 비판하는 네뤼즌들의 손꾸락을 확 꺾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미네르바사건 등을 계기로 키보드 워리어들의 저항이 만만찮게 솟구쳐 오르고 있다. 이때, 정권의 나팔수, 청와대 기관지인 동아일보, 제 한 몸 던져 뭔가 그럴싸한 근거를 내보임으로써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악법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거다.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바로 동아일보 기사가 그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들이 짚어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답시고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익명성을 보장하되 글을 쓴 사람이 몇 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지역에 있는지 등 간단한 소속 정도만을 노출시켜도 토론의 양과 질이 달라질 것" -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렇게 실명제를 은근히 조장하는 방안을 대안이라고 제시하면서 외국 사례를 들고 있는데, 그 사례가 가관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댓글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CNN, 뉴욕 데일리뉴스, 덴버포스트 등의 언론은 누리꾼이 올린 댓글에 대해 사전 검열을 거친 뒤 게재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 일간지의 사이트에는 아예 댓글을 다는 기능이 없다. 미국의 포털인 야후도 뉴스 사이트에 댓글을 금지했고, 구글은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사이트로 연결해 각 언론사의 방침을 따르도록 유도한다."

 

인용한 기사를 가만히 보자. 뭔가 이상하지 않나? 악플폐해를 조사하면서 조사대상은 전부 포털사이트를 대상으로 했다. 그러더니 외국의 사례는 미국야후와 구글을 제외하면 전부 언론사 자체를 예로 들고 있다. 구글은 애초부터 언론사 사이트에 직접 링크하는 방식으로 기사의 제목과 일부 내용만 노출시키는 것으로 공인되어 있는 사이트라 별반 사례로 들만한 사이트가 아니다.

 

결국 이 대규모 분석기사가 보여주고 있는 결론은 동아일보는 댓글문제에 대해 지 꼴리는 대로 분석대상을 정하고 지들이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고 눈에 띄는 정권보위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치사한 작업을 하고 있는 집단이 국정원도 아니고 방통위도 아닌 민중의 목탁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사라는 점이 한국사회의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예가 될 것이다.

 

동아일보 신문지면 제1면 위쪽에는 "동아일보"라는 제호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왼편에 이렇게 사시를 적어놓고 있다.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함

민주주의를 지지함

문화주의를 제창함

 

쥐랄을 하고 있다. 도대체 니들이 이야기하는 "민족"은 어느 동네에 자리잡은 민족이며, 니들이 이야기하는 "표현"은 걍 니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지. 더불어 니들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는 뭐고 "문화주의"는 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런걸 조사랍시고 동아일보랑 짝짜꿍이 되서 덧글 32만개나 분석하고 앉았는 인터넷 진흥원이라는 곳도 그 성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잘들 놀고 있다.

 

덧 : 동아일보가 아무래도 덧글에 목말라 하고 있는 듯 싶다. 지들 사이트에 덧글 많이 달렸으면 지들 사이트를 대상으로 분석했을텐데... 무플 지옥이라... 상심이 컸나 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1/15 16:43 2009/01/15 16:43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1123
  1. 뭐 새삼스레.. 이것들 삽질은 언제나 대운하급이죠.
    근데 빨갱이가 뭐에요?? 저처럼 꼬리가 달린 늑대로 북한이 묘사되는 교과서를 거치지 않은 20대들도 '좌빨'을 얘기하기에 좌빨이 뭐냐했더니 ...그냥 데모하는 사람... 한나라당도 10년동안 데모했는데(팔뚝질하면 빨갱이였는데...)...
    행인님 술 사줘요.@.@

  2. 존/ 지난 정권에서 "이게 다 놈현 때문"이라는 딱지치기가 거의 레포츠 수준이었다면, 지난 반세기 이상 "저넘 좌빨"이라는 딱지치기 역시 거의 레포츠 수준이었다고 봅니다. ㅎㅎ 이게 이제 관습 내지 전통(?)이 되어버린 듯 하죵. 저도 앞으로 맘에 안 드는 넘이 있음 죄다 좌빨이라고 할랍니다. ㅎㅎㅎ

    술은 논문 쓰고 함 쏘겠습니다. (언제가 될런지는 몰라용 ^^;;;)

  3. 아...딱지치기였군요~~^^ "이병~박은 좌빨이다"... 오~ 삘 오는데요!!

  4. 존/ "이병~박은 좌빨이다"라는 딱지는 아마 안 먹힐 겁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