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신인도
행인의 [미네르바의 역설] 에 관련된 글.
미네르바는 결국 구속되었다. 법원이 밝힌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범죄사실에 대한 충분한 소명이 있고,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서, 그 성격 및 중대성에 비춰 구속 수사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구속요건에 부합한다는 설명을 하는 것으로 보기엔 상당히 괴이쩍다. 현대 형사소송의 원칙 중 하나가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라고 할 때, 구속이 결정되는 것은 원칙의 예외가 된다. 따라서 원칙의 예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한다. 구속영장 발부의 우선 요건은 법원이 밝힌 바와 같이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느냐 여부이다.
문제는 전기통신기본법에 의거한 소위 '허위사실유포죄'라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적용타당한 것이냐이다. 현행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의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다.
제47조 (벌칙) ①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현재 2항은 논외이고 1항이 문제인데,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의 구성요건과 관련하여 미네르바는 주관적 객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통신상에서 미네르바가 행한 허위사실의 유포, 즉 2008년 7월 30일자 '외환예산 환전업무 중단'과 12월 29일자 '정부 달러매수 금지명령'이라는 두 글이 본조 제1항에 규정하고 있는 범죄사실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조항이 헌법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은 조항이라는 점이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유포"했다는 정황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은 포괄적 처벌 금지라는 형법의 원칙에 반한다. 예컨대 어느 처자가 아고라에 글을 올려 "나는 결혼하지 않고 아빠 엄마랑 같이 살거에요"라고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한다면 이 처자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처자가 결혼한다고 해서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협받는 일은 전혀 없다. 이 처자를 구속수사하겠다고 검찰이 설치면 공공의 망신이 될 뿐이고.
마찬가지로 미네르바가 설령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유포"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협받았고 이로 인해 실제적인 피해가 발생했거나 극도로 위험한 피해발생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미네르바의 글은 단지 개인적 의사의 표현일 뿐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게 된다. 이 때 법원이 판단한 바, "범죄사실의 소명"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기타 구속의 요건으로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주거불명, 증거인멸의 우려, 도주우려 등의 가능성(형소법 제70조 제1항) 역시도 미네르바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글을 집에서 올림으로 인해 IP를 추적하는데 별다른 무리가 없었음을 감안할 때, 더불어 바로 그러한 이유로 주거가 명확하고 도주우려가 없다는 점, 또한 범죄혐의가 있는 글들이 이미 공공연하게 노출됨으로 인하여 별다른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구속영장이 발부될 이유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은 바로 법원이 이야기한 "국가 신인도"의 문제다. 신인도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자면 신뢰성의 정도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의 정도는 차후에 보더라도 이번 법원의 결정과정에서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발견된다. 즉, 이번에 영장발부를 한 판사의 성향을 보면 이런 사건의 경우는 거의 정확하게 영장이 발부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발부를 결정한 판사는 김용상 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이다. 이분께서 최근 들어 결정한 구속영장심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속영장 발부실적
광고불매운동 네티즌 구속영장
김민석 구속영장
노건평 구속영장
주경복 구속영장
미네르바 구속영장
구속영장 기각실적
친박연대 비례1번 양정례 모친 구속영장
공정택 관련 학원가 관련자 구속영장
이명박 후원조직 "희망세상 21 산악회" 회장 구속영장
사노련 오세철 교수 구속영장
최열 환경련 전 대표 구속영장
물론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정도 되는 분이 아무런 근거 없이 구속영장의 발부와 기각을 했을리는 없다. 법률의 근거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 모든 행위를 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런 믿음, 즉 신뢰에 따라 이분이 앞으로 각종 구속영장에 대해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쉽다.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의 범죄에 대해선 모두 구속수사, 정권에 순응하거나 적어도 정권에 반할 가능성이 없는 범죄주체에 대해선 모두 불구속 수사. 얼마나 확실한 신인도의 표본인가? (오세철, 최열 건은 어디 해당될라나? 소위 진보성향 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인데, 이렇게 따지면 판사 개인에 대한 신인도가 떨어질라나? 흥!)
마찬가지로 이분은 "국가의 신인도" 역시 개인적인 신인도와 버금가는 측면에서 판단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경우 어느 쪽이 국가 신인도에 더 적합한지를 보자.
1. 대~한민국은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의 행위는 인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나 이에 도전하는 인민의 행위는 가차없이 제한된다.
2. 대~한민국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인민이 이에 대한 판단을 함으로써 민주적인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온라인을 통한 분석과 비판은 사회적인 여론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2번이 국가의 신인도를 높힐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도덕적 윤리적 판단의 근거일 뿐이지 이윤창출을 위한 판단근거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1번이 훨씬 더 대~한민국에 투자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구속여부를 결정할지에 대해 객관적 신뢰도를 보여주고 있는 김용상 판사께서는 바로 이런 차원에서 "국가신인도"를 염두에 두었으리라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국가신인도를 생각하는 일반 인민들은 김용상 판사의 결정에 대해 분개할 것이나 이명박을 비롯한 정권의 실세들과 여기에 종속된 한나라당 등 보수정치집단 및 재벌을 비롯한 천박한 자본가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김용상 판사의 구속영장발부는 "국가신인도"를 높히는 획기적인 결정이 된다. 물론 판사씩이나 하시는 분이 법의 원리에 대해선 일말의 고려 없이 "국가신인도"를 먼저 생각하시는 행위가 적절한지 여부는 알아서들 판단할 일이다. 법관으로서의 자질은 의심되나 이렇게 훌륭한 "애국자"도 드물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애국자"의 행위는 한국 법률체계에 대해서만큼은 "신인도"를 폭락시켰다. 어느 제정신 가진 사람이 이 현상을 보면서 한국의 법체계는 신뢰할 수 있을만큼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할까? 정권에 따라 법의 적용양태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믿을 것은 법률이 아니라 정권일 뿐이고 그 뒷배를 봐주고 있는 자본일 뿐이다. 이명박이 그토록 주장하고 있는 "법치주의"는 결국 정권에 의한 자의적 법률집행의 다른 말일 뿐임이 드러난 사건이 이번 사건이다.
아 저도 아침에 이 뉴스 보고 대빵 어이상실했어요.
이 판사 사시 칠 적에 형사소송법은 전혀 공부 안 했는지 -_-
얼마 전에 검찰이 마구 구속영장 발부 신청하는 거에 대해 기각하는 판결이 나왔던 것 같은데(그 때 검찰 말이 압권이었죠. "범죄자 중에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 범죄자가 몇이나 있겠느냐. 구속 수사 하지 말란 얘기냐." 당연히 하지 말아야지!!!!!), 아무튼 저 판사.. -_-
자폐/ 저는 그래도 구속영장청구는 기각되리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저쪽 사정을 좀 많이 아시는 분들은 영장발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사안이 사안인만큼 영장기각했다가는 자리보전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더군요. 에혀...
예전에 교수님 수업을 듣던 후배입니다 ^^
저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지만...
미네르바도 상당한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혹시.. 미네르바 사건으로 물타기 하는건 아닐까요?
아소 총리가 경제인들을 데리고 한국 온다고 하네요...
단순히 놀러 오는건 아닐텐데...
요새 미네르바 때문에 정부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ㅜㅜ
초딩/ 반갑습니다. 검찰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몇 가지 있겠지만 한일정상회담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에 대해선 좀 확인을 해야겠지만, 경제상황과 관련해서 양 정상간에 의미있는 비전의 합의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한일 통화 스왚을 비롯해 한중일 공동 경제대응책에 대한 논의나 혹은 한일 FTA에 관한 논의 등이 있겠지만, 두 사람의 두뇌수준으로 볼 때 내용 있는 합의가 기대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각국 내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할 겁니다. 현재 경기상황이 그러한 논의를 하기에 적절치도 않고, 특히 한국의 경우 민생살리기 천삽뜨기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이 경제마인드에서 나오는 어떤 정책을 사람들이 신뢰하지도 않을 거구요. 뭐 이정도?
정부가 뭘 하고 있는지 그닥 궁금해하시진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 워낙 하는 짓들이 속이 뻔히 보이는데다가 벙커 만들어놓고 지들끼로 주관적으로 진지하게 모여 앉아 기껏 미네르바 잡아들이는 실적이나 올리고 있는 수준인지라 별로 하고 있는 것도 없는 듯 보입니다. ㅎㅎ